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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웬 농업? 그 비싼 땅에 무를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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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웬 농업? 그 비싼 땅에 무를 심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도시농업과 우리가 알았던 경제관념
오는 5월 23일부터 나흘 간 내가 살며 일하는 청주에서 '대한민국 도시농업박람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 행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도시농업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2012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대구(2·3회), 순천(4회), 광주(5회), 시흥(6회), 화성(7회) 등에서 개최된 박람회는 도시농업의 대중화와 발전상을 확인하는 대표적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은 빠르게 성장하여 2010년 15만 명에 불과했던 도시농업인 수가 2017년에는 190만 명까지 늘어났고, 같은 기간 동안 도시 텃밭의 면적도 104헥타르(ha)에서 1106헥타르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농림부에서는 '제2차 도시농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2018~2022)'을 수립해 2022년까지 400만 명의 도시농업인이 2000헥타르 이상의 텃밭을 가꾸는 도농상생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도시농업 활동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작물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생성되는 정서와 감정이 개인의 차원을 초월해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몇 해 전 서울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하며 확인했던 적이 있다. 도시농업 활동은 작물과 텃밭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과 애착을 유발했고, 경작자들은 텃밭 동료와의 경쟁 및 협력 관계 속에서 산출 농산물의 품질이나 텃밭의 관리 상태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냈다.

경작자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더욱 열정적으로 작물 생산과 텃밭 가꾸기에 임했던 것을 목격하면서 도시농업 실천에서 '정서적 생산'과 '감성적 성취' 간의 선순환 작용이 생성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것은 보다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상황과 관련된 삶의 태도 및 가치관의 변화를 자극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 변화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첫째, 도시농업인들은 텃밭 활동을 통해서 실용적 지식과 기술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삶의 자족성을 높이는 역량을 습득했다. 둘째, 그런 학습은 공유경제 및 성찰적 소비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개인과 가족의 소비량을 넘어서는 잉여 작물은 이웃과 공동체에서 다양한 사람과 공유됐고, 수입 농산물 및 상업적 영농 작물 소비에 대한 성찰적 태도도 함양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셋째, 도시농업은 새로운 시민의식 형성에 기여했다. 특히 중산층 이상의 도시농업 참여자 사이에서 자유무역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적 농업경제에 대한 우려가 생겨났고, 농촌과 농민에 대해 동질감을 갖게 되었으며, 무분별한 도시 개발 및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함양했다. 이는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도시농업은 최근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포용' 도시 정책 담론의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이에게 도시농업은 어불성설의 용어일는지도 모른다.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시에서 웬 농업?", "저 비싼 땅에 무, 배추 심는 게 말이 돼요?"라는 등의 의문을 수없이 많이 접했다. 때에 따라 비난까지 섞여지는 문제제기에 대해 활동가들은 나름대로의 정당화 사유를 밝혀야만 했고, 공공 공간의 비생산적 점유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죄책감까지 표시하며 도시 텃밭을 가꾸는 일반시민 경작자를 종종 목격하기도 했다.

물론 도시농업은 도시학의 전통, 도시계획의 제도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제조업, 서비스업 등 '비농업적'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도시에 대한 학문적 정의가 이루어져 왔고, 우리나라의 국토계획법 상에서 주거, 상업, 공업, 녹지 공간을 포함하는 '도시지역'은 '농림지역'과 엄격하게 구분되어 도시농업의 장소는 비법적인 공간으로 보아도 무방하긴 하다. 이렇게 도시농업은 문화적으로, 학문적으로, 제도적으로 도시의 비정상적인 '타자'로 이해되는 측면이 많다.

▲ 지난 2015년 KBS에서 방영됐던 <인간의 조건 - 도시농부>에서 출연진들이 서울 영등포구청 옥상에서 모를 심고 있다. ⓒKBS

일상에서 돈에 둔감한 이가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것처럼 도시농업을 경제관념이 없는 활동으로 여길 수도 있다. 대형 할인 매장의 채소와 과일을 구입하는 것이 텃밭을 가꾸는데 들이는 시간, 노력, 자금의 합보다 훨씬 싸게 먹힐 것이다. 부동산 개발로 도시농업의 토지는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장소로 변할 수도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영될 정도로 '경제인'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이 시대에 어쩌면 도시농업은 합리성이 결여된 비이성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렇게 시장의 논리와 달리 움직이는 도시농업은 경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취미와 여가 활동에 불과한 것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경제'지리학자들은 그와 같이 편협한 경제관념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의 총체를 의미하는데, 돈, 시장, 이익 등 경제인과 자본주의의 원리로 작동하는 경제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경제지리학계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본주의적 경제는 다양한 현실로 존재한다.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과 함께 가사, 자원봉사 등 비임금 노동도 경제를 형성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처럼 공동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비자본주의적 형태의 조직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가치를 추구하며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참여한다. 거래는 시장에서 자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물물교환이나 정서와 감정을 동반한 기부, 공유 등의 형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았던 자본주의적 경제관념을 해체할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정통'으로 여겨지는 경제관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경제지리학자들은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경제를 탐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경제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고, 국가, 지역, 장소, 공간 관계 및 네트워크, 민족·인종·젠더·섹츄엘리티의 아이덴티티 등 구체적 상황과 현실적 맥락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각적인 현상으로 고찰한다. 이론적 가정과 전망보다 현실적 경제 활동 공간이 경제지리학적 이해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지리학자들의 '경제적 상상력'은 금전적 가치의 창출, 즉 자본의 축적과 관계된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단(異端)' 경제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관점을 취할 때 도시농업을 감정적, 정서적, 생태-정치적, 문화적, 관계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 경제 활동으로 이해하며 그것의 거시적 의미와 역할도 되새겨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의 경제 담론은 추상적 개념과 이론,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화로 점철되어 있다.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담론 구조이고, 이는 일반인들이 경제 지식을 멀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물론 경제지리학에서도 이론화와 계량화가 난무했던 시절이 있었다. 학계에서 석학으로 꼽히는 나이절 쓰리프트(Nigel Thrift)조차 당시 경제지리학 강의는 "지리멸렬하고 따분해 죽을 지경"이었다고 회고한 바가 있다. 지금 우리의 경제 이야기가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 유통, 소비되는 구체적인 장소와 지역에서부터 경제 지식을 추구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아침상에서부터 상품 사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추적했던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처럼 말이다.

"나의 아침 식사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 보자. 커피는 코스타리카에서, 빵을 만드는 밀가루는 아마도 캐나다에서, 오렌지는 스페인에서, 오렌지 주스는 모로코에서 그리고 설탕은 바베이도스에서 왔을 것이다. 이 상품들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들도 생각해 보자. 기계 장비는 서독에서, 비료는 미국에서,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을 것이다.

나의 아침 식사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지도를 통해서 아주 조금만 조사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중략) 세계 곳곳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나의 아침 식사를 생산하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푸른길, p.129~130 재인용, 일부수정)

이처럼 경제지리학의 '렌즈'를 착용한다면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며 '알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방식으로 우리 삶 가까이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경제 인식론은 경제사회학, 경제인류학, 문화경제론처럼 소위 '이단경제학'으로 분류되는 분야에서도 널리 퍼져있고, 여기에서는 공통적으로 추상화나 수치화를 넘어서 경제의 현실성, 구체성, 현장성, 관계성, 다채로움이 상세히 드러난다.

아직까지 한글 프로그램에서 '경제지리학자'는 오타로 인식돼 그 아래에 빨간색 밑줄이 그어진다. 상당히 거슬리지만, 경제지리학의 이단적 학풍을 강조하여 드러내는 것 같아 그다지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경제지리학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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