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영훈교수 해명 뜯어보면 또다시 '공창제' 발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영훈교수 해명 뜯어보면 또다시 '공창제' 발언"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31> "이 교수, 떳떳이 사관 밝혀라"

이영훈 교수가 자신의 TV토론회 발언이 물의를 빚자, 자신의 입장을 새로이 해명하고 정신대 생존자들께 사과를 표명하였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해명에는 몇 가지 불분명한 점이 있고,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담고 있다.

***이형훈 교수 해명, 토론회 때와는 상충돼**

이영훈 교수의 해명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신대가 공창이었다"는 것은 송영길 의원의 "억지 해석"이며 자신의 주장이 아니다.

둘째, 정신대는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 감금, 성적 착취 강요가 자행된 성노예였음이 분명하다.

셋째, 자신이 강조하려했던 바는, 이러한 "강제 동원 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명은 두 가지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먼저, 이 둘째 주장은 이영훈 교수가 토론회에서 발언했던 바와 상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당시 문제가 된 토론 당시의 현장 발언이다.

송영길 : …이미 증거자료에 의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일종의 성적 노예 상태에 놓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군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

이영훈 :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송영길 : 그럼 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

이영훈 : 표현에는 찬성하지만 사실 인식에 있어서는...

결국 이영훈 교수의 입장은, "표현상으로는 총독부의 강제 동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사실 인식의 차원에서도 총독부가 실제로 동원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 이영훈 교수가 뜻하는 그 "사실 인식"의 차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답이 될 만한 이교수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노회찬 : 일본의 책임 없다는 것인가.

이영훈 : 성노예를 관리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민간인 문제를 따지지 말자는 건가.

즉,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대에 대한 책임에 관한 그날 이영훈 교수의 발언 요지는, "강제 동원 부분에서는 모호하고 성노예들을 관리한 부분이 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최근의 해명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 동원, 감금, 성적 착취 강요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거기에서 나아가, 이영훈 교수는 또 성노예들을 "위탁 관리"했던 자들은 조선과 상해 등지에서 온 그 한국인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해명에서의 두 가지 입장 조차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면이 있다. 일제가 맡았던 역할이라고 이영훈 교수가 인정하고 있는 "강제동원, 감금, 성적 착취 강요"야말로 이영훈 교수가 책임 추궁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맡았어야 할 "위탁 관리 경영"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이영훈 교수 해명, 뜯어보면 사실상 '공창제'**

좀 더 혼란스러운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이영훈 교수는 정신대에서 "실제로 위탁 관리 경영을 맡았던 것은 한국인들이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여기에서 추론되는 바 이영훈 교수가 생각하는 정신대의 모습은, 정신대 운영에 필요한 강제적 폭력은 일제의 국가 기구가 맡고, 실제의 관리와 경영은 그 폭력을 뒤에 업은 민간 매춘 업소 주인들이 맡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야말로 이영훈 교수가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공창제'의 낯익은 모습이라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나타났던 공창제는, 매춘업소가 여기저기 흩어지는 산창(散娼)을 막고 또 매춘업자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가 수입에 충당하려는 목적에서 국가가 일정한 지역을 설정하면 인가를 받은 매춘업자들이 그 구역 내에서 집창(集娼)의 형태로 영업을 하는 제도였다. 이렇게 "위탁 관리 경영"이 민간인 주도하에 행해졌다는 점에서, 매춘 자체가 신정 국가 권력의 적극적인 산업이었던 고대 근동 제국과 그리스 신전 노예들의 "신전 매춘(hierodule)"의 형태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즉, 정신대의 성격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서술이 국가 기구의 폭력을 업고 한국의 매춘업자들이 실제 관리와 경영을 맡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형태는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공창제'이외의 무엇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영훈 교수가 정신대는 공창제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생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에는 어떠한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 논리적 구조를 몇 가지로 추론해본다.

첫째, 정신대의 운영은 화폐적 거래가 개입되지 않는 성격이었고, 따라서 그 "위탁 관리 경영"이란 "영리 활동"의 성격이 없는 행정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고 따라서 공창제가 아니라고 이영훈 교수가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위탁 관리 경영"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또 조선과 상해에서 윤락업을 해오던 한국인들이 거기에 참여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도 "강제 동원"에 의한 "징용"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들도 일제 폭력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둘째, 정신대의 운영이 기본적으로 화폐적 거래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고, 그 "위탁 관리 경영"이라는 것도 "영리 활동"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면 이는 사실상의 '공창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영훈 교수가 정신대 생존자분들은 "강제 동원의 일방적인 희생자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의 일관성은 아마도 모든 금전적 이익은 그 한국인들이 가져갔고 피해 여성들은 한 푼도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선 흥미로운 학문적 이론적 질문들도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위안소'에서 통용된 화폐는 어떤 것이었을까? 민간 통용 화폐였을까 아니면 군에서만 통용되는 이를테면 '군표'와 같은 것이었을까? 파시즘 경제 하에서 그것도 전시 경제의 지급 명령서인 '군표'의 축적도 영리 활동으로 볼 수 있을까? 실제적 차원에서도 극히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도 가해 한국인 핑계는 대지 않았다"**

그렇게 사실상의 "공창"을 운영하면서 동포 여성들을 금전적으로까지 악랄하게 착취한 그 "한국인"들은 반드시 찾아내어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엄혹하게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신대 생존자들은 일본 정부 뿐만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그 자손들에게라도 금전적인 보상을 반드시 요구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영훈 교수는 일본 측 자료에 그 한국인들의 명단이 존재한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대 피해 여성들만 배제된 "공창제"였다면 어째서 정신대 생존자들의 피해 보상 요구에 직면했던 일본 정부가 그 "위탁 관리 경영"을 맡고 영업의 이윤을 모두 챙겼을 한국인들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영훈 교수의 해명에는 몇 가지 불명확한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대라는 역사적 사건의 사실 관계에 있어서 더욱더 많은 의문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애매한 점들이 남아 있는 해명을 내걸고 정신대 생존자들께 사과하는 것은 큰 의미도 없고 또 급한 일도 아니다. 더 많은 오해와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영훈 교수 아울러 그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양동휴 교수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신대라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객관적 사실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영훈, 양동휴 교수는 자신의 사관을 떳떳이 밝혀라"**

19세기 영국의 액턴 경(Lord Acton)은 역사란 있었던 사실을 완벽하게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일종의 과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미 1940년대가 되면 카(E. H. Carr)나 콜링워스(R. Collingworth) 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액턴 경이 편집한 케임브리지 역사서 시리즈라는 것도 19세기식 보편적 도덕 법칙의 관념으로 역사를 재구성한 이념적 산물임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역사 서술에는 그 서술자의 "사관"이라는 것이 항상 전제되게 마련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오늘날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어떠한 역사 서술에서도 "가치 중립성" 따위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풍부하고 포괄적으로 사실 관계를 밝혀내고 또 새로 조명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여 거꾸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느 사관이 다른 사관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라고 판단을 내린다.

지금 이영훈 교수 그리고 암묵적으로 양동휴 교수는, 정신대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종래의 시각을 "민족주의적" 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내거는 방식으로 새롭게 역사를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시각에 입각하면 얼마나 새롭고 또 풍부하게 역사가 새로 보이게 되는지 두 학자의 주장을 계속 경청하고자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정신대 문제의 건에서 보인 정도의 주장과 해명만으로 그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라고 사람들에게 요구-양동휴 교수의 표현으로 "어느 학교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역사 교육 다시 받아라"-하는 것이라면, "이념적 목적에 맞추어 역사를 주술(呪術)로 사용"하려 한다는 비판은 본인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