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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사이에서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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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사이에서 꿈꾸기" [대화] <5> 이람 vs 이강룡, '미니홈피, 블로그, 사이버공간의 미래'
하루 3천만명 이상이 포털을 이용하고, 2천만명 이상이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네티즌'은 이제 특정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시민 일반'과 동의어가 된 듯하다. 시장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언론의 정보통신(IT) 면에는 무협지식 보도가 난무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 NHN, 야후 등 선발 주자에 이어 SK, KT 등 대자본들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사이버 공간의 확장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 듯하다. 현장에서 직접 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이람 이야기**

이람(31) NHN '네이버' 커뮤니티 팀장의 블로그는 '람람의 천일야화(//blog.naver.com/ramrhee.do)'다. 국내 최대 블로그 서비스 기획자답게, '람람의 천일야화'는 하루 평균 5백여 명이 다녀가는 인기 블로그다. 블로그 이름 앞에 붙은 "파병반대"가 눈에 띄는 그의 공간에는 비교적 자세한 그의 정보가 담겨 있다.

그의 꿈은 "예순쯤에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머니'라 불리는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진짜 '꿈'처럼 들리는 이 말은 사실 겸손한 표현이다. 그는 이미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획을 그었다.

작년 상반기까지 그는 지금은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된 '싸이월드(cyworld.nate.com)'에 몸을 담고 있었다. 싸이월드에서 그는 미니홈피 서비스와 그 수익모델을 직접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최근 8백여만 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싸이월드는 미니홈피의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를 파는 것만으로 2003년 80억원을 벌어들였다. 미니홈피로 '뜬' 싸이월드는 '다음'의 아성을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3년 8월 싸이월드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될 즈음, '잘 나가는' 싸이월드를 떠나 NHN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다르게 새로운 서비스는 미니홈피가 아니라 블로그였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는 국내에 생소했던 블로그를 단숨에 주류로 만들어 미니홈피와 함께 '1인 미디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 정도 경력만으로도 그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머니' 소리를 들을 만하다.

'사이버 스페이스, 원칙도 대안도 필요 없다'(<오늘예감 6>, 1996). 요즘도 대학가 학회의 문화 관련 읽을거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 글은, 이람 팀장이 편집위원으로 몸담았던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한 문화 잡지에 1996년 중반에 기고한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사이버 공간의 힘을 "당신의 욕망과 나의 욕망, 그리고 어떤 도구로도 재단되거나 강제되어질 수 없는 에너지"에서 찾고 있다.

스스로 권력이 된 그는 이런 사이버 공간의 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 "나의 욕망에 기반을 둔 기록을 온전히 남길 수 있는 공간, 그 공간들이 최대한 열릴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는 것", 그가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원칙은 여전히 그가 "원칙도 대안도 필요 없는" 사이버 공간을 꿈꾸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의 진짜 꿈은 따로 있었다.

***이강룡 이야기**

웹 칼럼니스트 이강룡(31) 씨는 세칭 '유명 블로거'다. 그의 블로그 'readme 파일(//readme.or.kr)'은 최근의 사이버 문화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는 논평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곳 중 하나이다.

'인터넷한겨레' 웹 기획자 등을 거친 그는 1년 전부터 아예 대안적인 사이버 문화를 고민하는 전업 칼럼니스트로 나섰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한겨레>, <미디어오늘>, <네트워커>, <국정브리핑> 등 여러 매체에 사이버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해 왔다. 인터넷한겨레에 몸담고 있던 2001년 그는 토론 게시판에서 주제를 선정하고, 좋은 글을 선별하며, 그날 토론의 흐름을 정리하는 '토론 앵커'로 맹활약했다. 2003년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자들의 글을 모은 <나무2>(열린책들 펴냄)에 '멋진 신세계'라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이 사이버 문화 현상에 대해서 논평을 받기를 가장 선호하는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또 기자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는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구분하지 못하는 기자들에 대해 "잘 모른다면 쓰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따끔한 충고를 보낸다. 그의 쓴 소리는 다음, 네이버 등 대형 포털도 피해갈 수 없다. '얼짱 신드롬'을 대형 포털과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때나 일부 포털의 '언론' 지향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을 때 그렇다.

그는 왠지 디지털의 느낌이 나는 '웹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아주 아날로그적이다. 책읽기를 아주 즐길 뿐만 아니라, 읽은 책을 공유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서평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방문자들은 부정기적으로 '공짜'로 책을 얻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그는 "1년 내에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은 정리한다"는 원칙 하에 신청자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있다. 그의 '이벤트' 탓에 방문자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을 공유하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게 됐다.

최근 <과학문화>에 기고한 '인터넷이 바꾸는 우리 시대의 문화'라는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된다고 했던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은 우리의 문화 수준이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할 때 겪는 문화 지체 현상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혼란은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겠지만 그의 말 속에는 네티즌의 지적 소양과 자정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그는 네티즌의 자율성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는 네티즌의 그 자율성이 사이버 공간에서 대안적인 문화를 만들고, 넓게는 현실 공간도 바꾸기를 기대한다. 불행한 것은 네티즌의 자율성이 증대될수록 웹 칼럼니스트로서 쓴 소리를 던져야 할 그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런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이람ㆍ이강룡 이야기**

이람 팀장과 이강룡 씨의 '대화'를 기획하면서 걱정이 됐던 게 사실이다. 현장에서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로 대면하고 있는 두 사람이 솔직한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이런 우려는 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사이버 문화'에 대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맞아, 맞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두 사람은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사이버 문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 사람은 오히려 갈수록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강룡 씨는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도 언론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이버 문화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며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재미와 편리함'을 만족시켜 주는 것에 대한 반응"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람 팀장은 "이제 기술을 좇아온 세대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이 곧 자기 생활인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갈수록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두 사람은 '현실과 구별되는 사이버 공간 만의 문화와 논리가 있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접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람 팀장은 "사이버 공간은 현실과 아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상태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라며 "그 사이버 공간의 독특한 특성을 살려서 현실 공간에 역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룡 씨는 "현실의 '강고한 성'보다 사이버 공간의 논리가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더 쉽다"며 "온라인의 변화가 오프라인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제공할 수 있고, 그 예가 '여성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이버 공간의 미래가 긍정적이기만 할까? 사이버 공간 역시 현실처럼 권력과 자본의 힘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 사람은 좀더 낙관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사이버 공간이 이미 현실과 통합된 공간이라면, 좀더 낙관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람 팀장은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며 "자본이 끊임없이 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결코 자본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룡 씨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현실에 목소리를 내고 개입하려고 한다"며 "돈으로 무엇이든지 해보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모두 '열린 네트워크'와 그 구성원들인 네티즌의 '자율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두 사람은 "미니홈피보다 좀더 열린 네트워크가 가능한 블로그에 더 애정이 있다"고 고백했다. 또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에 기반을 둔 현재의 '실명제' 틀을 극복하는 '웹 정체성'을 매개로 한 대안적 토론 문화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사람 냄새 나는 대안적 사이버 공간을 꿈꾼다는 점에서 또 그것이 현실을 좀더 살 만하게 바꾸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이미 '한 배를 탄 동지'와 같았다.

대담은 지난 8일 광화문 근처 찻집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 전문.

***"미니홈피는 개인과 개인의 얘기들이 쌓이는 예쁜 수첩"**

프레시안 :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미니홈피 서비스를 2001년 9월에 제일 먼저 시작한 싸이월드의 가입자가 8백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언론도 좀 늦긴 했지만 미니홈피나 블로그 서비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 외에도 사회ㆍ문화적 효과에 대한 관심도 시작됐다. 사회학, 심리학, 문화학 논문 주제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나 NHN의 네이버 블로그를 다뤄보려는 연구자들도 있는 모양이다.

사이버 문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사이버 문화에 대란 논의는 그 환경이 급속히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비슷한 주제와 논의들이 계속 변주되면서 반복돼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관심을 보고 있자면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인해 과거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이버 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언론이 선정적으로 접근한 탓에, 오히려 그 실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오늘 미니홈피와 블로그로 대표되는 사이버 문화를 직접 만들고 있는 두 분을 모신 것도 이런 점들을 좀 폭넓게 논의해보자는 의도다. 우선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를 기획한 당사자인 이람 팀장의 얘기부터 듣고 싶다. 이런 대중적인 반향을 예상했나?

이람 : 미니홈피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사실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를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이런 식의 대중의 반향은 예상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그럼 처음 미니홈피 서비스를 기획할 때 어떤 생각을 가졌나? 사실 싸이월드에서 2001년에 미니홈피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반대 입장이었다. 까페나 클럽의 경우에는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이 취향이든, 사회ㆍ문화적 관심사에 기반을 둔 것이든 구성원들은 까페나 클럽 안에서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그 방식도 '다 대 다' 방식이다. 그런데 미니홈피 서비스는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 맺기'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소통의 방식도 '일 대 일' 또는 '일 대 다'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 그 안에서 대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람 : 한 가지 먼저 지적할 게 있다. 물론 서비스를 기획하고 내놓을 때, 기획자들은 그 서비스에 가치를 부여하고 특정한 방향을 의도한다. 하지만 일단 서비스가 시작되면 이미 이용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들이 서비스에 가치를 부여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이끌고 갈 수 있다. 미니홈피에도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

처음에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를 기획할 때만 해도, 미니홈피는 오히려 공동체 또 관계에 대한 보완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특정한 관심사에 기반을 두고 사람들이 모인 '목하(木下)'라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자. 일단 개인들이 그 커뮤니티에 모여 관계를 맺다보면, 이제 그 관계는 커뮤니티와는 별개의 것이 된다. 단적으로 말해 '목하'라는 커뮤니티는 사라져도 그 안에서 쌓은 관계는 남는다. 나는 미니홈피가 커뮤니티 안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조직이나 모임에 소속돼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만나는 개인과 개인이 꼭 조직이나 모임과 관계된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개인과 개인의 얘기들이 쌓이는 예쁜 수첩을 하나씩 만들어주자, 이런 생각에서 미니홈피 서비스가 시작됐다.

***"'재미와 편리함'이 미니홈피ㆍ블로그 열풍의 가장 큰 원인"**

프레시안 : 이강룡 선생은 세칭 '유명 블로거'다.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대표되는 최근의 사이버 문화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계속 제기해왔다. 사이버 문화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온 입장에서 최근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보는가?

이강룡 : 한 가지 생각해볼 게 있다. 예전에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도 언론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이버 문화, 예를 들어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은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에는 '재미와 편리함'과 같은 대중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대중들의 호기심과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망, 즉 현실 세계의 나와는 다른 평판을 새롭게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것도 과거의 개인 홈페이지와는 다르게 매우 쉽게 말이다. 이런 '재미와 편리함'을 만족시켜 줄 더 좋은 게 있다면 대중들은 다시 그것에 열광할 것이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그 재미를 '관음증'과 '노출증'으로 요약하기도 한다. (웃음) 이람 팀장은 기획 단계에서 미니홈피에 기대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미니홈피ㆍ블로그에 대한 대중의 열광에 대한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이람 : 집에 돌아오면 요즘 얘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엄마, 나 인터넷 할래." 예전에는 "엄마 나 희정이네 놀러 갈래", 이렇게 얘기했었는데 변했다. 이런 걸 보고 '인터넷 중독'이라고 딱지 붙이는 이들도 있던데, 그것은 변화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다.

우리가 예전에 희정이네 집에 놀러 가서 희정이를 만났다면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희정이를 만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PC통신, 인터넷 이런 식으로 숨가쁘게 기술을 좇아왔다면 지금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이 원래 자기 것인 세대들이다. 그들에게는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그 얘기는 좀 있다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웃음) 상당수 언론에서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긴 한데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일단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 블로그(blog)는 웹(web)과 로그(log)의 합성어인데, '트랙백(trackback)'이나 'RSS(Really Simple Syndication)' 기능 등을 블로그의 고유한 특징으로 보는 것도 같다.

***"블로그가 '일반 유선전화'라면 미니홈피는 '인터폰'**

이강룡 : 솔직히 나는 미니홈피 이용자가 아니라서 미니홈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처지는 못 된다. 다만 작년(2003년) 여름부터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언론의 잘못이 크다. 기자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니까, 구분 없이 사용한 것이다.

일단 '트랙백'이나 'RSS' 기능 같은 특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블로그를 그런 기술적 특징으로 정의하는 것은 꼭 전화가 처음 도입된 뒤 모두 다 잘 이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문가들이 '전화에 대한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정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기술적 특징 외에도 큰 차이가 있다.

프레시안 : 가장 크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강룡 : 비유를 하자면 블로그가 '일반 유선전화'라면 미니홈피는 아파트의 인터폰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내가 이람 씨에 유선전화를 이용하면 바로 이람 씨 집으로 연락이 된다. 그런데 아파트의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경비실을 꼭 경유해야 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싸이월드에 가입해야 하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이람 : 동의한다. 닫힌 네트워크와 열린 네트워크의 차이다. 정작 미니홈피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닫혀 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거리가 가까운 관계들은 대개 같은 울타리 안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닫힌 네트워크 안에 있으면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열린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쪽에서 큰 흐름을 주도해갈 수밖에 없다. 예전에도 '전자 메일'은 있었다. 물론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와 같은 특정한 울타리 안에서 주고받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완전히 이메일(e-mail)로 넘어왔다.

이강룡 : 블로그를 선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용자들은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네이버 블로그를 하느냐 또는 야후의 블로그를 이용할 것인가. 나는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했었는데, 좀더 열려 있는 블로그 서비스를 찾아 옮겼다.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블로그가 미니홈피보더 더 열린 네트워크라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데 더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람 : 맞다. 엄밀히 말하면 이 역시 현실 사회 네트워크 규정을 많이 받는다. 자기 네트워크가 미니홈피를 이용하느냐, 블로그를 이용하느냐 또 네이버 블로그냐, 야후 블로그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전 국민에게 '예쁜 수첩' 쓰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프레시안 : 미니홈피보다 블로그가 좀더 열린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얘기다. 이람 팀장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그 수익모델을 기획한 후, NHN의 네이버 커뮤니티 팀장으로 옮겨 블로그 전도사가 됐다. 미니홈피가 아니고 블로그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한데, 더 열려 있다는 특징과 관계가 있는가?

이람 : 미니홈피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까 아쉬운 점이 많이 생겼다. 오늘 만남을 예를 들어보자. 일단 오늘 만나 얘기를 나누는 우리들이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수 있다. 또 까페에서 우연히 들은 좋은 음악도 있고. 오늘 만남과 관련된 기사도 있겠다. 그런데 미니홈피에서는 사진은 '사진첩'에, 음악은 '음악앨범'에, 기사는 '게시판'에 따로 보관을 해야 한다. 컨텐츠를 도구에 따라 쪼개는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블로그는 이런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특정한 주제에 따라 사진, 음악, 글을 같이 배치하는 게 가능하다. 컨텐츠를 전면에 내세우고 도구는 그 뒤에 숨길 수 있었다.

좀더 현실적으로는 내가 싸이월드에 있을 때와 네이버라는 포털에 있을 때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도 있었다. 당시 싸이월드는 11억8천만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8백억 자본금의 포털과 경쟁해 살아남아야 했다. 회원들도 50명 미만의 소규모 클럽에서 주로 활동했고. 그들에게 딱 맞는 것은 예쁜 수첩, 바로 미니홈피였다.

그런데 포털에 와보니 무시무시하더라. 하루에 1천5백만명이 포털을 들락날락거린다. '전 국민'이라는 표현이 실감이 나고, 이 정도 되면 현실 사회가 사이버 공간으로 그대로 이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예쁜 수첩을 쓰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블로그이다.

프레시안 : 현재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시장 점유율은 어떻게 되는가?

이람 : 현 시점에서 미니홈피 7, 블로그 3 정도다.

프레시안 : 선택한 결과에 만족하는가?

이람 : 나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내 이상향이 있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설정해놓고 그것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미니홈피보다는 좀더 열린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싶었다. 그 점에서 네이버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우리 팀의 첫 번째 캐치프레이즈는 '열린 사회 지향'이다. (웃음)

이강룡 : (웃음) 여기서 딴죽을 한번 걸어야 겠다. 블로그 이용자들끼리 만나면 네이버 블로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규모가 제일 크니까 반향이 제일 크다. 사실 네이버 블로그가 좀더 열린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람 : 좀더 두고봐라. 개입을 최소화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웃음)

***"포털의 언론화, 어떻게 봐야하나"**

프레시안 :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보면서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이것과 관련해서 최근 포털이 인터넷 언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먼저 얘기해봤으면 한다.

특히 이강룡 선생은 포털이 언론 기능을 강화하고 나서는 것, 예를 들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다음(www,daum.net)에서 자체 기자를 확보하는 등 미디어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언론이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것에도 불만이 많은데, <프레시안>도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다.

이강룡 :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매체들은 기존 언론의 닷컴과 좀 다르다. <프레시안>의 기사들은 포털에서 기존의 언론만큼 또는 그 이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고, 이것은 후발주자로서는 확실히 득이 되는 일이다.

프레시안 : 그런 측면이 확실히 있다. 사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면서 편집권의 침해를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 하나의 기사는 그 기사 안의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측면이 있는데 포털에 개별 기사 형태로 공급되고, 선택되면서 그런 점이 훼손되니까.

이강룡 : 맞다. 하지만 <한겨레>나 조ㆍ중ㆍ동과 같은 기존 언론 입장에서는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게 확실히 독이 된다. 당장 기사를 공급하고 한달에 1~2천만원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보니 기존 언론사의 닷컴은 거의 죽고 있다. 과연 그 신문들이 장기적인 인터넷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사는 해당 언론사의 사이트에 가서 보는 게 가장 좋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언론사는 포털에 제목과 링크만 공급하고, 이용자들은 포털의 기사 링크 목록을 통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가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겠다. 더구나 이것은 똑같은 기사가 해당 언론사 사이트 외에도 여러 개 포털에 존재해 웹 공간을 낭비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프레시안 : 이람 팀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람 : 포털에서 기사를 모아놓으면 <프레시안>이나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모두 똑같다. 그래서 <프레시안>의 기사가 <조선일보>나 <한겨레>의 기사보다 포털에서는 더 비중있게 취급될 수 있다. 기존 언론사가 갖고 있는 권위를 해체하는 효과라고나 할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사를 모아놓았을 때 이용자에게 검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모든 언론사의 기사들을 모아 놓으면 특정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 기사에 한번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네이버 뉴스는 편집을 하기보다는 뉴스 목록을 제공하는 데 더 치중해왔다.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선도와 중요도.

프레시안 : 시간이 지날수록 포털의 뉴스 선별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다음의 경우는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다음은 공급된 뉴스의 10% 정도만을 발행하니까.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미디어 다음'의 편집자들의 관점이 선택된 뉴스에 실리게 되고, 그것이 여론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강룡 :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론 몰이'가 이용자들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람 : 그런 측면이 확실히 있다. 아무리 목록만 제공한다고 해도 어쨌든 위에 올리고, 아래 올리고, 이런 게 있으니까. 네이버 안에서도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자칫 많이 보는 기사, 선호하는 기사 중심으로 목록이 구성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지금도 많이 보는 기사가 확실히 각 포털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이강룡 : 조ㆍ중ㆍ동 같은 과점 신문에서 사주가 편집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는 회수가 편집에 영향을 준다.

이람 : 언론이 갖는 공적인 역할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포털이 새로운 공론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번에 KTH의 '파란'이 높은 금액을 약속하면서 스포츠 신문사들과 기사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다시 화두를 하나 던졌다. 기사를 더 비싸게 산다고 이 문 제가 해결 될 것 같지는 않은데......

***"'펌'기능' 블로그 스크랩북화"-"'선택'도 중요한 개인 표현 방식"**

프레시안 : 그럼 이런 '포털의 언론화'가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1인 미디어 기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지점들이 많은 것 같다. 네이버에서도 '기사 스크랩'과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데, 그 편리함을 넘어서 찬반 논의가 분분하다.

이강룡 : 바람직하지 않다. 네이버에 기사가 완전히 공급되고 그것이 '기사 스크랩' 기능을 이용해 여기저기 블로그에 복사되고 있다. 사용자 개인에게는 당장 편리해 보일 수 있겠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게시물을 복사해 옮기는 '펌'은 일종의 네티즌 문화인데, 그것을 서비스로 구현하는 게 과연 맞을까? 비슷하거나 동일한 정보의 문서를 양산해 불필요한 자원을 소모하고, 결국 원문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해 게시물 작성자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하고.

이람 : 그 기능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다. 아까도 잠시 얘기가 나왔지만 '웹 정체성(web identity)'의 문제와 이것도 깊이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신문 기사를 언급하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는가? 그것을 스크랩하기도 한다. 그게 '웹 정체성'을 매개로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된 문화가 바로 '펌'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두면 원 출처를 안 밝힌 인용이 난무한다. 또 기능에 대한 이용자들의 요구도 있고.

이강룡 : 타협안으로 링크와 간단한 요약만 스크랩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이람 : 그런 방안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원본을 가져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더구나 링크는 언젠가 끊길 수 있다.

이강룡 : 링크가 끊겼다는 건 웹 문서로서의 가치가 소멸됐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얘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런 것도 같이 얘기해보자.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1인 미디어' 가능성에 주목해보면 이런 스크랩 기능이 블로그를 '자기 표현의 공간'으로 만들기보다는 '펌' 정보만 잔뜩 모아둔 스크랩북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이람 : 내 생각에 '선택'은 대단히 중요한 개인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수첩이 있을 때, 모두 다 그것을 수첩으로 쓰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스케치북으로도 쓰고 또 휴지로도 쓴다. '왜 너는 그것을 수첩으로 안 써?', 이렇게 따질 수 없다.

이강룡 : 문제는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서 쉽게 스크랩북이 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데 있다.

이람 : 글쎄...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사이버 문화가 어려운 점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가졌던 기대가 번번이 어긋난다는 점이다. 때로는 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블로그를 스크랩북으로 이용하라는 취지로 기사 스크랩 기능을 준 게 아닌데, 많은 이용자들은 스크랩북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왜 스크랩북으로 쓰면 안 되지?" 어떤 사람은 자기 얘기를 자기 사유에 기반을 둔 자기 문장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인용해서, 선택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표현을 한다.

이강룡 :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블로그가 다 기사 스크랩북으로 전락해 비슷해지는 게 우리가 바라던 바는 아니지 않느냐?

이람 : 무슨 지적인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일종의 '엄숙주의'는 좀 피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또 일종의 '웹 예외주의'와 통한다. 사실 우리는 현실의 관계들 속에서 특별한 정보보다는 비슷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산다. 단지 공간적ㆍ시간적 단절이 있어서 그걸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탄핵 정국' 때 내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탄핵 얘기만 했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서 다 탄핵 얘기를 하면 왜 안 되나? 당시 거의 모든 블로그에는 탄핵 얘기가 있었다. 이게 과연 탓해야 할 일일까?

***"한국 청소년들은 미니홈피를 만들며 독립한다?"**

프레시안 : 인터넷 공간과 현실 사이의 관계, '웹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지금까지 미니홈피ㆍ블로그로 대표되는 사이버 문화에 대해서 얘길 해봤다. 이제 좀 화제를 바꿔보자. 좀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19세가 되면 서구의 아이들은 독립을 하는데, 한국의 애들은 미니홈피를 만든다"는 얘기를 하더라.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자아 만들기에 대한 욕구를 사이버 공간에 투사한다는 것이다. 또 거기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너도 그렇군', 이렇게 안심하기도 하고. 즉 서구 아이들은 독립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 공간에 미니홈피라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얘기다.

이람 : (웃음) 나도 그 얘기를 들었다. 사실 19세가 되기 전, 이미 1318 때 다들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만든다.

프레시안 : (웃음) 최근의 사이버 문화에 대한 이런 지적은 근본적인 변화를 포착한 것 같다. 이제 비로소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구별이 없어진, 즉 나의 정체성이 곧 '웹 정체성'이 되는 세대의 등장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방금 이람 팀장이 말한 그 세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해봐야 할 것은 오히려 이런 세대의 등장이 과거보다 더욱더 구조의 논리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강룡 : 구조의 논리라면?

프레시안 : 자본의 논리, 시장의 논리, 기업의 논리, 기존의 사회ㆍ문화적 가치 체계에 더 강하게 속박된 공간이라는 얘기다. 단적으로 그 공간은 언제든지 '회수될 수 있는 공간'이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과연 이용자의 것일까? '정기 점검'을 이유로 내 미니홈피에 접속하지 못하는 일도 그 예일 것이다. 급기야는 몇 년 동안 내가 쌓아온 것, 즉 나의 정체성의 흔적들이 순식간에 날라 갈 수도 있다.

이강룡 : 정확한 지적이다. 일단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소극적인 방법 밖에 없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쓰다 그런 점에서 좀더 자유로운 독립 블로그로 옮긴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다. 더구나 나는 그 공간도 신뢰하지 못해서 자료를 백업하고 출력하는 일에도 신경을 쓴다.

이람 : 동감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겪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점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면 소멸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프레시안 : 그런 구조의 속박은 다른 방식에서 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특히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휴대 전화 시장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미 사이버 공간에는 거대 자본이 들어왔거나, 개입할 시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가 SK그룹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줄지 더 두고 봐야 한다. KT 자본을 앞세운 KTH가 '파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돈을 더 줄 테니 콘텐츠를 독점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것은 디지털은 '자유'인가, '권력'인가라는 사이버 문화에 대한 고전적인 질문과도 겹친다.

***"자본 의도대로 네트워크가 재편되지는 않을 것"**

이람 : 내가 오랫동안 사이버 문화를 고민하고 관찰하면서 느낀 게 있다. 좀더 큰 네트워크가 나머지를 흡수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선택권을 고려한다면 더 많은 서비스 공급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네트워크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점에서 네트워크는 자본과 정확히 일치한다. 둘 다 확장하려는 것, 모든지 먹어치우려는 것.

하지만 차별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 비록 싸이월드가 지금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작년(2003년)에 합병됐지만, 그 때 이미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라는 새로운 네트워크 방식을 인터넷 공간에 화두로 던졌다. 싸이월드는 규모도 작고, 자본도 미미했다. 이처럼 자본은 끊임없이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네트워크의 현실은 자본의 의도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을 알아야 한다.

이강룡 : 그것은 네트워크와 자본의 다른 점이기도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의 힘이기도 하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 현상에 대해서 논평하고 개입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비판적 안목도 길러지게 되고. 돈으로 무엇이든지 해보려는 '꿍꿍이'가 쉽게 통하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프레시안 : 두 분 다 상당히 낙관적인 얘기를 해주니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웃음) 사실 싸이월드가 급성장한 탓도 돈으로 '꿍꿍이'를 안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프리첼의 전격적인 유료화 선언에 싸이월드는 광고를 배제한 초기 화면과 '클럽 평생 무료' 전략으로 맞섰다. 결국 프리첼 회원들이 싸이월드로 대거 이전했고.

이람 : 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미니홈피의 수익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서비스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상거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가 교환을 안 하는 경우는 물론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가 있다. 그 상거래가 기본적인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에도 여러 가지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많지만, 그것을 전혀 구입하지 않아도 클럽이나 미니홈피를 이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프리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오판을 했다.

밖에서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수익모델에 대해서 몇 백원에서 1천원의 '코 묻은 돈'을 받는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런 수익모델이 없었으면 싸이월드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이버에서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궁리중이다.

이강룡 : 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한다. 단 공짜로 제공하다, 나중에 입장을 바꿔서 강매하는 방식은 안 될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 미니홈피.블로그 등 '웹 정체성'에 기반해야"**

프레시안 : 사이버 공간이 갈수록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많이 얘기되곤 한다. 그런데 <프레시안> 게시판을 운영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토론이 참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이강룡 : 동의한다. 사실 제대로 된 토론은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 찬성과 반대 의견을 적절히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지금은 계속 대립선을 긋다 결국 소위 '더러운 댓글'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모든 문화는 과도기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고 본다.

이람 : 과도기라는 데 동의한다. 인터넷 매체가 기존의 매체와 다른 점은 내가 이것을 읽고, 찬성과 반대 의견 또는 느낌을 말하고, 새로운 정보를 덧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토론이 발생하는데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체성'이다.

<프레시안>의 기사에 대해서 발언을 하는 사람이 하나의 ID 뒤에 숨어서 발언을 하는 것과 미니홈피나 블로그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웹 정체성'을 내세우고 토론에 참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프레시안 : 그것은 실명 게시판 논쟁하고도 겹친다.

이람 : 우리나라는 실명제 얘기가 자꾸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된 토론 문화가 정착되기보다는 오히려 토론을 회피하는 문화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보다는 내가 사이버 공간에서 쌓아놓은 '개인의 역사'가 그대로 들어있는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웹 정체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프레시안>에서도 글을 남기면 미니홈피나 블로그 주소를 남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강룡 : 동의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글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더구나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하나의 글은 원저자에 의해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에 붙는 토론에 의해 보완되는 긍정적인 과정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람 : 종종 최근을 기점으로 스스로가 개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로 구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 특정한 사람들만이 남겼던 공개적인 '개인에 대한 기록'을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있다. 나는 대학에 막 입학했던 1991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데, 지금 세대는 전혀 다르지 않을까?

이강룡 : 사실 아까 내가 블로그가 스크랩북이 되는 것에 반대했던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나는 블로그에 개인의 기록을 남기는 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군가 블로그를 쓴다고 하면 전문적인 얘기보다는 "오늘 암사동 가서 해물탕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와 같은 이런 얘기가 담긴 블로그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람 :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블로그에 신변잡기적인 얘기만 올라오는 것에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아주 못 마땅하다. 블로그는 나의 얘기를 하는 공간이다.

***"사이버 공간의 '차별'이 훨씬 '말랑말랑'하다"**

프레시안 : 사이버 문화에서 불평등 성별 권력의 문제도 오래된 논의다. 예전에는 직접적인 '사이버 성폭력'이 문제였다면, 요즘엔 인터넷 공간에서 성별간 불평등한 발언권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람 : 확실히 그런 점이 있지만,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아무래도 현실보다는 콘텐츠 뒤에 숨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여성들이 쉽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나만 해도 5백여 명 앞에서 내 속내를 털어 놓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매일 5백여 명이 찾는 내 블로그에는 내 얘기를 담는다.

이강룡 : 이런 점도 있다. 이젠 사이버 공간을 따로 구분하는 게 점점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그 자체가 삶이다. 사이버 공간의 여성 문제도 결국 현실 공간과 똑같이 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과 억압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핵심적인 것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재생산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데서는 여성들이 발붙일 틈이 없다. 그러다보니 여성들마저도 남성성 가득한 기존 문화를 좇아 갈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는 어디나 숨어 있다.

이람 : 현실과 전적으로 괴리된 사이버 문화는 사실 허상에 가깝다.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때, 그것과 관련된 사이버 공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현실에서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여성성, 이런 게 나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사이버 공간에서도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내가 기획한 서비스는 상당히 여성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우리가 맨 처음 던진 질문, 즉 현실과 사이버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가 되고 있다. 관련해서 같이 얘기해보자.

이강룡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실의 '강고한 성'보다는 사이버 공간의 논리가 훨씬 더 '말랑말랑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여성 문제도 온라인에서 먼저 변화를 이끌어 내 오프라인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포털의 검색 분류 목록을 살펴보면 '주부'라는 카테고리는 '여성' 항목 밑에 가 있다. 사실 남성 주부들도 아주 많은데. 또 양성평등 원칙에도 그리 적합하지 않고. 이런 것은 서비스 제공자가 조금만 신경 써도 바꿀 수 있다.

이람 : 사실 네이버에 '여성' 서비스가 있는데 들어가 보면 분홍색으로 도배돼 있고, '요리', '패션' 이런 항목으로 가득 차 있다. 기분이 나쁜데 담당자랑 얘기해보면 현실에서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요리', '패션'은 '여성'과 연관돼 생각하니까. 현실의 문화와 사이버 문화가 서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변화를 유도하기는 쉽지 않다.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프레시안 : 한 때는 사이버 공간'만'의 특성에 사람들이 많이 주목했는데 오늘 얘기를 하다보니 갈수록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딱 구분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강룡 : 오랫동안 웹이라는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된 직업을 가져오면서 느낀 것은, 사이버 공간은 온라인이면서 오프라인이고, 디지털이면서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웹 칼럼니스트라는 직업도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웃음)

***"사이버 공간, 온라인이면서 오프라인이고, 디지털이면서 아날로그적"**

아직까지 사이버 공간, 사이버 문화에 대한 얘기를 하면 좀 다르고, 특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깔려 있는데 갈수록 현실의 인간 생활의 확장에 불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가 부대끼는 확장된 공간에 불가하지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논리가 적용되는 그런 구별되는 공간이 아니다.

이람 : 사실 나는 나는 사이버 공간만의 독특한 문화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오늘 얘기도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웃음) 굳이 나누자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과 유리된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아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상태에서 사이버 공간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네티즌'이라는 말도 어느 순간에는 '시민'과 거의 동일한 대상을 가르키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고, 이미 도래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자기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그 사이버 공간만의 특성을 살려서 그것이 맞닿아 있는 현실 공간에 역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두 분의 앞으로 계획을 듣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전개될 사이버 문화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강룡 : 그런 부담스런 질문에는 답하고 싶지 않은데... (웃음) 나는 앞으로도 네티즌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앞으로 방향에 대해서 같이 얘기할 예정이다. 특히 '뜬 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혜를 모으고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그게 꼭 '웹 칼럼니스트'란 직업은 아닐 수도 있지만. 너무 소박한가? (웃음)

이람 : 내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대모가 꿈'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이런 얘기는 아니다. 다만 PC 통신을 열심히 할 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었고 결국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최근에 일본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다른 문화 장벽이 있는데도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또 그 과정에서 기뻐하고, 이런 것이 통하더라.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일본에서도 통하는 게 기뻤다. 이제 중국에서도 시도해 볼 생각이고... 더 먼 꿈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그 때 얘기하자. (웃음) 어쨌든 앞으로도 입을 꾹 닫은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게 사이버 공간을 넘어 현실의 삶까지 풍성하게 하는 것. 이게 내 꿈이다.

프레시안 :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다.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다.

('우리 안의 빈곤'을 주제로 한 여섯 번째 '대화'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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