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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만들던 손으로 수세미 짜는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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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타 만들던 손으로 수세미 짜는 이들은…" [기고]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 이야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예정에도 없이 얼떨결에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기타이야기'라는 영화를 봤다. 몇 주 전에 있었던 장기투쟁사업장 후원 주점에서 얼핏 스쳐 간 분들이 화면에 다시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던, 어두운 공장 안에 만들다 만 기타들이 망연히 쌓여있는 장면. 문득 그 장면 속 기타들이 창백하게 외로워 보였다. 정성껏 어루만져 줄 주인을 채 만나지도 못한 채, 긴긴 잠을 자며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그 기타들이.

기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 걸까.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부끄럽게도. 심지어 불과 4년 전에 바이올린을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 본 주제에 말이다. 기타 공장에서 만든다고 하니 기타가 그냥 뚝딱 만들어져 나오는 줄로만 알았다, 어리석게도. 그저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서 나온 XBOX360의 게임 소프트인 '기타 히어로(Guitar Hero)'를 시작할 때, 기타 선택 화면에서 깁슨이니 펜더니 하는 기타들의 멋진 모습에 탄성을 지르며 골라잡아 게임할 줄만 알았지, 사람의 손이 직접 그 기타들을 만들어 왔다는 건 몰랐다.

중학교 시절,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아픈 게 싫다고 기타 배우기를 집어치웠던 나는, 그 기타를 만드느라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도 모자라 아예 지문이 없어진 손도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알기 전에는.

기타 만들던 이들이 일하는 '산들바람'을 찾다

지난 주, 콜텍 노동자들이 지금 일하고 있는 재정사업단 '산들바람'을 찾아 나섰다. 기타를 만들던 손으로 이제는 맛깔나는 된장·고추장과 장아찌를 담그는 이들을 찾아 뵈려니 몇 주 전 장기투쟁 후원 주점에서 본 고추장 가판대를 그냥 지나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혼자 사는 신산한 살림살이에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일이 드물어 그랬다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왠지 마음이 좀 그랬다.

ⓒ라흐쉬나
그래도 영화에 출연하신 배우님(!)들을 뵈러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두근두근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살짝 긴장도 됐다. 이곳도 같은 유성인가 싶은 저수지 근처 한적한 시골 동네에 깊숙이 자리잡은 그 곳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갈 수 있었다. 지회장의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오신 조합원 차로도 꽤 가서 나온 빨간 대문집이 바로 콜텍 조합원들의 또 다른 일터였다. 대부분 처음 뵙는 이들이라 주뼛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빨간 대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 지붕 집과 푸른 논과 마당 어귀의 감나무가 눈에 띄었다.

열심히 선풍기가 돌아가는 대청에서는 오늘 막 했다는 가래떡을 나누어 싸고 있었다. 투쟁연대로 들어온 쌀에 벌레가 슬었는데, 차마 쌀을 버리실 수 없어 떡을 맞췄고 먹을 복 많은 – 그리고 일복도 많은 – 내가 마침 운도 좋게 그때 방문한 것이다. 떡이 담긴 쟁반 뒤로는 한창 뜨고 있는 수세미와 자동차 핸들 커버가 보였다. 사실 방문하면서 장 담그시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하고 갔는데, 물어보니 장은 담가 둔 게 많아서 당분간 배송만 한다고 한다.

굉장히 어색해하며 대청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주위로 '어색어색'이라는 글자들이 둥실둥실 떠다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광경이었을 거다. 새삼 전문 인터뷰어 분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조합원들도 어색한지 가만히 계시거나, 별말 없이 손뜨개로 수세미를 계속 뜨고 있었다. 한 조합원이 쑥스럽게 웃으며 "인터뷰 전문 조합원들이 따로 있는데, 생계투쟁 나가셔서 지금 없다"고 말을 건냈다(영화에서 주로 출현한 이들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오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할 일이 아닐까. 수줍은 얼굴로 나직나직하게 하던 그 이야기들을.

ⓒ라흐쉬나
수세미용 실뭉치에 감긴 실들이 코바늘을 거치며 고운 수세미가 되어가는 광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기타도, 수세미도, 장도 척척 만들어 내는 손. 그 손으로 직접 일하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왜 이전에는 알지 못하고 지나쳤는지. 문득 저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수세미가 아니라 기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창고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어도, 서릿발같은 공장장의 감시 속에 새벽부터 새벽까지 작업을 해도 그저 좋은 기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던 이들.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바쁜 손놀림을 바라보며 코바늘로 수세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어느 분이 냈냐고 물었다.

지목당한 조합원은 원래 뜨개질을 잘하는데 수익 사업으로 제안해 다른 조합원들을 끌어들였단다. 수세미 뜨는 게 워낙 복잡해서 처음에는 헛갈리기도 하고, 틀리기도 많이 했단다. 옆에서만 지켜봐도 어려워 보였다. 긴뜨기와 짧은뜨기, 사슬뜨기가 복잡하게 반복되는 패턴. 코바늘로 헤어밴드 하나 며칠 걸려 뜨는 나로서는 정말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더니, 사진이 예쁘게 나와야 한다며 미리 떠놓은 수세미 몇 개를 종이가방에서 꺼냈다. 모자라는 색깔을 맞추려 새로 수세미를 짜기까지 했다.

원래 내가 찾은 날은 장아찌를 담글 고추를 따려고 했단다. 그런데 이날 비가 내리는 바람에 못 따고, 수세미만 짜게 됐단다. 그러고 보니 찾아 뵙기로 해놓고 자꾸만 장대비가 내려 어떻게 갈지 고민을 하던 오전이 생각났다. 자꾸 미루면 영영 못 나설까봐 단단히 마음 먹고 집 밖에 나선 순간, 비가 그쳤었다. 방동 저수지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말갛게 개이기까지 했다. 비가 조금만 더 빨리 그쳤으면 일손도 도울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이들이 운영하는 '산들바람'은 사회적 기업으로 초기엔 노동부에서 일정한 지원금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시한이 지나 지원이 끊겼고, 순수 매출로만 인건비를 충당해야 한다. 국산 재료를 쓰기 때문에 요새 판매량으로는 급여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조금 기가 막혔다. 이들이 마주한 상황은 사실 원래 일하던 콜트-콜텍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방기하면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다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가격을 후려쳐 가며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의 정책은 정말이지 '눈 가리고 아웅'이거나, 혹은 모래 위에 집 짓는 격과 마찬가지다.


콜트-콜텍 사장은 소행성 'B612'의 왕?


수세미를 뜨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기가 막힌 일들이 많았다. 아침 8시 반 부터 저녁 5시 반 까지 일한다고 해서 아이들 키우며 다닐 수 있는 회사라고 믿고 들어왔단다. 하지만 날마다 아침 7시 40분 까지 출근해 8시면 기계가 돌아갔고, 저녁 9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는 공장이었다. 생산량을 못 맞추면 저녁 9시~10시는 고사하고, 다음날 아침 6시까지도 일을 해야만 했다.

수습기간이 일주일이었는데 퇴근을 하라는 데도 아무도 일어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같이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야근을 하고 주말이면 또 특근이라 약속은 고사하고 가족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 갔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고 돈 버는 건데, 막상 아이들 소풍 한 번 못 따라가보고 17년간 일하면서 쉰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주말에 일 시키면서 추가 수당은 주지 못할 망정, 점심으로 짜장면 시켰다고 잔소리를 들었단다. 그래도 "근처에서 이 공장이 가장 급여가 좋다"고, "우리 공장이 최고다, 이만한데 없다"고, 그렇게 그렇게 몇 년 씩 기타를 만들었다. 기본급이 50여만 원에 야근·특근 합쳐서 100만 원 겨우 넘는 급여를 받던 그 공장에서, 그래야만 되는 줄 알고 죽으라면 껌벅 죽는 시늉까지 해가며 일했다.

기가 막혔다. 콜트-콜텍은 위장폐업을 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 2007년까지 적자를 낸 적이 2006년 딱 한 번이었다. 2000년 이후 누적 순이익이 100억 원에 가깝다. 박영호 콜트-콜텍 사장은 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대한민국 부자 120위이다. 콜트-콜텍은 채무도 거의 없다. 잉여자금도 충분했다.

2004년 이후로 매출이 감소하긴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주말도 없이 일한 노동자들 때문인가? 말레이시아에서 들여온 B급 목재를 지문이 없어질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 소리 좋은 기타를 만들어 낸 노동자들 탓인가? 회사가 잘 되어 벌어들인 돈은 모두 경영자 주머니로 들어가고, 회사 형편이 기울면 그 책임은 노동자들이 지는 게 과연 당연한 일인가? 200여 명의 사람들이 하루 400대까지도 기타를 만들어냈는데도, 그 기타 하나 제대로 살 수 없을 만큼 돈을 주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감히 회사에 경영자 따위 필요 없다고는 못 하겠다. 전문경영인이 꼭 필요한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장에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원자재와 기계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 사이사이에 사람이, 제 손으로, 제 몸뚱아리로, 땀 흘려 매만져야 제품도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일하는 노동자가 없으면 이익도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경영자가 좋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생산량을 지시해도, 그걸 이루어 줄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라. 소설 <어린 왕자>에서 백성도 하나 없이 소혹성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누군가 행하지도 않을 명령을 중얼대기만 하던 왕이 정말 왕이었는지 말이다.

그저 돈 주고 사람 부려 주머니 채우는 게 경영자의 일일까. 매출 올리고, 제 돈 벌 줄은 알았지, 산재가 나면 회사에서 책임져주고, 회사 말 안 듣는다고 마음대로 전환 배치하면 안되고, 물량을 맞춰야 해도 법정 근로 시간은 지켜야 한다는 건 알지도 못 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경영자일까. 맘대로 퇴직금 산정해서 통장으로 넣어주고, 예고도 없이 공장문 걸어 닫아 폐쇄시키면 다일까. 일하는 사람들 몰래 기계 빼돌려 외국으로 공장 옮기면 되는 걸까. 자기가 고용한 사람을 하인 부리듯, 기계 부품 취급하듯 하는 게 과연 당연한 일일까. 일하는 사람들도 다 자기와 같은 사람인 줄은 왜 모르는 걸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국에서 만들어온 반제품에 'Made In Korea'를 달아 내보내는 건 잘하는 일일까. 그건 소비자마저 기만하는 일 아닌가.

모르겠다. 뭐가 제대로 된 일인 건지. 그래도 확실히 지금 콜트-콜텍이 법대로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알겠다. 위장 폐업이, 정리 해고가 부당하다는 2심 판결이 나왔고, 지금 3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판결대로 이행하지 않는 건 안다.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한 이후로 기타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도 안다. 이미 한국의 인천 공장과 대전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데도, 마치 한국에서 생산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홈페이지에서 홍보하고 있는 건 안다. 세계 최대의 기타 생산 회사라지만 우량 중소기업으로서 충분한 사회적 책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가슴이 답답하다. 장이 익어가는 장독대를 보여주며 뿌듯해 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장맛을 보고 맛있어 하니 기뻐하는 그 모습이 생각나서. 공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데도 추억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리워하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기타 만드는 공정을 신이 나서 얘기하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이 글을 쓰던 때, 일본 후지 락페스티벌에 초청된 콜트-콜텍 원정 투쟁단이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도, 그 음악을 만들어 내는 악기도, 모두 사람의 손 끝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사람의 손이 이루어 낸 노동 없이는 예술도 없다는 것. 그래서 예술가 못지 않게 노동자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걸 되새기면서 텅 빈 공장에서 만들어지다만 기타들이 하루빨리 그 분들을 다시 만나고, 함께 노래할 주인을 만나게 될 날이 오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들은 그간 독일, 미국, 일본 등지에 다섯 차례의 원정투쟁을 다녀왔습니다. 잭 드라 로차 등 해외의 진보적인 뮤지션들이 함께 해주기도 했습니다.

라흐쉬나 님이 글에서 얘기했듯 법정에서도 위장폐업과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법까지 무시하며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은 단 한 차례도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 환노위의 증인 채택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위장폐업과 부당해고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친동생을 내세워 '키타넷'이라는 위장 회사를 차려 지금도 열심히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고 있습니다.

1000일 넘게 텅빈 공장을 지키며 살아 온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뜨개질과 고추장, 된장을 만들어 팔며 오늘도 늙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박영호 사장이 근래엔 나눔과 소통을 모토로 한다는 '콜텍문화재단'을 차렸다고 합니다. 좋은 음악인들을 콜트 회사 홍보대사로 위촉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이에 9월 8일 오전 11시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키타넷' 본사 앞에서 한국의 음악인들이 모여 규탄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한국의 음악인들은 '착취받는 기타로 노래할 수 없음'을, '기타는 사랑과 연대의 도구이지, 사장 개인의 착취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는 될 수 없음'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 행동에 나설 것입니다.

지난 2년여 동안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그 기타로 노래하는 문화예술인들 간의 사회적 연대를 영상으로 담아 온 김성균 감독(기획 강성훈)의 <꿈의 공장>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7시 30분에는 홍대 앞 <클럽 빵>에서 끝나지 않는 연대콘서트가 열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박영호 사장은 이런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밴 상품을 퍼뜨리며 노래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데에만 골몰했지만, 우리는 진정한 연대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노동과 예술이 왜 하나인지를 전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아프고 기운 빠지는 이야기들만이 세상에 넘쳐나야 하겠습니까.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꿈으로 넘치는 콜트콜텍 기타만드는 노동자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에 잠깐씩은 귀를 기울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배불뚝이를 위해 수많은 거미들의 허리가 짤려야 하는 이런 세상이 이젠 정말 싫습니다. 공식 블로그:

/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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