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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는 사회-재벌 타협론을 수용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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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는 사회-재벌 타협론을 수용하지 못하는가 [발언] '사회적 대타협론'을 위한 변 ①
<프레시안>은 사회와 재벌의 '사회적 대타협론'을 옹호하는 이종태 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을 4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 위원은 사회적 대타협론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한국경제 쾌도난마>를 기획한 바 있다. 이 위원의 기고가 이 문제에 대한 건전한 논쟁의 장을 열기 바라며, 반론과 보론을 환영한다. <편집자>

최근 <프레시안>의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의 한 꼭지에서 상당히(?) 냉소적으로 거론된 바 있는 '사회-재벌 타협론'(이하 사회적 대타협론)은 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금융화에 맞서기 위해 제기된 정치-학술적 슬로건이었다.

사회적 대타협론은 이찬근, 장하준, 정승일 교수 등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바 있는 40대 초중반 소장 학자들의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한 이론적 비판이기도 했다. 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금융화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주도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민주언론 및 민주 시민단체의 뒷받침이 어우러진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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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론이 발견한 것

사회적 대타협론의 주창자들은 한국의 현대 경제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었던 IMF 개혁의 결과들, 즉 저투자-저성장와 양극화 등이 그 동안 범민주화운동권 내에서 정식화되어 있던 경제관('민족경제론') 및 역사관으로는 해명은 물론 대안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범민주화운동 세력의 역사관과 정치경제관에서 심각한 결함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결함들은 금융화에 대한 민주화 운동 세력들의 입장(금융화에 대한 방관 혹은 지지, 심지어 금융화의 적극적 추진)으로 연결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예컨대 1960년대 이후 형성돼 1980년대에 정점에 이른 범민주화운동세력의 전통적 교리는 '반제국주의-반재벌'이었다. 이런 교리의 기저엔 도저한 민족주의가 깔려 있었고, 또 '민족주의=선'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재벌은 1970년대엔 매판자본으로 불렸고, 1980년대엔 (식민지)독점자본으로 불렸다. 명칭은 다를지언정 그 의미는 동일했다. 바로 재벌은 '반민족적인 민중의 적'이라는 인식이다.

이런 재벌들의 그룹 소유지배권을 흔들거나 박탈하고, 어떤 경우엔 감옥에도 보낼 수 있었으니, 어쩌면 당시의 민주언론과 민주 시민단체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개혁의 대행자로 반기고, 국내 동맹세력으로까지 나섰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재벌은 오로지 '반민족적인 민중의 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재벌(체제)이 불과 40년 만에 국내의 일부 산업 부문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재벌그룹과 하청기업에서 무수한 일자리가 창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은 1990년대 중반까지 해외 경영·경제학계에서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재벌의 영어 표기인 'chaebeol'이 일본 'keiretsu(케이레츠,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와 함께 고유명사로 영어 사전에 오를 정도였다.

'반민족적인 민중의 적'인데다 한자리 수(심한 경우엔 2% 내외)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전횡하는 재벌 가문에 대해서는 당연히 정의가 실천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실천하는 수단이 겨우 해외자본에게 경영권 흔들기를 허용해서 일자리와 성장 잠재력을 악화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제안된 정치적 수단이 바로 경영권 안정화와 재벌의 국민경제 공헌(투자, 고용, 기술, 부가가치 창출 등에서)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그 동안 허다한 비판이 쏟아졌다. '재벌의 앞잡이'나 '사이비 민족주의자'라는 욕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웨덴 대타협의 상징인 잘츠요바덴 협약에서는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한 적이 없다는 비교적 타당한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대타협이라는 사건의 기본 구조가 대립하는 양자, 즉 '노동계/사회'와 경영자/재벌 간의 주고받기라면, 그 주고받는 '무엇'인가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상황에서 타협의 당사자인 재벌가문이 가장 아파하고 또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경영권 안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타협이란 싸움의 한 형태이고, 공격할 때는 상대방의 아픈 곳, 즉 약점을 정확히 찔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금융세계화의 일반적 경향인 '저투자-고실업'을 거슬러 보자는 것이, 이정우, 김기원 두 교수로부터 비웃음을 사기까지 한 사회-재벌 대타협 전략이었던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론의 실패?

2007년 10월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사회-재벌 타협론은 일단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한국사회의 금융화 흐름을 사회-재벌 타협론은 저지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하의 한국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따라 국제적인 재무 기준에서 봐도 초우량 등급을 받는 대기업과 '88만원 세대'가 공존하게 되었다.

재벌들은 자신의 주식 지분을 키우며 그룹 형태를 바꾸는(지주회사) 금융적 방식으로 대응했고 심지어 현재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철폐 기도 등을 통해 금융권력에 접근하고 있다.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 2005). ⓒ부키

사회적 대타협론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뼈아픈 사실이 있다. <한국경제 쾌도난마>(사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진보개혁 세력 비판이었다) 등의 출판물로 일부 정치권과 대중사회로부터 비교적 폭넓은 관심을 얻어내기는 했으되, 현실의 대행자(agent)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론은 진보정당과 유력 시민단체, 진보학계 등 잠재적 대행자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사회적 대타협론을 들고 참여연대를 찾았던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간부들로부터 싸늘하기 짝이 없는 대접을 받아야 했던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소액주주운동과 펀드운동(?)을 주도해온 경제개혁연대가 참여연대로부터 분리된 것은 후자를 위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루하게 읽으셨을 독자들께는 죄송하지만 이 글은 아직 도입부에 불과하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미리 말씀 드리자면, 이 글은 사회적 대타협론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작성됐다. 물론 사회적 대타협론이 이후 사회운동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목표를 필자는 가지고 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자는 사회적 대타협론의 관점에 서서 진보세력의 사상과 이론을 비판할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과 일부 시민단체, 노동운동계, 구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한나라당의 극소수 의원과 보좌관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하필 진보세력을 겨냥한 이유는 그들이 거의 반세기에 걸친 오랜 '관념론'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향후에 그 엄청난 긍정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필자의 관심은 물론 진보진영이 '왜 사회적 대타협론을 수용할 수 없었는가'이다. 그 답은 '진보진영이 역사적으로, 태생적으로 부정해 왔던 것을 대타협론이 적극적으로 긍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필자는 진보진영이 '앞으로도 대타협론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필자는 1960년대 이후 범민주화운동세력의 상승세가 한차례 꺾일 것으로 보이는 현 시점에서, 진보진영에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혹은 유지되어서는 안 되는 사상, 이론적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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