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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대기업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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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정위는 대기업의 방패?

[대·중소기업 상생, '말잔치' 아니려면·③] "문제는 제재 수단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변했다? 최근 많은 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질문이다. 현대건설 회장 출신인 이 대통령이 갑자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주문했다. 취임 직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대기업을 챙겼던 이 대통령의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시큰둥한 반응이 있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쇼'에 불과하다는 게다. 이 대통령의 인품이나 정치 행태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반응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전부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요구는 정권의 성향과 별 관계없다는 입장도 있다. 마치 '범죄 추방'이나 '전염병 예방'처럼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필연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라는 게다. 청년실업, 내수 부진, 사회경제적 역동성 쇠퇴 등 국민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경제 문제 가운데 대부분이 중소기업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 선 이들은, 그래서 현 정부가 실제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를 주목한다. 이달 말 발표 예정인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종합대책'을 뜯어본 뒤로, 판단을 미루겠다는 게다. 요컨대 지금으로서는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진정성을 가늠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이런 두 입장은 이달 말까지 계속 평행선을 그릴 듯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전에라도 입장을 정리할 방법은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실제로 필요한 과제를 정리해서, 이에 대한 입장을 정부에 물어보면 된다. 그 반응을 보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그저 '쇼'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꽤 기대를 걸 만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프레시안>은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몇 가지 골라냈다.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기 위해서다. 이들 지표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 이뤄지는 논의를 살펴보면,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서 비롯된 혼란은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어음 관행 개선과 하도급업체 공동행동 허용이 앞서 <프레시안>이 고른 지표였다. 이번에는 억울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장치를 살폈다. 이런 장치를 얼마나 잘 보장하는지 여부가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편집자>


[대·중소기업 상생, '말잔치' 아니려면·①]"언제까지 '문방구 어음' 믿고 장사하라고"
[대·중소기업 상생, '말잔치' 아니려면·②]"문제는 교섭력, '하도급 업체의 단결'은 무죄"

공정위·국세청이 '동원' 대상?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을 동원한 조사를 벌일 생각은 없다."
언론에 소개된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다. 옳은 말이다. 공정위나 국세청은 정부가 '동원'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법에 따라 제 구실만 해주면 좋겠다는 게 상당수 중소기업인들의 바람이다. 이미 마련돼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게다.

삼성SDS의 계약조건 변경을 놓고 법정다툼을 벌이다 회사 문을 닫았던 조성구 씨는 "정부가 대기업 뒷조사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얼라이언스 시스템이라는 중소기업 창업자였던 그는 "약자인 중소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법부와 정부가 공정한 입장만 취해주면 된다. 그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업이 망한 뒤,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 활동을 하다 전주에서 생선가게를 열었던 조 씨는 지난 5일 동안 청와대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가 '대·중소기업 상생'의 첫 번째 조건으로 "기존 정책을 철저히 집행하는 것"을 꼽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소기업 문제는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탓에 어느 정부건 관심을 가져 왔다.

재벌 기업 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 요인이 납품단가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제정책방향에서도 "부당한 단가 인하나 대물변제 감시·시정, 백화점·대형 할인점 부당반품, 판촉비용 전가행위 상시 감시" 등이 담겼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늘 '말잔치'로만 끝났다는 점이다. 김상조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부동산 관련 규제가 현 정부에서도 유지됐듯, 현 정부가 시작한 중소기업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도 유지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에 담긴 진정성은, 오로지 그가 만든 제도를 통해서만 검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수위가 검토한 '징벌적 손배', 왜 잊혀졌나

그렇다면, 정권의 성향에 관계없이 유지되는 중소기업 관련 제도란 어떤 걸까. 공정위와 국세청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식의 '동원'은 권력자의 관심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중소기업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식었을 때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지 않게 되려면, 약자인 중소기업에 무기를 쥐어줘야 한다. 강자에게 피해를 당했을 때, 강자를 제재할 수단 말이다. 그래야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균형이 잡힌다.

이런 장치 역시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됐다. 정부 역시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는 하도급법 위반 대기업에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검토했었다. 납품대금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입은 피해액의 3배 이상을 배상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익숙한 제도다. 이는 중소기업의 억울한 피해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고 정부 출범과 함께 잊혀졌다. 시민단체들은 이 제도를 조금 다듬은 '3배 손해배상'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손해배상액을 3배수로 못 박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한동안 외면했던 '중소기업 살리기'를 다시 꺼냈지만, 인수위가 검토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억에서 지워진 듯하다. '대·중소기업 상생' 구호가 요란한 가운데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또는 '3배 손해배상'이라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 청와대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조성구 전 얼라이언스 시스템 대표. ⓒ삼성일반노조

불공정 거래 피해자, 법에 호소할 방법 없다

당시 인수위는 납품대금을 제대로 못 받는 중소기업의 억울한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하도급법을 위반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게다.

역시 말뿐이었다. 공정위는 올해 총 596건(5월말 기준)의 하도급법 사건을 처리했지만, 고발까지 이른 사건은 전무하다. 노무현 정부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접수된 사건은 9800여 건에 이른다. 그러나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는 44건, 고발된 사례는 11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건은, 그렇다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 그건 알 수 없다. 문제는, 공정위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하도급업체가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검찰에 직접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불가능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사건은 반드시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가 가능하다. 그게 전속고발권이다. 피해자가 검찰에 고발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검찰의 인지수사도 소용이 없다. 검찰이 스스로 범법행위를 찾아내도 기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기소독점주의의 예외조항이다.

이런 까닭에,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은 법의 심판을 호소할 방법이 없다. 공정위에 신고하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앞서 소개한 수치에서 드러나듯 공정위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고발로 이어지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불공정 거래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도구로 쓰이는 셈이다. 시장질서의 수호자여야 할 공정위가, 거꾸로 대기업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측은 전속고발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고발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경제사건 조사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시장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늘 다툼이 생기는데, 이걸 모두 검찰이 처리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공정위의 '자존심'도 한몫한다.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위반 만큼은 공정위의 전문성이 검찰보다 훨씬 앞선다는 게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이제 폐지할 때"

그러나 공정위가 접수된 사건 조사와 고발을 소홀히 하는 상황에선, 이런 설명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중소기업계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꾸준히 주장해왔던 이유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은, 문제가 있지만 당장 폐지할 수는 없다는 쪽이다.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고소·고발이 남발되면 굉장히 어렵다"면서 "객관적인 실태를 보면 지금 하도급 업체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도급 업체가 원청기업에 맞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은 정부 당국자가 할 말이 아니다. 강자의 횡포를 견제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김상조 교수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고발권마저 행사하지 않으니 규율 공백이 생긴 게 현실"이라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계열사 부당지원 등에 대해서만이라도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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