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3주년 맞아 본 부시 대외정책의 한계**
9.11 3주년이 다가온다. 미 부시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알-카에다 기지가 있는 아프간을 침공했고, 뒤이어 오사마 빈 라덴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는 없다. 걸핏하면 테러비상이 걸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오늘 미국인들은 미국 요새(Fortress America)에 갇혔다”란 말을 듣는다.
그동안 부시행정부는 알 카에다 조직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9.11 당시 약 4천명에 이르렀던 알 카에다 요원 가운데 80% 가까이가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알 카에다는 연계조직들과 손을 잡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알 카에다는 미군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분산전술을 폈다. 알 카에다가 그동안 훈련, 무장, 투쟁원칙, 재정 면에서 도움을 주어왔던 중동과 아프리카, 코카서스 지방의 반미저항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지하로 잠복했다. 그들의 목표는 제2의 9.11 같은 대형테러다.
미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부 정보원이 그들 조직 안으로 파고들어가지 않는 한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신 베트가 하마스 내부에 정보원을 두고 지도자들의 동향을 손금 들여다보듯 해왔다. 내부 침투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9.11이 일어난 지도 3년이 흘렀지만, 알 카에다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정보기관에겐 ‘보이지 않는 조직’이다.
***반미 주력은 수니파 이슬람 저항세력**
미국의 대테러 전문가들이 9.11 뒤 관심을 기울이는 반미 저항조직 요원 대부분은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빈 라덴은 그들의 주의주장을 가장 극적인 형태(9.11 동시다발 테러공격)로 나타낸 인물이다. 그들 반미세력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재에서의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부패한 이슬람 친미왕조 지원정책,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을 미국의 패권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판한다. 이슬람 저항세력들은 알 카에다처럼 중앙통제를 받지 않고 조직-세포-개인의 절충적인 형태로 오사마 빈 라덴의 반미 대의(大義)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들 조직은 알 카에다와 직접적인 연계가 없거나, 있다 해도 느슨한 형태의 연대조직들이다. 현재 이라크 팔루자 지역을 중심으로 반미 테러활동을 펴온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좋은 보기다. 미 정보기관에서는 자르카위가 알 카에다 요원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자르카위는 오사마 빈 라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로서 반미테러활동을 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올해 초 미 정보기관이 찾아낸 자르카위의 편지를 근거로 그가 알 카에다에 연결시키려는 것은 미국의 테러전쟁 편의상 만들어진 분석이라 여겨진다.
흔히 ‘동남아시아의 알 카에다 조직’으로 일컬어지는 제마 이슬라미야(Jemaah Islamiya)는 알 카에다와 느슨한 형태의 관련을 맺어왔을 뿐이다. 이들 이슬람 급진조직들은 각자가 속한 지역적 문제에 개입하는 한편으로 반미라는 큰 깃발 아래서 투쟁의 공통분모를 지녀왔다. 아울러 이렇다 할 조직에 가입하지도 않고, 또는 조직 이름도 정하지 않고 반미 지하드(성전)를 수행하는 이슬람 행동주의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라크 침공이 정의의 전쟁(just war)인가**
부시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침공으로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이한 모습이다. 9.11 테러공격에서 비롯된 엄청난 희생이 미국의 테러전쟁에 국제적인 공동전선을 넓힐 명분과 기회를 제공했다면, 국제법상 필요요건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거치지 않고 이뤄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9.11 뒤 알 카에다를 겨냥해 미국 주도의 테러전쟁에서 이뤄졌던 국제사회의 공동전선을 오히려 축소시키는 역작용을 낳았다.
국제사회, 특히 이슬람권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만 해도 ‘정의의 전쟁’(just war)이라는 부시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 못했던 게 사실이다. 9.11 테러에 대한 응징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시가 말하는 ‘정의의 전쟁’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불의의 전쟁’(unjust war)라는 비판에 부딪쳤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이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상이라고 주장했다.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副)장관을 비롯한 매파들은 사담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손을 잡았다고 주장하면서, 후세인이 9.11의 배후인양 선전해왔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지난 7월 하순 발표한 ’9.11 보고서‘는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오랜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미 부시행정부는 한때나마 반후세인 효과(anti-Hussein effect) 덕을 봤던 게 사실이다.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이 전란으로 피폐해진 이라크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거들어줄 것으로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런 기대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됐다. 특히 올들어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수감자 학대사건이 터지고, 팔루자에서 1천명에 가까운 민간인들이 미군 공습과 군사작전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슬람 교도들의 반미감정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 6월 이라크 현지취재 당시 만난 지식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복합적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난 것을 반기면서도, 미국의 침공이 과연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무력개입(humanitarian military intervention)이었나에 대해선 냉소적이었다.
이라크 지식인들은 부시행정부의 이른바 테러전쟁이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미국의 세계지배 패권 확장을 통한 미국의 국가이익 챙기기를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그다드대 역사학과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는 “부시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우리 이슬람 민중들을 상대로 한 전쟁(war against Muslims)에 다름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벌이는 전쟁은 결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미 저항세력들은 바로 분위기 속에서 동조자와 자금원, 새로운 회원을 확보해왔다. 우리 김선일씨를 무참히 죽인 것으로 알려진 자르카위를 비롯한 일부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 민중들의 반외세 감정에 편승, ‘테러’라는 극한적인 투쟁방식을 거리낌 없이 되풀이하고 있고, 일부 이라크인들마저 그런 극한방식에 대해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선 전술적으로 필요하다”고 용납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부시 테러전쟁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산물이라 보기엔 너무나 불행한 결과다.
***“이라크 무자헤딘(아랍전사)으로 싸워라”**
이라크의 반미 저항세력들은 그들의 투쟁구도를 ‘미 침공자들-유대인들의 연합 대(對) 이슬람 민중’으로 몰아가는 투쟁전략을 쓰고 있다. 후세인 독재를 무너뜨렸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명분이 허구임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반미 저항세력들의 그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의 대의(大義)를 따라 아프간, 보스니아, 체첸에서의 무장투쟁에 지원자로 뛰어들었다. 이라크 안에서 무장테러활동을 벌이는 저항세력 가운데는 외국 출신들도 섞여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맘(imam)이라 일컬어지는 아랍권의 성직자들은 공공연히 반미 지하드를 외치고 있다. 반미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집트 이맘들조차 그러하다. 9.11 당시 그들은 “9.11 테러는 비(非)이슬람적인 공격”이라며 오사마 빈 라덴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이즈음 이집트 젊은이들에게 “이라크로 가서 무자헤딘(아랍전사)으로서 침략자인 이교도들에 맞서 싸워라”는 설교를 하고 있다.
아프간전쟁을 통해 알 카에다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는 듯 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라크 침공으로 실패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라크 침공과 뒤이은 악수(惡手)들이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악화시키는 바람에 부시의 테러전쟁은 끝없는 전쟁이 돼버렸다. 이라크와 아프간은 이슬람 저항운동가들의 지하드(jihad, 성전)가 이어질 것이고 테러활동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부시 테러전쟁의 한계**
9.11 뒤 한때 넓혀졌던 국제사회의 반테러 공조는 갈수록 노골화되는 미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친이스라엘 정책, 유엔 안보리결의를 비껴간 이라크 침공)로 말미암아 미국 스스로 테러전쟁 전선을 강화할 기회를 놓친 모습이 됐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이 ‘낡은 유럽’이라고 비판했던 서유럽 국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테러전쟁에 끼어들길 망설이는 모습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9.11 뒤 부시의 테러전쟁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평화유지군으로 나토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 나토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반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 국가들은 이라크 사태의 혼란과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미군의 군사개입 강도가 수드러들지 않는다면 그 불똥이 자칫 서유럽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걱정한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될 경우 이슬람권의 반외세감정 격화로 올해 3월 마드리드 열차 폭파사건 같은 대형 테러가 서유럽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테러전쟁의 막을 내리려면, 미국의 대중동정책이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이슬람권의 테러가 지닌 정치적 동기와 불만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풀어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끝 없는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9.11 테러의 주역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히거나 사살된다 하더라도 테러전쟁의 끝은 없다. 한 마디로 테러전쟁은 무한전쟁이다.
빈 라덴의 죽음이나 체포는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이나 사담 후세인 체포와는 성격이 다르다. 자연인의 한사람인 빈 라덴 제거가 테러전쟁의 끝이나 승리는 아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자국 이익과 패권 중심에서 벗어나 지구촌 평화를 위한 쪽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빈 라덴이 지구촌 어디선가 테러를 기획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정책이 바뀌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물러나지 않는 한, 하마스의 자살폭탄공격이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도 같다. (위의 글은 시사월간지 <신동아> 9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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