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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마을의 화해를 전국의 화해로 확산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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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마을의 화해를 전국의 화해로 확산시키자" [기고] 구림 마을의 자기치유 노력에 정부·정치권은 응답해야
해방과 전쟁을 겪은 지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통용되는 도그마가 있으니 바로 '좌익에 희생된 사람은 우익, 우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좌익'이라는 공식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상당수 언론들과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이 표현되거나 행동이 감행되면 좌·우익이라는 틀로 해석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고 있고, 특히 좌익으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러한 경직된 이데올로기 놀음은 영암 구림마을이 시작한 용서와 화해의 훈풍 앞에서 쓸데없는 일로 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민초들은 잃을 것이 많은 엘리트들보다 더 위대하다.

***"우리나라의 민초들은 엘리트보다 위대하다"**

구림마을은 한국의 여느 시골마을처럼 한국전쟁 전후에 이웃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참극이 발생했던 곳이다. 그리고 죽고 죽이는 이야기 역시 한반도의 다른 지역의 것과 너무도 유사하다. 살아남기 위해 빨치산을 도와주고 숨겨주었다고 군경의 보복을 당하고,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이 동네에 들어오자 이전에 경찰 측의 피해를 당한 가족들이 인민군의 비호 하에 경찰가족이나 우익 측 가족들을 처형하고, 인민군이 후퇴하자 경찰이 다시 들어와 부역한 사람들을 처형하고, 나중에는 피해를 당한 가족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던 인권 최저 수준의 야만 시절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과 달리 이러한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 원한을 더 이상 보복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10여 년 전부터 화해라는 지난한 작업을 시작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 이들이 펴낸 <비둘기 숲에 깃든 공동체 호남명촌 구림>에 그 답이 나와 있다. 바로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동계의 정신이다. 즉 백제의 왕인박사, 도선국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낸 이 마을의 정신적 자산과 자부심, 그리고 6대 성씨들이 모여서 마을 대소사를 결정해 온 주민 자치의 전통이 이들로 하여금 1945년 이후 외세에 의한 분단과 전쟁, 그리고 잘못 수립된 정권과 남.북의 어리석은 정치지도자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소중한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에너지로 작동했다고 판단된다.

***"화해를 통한 정의만이 피해자를 치료하고 공동체를 복원시킨다"**

물론 이들이 펴낸 <비둘기 숲…>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그 동안 죽은 목숨으로 취급되어 온 '국군과 경찰에 의한 피해자들'이 공식적으로 거명되고 인정을 받았다는 데에 있다. 그 동안의 극우반공체제 하에서 다른 지역의 군.경에 의한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 종료 5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마을의 어른들은 이들의 죽음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즉 이들의 죽음의 책임이 좌·우익 대립 혹은 우익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 지역에서 당시에 살았던 어떤 특정 사람이나 집단의 책임도 아니며, 결국 외세에 의한 분할 지배와 전쟁이라는 상황에 의해 초래됐다는 사실을 이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삶의 현장, 조상 대대로 살아 온 지역 공동체를 떠날 수 없는 우리 민중들의 바른 역사인식이요, 놀라운 지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남아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끈 투투(Tutu) 대주교가 강조했던 "보복은 보복을 낳을 수밖에 없고, 화해를 통한 정의만이 피해자를 치료할 수 있고 공동체를 복원시킬 수 있다"라는 진리를 우리 풀뿌리 민중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민초들의 자기 치유 노력에 우리 모두 응답해야 한다"**

이제 이들은 화해의 상징으로서 위령탑을 세우려 한다. 그 기록을 2.3세, 나아가 자손 만대에 알려서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고의 징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당시 적극적 좌익, 적극적 우익 활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까지 억울한 희생자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는지가 논란거리가 된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들의 작업은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이 해 온 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제 전쟁의 상처를 자발적으로 치유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민초들의 노력에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응답할 차례다. 물론 북한 당국도 여기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

우리 민초들의 놀라운 자기 치유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위령탑 건립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며, DMZ 장벽 바로 그 가운데 거대한 화해의 위령탑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독재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거나 남한에서 공식화된 한국전쟁 역사에 대해 약간이라도 다른 입장을 견지하기만 하면 '좌익'이라는 손가락질을 해 온 저 경직된 언론과 지식인들의 마음속에도 화해의 위령탑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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