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경제효과, 조작되고 은폐됐다"

정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한 근거로 자주 인용하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보고서 '생산성 증대 효과를 고려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의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장난 수준의 통계조작'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던 바로 그 데이터다.

11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총리 대행에게 데이터 조작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무역흑자 감소분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둔갑…재경부는 관련자료 삭제**

이날 권영길 의원이 제기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데이터 조작 의혹은 KIEP가 지난 1월 발표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1월 보고서)'를 3월 '생산성 증대 효과를 고려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3월 보고서)'로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대미 무역흑자 감소분이 51억 달러에서 73억 달러로 늘어나자 이 수치를 47억 달러로 조작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권 의원은 정부와 KIEP가 이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일반에 공개한 3월 보고서에서 무역수지와 관련된 데이터를 일괄 삭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미 FTA가 기본적으로 한미 양국 간의 무역장벽을 허무는 협정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무역수지와 관련된 데이터가 빠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권 의원의 지적이다.

권 의원은 데이터 조작 및 은폐에 관여한 사람으로 한덕수 총리 대행과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 측 핵심 인물들을 정면으로 지목했다. 권 의원은 한 총리 대행과 김 본부장 등이 데이터의 조작과 은폐를 위한 비밀회의를 열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어 권 의원은 "한미 FTA라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조작됐다"며 "이 조작이 어느 수준에서 요구됐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총리 대행은 권 의원이 제기한 이런 의혹에 대해 전면 부정하며 "각각 다른 수치가 나온 것은 연구의 가정이 달랐기 때문"이라며 "KIEP로 하여금 어떤 전제 하에서 이런 수치들이 나왔는지 보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1단계는 데이터 조작…2단계는 데이터 은폐**

권영길 의원이 이렇게 의혹을 제기하게 된 것은 10일 시사 월간지 〈말〉이 보도한 '한미 FTA 대미 무역수지 전망 수치 은폐·조작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근거한 것이다.

〈말〉에 따르면 KIEP가 3월 초에 공개했던 3월 보고서 원본에는 무역수지와 관련된 통계가 분명히 들어 있었다. 1월 보고서에 나온 한미 FTA로 인한 무역흑자 감소분은 51억 달러였다. 하지만 3월 보고서(원본)에는 이 수치가 72.7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러나 3월 말 재공개된 3월 보고서 수정본에는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무역흑자 감소분이 72.7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감쪽같이 변경돼 있다. 권영길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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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덕수 부총리가 3월 초에는 "무역수지는 악화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말하다가 3월 30일 한 강연회에서 갑자기 '무역흑자 감소분은 47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말〉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관여했던 KIEP의 이모 박사는 "환율 등 몇 가지 데이터가 잘못돼서 다시 계산한 것"이라며 데이터 조작에 대한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환율 등 데이터가 바뀌면 보고서의 전체 결과가 다 바뀌어야 정상인데 무역적자에 관한 데이터 하나만 변경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의 지적이다.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3월 보고서에는 한미 FTA 체결로 예상되는 무역수지 변화에 대한 데이터가 공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