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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회담 이후의 분단체제-양국체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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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회담 이후의 분단체제-양국체제 논쟁 [기고] '韓朝수교'와 코리아 양국체제
필자가 2019년 <녹색평론> 1~2월호에 실은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에 대해 서울대 김명환 교수가 동지 3~4월호에 '한반도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하여--김상준 교수의 분단체제론 비판에 대해'라는 글을 올렸다. 읽고 보니 굳이 답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논쟁이 생산적이려면 우선 상대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김명환 교수의 글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필자는 비판에 앞서 '분단체제론'을 충분히 이해해보기 위해 백낙청 선생이 지난 30년 간 이 주제로 출간한 거의 모든 책과 글을 검토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그 짐을 지기로 했다.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에서 밝힌 것처럼, 그 글은 "분량 상 두 개로 나눈 글의 후반부"이며 "전반부는 <문화과학> 96호(2018년 겨울)에 실린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상호 이해를 위한 서장'"이라고 밝혀 두었고, 글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글이 그 전반부 외에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할 몇 개의 글들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전반부와 함께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할 글은 <한국사회학> 52권4호(2018년 겨울)에 발표한 '코리아 양국체제: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 글이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전후반부와 같은 시기에 쓴 글이며, '양국체제론'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글이라는 것도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쉽고, 간단하게 쓰지 않았다. 분단체제론을 제대로 이해해보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공을 기울였다. 30년 간 권위를 누려온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공을 들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김명환 교수의 글을 보니 같이 읽었어야 할 최소한의 글 두 편은 물론이려니와, <녹색평론>에 실렸던 한 편의 글조차 제대로 읽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제대로 읽고 알아볼 필요도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읽어보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문제다. 글에 다만 분명히 비치는 것은 김명환 교수가 백낙청 선생을 무작정 옹호하고 싶은 붉은 마음인데, 그거야 필자가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글에 다시 답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그런 마음이었다.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장면과 방식을 좀 바꾸어서 대화를 이어가보기로 했다. 그 회담 이후의 교착상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필자가 제기한 '코리아 양국체제론'과 백낙청 선생이 제기해 온 '분단체제론'의 차이가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인데, 그 일은 생산적으로 보인다.

1.
2019년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비핵화와 체제안정보장의 딜(deal)은 한 동안의 밀월관계 이후 일단 교착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2018년 6월의 싱가폴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북미관계가 밀월로만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이제 유명해진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요구한다면, 북측 역시 똑 같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안전보장(Guarantee)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CVIG). 애당초 단기간에 마무리될 일이 아니었다. CVIG 없이, CVID만 하라 할 수 없다. 그런 건 딜이 아니다. 이 딜은 애초부터 단계적으로 서로의 진행을 확인해가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교착국면은 주의 깊은 관찰자들에게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대비하면서 준비해왔어야 할 방침이 무엇일까? 이야기가 생산적이려면 이런 문제를 함께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연구실에 앉아있는 학자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또 그러함으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차원의 말도 있다.

축구사를 보면 요한 크루이프라는 '대선수'가 축구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중재자냐 플레이어(선수)냐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렇게 경기 자체의 차원을 바꾸어놓는 대 선수도 있다. 경기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 정도면 '대선수'이자, 동시에 '대중재자'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중재란 낮은 수준의 중재가 있고, 높은 수준의 중재가 있다. 낮은 수준의 중재를 브로커(Brokerage)라고 하고, 높은 수준의 중재를 'Arbitrate'이라 한다. 'Arbitrate'란 기존의 룰이나 패턴을 한 차원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중재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차원 높은 중재자(Arbitrator)란 경기의 규칙과 개념 자체를 바꿔놓는 큰 행위자를 말한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그런 것이었다. 그때 빌리 브란트는 대 선수이자 대 중재자였다. 남북 코리아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88년~1991년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열렸던 순간이었다. 이 때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도 교환되었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도 가능했다. 그런데 왜 1992년부터 뒤집히기 시작해 1994년에 이르면 완전히 파탄이 나고 말았던가? 아주 엄밀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필자는 작년 가을 '코리아 양국체제: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을 쓰면서 그런 작업을 시도해보았다. 그 중 일부만 인용해본다.

첫째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간 내부 주도역량의 한계다. 그 한계의 배경에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역량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변수가 있다. 이 분열은 양국체제의 출발을 불안정하게 했고, 이후 체제 전환을 지속시켜 나갈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두 번째는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북이 느끼는 체제위협이 커짐에 따라 발생한 북핵문제다. 이로 인해 북미, 남북 간 높아진 적대적 긴장은 양국체제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결국 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어 양국체제의 첫 시도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실패로 종결되고 말았다. (김상준, '코리아 양국체제: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 61~62쪽)

분단-전쟁-정전상태의 지난 70년 남북은 시종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양측은 줄곧 통일을 주장해왔으나 그런 상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우선 상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진정 하나가 되자 하면 먼저 서로 인정하는 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까지 하면서 적대해왔던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외국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내전의 상처는 외침의 상처보다 깊다. 우리 역사에서 6.25와 비견될 정도의 참혹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자신이, 그리고 서로가, 안팎으로 온전하고 정당하며 안정되게 서야한다. 이 조건이 무르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7~2018년 촛불혁명과 북핵 완성,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국(ROK)의 촛불혁명은 4·19와 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이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 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4·19 직후 장면 정부와 87년 이후 노태우 정부는 필요조건은 갖췄으나 충분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4·19는 세계냉전의 정 중앙에서 발생하였으면서도 냉전의 흐름에 맞서는 민주분출이었다. 민족화해의 봄으로 이어지기에는 시대의 제약이 너무나 컸다. 반면 87년 민주항쟁은 89년 이후 냉전해체와 중첩되어 있었기에 그 가능성이 실재했다. 그리하여 분단 이후 처음으로 양국체제로의 첫 문이 잠시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없었다. 이제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은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화해, 북미화해의 길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맺히기 시작했다.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냉전이 해소되었지만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미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제재와 압박을 높였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 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대결과 적대의식도 고조되어 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 역설은 미국정치의 국외자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만나 현실화의 실마리를 갖게 되었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텄다.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과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이 서로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어 한국이 북미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상동, 69쪽)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하노이 회담 불과 며칠 전에 '자유조선'이라는 해괴한 단체가 스페인의 조선(DPRK) 대사관을 습격해 주요문서를 탈취해갔다. 데자뷰, 익히 보아왔던 일이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을 발표한지 하루 만에 벵코델타아시아(BDA)의 북측 거래를 정지시키는 금융제제를 한 일을 생각해보자. 당시 이 일은 미국 재무성 강경파가 주도한 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스페인의 조선대사관 습격은 미국 CIA나 FBI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작전'이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국제적인 비난이 커지자 미국은 습격에 가담한 일부를 잡아들이는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지금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제법상 큰 도발이었으니 빤한 일을 저질러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국제적인 비난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이런 일들이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 내부도 잘 알려진 것처럼 코드가 뒤섞여 정리가 되지 않는다. 부서끼리 또는 부서 내부에서도 치고받는 암투가 심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의 룰'을, '게임의 차원'을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하노이 회담 이후, 아주 옛날 게임의 옛 선수들이 다시 나와 이 상황을 매우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곧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일이 촛불 이전으로 되돌아가 줄 것을 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 이 게임은 이제 다시 과거로 퇴화하고 말 것인가? 분단체제론은 어떻게 말할까? 분단체제론에는 '게임의 룰', '게임의 차원'을 바꿔나갈 뜻이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될 것을 몰랐느냐고, 바로 그런 것이 바로 '분단체제'라고, '분단체제'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말만 되돌아 올 것 같다. 물론 빠져나가는 문은 있다. '남북연합', '국가연합'이다. '분단체제'란 미국 중심의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그 상위체제가 '변혁'되지 않는 한 결코 바꾸어질 수 없다. 단 남북연합을 열심히 하면 분단체제는 조금씩 약화될 수 있다. 그러니까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룰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게임의 룰 안에서 '남북연합'이라는 전술을 열심히 구사하면 어느 날에는 분단체제라는 게임도 결국 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되겠다. <녹색평론> 1~2월호의 필자의 글에서 김명환 교수가 아파한 것으로 보이는 분단체제론의 '직선적·선형적 도면'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때 실린 글에서 아마도 편집 팀에서 그것이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아 뺀 듯한 <그림>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 <그림>들에 대한 설명에서 말했듯 분단체제론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절적 단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양적 변화의 사고법만 존재한다. 이는 <그림1>의 남북연합의 직선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북연합의 증가만큼 분단체제는 감소한다. 역시 직선적 관계다. 백 선생이 신념을 가지고 말하듯 남북연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항상 작동한다. 간혹 정부 간의 길이 막히더라도 백 선생이 제기했던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길로 더욱 열심히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여 <그림2>처럼 남북연합의 힘이 커지는 만큼 분단체제의 힘은 계속 약화된다."(김상준,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43쪽)

다시 말하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분단체제론'에는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규칙과 차원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속 분단체제 안에서 뛰자는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남북연합'도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일부가 되었다. '분단체제'를 비판하자고 시작했던 '분단체제론'이 어느덧 분단체제를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적당히 변화시켜가자는 이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 분단체제론자들에게는 분단체제가 단순히 소극적·부정적 상태가 아니다. 남북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남북연합의 전제'가 된다고 한다. 그토록 강조하는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리하여 '분단체제'는 이제 오히려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개념으로 180도 변해버린다. 놀라운 마술과 같은 일이다. 상세한 논의는 필자가 '분단체제론의 곤경과 역설'이라 하여 분석했던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론—상호 이해를 위한 서장'(<문화과학> 96호)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남북연합'은 1989년 노태우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처음 포함된 후 한국의 역대 정부가 모두 인정해왔던 용어다. 2001년 6·15회담에서는 남북정상이 '남북연합'에 합의하면서 남북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만큼 공식화된 언어고, 정치적인 표현이다. 그 말은 이제 '남북연합'이라는 말이 '분단체제'라는 기존의 게임의 언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단체제'와 '남북연합'이 동거하는 방식으로 근 30년을 그래왔다. 이제는 그런 상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선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북핵' 문제의 본질도 명확해졌다. 북측도 체제보장이 되면 비핵화하겠다고 밝히고 나왔다. 미국 역시 과거의 게임을 계속하는데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분단체제라는 게임 자체를 바꿀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이 '양국체제론'의 메시지였다.

2.
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지속-신뢰축적의 트랙을 지속하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는 일이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한반도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하여', 113~114쪽)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교수는 북미수교, 북일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韓朝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수교와 북일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수교, 북일수교는 오히려 한조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 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 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말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해 놓은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 (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이야기는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전혀 없다. 다만 어리둥절하게도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전혀 설명이 안 되는 말이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알고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 한국과 조선의 수교, 즉 '한조(韓朝)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과거 '동서독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북미 교섭에서 어느 만큼을 어느 때 교환할 것인지 북미 사이의 논의를 한국이 잘 중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이 과정에서뿐 아니라, 그 이전에 남북이 무슨 문제로 만나든,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수교가 한조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수교가 북미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을 생각해 보면, 100%는 언감생심이고, 80%만 해소되어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설,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부언하자면, 그렇듯 질적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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