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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역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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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역사'를 바라본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지난 3월 중국 연길에 건너가 5개월 체류를 시작하면서 '퇴각일기' 연재를 시작했다. 하는 일이 줄어드는 과정 속에서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는 좁은 범위를 부각시키는 것이 연재의 의도였다. 연길에서는 사람을 적게 만나고 생활이 단순하기 때문에 '퇴각'의 환경이 확실할 것 같아서 그곳에서 연재를 시작한 것이다.

20여 년간 열심히 글 써서 발표하던 일을 3년 전부터 줄이게 된 것은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글쓰기나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차츰 줄어들었다. 쓰고 싶은 글도 골라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까지의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그때그때 느끼는 필요에 따라 쓰다 보니 공부하고 생각한 내용을 표출하는 데 체계성이 부족했다. 내 공부와 생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잘 골라서 정리해 내놓는 데 힘을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연재의 처음에는 마음에 쌓여있던 생각을 풀어놓기 바빠 새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열 번째를 넘으면서 이야기 방향이 새로 잡히기 시작했다. 10여 일간의 산샤(三峽) 여행이 계기였다. 50년 동안 글로만 중국사를 공부해 온 내가 중국의 지금 모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 앞에서 내가 해온 공부 중 어떤 것이 지금 시대에 적절한 의미를 가진 것인지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은 몇 달에 걸쳐 서서히 떠올랐다. '한민족과 중국의 관계'다. 50년 전 중국사를 전공으로 택할 때부터 내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던 주제다. 그런데 그 주제가 시대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 아닌가.

한반도 평화가 닥쳐오기 때문이다. 북한의 철책선과 장벽이 사라지고 철도와 도로가 뚫릴 때, 중국은 지금까지 보다도 더 가까운 나라가 된다. 가까워짐으로써 얻는 이득이 물론 많을 것이다. 시장의 접근으로 민생이 향상될 것이고, 환경과 자원 측면의 공조가 긴밀해짐으로써 고립된 입장에서 겪던 문제를 많이 해소-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가까워지는 데는 종속-의존의 위험이 있다. 중국이 아무리 가까워져도 그에 대한 종속성과 의존성이 지금까지 70년간 미국과의 관계보다 더 심해질 가능성은 상상되지 않는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만큼 믿을 만한 나라냐 하는 데 있다.

미국은 태평양 너머, 멀리 있는 나라다. 한국에 대해 큰 야욕을 가질 수 없는 위치다. 반면 중국은 붙어있는 나라다. 한국을 여러 차례 침략한 역사도 있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타국에 대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은 미국 국민이 견제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다. 중국 정부의 정책을 아무도 견제해 주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미국에 대한 신뢰와 중국에 대한 불신이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상황 변화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과의 접근은 한반도 평화에 따르는 부작용이 아니라 평화의 의미를 더 충실하게 해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공부에 근거를 둔 생각이다. 2000년 역사를 통해 중국과 중국문명의 존재는 한민족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으며, 수시로 겪은 갈등은 그에 비해 사소한 것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글로 발표하면 '친중파'란 딱지가 바로 따라온다. 나는 이 딱지를 억울해하지 않는다. 나는 친중파 맞다. 그런데 친중파는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문제다. 친일파, 친미파도 마찬가지다. 일본, 미국과의 협조, 나아가 어느 정도 의존까지도 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친일파, 친미파는 비난할 필요가 없다.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나 미국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한국사회의 득실보다 일본과 미국을 앞세우는 '정체성 상실'이 문제다.

정체성 상실은 심각한 문제다. 도덕성 파탄 이전에 정신질환의 위험이 있다. 그런데 생각을 더듬다 보니 그 위험까지 무릅쓸 마음이 든다. 정체성을 '조정'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개인'에서 시작해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일하거나 함께 놀거나 함께 기도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그리고 소속된 국가와 민족의 일원으로 여러 겹이 포개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문명권의 일원이라는 층위도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유교문명권, 또는 한자문명권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왔다. 그 의식을 깨트릴 필요를 먼저 느낀 것은 개항기의 우리 선각자들이 아니라 일본 침략자들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도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에서도 일본인들은 “조선은 독립국”이란 조항을 맨 앞에 걸어놓았다. 중국과의 관계를 끊어놓는 것이 조선 '진출'을 위한 선결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만국공법(萬國公法) 이래 우리가 받아들인 서양사상은 문명권의 유대감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이었다. 게다가 중국 자체가 오랫동안 '치욕의 시대'에 빠져 있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수십 년간 한국과 적대관계에 놓여있었다. 식민지시대와 반공시대의 우리 역사교육은 어린이들이 중국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깔보도록 이끌었다.

중국과의 단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지 3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 국민의식에는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아온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한반도 평화를 계기로 중국과 더 가까워질 전망 앞에서 종래의 부정적 관점을 되짚어볼 필요를 느낀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상황이 왜곡시킨 역사 인식의 후유증은 중국사회도 비슷한 방식으로 앓고 있다. 홍콩 사태 앞에서 다시 나오는 “하나의 중국” 구호는 양면의 날을 품고 있다. 중국인의 일체감이 배타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면 주변국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을 다시 세울 것을 한국사회와 중국사회 양쪽에 모두 청하고 싶다. 그래서 나 자신 한국인의 입장보다 '천하인(天下人)'의 입장에 서고자 한다. 역사를 통해 중국인은 중화(中華)의 자리에, 한민족은 외이(外夷)의 자리에 서 있었다. 중화와 외이를 대립적인 관계로만 봐 왔지만, 실제로는 함께 천하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컸다.

그런 취지에서 작업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융적만이(戎狄蠻夷)의 역사'. 중화와 외이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서로 어울리며 질서를 유지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온 사실을 역사 속에서 밝히려는 것이다. 월간지에 2년간 연재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싶어서 작성하고 있는 기획안을 아래 붙인다.

근대역사학의 도입 이래 중국의 역사를 보는 틀은 하나의 국가사로서 '중국사', 아니면 지역사로서 '동아시아사'의 일부로 파악되어 왔다. 국가와 지역, 두 가지 틀 모두 근대서양에서 짜인 것으로서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속의 실제 모습을 밝히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중화제국에 초점을 맞추는 중국사는 시대에 따른 제국의 영축(盈縮)으로 인해 실체가 흔들리게 되고, 고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동아시아사에는 통사적 맥락의 일관성이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천하의 역사'를 구상한다. 중국인과 주변 민족들이 함께 의식하던 '천하'를 하나의 역사 무대로 설정하는 것이다. 근대적 지리 관념으로 본다면 천하의 범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확장되어 온 가변적인 것이다. 그러나 중화문명권의 모든 구성원들이 '온 세상'으로 인식한 '천하'의 관념은 2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것이다.

'천하의 역사'를 바라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천하는 중화와 외이(外夷)로 구분되고 양자 간의 관계는 대립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외이 역시 중화문명의 구성 요소로 보고 중화제국과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본다면 종래 시각의 틀로 포착할 수 없었던 의미를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천하의 역사'를 세우기 위한 발판으로 '화이(華夷) 관계'를 훑어볼 필요를 느낀다. 중화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 중국문명권을 포괄하는 '천하'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관점을 제시하는 데 한국이 좋은 위치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중국 내부에서도, 너무 먼 외부에서도 열기 어려운 시각을 바라보기 좋은 위치에 오랫동안 안정된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1. 만리장성
2. 초-오-월의 중원 편입 / 파-촉의 역할(전국-한대)
3. 흉노
4. 서역 / 조선-남월 정벌
5. 오호십육국 / 수-당의 호-한 체제
6. 한반도의 삼국
7. 발해와 거란 / 요-금
8. 몽골제국의 흥기 / 몽골제국의 속성
9. 몽골제국이 일으킨 변화
10. 정화의 항해 / 명나라의 해금
11. 마카오 / 인도의 해체
12. 임진왜란
13. 청나라의 입관
14, 예수회 / 전례논쟁
15. 청나라의 해금 /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
16. 매카트니 사절
17. 아편전쟁 / 개항 압력과 만국공법
18. 청일전쟁과 일본제국의 등장
19. 강요된 민족주의 / 만주국
20. 조선의 망국
21. 대동아전쟁 / 대장정
22. 냉전
23. 중국의 개혁개방
24. 일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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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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