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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핵심쟁점'은 다 어디로 증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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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 많던 '핵심쟁점'은 다 어디로 증발했나? [한미FTA 뜯어보기 301 : 쟁점별 최종점검(下)] 희미해져 가는 남은 쟁점들
미국 워싱턴에서 이틀째 열리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고위급 협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기타' 핵심 쟁점들은 수십여 개로 압축된다. 자동차, 의약품, 무역구제(반덤핑), 섬유, 농업 등 5개 핵심 분야의 협상이 이미 고위급 회의 수준으로 격상됐지만, 이들 쟁점은 아직 분과별 회의에서 계속 협의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 쟁점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개성공단산 상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 △외환 세이프가드(safeguard)의 도입 여부 △방송·시청각 시장의 개방 수위 △기간통신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49%) 완화 △우체국 보험에 대한 감독 강화 △저작권 보호기간의 20년 연장 여부 등이 꼽힌다.

이밖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적용 예외 대상의 명확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할지 여부 △지적재산권 관련 비위반제소(Non-Violation Complaint, 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허용 여부 등과 같은 쟁점은 국내 시민단체들과 정치권 일각에서 '핵심 쟁점'이라고 지목하고는 있으나 정작 협상단은 '잔여 쟁점' 정도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한편 한국 측 협상단이 스스로 핵심 쟁점으로 분류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외국인 투자자가 직접 협정 체결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의 국재분쟁 적용 대상에서 수용(expropriation) 관련 분쟁 제외 여부 △존스 액트(Jones Act, 미국 내 인적·물적 자원은 미국인 소유의 미국산 배에 의해 수송돼야 한다는 규정)를 한미 FTA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미국 측 요구 철회 △미 전문직 비자 쿼터의 확보 등 한국 측 이해가 걸린 핵심 요구사항들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유야무야' 사라졌다.

△개성공단산 상품, 한국산인가 북한산인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로 인정받겠다는 것은 한미 FTA 협상 초기부터 한국 정부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협상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 정부가 남한의 앞선 자본과 기술, 북한의 값싼 토지와 노동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한반도 경제'를 동북아의 중심에 세우고, 나아가 한반도의 외교안보적 긴장까지 완화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의 원산지가 '북한산'으로 규정된다면 정부의 이같은 구상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한국 측은 '개성공단(Kaesung Industrial Complex)'이라는 민감한 단어를 협정문에 넣는 대신 '역외가공방식(Outward Processing Arrangement, 제3국에서 가공·생산된 제품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협정 체약국의 원산지 지위를 부여하는 것)' 조항을 협정문에 넣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북한을 경제제재 대상국 및 비정상 교역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미국 측 반응은 시종일관 '택도 없다'는 것이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공화당은 개성공단에 투입되는 한국 측 자금이 북한의 현행 체제 유지 및 핵 개발에 쓰인다고 비판해 왔으며, 최근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도 개성공단의 노동 조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외환 세이프가드, 도입은 허용하되 소송 대상으로 하자고?

1997년 말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은 후 '외국환거래법' 제6조에 '진정한 의미'의 외환 세이프가드(safeguard) 제도를 도입했다. 그 전에도 천재지변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동될 수 있는 세이프가드가 있었지만 이는 유명무실했다.

새로 도입된 세이프가드는 △가변자본예치제(VDR, 유출입 자금에 대해 일정부문 무이자 예치의무 부과) △외환집중제(보유 외화의 은행 매각 의무) △대외지급 정지(증여성 송금·해외여행 경비 등에 한도 부과 또는 전면 정지) △해외예금·증권투자 등 자본거래에 대한 허가제 등과 같은 강도 높은 조치들을 담고 있다.

미국 측은 한미 FTA에서 외환 세이프가드의 도입을 허용해주는 조건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 △세이프가드로 인해 유출입이 제한된 자금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수익을 보장해야 한다 등 크게 2가지 요구를 하고 있다.

한미 FTA 비판론자들은 아르헨티나가 외환 세이프가드를 발동시킨 후 무려 40여 건의 투자자-국가 소송이 발생한 점을 들어 미국 측의 이같은 요구를 수용해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세이프가드 제도의 존재이유가 외자에 대해 정상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정상 수익 보장이라는 미국 측 요구는 '억지'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 협상단도 이같은 비판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으나, 세이프가드의 발동 요건을 세세히 규정하고 미국 측이 요구하는 다른 사항들도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모두 수용해주면 된다는 입장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 부동산·세금 예외로 한다고 달라질까?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Investor-State Dispute)는 미국[한국] 기업이 한국[미국]에 투자를 할 당시 기대했던 이익이 한국[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침해당했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미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모두에 해당한다.

이 제도는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 시민단체들은 물론 정치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협상 당시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법무부 등 유관 부처도 이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 측은 이 제도를 한미 FTA에서 뺄 수는 없다며 '환경, 공중보건, 안전과 같은(such as) 공공정책은 간접수용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부동산 가격 안정화 조치'와 일반 조세'를 넣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예외규정을 몇 개 더 넣는다고 해서 소송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어떤 정책이 '부동산 정책'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규제 수용(regulatory taking, 사실상 수용과 같은 효과를 낳는 정부 규제)'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제3의 민간단체인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재분쟁해결센터)나 UNCITRAL(유엔 국제통상법위원회) 등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미미한' 이같은 요구에 대해서도 미국 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 의회가 관련 문항의 모델을 담은 이른바 '2004년 양자 간 투자협정(BIT 2004)'에서 한 단어도 수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인 데에다, 이같은 한국 측 요구를 전해들은 미 업계들이 업종과 관계없이 '절대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방송·시청각 시장 개방 수위는?

한국 방송·시청각 시장의 개방 내용 및 수위에 대한 한미 양측 간 협상은 막바지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 측은 방송 서비스도 개방의 파고를 맞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과 방송 서비스는 '공공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일정 수준 이하로 개방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국내 업계의 요구 사이에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

현재 쟁점은 △방송·통신융합 서비스를 미래유보(미래에 개방 수준 낮추는 것 허용)에 넣을지 현행유보(현행 개방 수준에서 동결)에 넣을지 여부 △온라인 콘텐츠(인터넷 VOD)를 미래유보에 넣을지 현행유보에 넣을지 여부 △프로그램 공급자(PP, Program Provider)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49%) 완화 △국내산 영화·애니메이션 쿼터 완화 여부 △CNN 등 외국방송 재송신 채널 한국어 더빙 허용 여부 등이다.

이 각각의 쟁점들에서 한미 양측이 어떤 입장을 펼치고 있으며, 어떻게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 측은 방송·통신 시장과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두 개의 서비스는 미래유보에 넣되, PP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완화, 국내산 영화·애니메이션 쿼터 완화 등은 일정 요건 하에 허용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외국방송의 재송신 채널에 대한 한국어 더빙 허용 여부는 한국 측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간통신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49%)보다 더 중요한 쟁점?

현행법은 외국인이 KT, KTF, SK텔레콤, LG텔레콤, 하나로통신, 데이콤 등 국내 기간통신 사업자의 지분을 49%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간통신 사업은 '공공적인 성격'과 '망 외부성(network externality, 개인이 속한 통신만이 클수록 그 개인이 누리는 경제적 만족도가 커지는 것)'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직결돼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대주주가 돼 한국의 통신을 좌지우지하게 둘 수는 없다는 판단이 이 법의 배경이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외자 49%를 양허해 둔 상태다. 한미 FTA에서도 한국 측 협상단은 '현행유보(Reservation for Existing Measures, 현재 수준의 규제 조치를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되 미래에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목록에 이 제도를 넣어뒀다. 최종 협상에서 이같은 한국 측 입장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49%보다 더 높은 수준의 외자 제한은 결코 할 수 없다. 악명 높은 '래칫(Rachet, 역진방지)' 조항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이같은 '현행 유보'에도 만족할 수 없으며 외자 제한 49%를 51%로 올려달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WTO 협상에서도 이같은 요구를 해 왔고, 이는 스크린쿼터 문제로 좌초된 '1998년 한미 양자 간 투자협정(BIT)'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간통신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5%의 지분만으로도 대기업집단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외국인이 기간통신 사업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는 초국적 금융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과 AIG의 연합체다.

기간통신에 대한 외자 제한보다는 오히려 '통신 표준'과 관련된 한미 양측 간 마찰이 더욱 큰 쟁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사정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 지난 197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통신 표준화를 주도함으로서 오늘날의 '통신강국'을 이룩했으나, 미국 측은 2002년부터 한국의 기술표준 정책에 정부가 개입한 것은 "불공정한 무역 장벽"이라고 공격해 왔다.

△우체국 보험에 대한 세제·규제 특혜 시비

우체국 보험은 한국에서 특수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정부 책임운영 기관'으로 지정된 우체국에서 실시하는 보험 사업은 민간보험사와 달리 세금도 내지 않고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도 받지 않는다.

우체국 보험이 이같은 특수한 지위를 보장받는 이유는 우체국이 일반 보험사가 진출하지 않는 농어촌과 오지까지 영업망을 두고 이 지역 거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의 보험 상품을 제공하는 공공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측은 우체국 보험의 이같은 공공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우체국이 한국 내 다른 민간 보험사들에 비해 세제, 규제 등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며, 이는 민간 보험과 우체국 보험 간의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 측이 이같은 주장을 펴는 이유는 한국 민감보험 시장의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접어들면서 우체국 보험, 특히 생명보험에 대한 미국계 보험회사들의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6년 5월 현재 우체국 보험 가입자 수는 434만 명, 보험계약고는 121조3800억 원 수준이다. 이는 업계 5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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