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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권리, 엘리트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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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권리, 엘리트의 의무 [김기협의 퇴각일기]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조국 사태'에서 내가 각별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진학 문제다. 떳떳하게 살려고 애를 많이 써온 사람 같은데, 아이의 진학과 관련된 일에는 어떻게 그리도 무심할 수 있었을까? 전혀 몰랐다면, 아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의 자유주의 성향으로 보아, 자기 일 같으면 삼갈 일이라도 아이의 길을 가로막는 짓은 차마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방임한 것 같다.(해당 글은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작성됐습니다. 편집자)

내가 진학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명사의 맥락에서다. 어느 사회에나 상대적 유력(有力)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이 유력계층의 노력이 사회의 공공성을 지향할 때 사회가 발전할 수도 있고 안정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의 취약함이 큰 문제인데, 특히 진학 문제에서 심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만큼 공공성 의식이 강한 인물조차 아이 진학을 놓고는 '그 아이를 위한 최선의 길'만 찾다가 민심을 등지지 않았는가.

장석준 씨가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이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관련 기사 : 조국 대전이 아니라 촛불연합의 대분열) '민주개혁' 세력과 '사회개혁' 세력의 연합이 시금석에 마주쳤다는 것이다.

촛불은 문제 제기였지, 해결이 아니었다는 장 씨의 관점에 동의한다. 박근혜 정권이 너무 수준 아래에서 헤매니까 '저러면 안 된다!' 하고 나온 것이지, '이래야 한다!' 하는 지향성은 약했다. 그중에는 정치적 평등을 원하는 민주개혁파도 있고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개혁파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의 성분이 두 개 성분만으로 깨끗이 분석될 것 같지는 않다. 촛불에 참여하고 지지한 사람들 중에는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 외에 보수파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에서 이탈해 탄핵에 참여한 바른정당(현 바른미래당)이 이들을 대표한 셈이다.

촛불을 지지하고 탄핵을 뒷받침한 보수파는 스스로를 수구파와 구별되는 '개혁보수'로 자임했다. 여기서 '개혁'은 주관적 표현이다. 보수치고는 많은 변화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개혁'을 붙인 것이지만 더 많은 개혁을 바라는 진보진영에서 보기에는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다. 진정한 개혁의 길로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계발이 필요한 어리석은 대중이다.

촛불연합의 분열에서 이 보수파의 향배에 주의를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개혁파나 사회개혁파처럼 삼빡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정견(定見)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근대적 사회과학이 가진 시야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의 존재를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폐단의 최소화에 힘을 쏟던 유교적 정치원리는 촛불을 지지한 것 같은 양심적 보수파의 역할을 중시했다.

10여 년 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미국에 사는 큰형에게 용태를 알려드리기 위해 메일을 주고받던 중 큰형의 메일에 이런 회고가 들어있었다.

"내가 경기중학 입학시험을 친 1957년, 전쟁 후의 혼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면 그 학교에 합격할 만한 수준인지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너 정도 실력이면 아마 될 거야." 해주신 말씀 외에는 자신감을 가질 근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발표 날, 학교 담에 붙이는 방을 보러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설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붙어도 기쁠 것이고, 떨어져도 기쁠 것이다. 네가 붙으면 우리 가족에게 당연히 기쁜 일이 될 것이고, 떨어진다면 너보다 실력 있는 학생이 네 또래에 5백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너만 해도 충분히 똑똑하고 실력 있는 학생인데, 더 훌륭한 학생이 5백 명이나 있다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당시의 각박한 상황에서 그런 관점을 떠올릴 수 있었던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었겠니? 그때 어머니에게 품은 존경심을 그 이후 잃어버린 일이 없었다."

물론 어린 아들의 긴장을 누그러트려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상당한 믿음을 가진 세계관을 표출하신 것이기 때문에 50년 후까지도 그 아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큰형이 중학교 입학시험을 칠 때는 아버지가 7살, 5살, 2살의 삼형제를 남겨두고 세상 떠나신 지 6년이 될 때였다. 노년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억할 때 "씨 받아줄 만한 남자였지" 하곤 했다. 받아놓은 씨의 떡잎이 어떤지 처음 확인하는 장면에서 긴장되지 않으셨을 리가 없다. 그런 장면에서도 태연히 내어놓으시던 세계관이었다.

그 세계관을 어머니는 두고두고 자식들에게 주입시켰다. 내가 특출한 학업 성적을 올릴 때 거듭거듭 해주신 이런 취지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하늘이 네게 큰 재주를 내려주셨다면 그것이 네 한 몸을 위한 뜻이겠냐? 재주란 세상을 위해 쓸 때 그 가치가 살아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세계관을 '엘리티즘'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트의 권리를 주장하는 엘리티즘과 엘리트의 의무를 주장하는 엘리티즘의 차이는 공공성에 대한 태도에 있다. 완전한 평등이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엘리티즘이 공공성을 향하도록 이끄는 것이 최선의 정치 원리일 것이다. 선비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與民爭利(여민쟁리))" 말라고 경계한 것이 그 뜻이다. 반면 근대세계, 특히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가상의 평등으로 현실의 불평등을 가려놓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라고 한다. 그래서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개혁을 통해 얻을 정치적 평등에도 사회개혁을 통해 이룩할 사회경제적 평등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도 민주개혁의 한계는 너무나 빤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력이 사회개혁 쪽으로 더 많이 옮겨지기 바란다. 그러나 사회개혁의 효과 또한 나름의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보수주의 정치원리가 더 많이 고려되기 바란다. 특히 촛불세력의 구성 요소 중 큰 개혁을 바라지 않으면서 현실의 개선을 원했던 보수파의 향배가 더 중시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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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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