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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수시 vs. 수능·정시" 프레임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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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수시 vs. 수능·정시" 프레임은 틀렸다. [기고] 문제는 수시냐 정시냐가 아니라 교육 불평등 구조다.
한 달 넘게 온 나라를 흔들었던 '조국 사태'는 앞으로도 결코 순탄치 않겠지만 장관임명으로 잠정적 일단락이 되었다. 제1야당과 보수언론의 집권당 흠집 내기로 시작한 일이 교육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 구조를 발가벗기는 것으로 발전했다. 야당과 여당의 공격과 수비인 듯 시작해서 여야를 불문하고 부나 권력을 가진 우리 사회 상층부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어떻게 대물림하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루어 짐작하고 있던 일이며 때때로 구체적인 사례로도 드러나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조국 사태'가 갖는 파괴력은 가히 태풍 급이었다.

‘교육은 계층 사다리’라는 사람들의 신념이 강할수록 돈과 권력에 녹아 처참하게 구부러져버린 사다리를 직면하게 될 때 상실감과 좌절감은 커진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외쳤던 이에게서 그 가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상실감은 배신감과 분노로 전변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조국 사태'에 직면해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는 교육이 계층 사다리여야 한다는 주장도 사실 따져볼 구석이 많은 논쟁적인 문제다. 그러나 교육이 더 상층으로 올라가는 수단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기회의 평등권이 차단되는 것은 그 자체로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 헌법적 사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 그 구조에 올라탔었거나 조금의 편익이라도 얻었던 이들의 성찰 역시 필요한 일이다. '조국 사태'를 단지 교육 불평등 문제로 국한시켜 협소하게 보면 우리가 얻을 교훈이 지나치게 적어진다는 점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더 넓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제기된 교육문제에 국한해 이야기해 보겠다.

우리의 분노와 성찰이 모두에게 유익한 변화의 불쏘시개가 되게 하려면 우리는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 우선 가장 공분을 일으켰던 조국 딸의 입시와 관련된 문제는 10년 전 입시제도 문제라는 점,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 조국 딸의 입시에서 부모효과의 매개였다고 문제 삼는 소논문이나 봉사활동, 외부 수상 등이 지금은 학종 평가항목에서 완전히 빠졌다는 것만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사법적 문제로 성격이 바뀌어버린 논문 제1저자나 봉사활동 표창장 같은 문제에 대해 다투는 것은 피하기로 한다.

왜 '조국 사태'에서 학종에는 분노하고 외고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장관후보자 검증이 조국‘사태’로까지 확대된 가장 큰 계기는 자녀교육에서 작동된 불평등 구조 문제였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부모의 사회적 자본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을 입시에 유리하게 십분 활용했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하게 했다. 학종제도가 부모효과가 개입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점수로 줄 세우는 수능 역시 부모효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돈 있고 권력 있는 부모들이 자녀들 수능대비 사교육 시키기에도 더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과 매체들은 학종만이 문제인 듯 몰아가고 수시와 정시의 문제로 사람들의 시야를 좁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학종이냐 수능이냐, 수시냐 정시냐 하는 입시제도만이 아니다. 사실 '조국 사태'의 경우에도 그의 자녀가 어떤 이유에서건 조기유학을 할 수 있고, 집안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외고라는 특목고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자사고, 특목고야말로 부모효과의 가장 강력한 제도화이자 차별과 불평등의 합법화가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증거자료들이 이미 차고 넘친다.

‘강남3구와 특목고 출신이 서울대 입학생의 65.7%’(2012.11.10, 강남신문),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 합격생 50명 이상 배출해낸 학교는 대부분 자사고, 외고, 과학고였으며…서울대 합격생의 비율은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들에 비해 9배나 높다…소위 SKY에 소득 9,10분위 최상위층 학생이 74.73%, 72.27%, 72.56%…’(EBSi), ‘2017년 서울대 입학생 중 자율고, 특목고, 영재학교 출신이 49%’(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등.

그런데도 왜 이번 '조국 사태'에서 입시 전 단계에서부터 이미 차별과 불평등이 개입된 외고, 자사고 문제는 쟁점조차 되지 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대학 진입단계인 학종에서 부모효과로 인한 차별에 분노하는 이들이라면 그보다 더 어린 나이인 고등학교 진입단계에서 자사고와 특목고로 인한 부모효과 차별에는 더 분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런데 학종에 분노하는 이들이 왜 자사고와 외고(특목고)에는 눈을 감는 것일까. 더 놀라운 것은 학종에 반대하는 이들이 자사고, 특목고는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시확대로 가장 이익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왜일까.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 수는 전체 고등학생 수의 대략 9~10%에 불과하다. 크게 잡아도 고3 학생 10명 중 1명만이 자사고나 특목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90%의 아이들은 일반고나 특성화고를 간다. 이 90% 아이들 중 강남 학생 극소수를 빼면 이미 고등학교 단계에서 상위권 대학 들어갈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건 학종이든 수능이든 마찬가지다.

부모효과에 따른 차별과 특권을 이유로 학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자사고나 특목고는 적극 찬성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상산고 논란에서 본 것처럼 자사고나 특목고, 강남 일부 일반고의 경우 재학생보다 재수생의 SKY나 의대 진학률이 높다. 학종은 재수생에게는 닫혀있는 제도다. 게다가 학종을 포함한 수시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정시비율이 낮아지게 하고, 정시비율이 낮아지면 이들 재수생 진학률이 높은 학교 학생들의 경우 더 높은 입시경쟁률을 뚫어야 대학진학이 가능하다. 이것이 이들이 정시비율 확대를 주장하며 반쪽짜리에 불과한 공정성을 이유로 내거는 진짜 이유다.

학종에 거품 무는 이들이 자사고, 특목고를 지지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입시제도는 초중고교육을 정상화시키는데 기여하는지, 최대 다수에게 기회의 평등권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사고, 특목고로 고교서열화가 엄존한 현실에서 정시가 확대되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재수생의 SKY와 의대 진학률이 50%가 넘는 학교 학생들이야말로 가장 이익을 보지 않겠는가. 고교서열화가 해체되어도 정시확대로 이익을 가장 많이 보는 이들은 여전히 비싼 학원 잘 보낼 수 있는 상위계층 아닌가.

공정성이 입시제도 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공정성을 기준으로 수시축소,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이들이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갖춰주었으면 바랄 게 없겠다. 고등학교에서의 차별과 특권도 대학입시에서의 차별과 특권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고 폐지를 요구해줬으면 좋겠다. 16살의 차별은 적극 지지하며 19살의 차별은 세상 무슨 큰 부정과 비리와 특권인양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 모순된 행태를 접는다면 같이 깃발을 들어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해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수시냐 정시냐가 아니라 교육 불평등 구조다.

이런 모순된 주장을 하는 이들의 논리에 왜 여론이 흔들리게 되었을까. 우리는 아직도 2018년 잘못된 수시·정시 공론화의 틀에 갇혀있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번 사태에서 조국을 공격한 이들과 언론이 짠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사람들이 진정 분노한 것은 교육 불평등구조인데 그것을 학종 비판과 거부로 왜곡시켜버렸다. 정시확대와 자사고, 특목고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90%에 속한 우리들이 10%의 프레임에 말리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광기와 생떼는 그렇다 치더라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민주당에서 정시확대와 자사고, 특목고 지지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조국이 준 배신감 그 이상을 갖게 할 것이다.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고교서열화 해소, 정시확대가 아닌 학종 공정성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진정이라면 정부와 민주당은 여론조사의 수치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수구 자한당과 10%의 프레임을 걷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들이 비록 조국처럼 개별적으로 10%에 속할지라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내건 이상 자신의 계층적 이익을 버리고 90%의 이익을 위해 나서야 한다.

사람들의 분노에는 입시에서의 차별만이 아니라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만은 차별을 겪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마음이 너무도 커서 10년 전의 불공정에 대해서조차 국민들은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그대로 전이되고 복제되고 있다. 그래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교육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 불평등이 해소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부터, 그것도 공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불평등을 겪게 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학교에서라도 차별 없는 교육을 받게 해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차별받지 않고 크는 아이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 평등한 교육적 기회와 혜택을 받고 크는 아이들이 더 많은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 개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발전 가능성 면에서나 이로운 일이다.

학종이 완벽한 제도가 아니며 지난 10년 동안 개선되어 왔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들을 점수로 한 줄 세우는 잔인한 불평등, 가혹한 차별을 가하는 정시로 회귀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학종은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수업을 바꾸고 더 많은 아이들이 암기와 문제풀이가 아닌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강제한 측면이 있다. 학종에 부모요인이 개입할 부분을 좀 더 개선하면 될 일이다.

미국에서는 SAT 응시자 가정의 소득과 안정성, 거주지의 범죄율 등을 고려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해 대학 입학에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역경점수제도’를 실시한다고 하지 않는가. "SAT에서 점수를 더 낮게 받았더라도 더 많은 성과를 거둔 놀라운 학생들이 많다. SAT 결과에 반영되는 부의 불균형을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하는 미국 대학위원회 대표의 말을 경청할 일이다.(머니투데이, 2019.5.17.)

자사고와 특목고가 해소되어도 여전히 남는 교육 불평등이 있다. 강남과 강북의 차이, 서울과 지방의 차이, 도시와 농산어촌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나 지위에 따른 차이가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학습능력이나 속도의 차이로 연결된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만은 이러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불평등 해소의 길이다.

'조국 사태'가 던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더 어려운 지역, 더 어려운 학교,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이 제공되도록 하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입시에서도 더 어려운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입시제도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조국 사태'로 온 국민이 교육 불평등 해소에 눈떠 나서게 된 지금이 바로 그 때인지도 모른다. 대학이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초중고에서 선발해준 아이들 골라 받아 취업학원 같은 교육에 머무른 채 졸업장 장사만 하는 일은 이제 끝내야 한다. 초중고는 대학의 부속기관도, 보조기관도 아니다.

사실상 변형된 고교등급제인 수능최저기준도 폐지하고 대학별 선발기준 공개와 합격생 출신고교 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부모효과 높은 아이들 골라 받기 위해 수시라 해 놓고 학종 최종 합격자 발표를 정시인 수능발표 이후에 하는 꼼수도 버려야 한다. 부모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기본적 학습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받아 자기가 교육시켜야 한다. 고등학교나 아이들 탓 하지 마시라. 그건 대학이 교육적으로 무능하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고 자기 얼굴에 침 뱉는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

이런 고민은커녕 정시확대와 같은 시대착오적이며 아이들을 더 큰 고통으로 내모는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은 반쪽짜리 공정성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 미래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조국은 장관으로 임명되었지만 '조국 사태'가 남긴 과제는 아직 우리 앞에 있다. 잘사는 부모와 못사는 부모가 겪은 차별과 불평등을 우리 아이들만은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느낀 분노의 실체였음을 잊지 말자. 우리 어른들이 더 이상 수시냐 정시냐, 학종이냐 수능이냐로 논쟁하고 혼란에 빠져 있기에는 우리 아이들의 고통이 너무 깊고 크다.

수학 잘 하는 아이와 체육 잘 하는 아이가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교수의 아이든 기초수급자의 아이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다문화 아이든 일반 아이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도 대학 들어갈 때도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강남에 살든 강북에 살든, 서울에 살든 지방에 살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차별이 모두 권력과 부의 차별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하자. 수시냐 정시냐가 아니라 이런 총체적인 대물림 차별교육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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