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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의 향기와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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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의 향기와 나그네" 김민웅의 세상읽기 〈190〉
커피 한잔의 향기가 우울함을 거두어 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정갈한 동양화 같은 차를 마실 때와는 분명 또 다른 정서로 우리의 영혼을 적셔 줍니다.

이국(異國)의 풍경이 진한 갈색의 작은 물결 속에서 환영처럼 흔들립니다. 커피 한잔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이는 나그네가 될 준비를 하는 설레임을 경험합니다.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자라나던 수목(樹木)의 한 열매가, 이슬람의 낙타에 실려 사막을 건너 유럽의 어느 도시 카페에서 제 맛을 내기까지 커피 한잔에도 문명의 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남미 카리브 해 연안의 작은 나라들도 이 역사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평소에는 낯설었던 인도네시아의 섬들도 카페를 찾는 나그네의 상상 속에 거쳐 가는 경유지가 됩니다.

자바와 이디오피아 그리고 온두라스는 그러는 순간, 나라 이름이 아니라 커피의 원산지가 되고 그 발음은 갑자기 고급 원두커피를 찾는 이의 교양의 증거가 되는 자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겨울, 눈보라가 몰아쳤던 밤 한 노년의 의사가 집에서 손수 만들어 준, 위스키에 에스프레소를 섞은 한 잔의 향료 같은 몰약(沒藥)은 잊기 어려운 환대의 추억이었습니다.

너무 마시면 속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커피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까닭은, 그로써 잠시 취해보는 휴식의 즐거움과 이국적 향기가 선사해주는 낭만의 사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겁게 살아가는 가운데 대중식사 한 끼와 맞먹는 값을 치르고라도 그 정도의 사치는 그래도 허용되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 커피 한잔에 담겨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름은 차(茶)를 파는 다방(茶房)이나, 사실은 차보다는 커피를 파는 곳이 생겨난 것은 근대의 도시 풍속이었습니다. 그건 이른바 문화인의 풍류가 되었고 거기에서 우린 시인도 되었고 명함만 박힌 사장도 되었으며 마담과 노닥거리는 한량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다방은 이제는 쓸모없어진 구식 살림살이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고, 커피 집은 거의 대부분 서양식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원산지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보다 가공의 문명에 익숙해진 서구의 힘이 또한 커피 한잔에도 투영된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카페 이름과 미국의 커피 산업이 압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태연스럽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문명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기분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게 커피를 만들어 내는 카페의 주인을 때로 만나면 감사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건 마치 장인(匠人)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집중과 정성, 그리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찰나입니다.

이디오피아의 태양과 자바의 숲, 그리고 온두라스의 코발드 빛 카리브해가 그의 손에서 빚어지는 듯 한 느낌인 것입니다.

겨울의 주말 한 때, 커피 한잔에 잠시 취해 다소 어설픈 나그네가 되어 보는 것도 인생 사는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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