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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김일성 찬양한 나를 처 넣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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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김일성 찬양한 나를 처 넣으라" [기고] 국정원, 스스로 바뀔 수 없을까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대학에서 북한 및 통일문제를 공부하고 사회에선 소박하게나마 통일운동에 몸담으면서 경찰과 국정원의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다. 1996-97년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북녘동포를 돕자고 강연하면 앞줄에 앉아 열심히 받아쓰는 사람이 1-2명 꼭 있었다. 경찰이었다. 1998년 평양 방문 무렵엔 학교 강의실에도 직접 들어오거나 프락치를 보낸 모양이었다. 수업 중 한 말이 국정원과 통일부를 거쳐 나에게 돌아오는 일을 겪었다. 북한 및 통일 관련 수업교재 한 권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연구실로 직접 찾아와 나를 '최고 전문가'로 치켜세워주며 국제정세에 관한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2년 미국에 머무르며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뉴욕주립대학, 한인동포시민단체 등에서 몇 번 강연했다. 미국의 이라크침공 준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곧 한국 국정원 뉴욕지부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가' 의견을 듣고 싶다는 명분이었다.

2016년 초 국정원과 경찰청이 일반인들의 통신자료까지 광범위하게 조회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나도 혹시?" 또는 "설마 나까지?" 하는 생각으로 통신사에 확인해보고 소름이 끼쳤다. 2015부터 평균 한 달에 한 번 꼴로 국정원과 경찰청에서 내 통신자료를 털고 있었다. 그토록 심하게 감시당하며 살아왔는지 몰랐다. 민변의 공동소송에 동참하고, 당시 이를 가장 크게 보도하던 주간지 <시사인>(2016/05/07)에 "국정원과 경찰청을 고소한다: 나를 왜 감시하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나에 대한 국정원의 관심은 식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 8월 말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에 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장으로 통일운동을 하다 졸업 후 사업에 실패해 경제난에 처한 젊은이에게 접근해 생활비를 대주며 프락치 활동을 시켰다는 내용이다. 그 프락치가 주로 정보를 수집했던 단체가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통일경제포럼>이다. 3-4명의 60대 교수와 강사가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려놓고, 5-6명의 30-40대 청년들이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이 단체에 들어와 위원장 자리를 하나 맡자 국정원은 잠입에 성공했다며 수백만 원의 성과급을 주기도 했단다.

그는 수줍은 듯 말이 적었다. 무슨 가방인지 꼭 메고 다녔다. 내가 2017년 30-40명 그룹을 만들어 강연여행을 할 때 그는 묵직한 가방과 큼직한 카메라를 양쪽 어깨에 걸치고 따라다녔다. 힘들고 어색해보였다. 그 무렵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세워놓고 '통일경제'와 전혀 관련 없는 이석기 의원과 통진당 사건에 관해 자꾸 물었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니 2012-14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기획한 국정원 팀이 그에게 녹음장비와 촬영장비 그리고 특수가방을 제공했단다. 사찰 대상이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 장비에 담도록 하고, 그런 언행을 하지 않으면 법을 위반하는 발언을 유도하도록 지시했다고도 한다.

국정원이 나와 관련해 '통일경제포럼'을 사찰한 이유는 두 가지일 것 같다. 첫째, 널리 알려졌듯 내가 2014년 이석기 의원 항소심 재판에서 전문가 증언을 했다. 오래 전부터 해오던 대로 판검사들을 상대로 강의하듯 '친북' 발언을 쏟아냈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다음날 원내 대책회의에서 내 증언을 문제 삼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둘째, 2016년 11월 광화문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시작될 때 내가 젊은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김밥 100만 원 어치를 쏘겠다고 여기저기 알렸다. 언론에서도 보도했다. 두 달 뒤엔 차와 커피를 제공했다. 광화문 근처에 텐트를 쳐놓고 오가는 젊은이들에게 김밥이나 커피를 나눠줄 때 수고해준 동지들이 '통일경제포럼' 위원장들이었다. 신생 단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날 염탐할 필요는 없다. 일기 말고는 발표하지 못할 글 한 줄 쓰지 않고, 밀애 아니면 공개하지 못할 말 한 마디 뱉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상대하든 평화나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떳떳하게 큰소리치지 은밀한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를 국가보안법으로 가두고 싶다면 <이재봉의 법정증언>을 보면 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는 사람들을 위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0여 차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분단의 원흉은 미국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의 정통성이 남한보다 못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을 찬양하며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옹호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며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은 남한의 자극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방제를 적극 지지하며 친북과 반미를 선동했다. 지금까지든 앞으로든 글이든 말이든 이 수위를 벗어난 내용은 있을 수 없을 테니, 이 책으로 나를 처넣지 않으면 굳이 프락치를 동원할 필요가 없잖은가.

그 프락치가 동료나 선배들에게 몹쓸 짓을 한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그만두려할 때마다 국정원은 위협하거나 돈으로 회유했단다. 유부남에게 원치 않은 룸살롱과 성매매 접대까지 했다고 한다. 민간인 사찰을 끊었다는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아직도 이토록 부질없이 국민의 피와 땀이 섞인 돈을 멋대로 쓰는 걸 방치해야 할까. 국회에 잠자고 있는 국정원 개혁 법안은 언제 어떻게 통과될 수 있을까. 국정원이 스스로 바뀔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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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이재봉 교수는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년 현재 '남이랑북이랑'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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