메인화면으로
'도박' 문제라며, 정부는 왜 '합법적 도박' 허용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도박' 문제라며, 정부는 왜 '합법적 도박' 허용할까? [시민정치시평] 도박 산업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와 도박규제 운동을 같이 하고 있는 전국도박피해자모임의 정덕 대표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세계 최대의 피혁가공 수출 회사를 일군 상장기업 회장님이었다. 정덕 대표의 인생은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강원랜드를 계기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2003년부터 3년 반 동안 정덕 대표는 강원랜드 카지노 회원 영업장에서 무려 360억 원에 이르는 전 재산을 잃었다. 정덕 대표는 두 번의 자살시도 끝에 도박을 끊고 도박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행산업은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 설립을 시작으로, 해방 이후 경마, 경륜, 복권,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업종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지난 10여년 사이에 강원랜드(2000년 10월), 스포츠토토(2001년 10월), 경정(2002년 6월), 온라인복권(로또, 2002년 12월) 등으로 업종이 증가하고, 장외발매소 증설, 온라인베팅 시스템 도입, 경기횟수 확대 등 새로운 운영방식 및 경기 방식을 도입하는 등 사행산업을 육성한 결과, 국내 사행산업은 급속한 양적 팽창을 거듭하게 되었다. 사행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하게 된 이유는 사행산업 관련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조세 및 기금 확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사행산업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유치 및 육성 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행산업 확대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 사행산업 총매출 규모는 2000년도 6조2761억 원에서 2011년 18조2629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돈벌이를 위해서 사행산업을 적극 육성 장려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과연 사행산업이 돈을 벌기는 하는가?

놀이의 세계에서 도박만큼 재미있는 놀이는 없다. 도박에서 오는 즐거움이 남녀관계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하다는 연구도 있다. 도박은 생리적 흥분을 유발하는 몰입형 놀이이다. 모든 놀이가 다 몰입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도박은 특히 몰입의 정도가 심하다. 전 재산을 잃거나, 이혼을 하거나, 자살에 이르게 될 정도로 도박은 매우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30세 이전에 도박에 대한 자기통제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도박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한다. 도박에 대한 자기통제능력이 없는 사람이 도박에 손을 대면 매우 심각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도박의 부작용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박중독 문제이다. 도박중독은 도박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하고자 하는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여 개인, 가족 및 직업생활에 심각한 손상을 받는 상태를 말하고, 도박중독은 개인과 가정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2012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우리나라의 도박중독유병률은 CPGI(Canadian Problem Gambling Index, 4점 척도로 된 9개 문항에 대해서 중위험성 도박 3-7, 문제성 도박 ≥8,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박중독유병률 척도로 최신 유사 연구가 많음.)로 7.2% (중위험 도박자 5.9%, 문제성 도박자 1.3%)에 이른다. 2010년의 6.1%(중위험 도박자 4.4%, 문제성 도박자 1.7%)에 비하여 1.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CPGI로 측정한 외국의 도박중독유병률을 보면, 영국이 2.5%(2010년), 프랑스가 1.3%(2010년), 호주가 2.4%(2010년), 뉴질랜드가 1.7%(2009년)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도박중독유병률은 선진 외국에 비하여 3~4배 높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과도한 도박은 개인에게 스트레스, 우울증, 분노, 건강 악화, 자살 등의 문제를 야기함은 물론이고 가족 간의 대화 단절, 가족의 무시, 가정폭력, 재정적 어려움, 파산, 실직 등을 초래하여 가족관계를 파탄시킨다.

도박 중독자 확산은 가정파괴, 자살, 도박자금 마련을 위한 절도, 강도 등 사회 범죄를 증가시킨다. 도박은 그것이 비록 합법적인 사행산업일지라도 단기적으로는 사행산업 내 고용이 증대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주변의 생산적 사업에서는 고용이 감소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특히, 도박중독자는 도박중독으로 인하여 직업의 변화를 겪거나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도박은 사회적 비용도 증가시킨다.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도박중독자 치료비용, 사행사업자 관리ㆍ감독 비용,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비용, 범죄자 증가에 따른 교정비용 등의 비용을 증가시킨다. 도박중독은 실직과 가정파괴의 원인이 되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비용을 증가시킨다. 도박은 사행심을 조장하여 경제 생산성을 하락시킬 수 있고 근로의욕 감퇴와 실업을 초래하여 인적 자본을 사장시키며, 결국, 성장잠재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주 이용 층인 서민경제를 파탄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렇게 도박의 부작용이 큰데도 불구하고 왜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허용하는가?
그것은 사행산업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는 사행성 수요를 합법적인 사행산업으로 흡수함으로써 도박이 갖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도박은 모험을 즐기는 인간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도박을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경험적 진리다. 따라서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되 사행산업이 사회에 일정 정도 존재하는 사행성 수요를 흡수하게 하고 이를 잘 관리함으로써 도박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합법 사행산업을 허용한 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행산업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감독을 위하여 2007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설립하였지만 그 이후에도 합법도박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불법도박 또한 근절되지 않고 있다. 도박 중독을 비롯한 도박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도박은 물놀이의 경우와 비교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계곡이나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사고가 많이 발생하면, 정부는 수영금지 구역을 정하고 수영장과 해수욕장을 개설하되, 허가받은 수영장과 해수욕장을 안전하게 관리하여 몰놀이 수요를 합법적인 수영장과 해수욕장으로 유인함으로써 사고 위험이 높은 장소에서 물놀이하려는 수요를 흡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도박에 대한 사회적 대응 방안도 사행산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되 도박중독 등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 시스템을 구축하여 불법도박 수요를 합법 사행산업으로 흡수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선진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불법도박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도박에 대한 사회적 대응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우리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수용성의 범위 내에서 도박을 합법적인 공간 내에서 레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면 불법도박 문제도 사회적 통제범위 내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법도박이 창궐하고 있는 것은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관리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여 우리 사회의 사행성 수요를 합법 사행산업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사행산업을 돈벌이가 아니라 도박의 폐해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사행산업 사업장이 도박장이 아니라 건전한 레저공간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하고, 선량한 국민을 도박장으로 끌어들여서 도박중독자로 만든 후 그 도박중독자를 치료해 주지는 못할망정 도박중독자를 상대로 도박판을 벌여 돈을 버는 악랄한 범죄행위를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도박중독자에 대한 철저한 출입제한 제도와 중독예방 및 치유시스템의 구축, 전자카드의 전면적인 도입을 통한 도박중독자 관리, 사행산업 허가에 대한 주기적인 갱신제도, 사행산업 영향평가제도, 사행산업 인허가의 일원화와 사행산업 기금의 통합 관리, 사행산업 종사자 면허제도 등 사행산업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고층건물 옥상에 안전장치도 없이 놀이공원을 만들어 놓고는 거기서 떨어진 사람들에게 왜 바보같이 그곳에 갔느냐고 책임을 전가하는 엉터리 같은 일이 합법적인 사행산업 사업장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도박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을 잃고, 가정을 잃고, 영혼을 잃은 도박피해자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