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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北, 남한 빠지라? 부메랑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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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北, 남한 빠지라? 부메랑 될 것"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 '통미봉남' 구상은 착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주고 받으며 북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와중에도 북한은 남북 간 소통 채널은 사실상 가동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권정근 국장은 담화를 통해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 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며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남조선 당국은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발 '통미봉남'이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남북대화는 상당 기간 재개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러는 이유는 남한이 지난해 4월 27일 나왔던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에서 만들어진 9.19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미국 눈치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자기들이랑 미국 사이에 다리를 놓는 거냐는 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에 남측에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때부터 북한이 '통미봉남'을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 북한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지 정부가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반박하고 나설 것도 몰랐던 것 같은데, 이건 그간 남북 간 물밑대화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정 전 장관은 북한의 반응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만 해도 지난해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회담하지 않겠다고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바로 판문점 통일각으로 불러내서 설득하고 이걸 미국에도 이야기해서 결국 정상회담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다"며 남한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우리보고 빠지라고 하지만 정말 남한이 빠지고 나면 평화 프로세스나 비핵화 관련해서 미국도 속도를 내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남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남한을 배제하려고 한다면, 결국 이것이 북한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평화체제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비핵화는 어려워지고 그러면 제재는 계속된다"고 경고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권정근 국장이 담화를 통해 북미 관계의 당사자는 자신들과 미국이라면서 남한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 버렸습니다. 또 미국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북미 간 채널을 이용하면 되고 남한 당국을 통해서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못박았는데요. 남북 간 물밑 대화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세현 : 이 담화를 보면서 북한 발 '통미봉남'이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남한을 소외시킨 적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한은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과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한은 협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리려고 했죠. 하지만 협상은 계속 진행됐고 결국 1994년 제네바 합의가 탄생했습니다.

당시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면서 남한과는 소통하지 않는 것)은 남한이 자초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협상을 말리려고 했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를 포함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이번에는 북한이 최근에 미국과 몇 번 친서를 주고 받더니 남한 보고 대화에서 빠지라고 했습니다. 실제 지난 4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이 때부터 북한이 '통미봉남'을 생각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이 이러는 이유는 남한이 지난해 4월 27일 나왔던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에서 만들어진 9.19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미국 눈치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자기들이랑 미국 사이에 다리를 놓는 거냐는 말이죠.

김 위원장이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조건없이 하겠다고 말했는데 남한은 이 부분에 대해 계속 미국에 허락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걸 보고 북한은 불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누적된 불만도 이러한 담화 형식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소위 자신들의 '최고존엄'이라고 하는 김 위원장이 금강산과 개성 재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하고 있는 불만이 나온 것 같습니다.

또 당장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해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남북 간 경제협력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에 있는 다른 약속들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있었을 겁니다. 또 여기에 대한 불만 또는 배신감까지 작용하면서 미국과 협상에서 빠지라고 한 것 같습니다.

해당 담화는 남북 간에 물밑대화도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물론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으나, 북한에서 저렇게 말해버리면 북미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물밑 대화가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거짓말이 되는 셈인데요. 문 대통령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습니다. 지금 와서 북한이 저렇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해버리니 앞으로 남북대화는 상당 기간 재개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원래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전에 이른바 '원포인트'라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게 좋은 메시지가 나갈 수 있도록 한미 간 협의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오슬로에 가서도 남북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표명했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이 20일 북한으로 가버린 것 아닙니까? 이걸 두고 청와대는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우리가 권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냐는 주장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4월 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 이후 정부가 북한의 대답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 의중을 타진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 탐색을 해봤어야 했던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개성에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까지 있으니 대화를 해보고 타진할 수 있는 채널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아니면 미국에 목소리를 강하게 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김 위원장이 오지랖 이야기를 했을 때 정부가 '지금까지 했던 식으로 하면 북미 간 다리 놓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미국에 우리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모양새라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했으면 북한에서 답이 왔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 없이 북한에 만나자고만 하니까 북한은 수정 제의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 즉 사실상 '무시'로 가버린 것이죠.

▲ 수석보좌관 회의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미국, 북한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지 정부가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반박하고 나설 것도 몰랐던 것 같은데, 이건 그간 남북 간 물밑대화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물밑대화가 있었다면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관련해 남한에 불평했을 수도 있고 남한의 정상회담 제의를 무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와 같은 판단 착오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여러 외부 관계자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대책이 나올 수 있고 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매너리즘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문 대통령이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말하기 전에 본인이 밝히기는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발언을 보고 남한이 북미 간 중재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정세현 : 그것보다는 미국이 우리에게 슬쩍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서는 북미 간에 직접 오간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메시지는 당분간 남한과는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정세현 : 합의 이행도 못하는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는 식으로 돼버리면 문재인 정부 남은 기간 동안 남북관계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비핵화 프로세스는 시작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비핵화 프로세스 진전시켜놓고 북미 간 관계 개선되는 틀 내에서 남북관계를 활성화시켜서 북미 관계가 더 좋아지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는데 이런 방향과는 다소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온 셈이죠.

프레시안 : 그래도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부터 올해 2월에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남한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이제는 남한의 말을 믿고 가면 안되겠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요?

정세현 : 북한이 친서를 보내니까 미국에서 바로 답장이 오는 것을 보고 이제 남한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은 필요 없겠구나, 남한 아니라도 워싱턴과 직접 거래해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시 주석이 북한에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도 북한이 어느 정도 보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즉 시 주석이 "앞으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선(先) 비핵화 논리로 밀어붙이면 우리가 막아줄게" 라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쌍궤병행'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면 자동적으로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죠. 또 남한은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자기들은 미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도 말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 주석 방북과 북한 외무성 국장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비핵화 협상이 남북미중 4자구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한을 뺀 3자로 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북미 협상의 중재 역할이 남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27일 문 대통령과 오사카에서 만난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과 화해 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대화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시 주석의 이 발언은 외교적인 언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북한 외무성 국장이 직접 이미 이야기를 한 것이 좀 더 신뢰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중재자로서 중국의 역할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남한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시 주석이 북한에 안보와 경제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긴 했습니다. 안보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북한을 막아주겠다는 것이고 경제발전은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물자나 기술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중국은 국경지역의 무역을 느슨하게 하면서 북한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즉 미중 무역 분쟁에서 시 주석이 미국에 카드로 쓸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많은걸 요청하는데 미국 입장을 봐서 내가 조금만 할 테니 대신 우리한테 무역 압력 넣지 말라"라는 정도입니다. 즉 중국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중국이 미북 간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만큼 북핵 문제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지난 19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부부가 김정은 위원장 부부와 함께 평양 시민들의 환영에 답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북한, 남한 빠지면 미국과 협상 어렵다는 것 알아야

프레시안 : 1차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아닙니까?

정세현 : 그렇죠. 그래서 북한이 이렇게까지 나온 것이 좀 괘씸하기도 합니다. 사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만 해도 지난해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회담하지 않겠다고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바로 판문점 통일각으로 불러내서 설득하고 이걸 미국에도 이야기해서 결국 정상회담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의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게 됐죠. 사실 지금 이 시기에 북미가 친서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북한의 외교력이 아니라 남한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미국에게 북한 이야기도 좀 들어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즉 한미 간 협조를 통해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런데 지금 와서 북한이 남한은 빠지라고 하는 것은 자기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겁니다.

프레시안 : 남한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아도 추가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할까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때 가지고 있던 입장에서 몇 걸음이나 북한 쪽으로 다가가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사인이 있어야만 북미 간 실무접촉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DMZ(비무장지대)까지 가서 연설한다고 하는데 북한이 그 연설을 듣고 '저 정도면 실무협상 시작하고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보고 빠지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트럼프에게 DMZ에서 연설할 때 북한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 메시지를 해달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미 3차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또 남한이 미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줄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는 없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데 역할을 했다는 증거나 현상들이 감지돼야 한다. 북한에서 빠지라고 했다고 "그럼 너희들끼리 정상회담 잘해봐. 우리(남북)는 비핵화 끝나고 난 뒤에 만나자" 이럴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프레시안 : 북한이 말한대로 남한이 빠진 상태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북한은 우리보고 빠지라고 하지만 정말 남한이 빠지고 나면 평화 프로세스나 비핵화 관련해서 미국도 속도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핵 시설을 폐기할 경우 그에 따른 상응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제재 해제 등을 실행한다고 할 경우 실제 이러한 조치에 대한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국은 우리에게 부담을 안길 겁니다.

평화체제 구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의 당사자에 남한도 들어간다는 점은 사실상 확정된 사안인데, 그런데도 미국이 남한을 빼고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추진할 수 있을까요? 하다 못해 종전선언 협의도 불가능할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은 남한을 빼놓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개성, 금강산 등 남북관계와 관련해 매번 미국에게 허락을 받거나 사전 협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가져가려는 것에 대해 북한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미 관계가 바로 그런 관계라는 사실을 한 번만 생각해보면 평화체제 구축에도 우리가 빠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남한을 배제하려고 한다면, 결국 이것이 북한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화체제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비핵화는 어려워지고 그러면 제재는 계속됩니다.

북한이 남한에 가시가 돋친 발언을 하고 큰소리치면서 미국과 둘이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미국은 동북아 관련 국가 간 상호 관계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동북아 지역에서 누려야 하는 국제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북핵 문제도 풀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의 동참이 없으면 미국도 앞서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건 누구에게 손해일까요? 북한이 일시적으로 남한에 불만을 느낄 수는 있지만 긴 과정에서 보면 미국은 한국을 빼놓고 갈 수 없습니다. 북한이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비핵화의 순서와 관련해 북한에서는 일단 미래 핵, 즉 핵시설을 없애고 핵실험을 안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현재 핵과 과거 핵을 없애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즉 영변 핵 시설을 없애면 불가역적인 상황으로 갔다고 판단하고 그 때부터 제재 완화를 시작하자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핵 시설과 핵 능력을 미리 내놓고 그걸 검증해보자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양측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이 성과를 얻으려면 창의적인 대책이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미국이 북한에 핵과 관련한 모든 목록을 내놓으라는 것은 일종의 북한 압박용입니다. 북한이 실제 신고서를 내놓는다고 해도 미국은 북한이 거짓말하고 있다면서 계속 압박해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단계적‧동시 행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북한은 미국의 진정성을 문제삼고 있는 건데요. 만약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문서에 담으면 미국은 과연 단계적 이행을 해 줄 것이냐고 되물어볼 수 있는 겁니다. 즉 북한은 실제 보고서를 미국에 준다고 해도 미국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왜 신고 안했냐고 압박하며 자칫 체제에 대한 존립까지 흔들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일단 최종 단계를 설정하고 이후 이를 이행하는 것은 단계적으로 해줄 수 있다면서 북한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겠지만 이건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미국의 이른바 '일괄 타결'과 북한이 말하는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가 문제인데 접점이 쉽게 만들어질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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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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