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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06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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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06년 겨울〉 김민웅의 세상읽기 〈195〉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작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그렇게 너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던 세대의 자전적 독백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혁명은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처럼 바짝 뒤쫓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얼핏 그야말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삼십대 중반의 사나이의 마구 헝클어진 인생과 기묘하게 얽혀 하루를 지내다가 그 사나이의 역시 돌연한 죽음과 함께 서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나이의 아내는 그날 죽었으며, 그는 그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판 대가로 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서른 중후반의 사나이란 요즈음은 청년에 불과하지만, 그때 그 즈음의 그 나이는 전후(戰後)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던 인생의 피로함으로 상당히 지쳐 있을 만한 처지였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에서, 통금시간이 가까운 때에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면서 월부책값을 받으러 왔노라고 절규하듯이 흐느끼며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은 비틀거리고 있던 시대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이십대 청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대학원생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 출신의 고졸로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처지나 위치가 다른 둘은 엽기적인 대화를 시작합니다.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여기서 파리는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파리, 모기 할 때 그 곤충을 말합니다. 질문을 받은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반문합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둘 다 만만치 않습니다.

"파리"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다니. 괴담(怪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애초에 질문을 던졌던 안이라는 청년이 대답합니다. "예, 날 수 있으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파리도 날아다니는데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날지 못하고 쭈그러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갑니다.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어찌 보면 난데없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가고 있을지 모를 세대의 입에서 나온 이 "꿈틀거림"이라는 단어는 사실 사뭇 절박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 절박함의 현실을 아까의 그 삽십대 중반의 사나이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으로 마감하는, 그러면서도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기억해주지 않을 시궁창 속의 비극이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두 청년은 서로의 나이가 이제 기껏 스물다섯임을 다시 확인하고는 이렇게 서로 주고받습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그 뭔가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의 어느 골목에서 청년의 희망은 시들어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었습니다.

25세의 나이에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이 작품 속에서 김승옥은 희망에 대한 지독한 갈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흐른 지금, 〈서울 2006년 겨울〉은 오늘의 스물다섯 살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을까요? 약속은 남발한 부도수표처럼 거창하게 넘치고, 막상의 현실은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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