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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부는 어떻게 '반덤핑' 사회협약을 파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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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부는 어떻게 '반덤핑' 사회협약을 파기했나? [한미FTA 뜯어보기 220 : 갈림길에 선 FTA 협상(6)] 미국 통상정책의 기념비적 성공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녹색평론> 2007년 1/2월호에 "반덤핑(anti-dumping) 장벽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대의 승부처"라고 쓴 것을 보았을 때 반가웠다. 왜냐면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2006년 7월 국회 한미 FTA 특위에 미국의 반덤핑 장벽을 "아주 핵심적인 쟁점"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녹색평론> 2006년 5/6월호에서 "미국의 덤핑 규제법을 혁파한다면 한미 FTA는 일차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썼다. 거칠게 보자면, 우리 사회에 한미 FTA에 관한 합의가 적어도 하나는 존재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미국의 불법적인 반덤핑 장벽을 유지시킨 채 미국과 FTA를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한국의 '반덤핑 사회협약'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터 잡아, 한미 FTA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견이 좁혀지고, 그 결과 한미 FTA가 좋은 FTA로 귀결되길 희망한다.

덤핑상품에 관세 매기는 美정책, 도대체 뭐가 문제?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란 무엇이고, 이것은 왜 불법적인가?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란 한국산 상품이 정상가격보다 싼 값에 미국에 수출됐다는 이유로 미국정부가 이 제품에 덤핑관세를 매기는 것을 뜻한다.

1980~2005년 사이 미국이 한국산 상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덤핑조사 건수는 68건이나 된다. 미국이 1986~2003년 한국산 철강제품에 덤핑관세를 매긴 건수만 14건이다. 현재도 미국은 한국산 상품에 약 20건의 반덤핑관세를 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렇게 반덤핑조치를 취하는 것은 상당 부분 불법적이다. 특히, 미국의 반덤핑관세 부과 수법들 중 '제로잉(zeroing)'과 '일몰 재심(sunset review)'은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은 불법적인 조치들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반덤핑 협정은 덤핑 여부를 판정할 때 수출가격과 정상가격의 가중평균을 비교하도록 규정한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든 시험과목의 평균점수를 합격 커트라인과 비교해 합격· 불합격 판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덤핑법은 수출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높은 거래, 곧 덤핑이 아닌 정상적인 거래는 덤핑 여부를 판정하는 계산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한다. 즉, 커트라인 점수보다 더 잘 나온 과목들은 아예 0점으로 처리하고(이렇게 양(+)의 값으로 계산돼야 할 것을 제로(0)로 처리한다고 해서 '제로잉'이라고 부른다), 점수가 좋지 않은 과목만을 놓고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식이다.

또 하나의 악명 높은 반덤핑관세 부과 수법인 '일몰 재심'은 '반덤핑관세 부과는 관세 부과 개시 후 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종료('일몰')된다'는 WTO 반덤핑 협정의 원칙을 어기고 미국만의 독자적인 반덤핑 재심제도를 운영해 계속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미국의 반덤핑 장벽은 그동안 여러 차례 WTO에서 불법 판정을 받았다. 1999년 10월 한국이 미국을 제소한 사건에서 WTO는 미국의 제로잉이 불법이라고 판정했다. 이어 2004년 4월 캐나다가 미국을 제소한 사건에서도 WTO는 미국의 제로잉이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2006년 9월 일본이 미국을 제소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2004년 7월 아르헨티나가 미국을 제소한 사건에서 WTO는 미국의 일몰 재심 제도가 WTO 협정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WTO의 판정이 있을 때마다 자국의 불법적인 반덤핑법을 아예 바꾸지 않거나 내용 일부를 살짝 손질하는 방식으로 생색만 냈을 뿐, WTO 규정에 맞게 반덤핑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따라서 한미 FTA에서 한국 측이 미국 측에 한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제로잉과 종료재심을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떳떳하다.

반덤핑, '핵심조항'에서 '버려도 되는 카드'로 전락

그런데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5차 협상에서 제로잉과 종료재심을 개선하라는 기존의 요구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 대신 다른 엉뚱한 것들을 한국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제시하더니, 이마저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여타' 분야 협상에 활용하기 위한 압박용으로 쓰겠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놀라운 반전이다. 한미 FTA의 핵심적 사항이라던 반덤핑 장벽이 갑자기 버리는 카드가 돼 버렸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에 관한 거의 유일한 사회적 합의인 '반덤핑 사회협약'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도대체 외통부는 왜 반덤핑 조치 남용이라는 미국의 원죄를 스스로 용서하고, 이 불법적인 반덤핑 조치를 계속 당하기로 작심했을까?

한국의 통상 관료들은 그 핑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돌리고 있다. 김종훈 우리 측 협상 수석대표는 지난해 12월 국회 FTA 특위에서 "(제로잉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WTO에서 해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양자협상에 가져와서 우리가 먼저 풀어가는 데 (…) 힘을 뺄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WTO 대신 FTA 하자"더니 "반덤핑은 WTO가 해결"?

이런 핑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외교통상부는 이미 지난 2000년 12월 WTO에 미국의 '제로잉'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측이 승소했어도 한국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조치는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WTO 판결이 미국에는 효력이 없다'는 내용의 법률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설령 WTO 차원에서 미국이 양보해 문제가 해결된들 그 효과는 150개 회원국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돌아간다. 한국만 '반덤핑 조치 남용 금지'라는 효과를 특혜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해 얻으려고 하는 섬유 분야의 무관세 특혜라는 것도 시한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WTO의 전신)와 WTO가 계속해서 관세를 내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가장 핵심적 이익인 '반덤핑조치 남용 금지'를 한미 FTA라는 양자 간 협정이 아니라 WTO라는 다자간 협정으로 스스로 떠넘기는 것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목적을 정부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다.

통상 관료들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는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와 같은 양자주의 질서가 한국에 불리하므로 WTO를 꼭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한미 FTA가 필수라면서 WTO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한미 FTA의 핵심적 쟁점이 불거지면 다시 WTO로 돌려 막는다.

엉뚱한 카드 '덤핑피해 非합산'
▲국회 한미FTA 특위에 출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우리 측 협상 수석대표. ⓒ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에 한국 정부의 '반덤핑 신약'이 출연했다. 김종훈 대표는 지난해 12월 국회 한미FTA 특위에서 이른바 '비합산' (non-cumulation), 즉 '산업피해의 비(非)누적 평가'를 한국의 새로운 카드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미국의 반덤핑 조치를 '최소한 50% 정도'는 막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엄청난 효험이 있는 신약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의 '비합산' 관련 요구란 미국이 한국, 일본 등 2개국 이상으로부터 수입된 경쟁 제품에 대해 동시에 덤핑피해 조사를 할 때 덤핑피해를 각 국가별로 따로 계산해 달라는 것이다. 가령, 한국 포항제철의 상품과 일본 제철소의 상품에 대해 덤핑피해 조사를 할 때 각각 따로 피해 조사를 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반덤핑법은 2개국 이상의 수입품에 대해 같은 날(on the same day) 피해조사 신청이 접수되고, 같은 날 피해조사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경우 미 무역위원회로 하여금 이 제품들로 인한 피해를 반드시 합산하라고 규정하고 있다(미국 관세법 771(7)(G)(i)조).

그러므로 한국 측 요구는 미국법에 있어 '필수적'인 반덤핑피해 합산을 '임의 재량' 사항으로 변경하든지, 아니면 아예 금지하라는 것이었다.

WTO도 인정하고 한국도 하는 '합산', 미국에만 하지 말라니

그런데 이처럼 2개국 이상으로부터 수입된 경쟁 제품의 덤핑피해를 동시에 조사할 경우 그 피해를 합산해 평가하는 것은 WTO도 허용하는 일이다(WTO 반덤핑 협정 3.3.조).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한국의 관세법령도 한국 무역위원회가 덤핑피해 합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관세법 시행령 제63조 제3항). 경쟁 수입품들의 피해를 개별 제품별로 구분해 계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덤핑피해를 합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주장은 국제법적으로도 합법적이고, 한국 스스로도 하고 있는 덤핑피해 합산을 미국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합리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욱이 한미 FTA에서 덤핑피해 합산을 금지한다면, 이를 근거로 중국도 장차 한중 FTA에서 합산 금지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한국 산업에 큰 충격이 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효험이 크다는 신약마저 외교통상부가 다시 내팽개치는 현실이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외통부는 남은 협상에서 비합산 관련 요구마저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FTA라면 미국 통상정책의 기념비적 성공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적어도 반덤핑 장벽에 관해서만큼은 WTO에서도 '통상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나라다. 반면 한국은 세계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반덤핑 피해자다. 이 두 나라가 FTA를 하면서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 용서된다는 것은 미국에 놀라운 성취다.

멕시코의 실패 반복하는 한국

한국은 반덤핑 장벽에 관한 한 멕시코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멕시코도 미국과 나프타 협상을 하면서 미국의 반덤핑 장벽을 무너뜨려 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멕시코도 미국 반덤핑 조치의 불법성을 미국 법원이 아니라 나프타 법정이 심판하게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나프타 1904조).

그러나 나프타 법정의 심판이 미국을 견제할 것이라 믿었던 멕시코의 기대는 좌절됐다. 미국은 나프타 법정의 판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나프타가 발효되기 전 11년 동안 멕시코는 미국으로부터 19건의 반덤핑조사를 당했다. 나프타가 발효된 후 11년 동안에는 그 건수가 17건이었다.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런 FTA라면 정말 곤란하다. 이런 FTA라면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이제 한미 FTA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내용이 나올 만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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