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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신중론자가 반대론자로 돌아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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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신중론자가 반대론자로 돌아설 때

[한미FTA 뜯어보기 99 : 창비주간논평] 우리의 수용능력을 넘어선다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깊다. 그러나 세계화나 개방 혹은 FTA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화의 흐름에 합류한 지 오래고 개방 정도도 꽤 높은 나라이다. 칠레, 싱가포르, 아세안(ASEAN), 그리고 심지어 경제대국 일본과의 FTA 체결에도 이 정도의 심각한 문제제기는 없었다. 시민사회가 문제삼는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와 별 준비도 없이 왜 '지금' FTA를 성급히 체결하려는 것인가이다.

게다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이다. 협정의 대상을 단순히 상품무역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농업은 물론 금융, 교육, 법률, 방송, 통신, 건설 등 전체 서비스산업, 그리고 투자, 지적재산권, 시장접근권, 경쟁정책, 노동, 환경까지, 말하자면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미 FTA는 사실상 상당 수준의 경제통합을 목표로 하는 것이 된다.

경제는 그 규모가 큰 나라에서 작은 나라로, 그리고 발전 정도가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경제통합 협정은 이 흐름을 더욱 거세고 가파르게, 그리고 한층 더 일방적이게 한다. 흐름에 방해가 되는 각종 장벽들이 단기에 인위적으로 제거되기 때문이다. 한미 경제통합으로 미국경제의 한국 침투가 급격하고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한국에는 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대미 경쟁력이 부족한 대다수 산업과 기업, 그리고 노동자들은 퇴출과 도산, 실직 위협에 처할 것이며, 그 결과 사회양극화가 심화될 것은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자명한 일이다. 사회통합의 위기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협상은 이미 중반을 넘어섰다.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는 협상을 통해 한미 FTA의 내용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범위로 낮추고 제한하는 일이다. 이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들과 꼭 얻어내야 할 것들을 분명히 정하고 이를 협상에서 관철함으로써 성사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쌀 등의 민감한 농산품은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 또는 유보해야 하며, 주요 공공부문(의료, 교육, 전기, 가스, 에너지, 방송, 통신 등) 투자에 대한 '내국민 대우' 적용은 제한해야 하고,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기조를 해칠 수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보험약품 선별 및 약가 책정과정에의 참여 요구 등은 수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분쟁 발생 시 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국내 법원이 아닌 해외 소재 제3기관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역시 막아야 한다. 우리 정부의 정책자율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꼭 얻어내야 할 것들도 여럿 있다. 미국 국내법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도의 국제(WTO) 수준으로의 개선, 미국 섬유산업의 강력한 비관세 장벽인 '얀포워드'(yarn forward) 제도의 철폐, 정부조달 및 서비스 분야의 협정 적용대상에 미국 주정부 포함 등이 그 예이다. 경제적 위기상황 발생 시 가동할 수 있는 농산물 및 투자 영역에서의 일시적 긴급조치, 즉 '세이프가드'(safeguard) 제도의 설치,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 그리고 특히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경우 10년이 넘는 시장자유화 이행기간 확보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켜야 할 것과 얻어야 할 것들을 이렇게 몇 가지로 정리해놓으면 향후 협상의 '관전' 포인트는 간단명료해진다. 이들 가운데 무엇을 얼마나 지켜내고 얼마나 얻어내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많이 지켜내고 많이 얻어낼수록 한미 FTA의 수준과 범위는 우리 사정에 적당한 것이 된다. 반대의 경우일수록 그것은 우리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경제통합 협정에 가까워진다.

3차협상까지는 쟁점들만 부각되었을 뿐 주요 내용이 확정된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협상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양국 정부 간 협상은 언젠간 종료된다. 시민사회의 '관전'(후술하듯이 사실은 '간접참여')은 거기까지이다. 협상종료 후에는 시민들이 직접 이 게임에 '참전'하게 된다. 소위 '국내비준'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협상의 최종결과가 우리 사회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경우라면, 즉 지킬 것을 못 지키고 얻을 것을 못 얻은 경우라면 시민사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한미 FTA 신중론자들은 대부분 반대론자로 돌아서 행동하게 될 것이다.

신중론은 오직 협상의 개시 이전과 그 진행 중에만 의미가 있다. 협상이 끝난 마당에는 신중하라고 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는 오직 찬성 혹은 반대만이 있을 뿐이다. 신중론자들이 기존의 반대론자들과 합세할 경우 한국사회의 반대론은 대세를 이룰 것이고, 한미 FTA가 비준될 가능성은 (순리대로 간다면) 희박해진다. 국제무대에서 체결된 협상물이 국내무대에 와선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사실 정부로선 피해야 할 상황이다. 국내비준도 못 얻는 정부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우리 정부의 국제협상력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상대국 정부로부터 협상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협상 내용을 애초부터 국내비준이 가능할 정도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관전'하고 있는 시민들의 정책선호를 의식해가며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상 시민들의 진지한 관전은 감시에 해당하며, 그것은 간접적이나마 실질적인 협상 참여에 해당한다. 협상에 임하는 정부는 시민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협상시한이 아니라 그 내용에 방점을 두게 될 것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 한미 경제통합은 국제협상 과정에서의 시민사회의 간접참여와 국내비준 과정에서의 직접참여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이다. 한국의 사회통합과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는 역시 시민사회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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