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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재정악화, 문제는 과잉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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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재정악화, 문제는 과잉진료다" [홍헌호 칼럼] "행위별 수가제 대신 총액 예산제 도입해야"
최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준)(이하 시민회의)가 건강보험료 40퍼센트 인상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1인당 월 1만1000원, 가구당 월 2만8000원(연 34만 원)을 더 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현재의 62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높이자는 게 주요 골자다.

이 운동이 국민들과 서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에는 100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꼼꼼히 그 약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운동은 사전에 과잉진료 차단장치, 즉 총액예산제를 얻어내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총액예산제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건강보험료 인상운동은 의료비만 상승시키고 보장성 강화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액예산제란 현행 행위별 수가제와 대비된다. 건강보험 재정지출에 맞춰 보험료를 산정하는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건강보험 재정 수입에 따라 지출 규모를 미리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OECD 회원국들 대다수가 총액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2003년 <국민건강보험 총액예산제 도입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낮은 의료비용으로 거의 모든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총액예산'이나 '지출상한'을 이용하여 병원과 의사의 지출을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사연은 이 보고서에서 OECD 회원국들 대다수가 총액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미국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의 연구결과를 인용, 총액예산과 지출상한의 도입이 "물가상승을 보정한 의료비 증가를 9~17퍼센트 하락시킨다"고 지적했다.

시민회의 참여 인사들도 총액예산제에 반대할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건강보험료 인상을 해주는 대가로 상대방에게 총액예산제를 사전에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자는 이 운동이 그 대가로 사전에 총액예산제를 얻어내지 못할 때 건강보험료를 더 내겠다고 나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의료비만 상승시키고 보장성 강화 폭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석균 정책실장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이은경 연구원도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필자와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1인당 건강보험료는 무려 53퍼센트가 올랐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정부 통계로 60퍼센트에서 오갔을 뿐이다."(<프레시안> 6월 16일, 우석균, <왜 월급쟁이만 1년에 30만 원씩 더 내야 하는가>)

"지난 5년 동안 건강보험재정은 2003년에 16.8조 원에서 6년 만인 2009년에 거의 2배에 이르는 약 31.3조 원으로 증가한 반면 보장성은 55~60% 사이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오마이뉴스> 6월 23일, 이은경, <국민이 먼저 보험료 자진인상?>)

시민회의가 보완해야 할 점 매우 많다

이들의 우려는 기우일까. 시민회의의 자료를 꼼꼼이 살펴보면 이들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시민회의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건강보험공단의 보장성 강화 내역>(시민회의의 대안)부터 들여다 보기로 하자.

▲ ⓒ홍헌호

이 도표를 보고 느낀 점은 시민회의가 수정, 보완해야 할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먼저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부분(1조1000억 원). 국민들 중에서 MRI와 초음파를 급여대상으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급여대상 전환을 이끌어내느냐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부분의 보장율은 대략 73퍼센트 정도이다. 즉 급여부분 의료비 45조 원 중 건강보험이 33조 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12조 원을 본인이 부담한다. MRI, 초음파를 급여대상으로 전환시킬 경우, 그 보장률은 어느 선에서 결정되어야 할까. 시민회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을 급여대상으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보장률을 높은 수준으로 결정할 경우, 관련 의료수요는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MRI와 초음파 의료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 의료계는 어떻게 대응할까. 물어 볼 필요도 없다. 의료공급 또한 대폭 증가할 것이다. MRI, 초음파의 의료수요와 공급이 대폭 증가하면 건강보험 재정지출도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만들어진 시민회의의 예측수치들이 모두 다 무용지물이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시에 MRI, 초음파 보장률을 높이면 안되고 시장상황을 보아가며 아주 천천히, 꼭 필요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보장률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시민회의 자료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둘째, 상급병실료 차액과 선택진료비 부분(1조4000억 원). 이 부분도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의 재정부담을 대폭 늘려 놓을 수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건강보험공단이 보조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수요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며, 수요가 늘면 공급 또한 대폭 늘고 건강보험의 재정부담 또한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 문제 해결방안도 앞에서 언급한 <점진적인 MRI, 초음파 보장률 확대방안>과 유사하다. 매우 신중하게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간호인력 확충, 필요성은 인정하나 보장률 상승과는 무관

셋째, 간호인력 확충, 간병서비스 부분(3조 원). 간호인력을 확충하고 간병서비스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항목을 보장성 강화 항목에 넣는다는 것은 난센스다.

보장성 강화는 현재의 지출구조에서 급여부분 비중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간호인력 확충과 간병서비스 확대는 현재의 지출구조를 바꾸기 때문에 오히려 보장률 예측치를 낮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53조 원 의료비 중 33조 원을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고, 급여부분에서 본인이 12조 원을 부담하며, 비급여부분에서 본인이 8조 원을 부담하는 현행 구조에서 시민회의 주장대로 간호인력 확충과 간병서비스 확대에 3조 원이 추가로 지출된다고 하자. 이 부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이 50퍼센트라고 가정할 경우 국민건강보험 전체 보장률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가정에 따라 간호인력 확충과 간병서비스 확대를 위해 공단 부담금이 3조 원 늘어나면 본인의 추가부담금도 3조 원 증가할 것이다. 이 경우 공단의 총부담금은 33조 원에서 36조 원으로 증가하고, 법정본인부담금은 12조 원에서 15조 원으로 증가하며, 국민총의료비도 53조 원에서 59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전체 보장률은 어떻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보장률은 현재의 62.3퍼센트(33조 원/53조 원)에서 61퍼센트(36조 원/59조 원)로 오히려 낮아지게 된다.

이런 수치들은 간호인력을 확충하고 간병서비스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과 이것을 확대하면 건강보험 보장률이 저절로 높아진다는 주장이 전혀 별개라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저소득층 및 영세중소기업 보험료 지원 부분(1조6000억 원). 필자도 저소득층 및 영세중소기업에 보험료 지원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1조6000억 원을 지원하게 되면 1만1000원 운동으로 12조 원이 확보된다는 시민회의의 예측 자체가 허물어진다.

즉, 1만1000원 운동으로 확보되는 재원은 12조 원이 아니라 10조4000억 원이라 해야 옳고 또 이를 토대로 미래 예측을 해야 옳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다 더 치밀하고 정교한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을까.

▲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한 이유가 과연 보험료가 적어서인가. 아니면 과잉진료 때문인가. 건강보험료 더 내기 운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뉴시스

과잉진료 차단장치, 총액예산제 전면에 내세워야

첫째, 필자는 시민회의가 의료계의 과잉진료를 막아낼 수 있도록 '총액예산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조건으로 건강보험료 1만1000원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새사연의 이은경 연구원은 지난 23일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매우 시사적인 언급을 했다. 좀 길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충분히 인용해 보기로 한다.

"의료공급구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보험규모만 확대할 경우에 의료비의 폭등과 더불어 오히려 보장성은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미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1960년대에 일정 계층에 대한 공적 보험을 도입함과 동시에 의료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공급자에 대한 규제는 도입하지 못했고 오히려 민간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시장적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공적 보험을 도입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정부의 재정지출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재정압박으로 인한 공적 보험체계의 취약성은 다시 민간 보험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규모가 가장 크며 건강 수준은 가장 떨어지는 미국의료의 심각한 모순이 오히려 공적 보험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민회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급자를 의료개혁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도 다른 부분의 수가를 올려주는 방식 등 재정을 통한 유인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의료개혁의 시기에 선택했던 방식이고 그 결과 수년 사이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비가 폭등해 버렸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공급을 민간이 주도하고 있고 의료공급자에 대한 규제방안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재정만 확대할 경우 나타나게 될 미래는 심각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의료공급시스템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와 비급여 진료 등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갖지 못한 조건에서 건강보험 재정만 확충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6월 23일, 이은경, <국민이 먼저 보험료 자진인상?>)

본인부담금 상한제, 독일식으로 정교화해야

둘째, 시민회의 내부에 별도로 많은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만 보면 수정,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아주 많다. 진보 진영의 여러 연구자들이 모여서 보다 더 치밀하고 정교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예컨대 MRI, 초음파 부분을 급여 부문으로 전환시키는 경우, 초기에는 공단부담율과 본인부담율 비율을 5대 95 정도에서 시작하여, 의료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덥석 본인부담금을 대폭 낮출 경우 의료 수요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며, 건강보험 재정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상급병실료 차액과 선택진료비로 1조40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필자에게는 의미있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부담금 상한제 100만 원을 낮추는데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게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하는 길 아닐까.

또 본인부담금 상한제 100만 원이라는 것도 독일식으로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세전소득의 2퍼센트를 상한선으로 두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균가구 상한액은 연간 80만 원이고, 소득 하위 10퍼센트 계층의 상한액은 19만 원이며, 소득 상위 10퍼센트 계층의 상한액은 180만 원이 된다.

▲ ⓒ홍헌호

많은 지지 얻으려면 보수의 약한 고리에 주목해야

셋째, 시민회의가 보다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건강보험료 인상운동을 하더라도 여러가지 정책대안들을 조합해서 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부유층 감세철회, 조세지출(조세감면)축소 등으로 재원을 확보하여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보조율을 현행 20퍼센트에서 30~50퍼센트로 올리는 것이다. 국고보조율을 30퍼센트로 올리면 국고보조금은 3조 원 추가확보되고, 40퍼센트로 올리면 6조 원이 확보된다. 국고보조금이 6조 원 추가로 확보된다면 이 운동은 1만1000원 운동(가구당 월 2만8000원, 연 34만 원)에서 5500원 운동(가구당 월 1만4000원, 연 17만 원)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도 될 것이다.

혹자는 국고보조금도 어차피 조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회보장세의 일종인 건강보험료와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이다. 어떤 운동이든 그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중간층과 보수층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인터넷 상에서 보수적인 누리꾼들의 동향을 자주 살핀다. 이들은 부유층 감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처음에는 이에 동의하는 듯 했으나, 최근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국가재정 건전성에 해가 된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법인세 감세에 대해서는 이들도 적극적으로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보수의 약한 고리이다.

법인세 감세 철회는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찬성해 줄 수 있는 사안이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겠느냐 아니면 법인세 감세 철회에 동의해 주겠느냐고 묻는다면 보수층들도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시민회의는 이들의 이런 심리를 놓쳐서는 안된다.

수정, 보완되어야 후폭풍 피할 수 있다

우석균 실장이나 이은경 연구원도 시민회의의 대안을 비판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사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운동에 찬물을 끼얹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민회의의 대안이 충분히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후폭풍은 진보진영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부동산정책에 대한 진보 진영의 미숙한 대응이 많은 후유증을 낳았다. 건강보험료 인상운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시민회의는 이 운동과 결부하여 총액예산제를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이고, 수정, 보완을 요구하는 쪽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할 것이다. 또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보수진영의 약한 고리에 주목하여, 법인세 감세철회를 이끌어 내고, 그것을 재원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보조율을 높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운동이 1만1000원 운동에서 5500원 운동으로 그 이름이 바꾸어지기를 기대한다. 법인세 감세철회운동, 국고보조율 확대운동이 전자보다는 훨씬 더 정당하고, 훨씬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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