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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규제완화, 누구의 이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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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료기기 규제완화, 누구의 이득인가? [다시 시작되는 의료민영화] ② 의료기기의 규제 완화 (下)

'혁신성장'을 내건 정부의 규제완화 핵심 중 다른 하나는 '체외진단기기'다. 정부는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를 아예 생략할 계획이다. 타액이나 혈액 같은 검체를 채취해서 검사하는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안전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 오진하는 '안전한' 체외진단기기?

하지만 진단기기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ECPKA 항체를 측정하는 체외진단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했는데, 그 이유는 암이 없는 정상인의 10% 정도를 암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이었다. 암을 오진하는 의료기기가 안전할 리 없다.


진단이 비교적 정확한 경우라도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인 경우 도입이 불허됐다. 이런 검사가 난립할 경우 환자가 지출할 의료비만 상승한다. 지난 3년간 신의료기술평가를 완료한 체외진단기기 147건 중 이러한 이유 등으로 평가에서 탈락한 기기는 34%나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의료기술평가가 불필요하다는 업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체외진단기기 ⓒ라포르시안
기업들은 '식약처 허가'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절차가 중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식약처는 기업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의료기기 자체가 물리적으로 안전하고 작동을 잘 하는지 정도를 보는 데 그칠 뿐이다. 신의료기술평가를 해야 그런 의료기기로 진단과 치료를 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환자 안전과 효과, 사망과 합병증, 삶의 질을 검증할 수 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로 경제성장 하겠다는 정부

'4차 산업혁명'은 경제위기의 구원자인 양 호들갑스럽게 강조되지만, 결국 박근혜의 '창조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기업 규제완화를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빠른 속도라며, 규제를 다 지키면 경쟁에서 뒤떨어질 거라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의료에서 규제는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부실한 의료기기를 '우선 도입'한 뒤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는지 '사후 평가'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국민의 위험을 사전 예방해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병원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국내 사용 실적을 참고자료로 쌓아 해외 수출'하겠다는 발상도 국내 환자를 실험대상 삼겠다는 말일 뿐이다.


게다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고 도입될 이런 의료기기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고 의료비(수가)를 높이 쳐준다는 정책도 황당하다. 환자들은 정부가 허가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의료기기라면 안전하리라 믿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당연한 사실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규제완화는 기업 로비의 결과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에 헬스케어특별위원회를 두었는데, 산업계 위원 10명 중 7명이 의료기기·체외진단기기 업체 출신이다. 규제완화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기기가 빠르게 도입되고 환자가 비싼 치료비를 부담하면 설사 경제는 성장할지 모르지만, 그 과실은 누가 차지하는가? 그리고 고통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미국 의료기기 규제 완화의 폐해를 다룬 다큐멘터리 <첨단 의학의 덫>에 등장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안전하지 않은 의료기기로 인한 문제는 의료를 이용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지만, 충분한 정보 접근에서 소외되어 있고 양질의 접근 가능한 의료서비스가 절실한 서민들, 여성,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로 가장 먼저 향할 것이다.

이윤보다 생명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이슈어' 부작용의 피해 여성들은 온라인으로 통해 서로를 찾아내고, 함께 언론에 호소하고 집회와 캠페인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유럽과 미국에서 이슈어 시판을 중지시키는 승리를 거둔다.

▲ 이슈어 피해자들의 투쟁 ⓒ다큐멘터리 '첨단 의학의 덫' 캡처


다큐멘터리는 환자를 위해 권고하는 '의료사고 예방 수칙'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당신에게 사용될 의료기기를 충분히 조사할 것', '위험하거나 비싼 수술은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들을 것', '담당 의사가 로비를 받았는지 확인할 것' 등이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하고, 환자가 병원에 가기 전 의료인과 의료기기를 철저히 확인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면, 과연 이것이 우리의 미래여야 할까? 우리는 이런 시스템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27일)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에서 이런 위험천만한 규제완화 법 논의가 시작됐다. '의료기기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칭대로 환자의 의료접근권이 아니라 산업육성이 목적인 법안이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한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는 정부 국정방향이라며 찬성으로 돌아섰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대한 사안임에도 공청회도 거치지 않겠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정말 촛불로 정권을 바꾼 것이 맞는가?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의료민영화는 결코 박근혜 정권 못지않다. '혁신성장'이든 '창조경제'든 우리의 삶은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시민들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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