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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셀에서 '대전 교도소'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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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셀에서 '대전 교도소'를 떠올리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13> 도쿠멘타와 대전교도소
오늘부터 <디아스포라 기행>의 제3부 '거대한 일그러짐-카셀 2002년 8월'이 연재된다. <편집자>

***'OUT OF BLUE'**

기분 나쁜 땀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냉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다 전시 작품의 수도 엄청나다. 죽 늘어선 크고 작은 상영 부스를 차례로 기웃거리면서 걷는다. 한 작품에 평균 5~6분 정도일까. 직감에 별로라고 생각되면 1분 만에 나와 버리는 작품도 있다. 재미있는지 아닌지의 감각은 점차 마비되어, 마치 등산이나 장거리 경주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역인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한 부스에서 못 박힌 듯 걸음이 멎었다. 스크린에 빨려들어 의자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 게다가 꺼림칙하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것이다.

어딘가 열대의 나라 같다. 황폐한 막사의 방. 바닥에는 옷이며 식기가 널려 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병사들이 누워 뒹굴고 있었던 것 같은 잠자리. 병사들의 체액이 스며들어 있고 체취가 감도는 듯한…. 구치소일까. 비가 온다. 아무도 없다. 젖은 안마당. 너무 높은 습도 탓에 담장도 벽도 바닥도 축축하게 젖어 있다. 거기에 던져 넣어지면 비인지, 습기인지, 땀인지 모르는 채 몸은 언제나 젖어 있겠지. 기온은 낮지 않은데 오싹오싹 한기가 들겠지.

콜로니얼 양식의 주거. 호화로운 저택이다. 그러나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정적에 싸여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유리창이 깨져 창틀만 남은 창들. 벽에 있는 무수한 작은 구멍은 탄흔일까. 탄흔 투성이의 벽에 알파벳의 문자가 늘어서 있다. 'ENTEBEE'라고 읽힌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이해한다. 이것은 엔테베 공항의 관제탑이다. 그렇다면, 여기는 우간다인 것이다. 섬뜩하도록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폐허가 된 관제탑이 완벽한 심메트리의 구도로 서 있다.

적토의 활주로에 구식 여객기가 한 대. 카메라는 그 여객기를 타고 이윽고 엔테베 공항을 이륙한다. 멀어지는 풍경. 우간다의 붉은 흙과 녹색의 숲이 멀어져간다. 15분 남짓한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 사람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적과 부재. 훅 하니 끼쳐오는 폭력의 기척.

상영 부스를 나와 패널을 본다. 작품명은 'OUT OF BLUE', 작가명은 '자리나 빔지(Zarina Bhimji), 1963년 우간다 무바라라(Mbarara) 태생, 런던 거주'라고 쓰여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목이며 가슴언저리가 땀범벅이다. 2002년 8월. '도쿠멘타 11'에서의 경험이다.

***도쿠멘타**

'도쿠멘타'는 독일 중부, 인구 20만의 도시 카셀에서 5년에 한번씩 열리는 현대 미술의 국제전이다. 첫 회는 1955년으로 나치 제3제국 시대의 예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최되어 나치가 압박하고 추방했던 큐비즘, 표현주의, 신즉물주의, 초현실주의, 앵포르멜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 그 후 회를 거듭해 2002년이 열한 번째다.

내가 '도쿠멘타'를 보는 것은 1997년에 이어 두 번째다. 1997년은 카트린느 다 비드라는 프랑스 여성이 예술 총감독이었다. 이번에는 오퀴 엔베조(Okwui Enwezor)라는 뉴욕 거주의 38세의 나이지리아인이다. 도쿠멘타 사상 첫 비유럽인 총감독이다.

엔베조는 이번 '도쿠멘타 11' 전체를 다섯 차례에 걸친 연속 이벤트 형식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이벤트의 명칭은 '플랫폼'. 2001년 3월 비인을 출발해 베를린, 뉴델리, 세인트루시아, 라고스 등지에서의 패널 디스커션을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다섯 번째 플랫폼이 카셀의 전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획을 실행한 이유는 "오늘날 동시대 예술의 담론에서 긴요한 논의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명확한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총감독 엔베조의 의도는 유럽이라는 장(場)을 상대화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의 시점에서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 나는 지난번의 '도쿠멘타 10'이 다소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인상을 지녔던 터라, 이번에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카셀에 도착했다. 2002년 8월 15일이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이 제1회장. 미술관 앞 광장에는 관람 티켓이며 카탈로그를 파는 가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노상 카페도 텐트를 치고 영업 중이었다. 전 세계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전 유럽에서 피부색도 나이도 다양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이 염천하의 광장에 모여든다. 티셔츠, 숏팬츠 차림이 많지만, 베일로 머리를 가린 이슬람권의 여성도 드물지 않다. 현대 미술의 감상이라고 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 분위기는 조금도 없고 5년에 한번 있는 축제를 즐기는 편안한 풍정이다.

관람 티켓은 하루 티켓, 이틀 티켓, 100일 티켓의 세 종류가 있는데 나처럼 멀리서 온 여행자에게는 100일씩이나 시간은 없으니까, 이틀 티켓을 사게 된다. 그러고 나면 소위 가난뱅이 근성이랄까 그런 게 솟아나면서 이틀 안에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나 죽 늘어선 전시 부스를 차례차례 바쁘게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전시의 규모는 해마다 비대해져 이번에는 시내의 주요 네 전시장 이외에 시의 외곽에 있는 구맥주 양조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부를 이틀 안에 보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인 것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서둘러 돌며 빠짐없이 보는 것도 반드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수고 덕분에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정말로 범상치 않은 작품은 이쪽이 아무리 지쳐 있어도 믿을 수 없는 파워로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이다. 자리나 빔지의 'OUT OF BLUE'가 바로 그랬다.

***싫은 느낌**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구치소나 형무소에 들어가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용의자나 수형자로서가 아니더라도, 면회나 차입을 위해, 아주 잠깐이라도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싫은 느낌을 많든 적든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8년부터 1990년대 초엽에 걸쳐 한국의 중부 지방에 있는 대전 교도소에 몇 차례 드나든 적이 있다. 1971년 이후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있던 두 형 중에서 서준식은 1988년5월에 출옥했으며 남아 있던 서승에 대해서도 그 무렵 겨우 석방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출소에 따르는 여러 잡무를 위해 일본과 대전을 오고갔던 것이다.

통상적인 면회는 접견실에서 이뤄진다. 교도소 구내에 들어가 상당히 걸어 접견 대합실에 간다. 대합실이 있는 곳은 교도소 건물의 담장 밖이다. 정문 옆에 번호가 붙은 접견용의 작은 방이 늘어서 있다.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방송에서 이름이 불리면, 지정된 번호의 방에 들어가 면회를 하게 되어 있다. 면회자는 담장 밖에서 작은 방에 들어가고, 수감자는 담장 안에서 입실하게 되어 있다. 면회실 내부는 TV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간수가 기록을 하며 감시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면회가 싫었다. 옥중에 있는 자는 외부와의 접촉에 굶주려 있으니까, 1분이라도 2분이라도 면회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때로는 이와 같은 요구를 내걸고 단식투쟁을 할 때도 있다. 내 입장에서도 당연히 이 요구를 지지한다. 그러나 나는 형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 면회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관헌에게 감시당하고 기록당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아무리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는 형제를 면회한다는 것은 기묘하게 거북한 행위인 것이다. 위에서 타이를 수도 없고, 아래로부터 매달릴 수도 없다.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십중팔구는 비관적인 화제가 되고 신변잡기는 이야기해봤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자연히 '음~'이나 '아아~'같은 짧은 말이 이어진다. 그렇게도 시끄럽게 요구해 겨우 쟁취한 면회 시간인데 본인의 건강, 가족과 친구의 소식에 관해 한 차례 이야기하고 나면 더 이상 해야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통상의 면회 이외에 특별 면회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소장이나 교무과장 같은 상부자가 수감자의 교화에 유익하다고 인정했을 경우 다시 말해 회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경우 교무과장실 등에서 장시간의 면회를 허락하는 제도다. 말할 것도 없이 자유로운 면회는 아니다. 교무과장 같은 상부자가 동석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저런 참견을 한다. 반대로 무익하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면회를 중단시킨다.

몇 차례 이 특별 면회라는 것을 한 적이 있다. 교도소 당국은 형의 출소에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싶어 했다. 그 첫째 조건이 출소 후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감옥 밖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과 출소 정치범이 연계해 행동하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형의 입장에서는 그런 조건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까, 자연히 교도소 당국과 곤란한 절충 같은 것도 해야 한다. 그와 같은 절충 작업의 자리로서 특별 면회가 허가되는 것이다. 당국은 자기들의 조건을 마치 가족의 희망이기라도 한 것처럼 동생인 내 입을 통해 형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 것이다. 물론 나로서도 그들 마음대로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면회가 취소되는 사태만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 면회를 할 때는 안내 직원의 지시에 따라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간다. 솔직히 말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내부는 구획마다 철창살의 문으로 엄중하게 나뉘어 있다.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 하나를 열고 들어가 먼저 방금 들어온 문을 잠그고 나서야 다음 문을 연다. 문을 닫을 때는 철커덩하고 커다란 금속음이 난다. 그 때의 싫은 느낌. 특별 면회를 하는 방에 닿을 때까지 세 번 정도 문을 열고 닫는 절차가 반복된다. 그 때마다 여기서 나갈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압박감이 더해 온다. 여기 어딘가에서 고문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 어딘가에서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집요하게 떠오른다.

감옥 안은 정적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조용함과는 다르다. 수감자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느낌이 바싹바싹 느껴진다. 조용하긴 한데 다음 순간은 절규가 공기를 찢는 것이 아닐까 하고 몸을 사리고 말 것 같은 긴장을 품은 정적이다. 그리고 감옥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수감자들의 땀, 피 ,분뇨, 화농한 상처, 사체 등이 뒤섞인 냄새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적인 냄새가 아니라 그 냄새들을 수돗물과 세제로 씻고 난 후의 냄새. 씻어도 지워지지 않고 벽과 옷에 스며버린 냄새. 한 마디로 말하면 폭력의 냄새. 그것도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폭력의 냄새다.

겨우 교무과장실에 도착하면,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초로의 교무과장이 나를 회유하기 시작한다. " 그(형)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자회견 같은 건 하지 않도록 형을 설득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것이 형을 데리고 올 때까지 협박하듯이 달래듯이 계속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신사처럼 정중한 말투지만 그 눈에는 속마음을 들여다보듯 끈적이는 빛이 들러 붙어 있다. '이 남자의 명령 한 마디로 고문이 이뤄지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 떠올라 차츰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간다. 그 정적, 그 냄새,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싫은 기억이, 자리나 빔지의 작품을 보고 되살아났다.

***이중의 디아스포라**

자리나 빔지는 우간다 태생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아니다. 백인도 아니다. 인도계다. 왜 인도계인 그녀가 우간다에서 태어났는가? 왜 영국에 건너갔는가? 왜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가? 거기에는 식민주의의 역사와 디아스포라의 생의 궤적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계속)

번역 : 김혜신 가쿠슈인대학 강사(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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