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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개정 지연, 그 자체가 삼성에 대한 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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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금산법 개정 지연, 그 자체가 삼성에 대한 특혜" [기고] 국회는 원칙대로 조속히 금산법 처리해야
지난 1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런 종류의 공청회는 통상 3시간 이내에 끝나는데 이날 공청회는 5시간 넘게 지속되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공청회하는 것의 원래 목적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입법활동에 참고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 것인데, 이날은 국회의원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전문가들을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이 전개됐다. 금산법 개정은 그만큼 첨예한 의견대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금산법 개정안이 무엇이건대 이토록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가? 금산법 제24조는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이 금융계열사에 맡겨진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이 '반삼성법'이 된 까닭은?**

2003년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동부화재 등이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자 금감위는 초과지분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004년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이 해에 합병된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에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삼성카드가 금감위의 승인 없이 에버랜드 주식을 25.6%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융당국이 확인했다. 이같은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 사실이 적발된 후 금감위는 재벌의 금융계열사들에 대한 일제조사를 통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보유하는 등 총 10개 금융계열사들(이들 금융계열사의 투자를 받은 피투자회사 수는 14개)이 법을 위반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 가운데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를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법 위반 상태를 해소할 계획을 보고하고 또 실제로 모두 이를 이행했으나 유독 삼성만 이를 거부했다. 금산법 24조에는 이상하게도 법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시정명령권과 벌칙조항 등이 결여돼 있다. 그래서 정부가 2004년 말에 시정명령권과 벌칙조항 등을 집어넣은 금산법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금산법 개정안은 사실상 삼성을 유일한 대상으로 하는 특이한 법이 돼버렸다. 그래서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삼성법'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개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다른 대기업들은 이행강제 규정이 없어도 시정조치를 취했는데 삼성 하나 때문에 법을 고쳐야 하는 현실과 입법과정에서 부딪치게 된 높은 장벽을 보면서 '삼성공화국'의 위세를 실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개정안이 엉뚱하게도 애초의 입법논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삼성의 과거 법위반에 대해 완벽한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나왔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는 삼성이 한 법무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소견서를 기초로 입법안을 만들었다.

그 뒤 금산법 24조 개정안은 정부안보다는 원칙대로 이행을 강제하는 박영선 의원의 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함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제법 있어서 결국 에버랜드에 대한 삼성카드의 초과보유 지분에 대해서는 매각하도록 하되,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의 초과보유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만 제한하기로 하는 절충안이 여당안으로 확정됐다.

지난해 연말 이전에 입법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이 타협안도 연말에 사학법 개정 파동으로 국회가 공전하면서 서랍 속에 갇히게 됐다가 당시 무산됐던 공청회가 지난 14일 개최되면서 다시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이건희 회장의 전격 귀국에 이어 삼성의 사회공헌기금 헌납 발표도 있은 뒤여서 삼성에 대한 국회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하는 관심도 더해져 금산법 개정 논의는 더욱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금산결합 허용했던 칠레, GDP 15% 감소**

금산법 24조는 꼭 필요한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금융산업은 여타 산업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특수한 산업이다. 무엇보다도 금융산업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고객과 지배주주 사이의 이해상충이다.

또 금융산업은 자금을 집적하고 배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전염시키거나 그 자금을 기업지배력 확장에 부당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금융산업은 산업자본과 분리돼 금융당국의 세세한 규제와 감독 하에 놓이는 것이다. 금산법 24조도 금융계열사를 이용한 기업지배력 확장을 방지하는 것을 그 입법목적으로 한다.

만약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거나 금융자본이 산업을 지배하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엄청나게 증폭돼 나타날 수 있다. '자유방임 정책'을 추구하는 소위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가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서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해 거대한 투기자본으로 전환함으로써 1980~83년에 GDP가 무려 15%나 감소하는 재앙적인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칠레의 모든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국유화됐다.

금산분리의 원칙이 제1금융권인 은행에만 적용됐던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외환위기 당시 재벌이 소유한 제2금융권 계열사들이 다른 부실계열사들을 지원하는 데 이용됨으로써 위기가 증폭됐던 경험이 있다.

외환위기 뒤에도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에 따른 폐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금감원이 1999년에 발표한 삼성 계열 금융기관에 대한 연계검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삼성자동차에 신용대출을 해주는 등 삼성 계열 금융회사들은 무려 17건이나 계열사에 부당한 지원을 했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에 금융계열 분리제의 도입 등을 통한 금산분리 원칙의 강화를 천명했던 것이다.

***금융선진국 유럽과 미국에서도 금산분리**

금산분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누구보다 강력하게 금산분리 원칙을 주장해야 마땅할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올해 업무 브리핑에서 이를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금산분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금산분리가 언제 어디서나 합당한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니며, 유럽 국가들에서는 금산분리가 시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준수하는 강도나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특히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감독 체계의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금산결합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내부적 견제장치와 외부적 감시장치가 잘 발달돼 있으면 사전적이고 직접적인 금지를 명문화할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명문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유럽에서 금산분리가 시행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1987년 금융빅뱅 이후 이론적으로는 은행과 산업의 결합이 가능해졌지만, 실제로는 감독기관의 적격심사 과정을 통해 그러한 결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재벌 총수의 황제경영이 지속되고 있다. 또 카드채 사태나 금산법 24조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아직 금융감독에도 문제가 많다. 따라서 보다 명시적인 금산분리가 필요한 것이다.

금산분리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규제이며, 금산분리를 가장 강하게 실시해 온 미국에서도 최근에는 이를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청회 진술인 중 한 명이었던 서울여대 이종욱 교수는 그 근거로 미국에 CLB(Gramm-Leach-Bliley)법이 도입됐다는 것과 GE가 GE캐피탈을 통해 금융산업에 대대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CLB법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도입된 금융지주회사법이다. 이 법은 전통적인 GS(Glass-Steagall)법에 의한 금융산업 내부의 장벽을 허물고 금융겸업화를 허용한 법으로서 금산분리 원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GE도 100% 소유에 기초한 지주회사로서 금융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을 따름이며,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한다거나 금융계열사가 여타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한다거나 하는 금산결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례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금융겸업화가 심화될수록 금산분리 원칙이 강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익론'은 개혁을 가로막으려는 시도**

일각에서는 금산분리를 고집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거 재벌들이 고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금산결합에 의한 거래비용의 감소와 자금조달의 용이성이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산결합의 이점은 금산결합의 부작용을 상쇄할 만큼 크다고 할 수 없으며, 게다가 이런 이점은 금융시장의 발달에 따라 점차 감소하고 있다.

금산분리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산분리 때문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금융기관들 중 다수가 외국자본에 넘어갔고 이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려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외국의 산업자본에 매각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역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외국인의 국내 금융기관 소유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이 우려된다면 당분간 공적소유 체제를 유지하거나 주식 분산매각을 통해 지배주주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금융기관을 국내 산업자본에 매각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인 것이다.

'국익론'의 백미는 금산법 24조가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대부분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는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이 분산 소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담합하여 경영권 탈취를 기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설사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현행 법제 하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많이 존재한다. 국익론은 자칫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해 개혁을 가로막으려는 시도에 이용되기 십상이다.

***금산법 위반한 초과보유 주식은 마땅히 처분해야**

금산법 개정안을 둘러싼 법리 논쟁도 뜨겁다. 무엇보다도 개정안을 통해 새로이 도입될 의결권 제한 및 주식 처분 명령권을 이미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초과보유 주식에 대해 적용하는 것은 위헌적인 소급입법이 아니냐는 논쟁이 뜨겁다.

이에 대해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나온 건국대 고동원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일반적으로 (…)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 사실관계가 종결되지 않고 진행과정에 있는 것이라면 '부진정소급'에 해당하여 소급입법 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금산법을 위반해 (초과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행위는 계속 진행과정에 있는 사실관계이지 종결된 사실관계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부진정소급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소급입법 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금융기관을 이용한 기업지배력 확장을 방지하려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주식까지 처분해야 하는가이다.

금산법 24조의 입법시점인 1996년 당시 이미 공정거래법에 계열 금융기관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후 2002년에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의결권의 행사가 30%까지 허용됐다가, 2004년에 법을 재개정해 3년 간 단계적으로 15%까지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음) 삼성 계열 금융사들의 기아자동차 주식 매집 파문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의결권 제한만으로는 금융기관을 이용한 기업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주식 소유의 규제를 포함한 금산법 24조를 추가적으로 도입했다. 이런 배경에 비춰볼 때 의결권 제한만으로 금산법 24조의 입법 취지가 충분히 달성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도 2004년 7월에 작성한 '금융기관의 다른 회사 주식 취득관련 검토'라는 문서에서 "공정거래법의 규정에 의해 의결권이 제한되는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에도 이를 지배목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근거로는 장기간 주식을 보유할 때 이를 자산운용으로 볼 수 없고, 금융계열사가 상장을 하거나 협회에 등록할 때 이 주식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할 수 있으며, 금융계열사가 지주회사에 출자하고 그 지주회사가 금융기관의 출자분을 이용해 다른 회사를 편입하는 등 보유 주식이 기업지배력의 유지 및 확장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나와 있다.

국회는 조속히 금산법 개정안을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대부분의 재벌이 이미 위법 상태를 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삼성의 위법만 사후에 용인하는 것은 법치주의 확립과 법 집행의 형평성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혁으로 결자해지해야**

삼성그룹도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초과지분 해소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 사회공헌 기금 헌납을 발표하면서 삼성은 공정거래법의 의결권 제한 조항에 대한 위헌소송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또 그동안 위헌이라고 반대해 온 금산법 개정안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이런 변화가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를 분리하는 지배구조 개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래 삼성이 보이고 있는 변화가 지배구조의 개혁으로까지 이어져 한국경제의 선진화에 또 하나의 커다란 공헌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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