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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빅뱅'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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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동차 산업의 '빅뱅'이 다가온다 [민미연 포럼] 자율주행차량 시대, 소유가 아닌 서비스로서의 자동차
한국 GM은 최근 주주총회를 열어 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R&D 부문의 법인 분리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 또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 내 생산기지 철수를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먹튀'라는 다소 감정적인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제조업체가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로의 변신을 준비하는 GM

작년 3월 GM의 CEO 메리 베라는 GM의 가치 성장에 관해 묻는 언론의 질문에 "(자율주행차량 등) 자동차 산업을 변혁할 기술과 '서비스로서의 교통(TaaS: Transportation as a Service)'이라는 개념 덕분에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 자체가 바뀔 것이다. GM은 미래에 투자하면서 거대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자율주행차량이라는 거대한 시장 변화를 맞아, 현재 자동차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인 '자동차를 제조해서 판매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율주행차량 등을 이용해 모빌리티(교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최근 수년간 GM은 전기자동차를 개발하고, 거액을 들여 자율주행에 관련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인수하며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이러한 역량 강화에 힘입어 올해 초에는 운전대와 페달이 없고 운전석조차도 없는 무인자율주행차량인 크루즈 AV를 발표했다.

새로운 시장의 거시적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이 모든 노력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기업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주력 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유럽, 인도, 호주 시장 등에서 매각 및 철수가 이루어졌다. '자율주행차량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군살을 빼고 자금력을 확보하며 기회를 엿보겠다는 속내로 보인다. 한국 GM의 군산 공장 폐쇄에 이은, 이번 R&D 부문의 분리 역시 동일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차량 시대, 소유가 아닌 서비스로서의 자동차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차량)이라는 개념은 '자율주행차량 시대'를 규정짓는 핵심적인 단어이다. 이동 수단이 필요할 때 차량을 구매할 필요 없이, 스스로 운전할 필요도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면 차량을 구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자동차 판매시장은 축소될 것이다. 거기에 보다 편리하게, 차량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면 시장의 축소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간단히 스마트폰 앱만 구동하면, 내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위치에서 차량을 불러서 사용할 수 있다. 운전할 필요도, 주차할 필요도, 차량을 반납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 이 비용은 현재 택시비용의 10분의 1 수준(미국 뉴욕 기준)으로 낮아진다. 이런 조건에서도 차량을 직접 구매할 사람이 얼마나 남을까? 불편함과 고비용을 감수하고도 자가 차량을 소유할 소비자보다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편리하게 자율주행차량의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율주행차량의 상용화에 따른 시장 분석 예측에 따르면, 차량 판매시장은 40% 이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개인을 위한 차량 판매 시장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자율주행차량을 활용한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가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자동차 제조+판매'가 아닌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로 급격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기존의 시장에 대한 전략을 근간에서부터 다시 설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올해 2월 있었던 현대자동차 관계자의 블룸버그 TV 인터뷰는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현대자동차의 장웅준 ADAS 개발실장(이사 대우)은 "과거에는 사람들은 자신의 차량을 소유하려 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자율주행차량의 주된 소유주는 (개인이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자(차량 공유업체 또는 택시사업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자율주행차량 시대'를 바라보는 자동차 업계의 시각을 잘 대변해준다.

시장의 프레임 변화는 자동차 업체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대비할 것을 강요하여, 경쟁 업체 간 합종연횡을 강제하고 있다. BMW와 다임러는 아예 지분을 공통 투자하여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 회사를 설립했다. 미래 시장을 대비하여 두 회사의 역량을 통합시켜 대응하겠다는 생각이다. 도요타는 우버에 5500억 원을 투자하고, 혼다는 GM의 자율주행차량 자회사에 투자하여 지분 5.7%를 28억 달러에 인수했다. GM 역시 자체적인 자율주행차량 개발과는 별도로 차량 공유업체인 리프트에 거액을 투자했다. 전 세계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처럼 자율주행차량이라는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또 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군산 공장을 폐쇄하고, R&D 부문을 분리한 GM의 결정 역시 단순한 먹튀가 아니라 모두 이러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대비하며 나온 것들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장 상황의 흐름('자율주행차량 시대'로의 변화)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방식의 대응이나 감정적인 대응을 할 경우 자칫 새로운 전환점을 대비할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 정부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는 '자율주행차량 시대'로의 진입이라는 배경을 고려한 냉철한 분석과 대응이 있어야 한다.

많은 대안이 나온다. 그러나…

GM의 군산 공장 폐쇄 결정 이후 많은 주장이 대안이라며 나오고 있다.

제삼자 매각 후 전기차 공장으로의 전환, 또 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GM 지분을 인수한 후 압력을 행사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중 주목 받는 대안은 소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다. GM의 군산 공장 폐쇄에 대한 대안으로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기업의 생산 공장을 유치하고, 새로 유치하는 공장의 노동자 연봉을 낮게 책정하여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최근 정부 여당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할 정도로 정치권에서는 관심이 높은 모델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차 등 기존의 완성차 메이커들은 국내에 이미 충분한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고, 실적 부진으로 기존의 공장과 노동자들에게 할당될 물량도 부족한 현실이다. 내수는 늘어나지 않고, 최근 보호무역 기조의 심화 속에 수출 물량도 늘어나기 어렵다. 설사 생산 공장을 짓더라도 해당 국가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 당연히 국내에 공장을 새로 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에 운영 중인 다른 공장을 폐쇄하거나 물량을 줄여서 그 물량을 가지고 와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현재 잘 다니고 있는 다수의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기존의 다른 지역의, 다른 공장의 물량을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 간의 갈등과 지역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기업에 의해 저임금을 강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 자동차 시장은 '자율주행차량 시대'를 향해 전환 중이고,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자동차 판매 시장의 급격한 축소가 예측된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 메이커들은 차량 판매가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을 통한 서비스 업체로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운영 중인 생산 설비의 축소나 일부 폐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며, 업체들 역시 인지하고 있는 바다.

지난 9월 7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MOVE Global Mobility Summit)'에서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자동차를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자율주행차량 시대'를 대비한 비전을 밝혔다. 이는 GM의 CEO 메리 베라가 GM의 가치 성장을 차량 판매가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에 두겠다는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과 같은 맥락의 선언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 역시 판매가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을 모색 중이다. 지금 자동차 시장의 축소는 필연이고 기존의 생산 공장 중 일부를 폐쇄하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 실직자를 어떻게 재교육하고 재취업시킬지 등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생산 공장을 더 짓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광주형 일자리'가 실효성이 있을까? 내수 시장이 갑자기 크게 늘어나고, 수출이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건 지극히 정치적 결정이고, 기업의 경영진이 하겠다고 나설 경우 주주들에게서는 집단 소송의 대상이 되고, 기존의 완성차 업체 노조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현재 '자율주행차량 시대'를 맞아 자동차 시장에는 자동차와는 무관한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나타나고 있다. 일견 자동차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IT업체는 물론이고, 다이슨 같은 소비자 가전 업체들도 자율주행차량에 의한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자율주행차량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기능을 갖춘 컴퓨터이며, 하드웨어적으로 시장 진입 장벽이 낮다. 따라서 전혀 별개의 분야에서 활약하던 업체들의 자동차 시장 진입은 속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기반을 둔 업체들이 직접 새로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자본이야 다양한 방법으로 펀딩이 가능하지만, 공장을 짓고 새로 가동을 준비하는 데에 드는 시간은 자칫 시장 진입 기회를 날려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자율주행차량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하드웨어가 아니고 알고리즘을 비롯한 소프트웨어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신규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하드웨어는 아웃소싱을 통해 조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특정 자동차 메이커의 생산 공장을 유치하는 것보다는 GM 군산 공장(또는 추가적인 구조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여분의 생산 공장)을 정부, 종업원지주회사, 또는 공공자본이 인수하여 전문적인 아웃소싱 업체로 대응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치 개인용 PC 시장이 열린 후 상당 기간 조립 PC 시장이 활성화된 것처럼, 생산 공장을 가지지 못했지만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업체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늘어난 시장 참여자들의 니즈, 또 시장 변화에 발맞춰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구조조정의 희생양에서 새로운 시장의 주도자로 위치를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스템 정비를 위해 참고할 만한 롤 모델은 역설적이게도 이 사태의 장본인인 GM이다. 금융위기 당시 파산을 선언한 GM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일부 지분을 종업원이 인수한 후 재기에 성공했다. 과거 GM은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자동차 산별노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제공하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해, 노조가 지분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협조 속에 비용 절감과 함께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일정 정도 이상의 지분을 노조가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방지하고 지금의 GM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모델을 참조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시킬 방법은 없을까?

과거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그것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건, 제삼자 매각이건 간에 막대한 정부자금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왕에 정부의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정부와 외부의 철저한 감독 하에 전문경영인을 공모하고 자구책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어떤 대안도 없다면, 과거 회생에 성공한 모델을 참조하여 정부의 지원과 함께 노동자의 지분 참여를 유도하고, 노동자 스스로 시장에 대응하여 고용을 창출할 기회를 주는 방안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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