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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망하게 내버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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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망하게 내버려 두자" ['프레시앙'이 되며] 시민발전 박승옥 대표
1974년 12월이었다. 그해 겨울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 선언문'을 발표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하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신문사에 상주하면서 기사 하나하나를 검열하는 '기사 게재 인ㆍ허가권'을 행사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연탄값 인상'이라는 보도도 '인상'이라는 말이 어감이 나쁘다고 '연탄값 현실화'로 고치라는 지시를 받아야만 했다. 박정희의 말 한 마디에 기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치 떨리는 고문을 받고 일생을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때 언론 자유는 휴지통 속에도 없었다. 그때 기자라면 누구나 안락한 '똥개'가 되느냐 양심대로 사는 배고픈 '자유인'이 되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올곧은 기자라면 당연히 입에 재갈이 물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 긴 이름의 투쟁 대열에 합류해 팔자에도 없던 민주투사로 변신해야 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기자들의 자유언론수호 선언문이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중앙정보부 요원 출입을 거부하였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던 시민들을. 놀라움과 기대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과 함께 그때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희열에 들떠 술자리를 떠들썩하게 수놓던 수많은 장삼이사들을. 곧바로 당시 박정희 정권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동아일보> 광고가 무더기로 해약되자 그때부터 신문 하단의 광고면 백지를 채우던 수많은 민초들의 격려 광고들을.

"존경하는 삼천만 배달민족이여, 권력과 악질 재벌들에 대항하여 우리 국민의 선두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동아를 구하는 데 모두 일어납시다. 그리고 권력의 앞잡이나 하고 재벌의 돈이나 받아먹는 다른 신문이나 방송은 구독이나 청취를 하지 맙시다."

"해마다 1년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깨어서 불우이웃을 도와왔으나 이번에는 광고해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아를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굽히지 말고 견디어라 민족의 얼 동아여, 기필코 광명 있으리!"

"긴급조치로 구속된 동료학생들에게 사식비로 전하려 했으나 이 길마저 당국이 차단해서 광고 없는 동아일보에 성금으로 바칩니다."

"민의가 동아의 고난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술 한 잔 덜 먹고 여기에 내 마음을 담는다."


이런 격려 광고가 5개월간 무려 1만352건이나 되었다. 말이 격려 광고지, 사실은 언로가 꽉 막혀있던 수많은 민초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마음껏 외치던 저항의 무대였다. 생활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촌철살인의 반독재 선언문이었다. 세계 언론 사상 유례가 없는 광고 투쟁이었다. 언론 독립을 그렇게 바라던 민초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일제 강점기 때 민족지를 표방하다가 폐간 대신 친일 매국노의 길을 택한 <동아일보>답다고 해야 하는가. <동아일보>는 결국 이듬해인 1975년 3월 유신정권에 굴복해 깡패를 동원해 130여 명의 농성 기자를 내쫒고 말았다. 그리고 기나긴 유신시대는 나날이 그 어떤 최소한의 보도 기능도 내팽개친 채 권력의 줄에 묶여 꼬리나 흔들며 컹컹 짖는 소리를 똑같이 해대는 '똥개 언론'과 함께 암흑의 시대로 변하고 말았다.

세상은 변했는데 그때 그 언론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적어도 언론의 자유만큼은 마음껏 누리는 시대가, 꿈에도 그리던 그 시대가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곳이던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용비어천가로 날을 지새우던 언론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봇물처럼 언론의 자유를 구가할 줄만 알았던 나는 너무나 순진한 몽상가였다.

독재 권력이 무너진 공간에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유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돈의 논리가, 천박한 시장 논리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발과 경제 성장 논리가 이제는 온 나라를 뒤흔드는 정도를 넘어서 초ㆍ중등, 대학교와 사람들의 영혼까지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정부는 참으로 민망스럽게도 스스로 재벌과 결탁해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민중의 힘으로 집권했으면서도 민중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는 반역의 정치를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스럽게도 내세우면서 말이다.

대통령부터 청와대, 각종 정부기관에 들어간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는 소주 대신 양주를 마시면서 빠르게 기득권층이 되어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민주화 운동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에 대한 대중들의 지독한 환멸과 불신밖에 없게 되었다. 그 원흉이랄 수 있는 노무현과 이른바 386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지독한 과대망상증 환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이제 재벌은 스스로 국가 위에 따로 독립왕국을 건설할 정도로 비대해져만 갔다. 오로지 경제 논리만이 남은 사회는 하루에도 35명이나 자살하는 '자살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중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비수를 스스럼없이 인사말로 할 정도로 몰상식의 기계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사람의 부자 뒤에는 10여명 남짓 그렇고 그렇게 헐떡이는 중산층과 나머지 89명의 끔찍한 비정규직과 노숙자와 빈곤층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살벌한 경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이 길거리에 나서 독재타도를 소리높이 외쳤던가. 공동체가 사라진 이런 사막을 만들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분신하고 그랬던가.

부정한 권력과 불의를 비판하고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언론의 사명은 교과서에만 있는 문구일 뿐이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이른바 조ㆍ중ㆍ동은 높은 연봉을 무기로 기자들을 무기력한 강아지들로 길들여 놓고는 권력의 똥개가 아니라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언론의 자유란 왜곡의 자유였다. 조ㆍ중ㆍ동, 이게 무슨 언론인가. '찌라시' 수준도 되지 않는 교묘한 왜곡과 선동, 은폐는 가히 언론 조직 폭력배들이라고 밖에는 달리 지칭할 말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이제 언론은 재벌과 결탁, 이른바 확고한 '언경 동맹'을 맺으면서 한국사회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하고 있는 중이다.

멀리 갈 것도, 다른 예를 들 것도 없다. 황우석 사태가 그러했고, 이제 BBK 의혹과 삼성 문제가 다름 아닌 한국 언론의 생생한 본색, 화장발 다 빠지고 보톡스 주사 효과 다 빠져버린 실체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중앙일보>의 삼성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라. 그게 언론인가. 삼성의 똥개라도 그렇게 기사를 쓰지는 않으리라.

민주 독립 언론의 기본은 '자립'

지역자립과 자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지역자립과 자치는 식량과 에너지의 자립이 전제이다. 민주주의의 전제는 바로 이 같은 자립과 자치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언론은 자립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벌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은 진정한 '독립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프레시안>을 비롯해서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시사IN> 등 독립 언론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반드시 재정 자립 구조부터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 비판 한 줄 실리지 않는 <중앙일보>와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것은 독립 언론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 사회를 희망한다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나는 단 하나라도 천민자본주의의 광고에 목매달지 않는 독립 언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보수 언론이라도 제대로 된 보수언론, 빨간 색안경을 쓰고 모든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제대로 된 독립 보수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독립 언론을 강하게 추구하는 <프레시안>이 어렵다고 한다. 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기자들 월급을 못 줄 정도로 경영이 어렵다면, <프레시안>이 망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가. 32년 전 1만여 명이 넘는 민초들이 자유언론의 염원을 담아 광고로 격려했던 운동을 이제 다시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때의 격려광고 문구에서 동아일보란 낱말 대신 <프레시안>을 넣으면 한 치의 틀림없이 오늘의 한국 언론, 오늘의 한국사회 상황이 된다. 자, <프레시안>을 망하게 내버려두자. '멋진 신세계'에 갇힌 '노예'가 되고 싶다면….

"존경하는 삼천만 배달민족이여, 권력과 악질 재벌들에 대항하여 우리 국민의 선두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프레시안을 구하는 데 모두 일어납시다. 그리고 권력의 앞잡이나 하고 재벌의 돈이나 받아먹는 다른 신문이나 방송은 구독이나 청취를 하지 맙시다."

"해마다 1년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깨어서 불우이웃을 도와왔으나 이번에는 문 닫게 생긴 프레시안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민의가 프레시안의 고난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술 한 잔 덜 먹고 프레시앙이 됩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여, 딱 술 한 잔 덜 먹고 유료독자가 되자.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솔직히 프레시앙이라는 외국어 이름이 영 께름칙하긴 하다. 그래도 하여튼 프레시안이라는 독립 언론의 지킴이가 되어 보자. 우리 자신을 위해."


마지막 제안 하나

<프레시안>에 주장광고, 의견광고, 격려광고란을 만들자. 말하고 싶어도 어디 하소연할 데 없는 민초들을 위해 한 줄짜리 신문고 란을 만들자. 물론 한 줄짜리 주장이나 의견을 누르면 구구절절이 자세한 사연이 담겨 있게 말이다. 주장도 있고, 의견도 있고, 고발, 해명, 사연도 있을 것이다. 또 역사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민초들의 북소리를 듣는 자리를 만들자. 단 민초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광고료는 적게 받자.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 '프레시앙' 되기
■ ['프레시앙'이 되며] 보기

돈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프레시안>을 울리지는 말아야지!-조원종 씨

'진짜' 보수주의자도 <프레시안>으로 모여라-이형기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 공짜는 없다"-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켜자"-이계삼 교사

시장에 내던져진 언론, 누가 구하나?-언론인 손석희 씨

"<프레시안>, '짱돌'이 되어라"-교사 김영복 씨

"신뢰하고 또 신뢰하라…진실이 승리한다"-소설가 김곰치 씨

"유시민 전 장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송기호 변호사

"신세는 갚아야지!" -임종인 의원

"그 놈의 '자본', 이제 내가 마련해주자" -대학생 허남설 씨

"그때 누가 침묵의 카르텔을 깼는지 기억하자"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씨

"작은 새우가 역사를 바꾼다" - 한학수 PD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권리를 위하여 -시민 이도형 씨

"날 닮은 그 모습, 왠지 정이 갑니다" -가수 이은미 씨

"시민의 힘으로 '독립 언론'을 만들자" -홍성태 교수

"그 '꿈' 잃지 않았으면…" -개그맨 황현희 씨

"이 사악한 시대에 살고자, 나는…" -임옥상 화백

"'좋은 세상', 공짜로 올 것 같진 않습니다" -정희준 교수

"조합원들을 울리지 않기 위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 먹지" -강주성 대표

<프레시안>에 웬 <삼국유사>? -김대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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