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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지킨다'는 건 한미FTA 전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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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지킨다'는 건 한미FTA 전략이 아니다 [한미FTA 뜯어보기 49: 기고] 美 쌀협회가 이행기간 10년을 양해한 이유
미국 쌀 생산자협회(USA Rice Federation)라는 단체가 있다. 이 협회는 지난 3월 14일 워싱턴 디시에서 미국 정부가 개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에서 한국에 쌀 개방 이행기간을 10년 넘게 주어서는 안 된다(no longer than 10 years)고 요구했다. 이 공청회는 미국의 통상법(Trade Act of 1974)이 이해관계자의 의견진술권 보장과 공청회의 개최를 법적 의무로 규정한 데 따른 법적 절차였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공청회에서 왜 이 협회는 신속한 쌀 개방을 요구하지 않고 10년이라는 이행기간을 먼저 양해하고 들어갔을까?

미국의 쌀 카드…첫째, 모든 나라에 쌀 개방

미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꺼낼 수 있는 쌀 카드는 이론적으로 네 장이다. 하나는 한국 쌀 시장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게 개방시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쌀을 제외하고는 모든 농산물을 WTO 회원국에게 개방(관세화)하고 있는데 쌀도 그렇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카드는 결정적 제약이 있다. 바로 가트(GATT) 28조, 그러니까 이행계획표(Schedule) 수정을 위해 WTO 협상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쌀을 개방하려는 마당에 무슨 협상이 필요하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의 쌀 개방 과정이 좋은 예다. WTO의 일본 쌀 양허표는 본디 2000년까지 8% 의무수입량 쿼터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1998년 12월 kg당 341엔이라는 높은 관세를 매겨 쌀을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가트 28조에 따라 이러한 내용의 양허표 수정안을 WTO 회원국들에게 통보했다. 이에 대해 호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3개국과 유럽연합이 가트 28조에 따라 이의를 제기했다. 일본은 이들과의 협상을 신속하게 마쳐 WTO 일본 쌀 양허표를 높은 관세율로 수정할 수 있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쌀을 개방하려면 2014년까지 8% 의무 수입쿼터제를 규정한 WTO 한국 쌀 양허표 대신 새로 쌀 관세율을 정하는 협상을 WTO 회원국들과 타결해야 한다. 결국 미국의 첫째 카드는 한국과 WTO 회원국들 사이의 협상이 따로 열리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고, 이런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이 첫 번째 카드를 한국에 내밀 수 없다.

둘째, 미국에만 쌀 개방

그렇다면 미국에만 한국의 쌀 시장을 개방하라는 두 번째 카드는 어떠한가? 필자는 이 시나리오의 논리적 모순을 살피는 대신 가트 24조라는 장애물을 지적하고 싶다. 가트 24조는 어떤 특정한 FTA 때문에 역외국(예를 들어 한미 FTA의 경우 중국)과의 교역이 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항의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FTA로 인한 교역량 변화(trade flows)가 중요하게 고려된다(가트 24조 해석에 관한 WTO 양해서).

만일 두 번째 시나리오대로 한국으로 하여금 오로지 미국산 쌀만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방하도록 만든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중국이 2004년 쌀 협상, 곧 현행 쌀 양허표에서 법적 기득권으로 확보한 연간 80만 석의 쿼터제 물량, 그리고 이 가운데 30% 이상을 밥쌀용으로 시판시킬 수 있는 권리는 사실상 침해받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의 쌀 교역을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 이럴 경우 한미 FTA는 앞에서 본 가트 24조를 위반한 불법 FTA가 된다. WTO와 그 회원국들은 가트 24조에 따라 한미 FTA를 신속하게 통지받고 적법 여부를 검토할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두 번째 카드는 실제로 쓰기 어렵다.

셋째, 쿼터 운용에서 미국 우대

미국이 생각할 수 있는 세 번째 카드는 쌀 개방을 요구하는 대신 현행 WTO 쌀 쿼터제 운용에서 미국산 쌀을 우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앞에서 본 가트 24조에 의해 곧바로 불법 카드로 전락해 버린다. 현행 WTO 쌀 양허표는 특정 국가 쿼터제 물량과 별도로 2014년까지 모두 776만 석의 쌀 쿼터를 두었는데, 자유경쟁입찰 방식으로 쿼터를 처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WTO 한국 쌀 양허표 3.2조). 만일 이 쿼터를 운용하면서 미국을 우대한다면 이는 다른 회원국의 자유경쟁 권리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 되어 가트 24조 위반이 된다. 따라서 미국은 세 번째 카드를 쓸 수 없다.

넷째, 미국 독점쿼터를 별도로 설정

미국이 이론상 구상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 한국의 현행 WTO 쌀 쿼터제를 그대로 두는 대신, 별도로 오로지 미국만을 위한 쿼터를 만드는 방법이다. 미국은 과연 이 시나리오에서는 안심할 수 있는가?

가트 13조는 쿼터제도와 같은 수입량 제한조치를 할 경우 원산지에 관계없이 다른 회원국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쿼터도 각 수출국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할 만한 몫에 근접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다. 지난 10년 간 한국 쌀 시장에서 미국의 시장점유율은 14.93%에 지나지 않았다. 대신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65.45%였다. 그러함에도 만일 별도의 쌀 쿼터를 만들어 미국에만 100%를 배정하기로 한다면, 이는 가트 13조 위반이 될 것이다. 이는 FTA에서 허용되는 특혜(preferential treatment)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트 24.4조가 금지하고 있는 FTA 역외국에 대한 무역장벽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네 번째 카드도 현실성이 없다.

지켜야 할 것은 쌀이 아니다

미국이 한미 FTA 양허표에 쌀을 포함시킬 방법은 사실상 없다. 미국이 FTA 쌀 카드를 대낮의 광장에 공개하는 순간 행인의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쌀 생산자협회가 중요한 공청회에서 10년이라는 이행기간을 먼저 나서서 양보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협회는 칼로스쌀의 한국 국내 도정 허용과 같은 다른 현안을 챙기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한미FTA에서 지켜야 할 것은 쌀이 아니다. 한국의 관리들이 쌀은 지켰다는 말을 한다면 한미 FTA가 실패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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