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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새로 드러난 사실들 : "중정서 판검사 매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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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새로 드러난 사실들 : "중정서 판검사 매수 시도"

1967년 동백림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시 수사를 주도한 중앙정보부가 검찰과 재판부에 금품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대목이다.

다음은 진실위의 공식 발표자료를 토대로 새로 드러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중정의 판검사 매수시도 정황**

진실위가 발표문에서 공개한 중정 문건 '동백림 및 통혁당 사건 증거보강 수사계획'에 따르면 중정은 1968년 7월30일 대법원이 사건 피고인들의 일부 혐의에 대해 법적용 잘못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자 검찰과 재판부에 대한 로비자금 성격으로 보이는 예산을 중정 예산담당 부서에 신청했다.

문건에는 '검찰 지원비'로 검사 3명, 검사서기 3명에 대해 1인당 5만 원씩 총 30만 원을, 재판부 지원비로 판사 4명에 대해 1인당 5만 원씩 총 20만 원을 신청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동백림사건 등 증거보강 추가수사 계획'이라는 제목의 다른 문건에서도 검찰 지원비 추가분 25만 원과 재판부 지원비 추가분 25만 원을 각각 신청했다.

1968년 당시 부장판사의 월급이 5만6000원임을 감안할 때 이 돈을 단순한 밥값이나 유흥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진실위의 판단이다.

다만 지출결의서나 회계장부를 찾지 못해 실제 집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수사과정 고문, 가혹행위는 사실로 추정**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진실위는 동백림사건 수사과정에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기소된 41명 중 8명이 재판과정에서 신체적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고, 2명이 변호사 접견시 가혹행위 사실을 언급했으며, 이번 진실위의 면담에서도 면담자 중 절반인 11명이 가혹행위 사실을 주장한 것으로 미뤄볼 때 고문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진실위의 판단이다.

그러나 수사 관여자들은 이 사건이 자수자의 진술 등으로 실체가 명백하기 때문에 피의자들이 순순히 실토했고, 따라서 가혹행위는 할 필요가 없었지만 위협, 잠 안 재우기, 구타 등은 있을 수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진실위는 전했다.

***◇ 실정법 위반은 사실, 무리한 법적용으로 사건 확대**

진실위는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이 북한 및 동베를린을 방문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금품수수와 특수교육 이수, 북측 요청사항 이행 등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점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중정은 단순한 대북접촉 및 동조행위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 및 형법 상의 간첩죄를 적용하고 23명에 대해 간첩죄와 간첩미수죄를 적용했으나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피고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으로 미뤄 사건을 무리하게 키우려 했다는 게 진실위의 판단이다.

진실위는 "중정이 혐의가 미비하고 범의가 없었던 사람에 대해 범죄혐의를 확대하고, 특정사실 적용을 왜곡하는 등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대폭 확대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 부정선거 무마용 기획사건은 아닌 듯**

진실위는 박정희 정권이 1967년 6.8총선 직후 불거진 부정선거 여론을 무마할 목적으로 사건을 단시간에 기획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진실위는 당시 수사계획 등을 검토한 결과 중정이 선거 이전인 1967년 5월 17일 사건 연루자 중 한 명인 임석진 씨의 자수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나 시기상 부정선거 무마용 기획수사였다는 의혹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실위는 다만 중정이 당시 대표적 학생운동 조직이던 민비연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수사 도중 10일 간 7차례 사건을 발표한 부분에서는 이 사건을 부정선거 규탄 시위 무력화용으로 사용한 정황을 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민비연-동백림 연결고리 희박, "무리한 끼워넣기"**

진실위는 중정이 동백림사건의 일환으로 발표한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 사건에 대해 "학생시위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동백림사건에 억지로 학원사건을 끼워 넣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중정 발표에 따르면 민비연 사건은 동베를린에서 북에 포섭된 서울대 황성모 교수가 귀국 후 서울대 학생서클인 민비연을 조직하고 학생시위를 선동함으로써 정부 전복 및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협박 및 가혹행위를 통해 황 교수와 민비연 회원들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한 점으로 미뤄 중정이 학생시위의 배후에 북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학생들의 6.8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약화시키려고 무리하게 동백림사건에 민비연사건을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해외서 연행시 외국기관 협력은 없었던 듯**

중정이 해외에 거주하던 사건 피의자 30명을 연행하면서 폭력이나 마취제 등 강제수단이 사용됐다거나 해당국 기관과의 협조 하에 연행이 이뤄졌다는 등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진실위는 보았다.

진실위는 "당시 연행을 위한 'GK-공작계획'에 따르면 중정은 해외에서 사건 연루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해당국 기관과 협조할 것을 고려했으며, 강제연행까지도 계획했으나 기록에 따르면 연행자들은 대부분 자진 귀국하거나 임의동행 형식을 취해 귀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연행 대상자들은 국내초청, 식사초대 등의 명목으로 대사관에 유인된 뒤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불가피하게 한국행에 동의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진실위는 전했다.

***◇ "故 윤이상 선생 물고문 개연성은 있으나 확인은 안돼"**

진실위는 동백림사건의 상징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폭언, 구타, 철야조사 등이 있었을 개연성은 있으나 관심을 모았던 '물고문 주장'은 사실 여부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그가 수사과정에서 자해한 점과 진술의 구체성 등으로 미뤄 물고문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의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그가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는 등 확실한 증거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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