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에 방점을 찍은 9·13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한달이 지났다. 현재 서울 아파트 시장상황은 위축된 기미가 역력하다.
KB국민은행 주간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0~200 사이로 산출되는 매수우위지수는 100을 넘어갈수록 매도자 우위시장을, 100아래로 내려갈수록 매수자 우위시장을 의미한다)는 지난 8일 기준 96.9를 기록했는데 9월 3일 171.6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것에 비하면 한달여 만에 무려 74.7포인트가 하락했다. 사려는 사람이 줄어드니 거래가 격감하는 건 당연지사다. 지난 8월27일 65.7로 올 들어 최고점을 찍었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지수(0~200 사이인 아파트 매매거래지수는 100을 넘어설수록 거래가 빈번하고 100 아래로 내려갈수록 거래가 준다는 의미다)는 지난 8일 9.8까지 내려갔다. (관련기사 : )
서울 아파트 시장이 소강상태에 빠진 이유가 대책의 효과 탓인지, 시장의 에너지가 다한 때문인지는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시장의 방향성이 어떻게 결정될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폭등세가 완연히 꺾이고 거래가 주는 건 문재인 정부에겐 다행이고 한숨 돌릴 상황이다. 나는 이 타이밍에 문재인 정부가 지난 시간들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부동산에 대한 철학을 올바르게 정립했으면 좋겠다.
근년 들어 서울을 강타한 투기 광풍이 이명박근혜로부터 시작된 건 틀림 없는 사실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상승의 폭이 더 가팔라지고, 상승의 속도가 한결 빨라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에 대한 바른 철학을 정립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 비록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을 명시하겠다고 천명하긴 했지만, 토지공개념의 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할 보유세 등 정책수단의 적극적 도입에는 극히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투기에너지를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킨 것이 아닐까? 시장은 정부가 보내는 신호를 귀신 같이 간파하곤 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대책들을 보고 이 정부의 진의가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를 통한 부동산 공화국 혁파에 있지 않고 안정적 시장관리에 있다고 본 것이다. 투기를 통해 얻을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열망과 그 열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를 과소평가한 문재인 정부는 시장관리에 치중하다 시장의 가혹한 응징을 당한 셈이다.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과거의 정책 실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 성찰에 바탕한 부동산 철학의 재정립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 수준에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고 주거복지에 자원을 할당하자'는 수준의 인식과 시선을 가지고는 시장의 난폭한 욕망을 제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의 시장상황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혹여 문재인 정부가 '정부 출범 이후의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은 유동성 과잉 때문으로 전 세계 주요국의 주요도시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고, 정부가 내놓은 9·13대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니 부동산 문제도 이제 한시름 놓았다'정도의 판단을 하고 있다면 생각을 바꿀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중위값이 8억 원이 넘는 서울 아파트 시장을 그대로 두고 그런 생각을 한다면 도대체 누가 그런 생각에 동의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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