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직접적인 대응을 회피하면서 지난 10월 19일 현대건설을 세계적인 종합엔지니어링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2020년까지 인수자금 외에, 총 10조 원을 투자하여 수주 120조, 매출 55조 원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청사진(?)을 발표하였다.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 최근 현대그룹이 낸 신문광고. |
여기에는 건설업계 1위 기업을 인수하려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결부되어 있지 않다.
현대건설 인수건을 둘러싼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미묘한 과열경쟁에서 족벌체제의 봉건성까지 엿보인다.
이미 세상을 하직한 자신의 형제 정몽헌은 인정하지만, 며느리인 현정은은 '그들의 리그'에 결코 끼워 줄 수 없다는 가혹한 가부장적 인식이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소위 '범현대가' 수장들의 인식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승자의 저주' 부르나?
더욱 의혹스러운 점은 왜 정몽구 회장은 여론의 따가운 질시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 인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에 있다. 현대그룹의 입장에서 볼 때, 정몽헌 회장 때부터 모기업에 해당하는 현대건설을 다시 인수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으며, 부인인 현정은 회장으로서도 충분히 인수에 현대그룹의 사활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입장은 어딘지 모르게 궁색하고 정몽구 회장의 가신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승자의 저주'를 부르는 전주곡처럼 들린다. 故 정주영 회장의 가업을 잇겠다는 '장자계승론'은 가부장적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예전 '왕회장의 현대그룹'을 재건하겠다는 과욕의 발로로 보인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문어발식 방만경영과 몸집불리기로 인해 연쇄부도에 직면하고 우량기업을 초국적기업에게 팔 수 밖에 없었던 악몽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최대 6조 원 이상으로 보이는 인수자금은 그렇다 치고 '현대건설의 청사진'이라고 발표한 "향후 10년 동안 10조를 투입한다"는 내용대로라면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인수에 필요한 현금성자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의 인수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주고 있는 청와대와 보수언론 또한 이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파생된 유동성위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금호그룹을 반면교사로 한다면 다음 차례가 현대차그룹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조차 하다.
이미 금호그룹의 경영위기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시너지효과가 전혀 없고 그룹의 방만경영을 부추기는 비관련 거대기업의 인수는 자칫 그룹 계열사들의 유동성위기와 연쇄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최소 3조5000억 원에서 최대 6조 원으로 예상되는 엄청난 인수자금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계열사가 출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인수자금의 확보는 각 계열사의 내실있는 경영과 중장기 투자를 약화시킬 것은 뻔하고 자동차전문그룹으로서 필요한 기술 및 연구개발 역량을 부실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건설로 인한 자금출혈이 상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건설산업의 부진, 자동차산업의 경기변동 등과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대차그룹 산하 계열사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쇄반응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금호그룹의 부실과 경영위기, 이로 인한 금호타이어의 구조조정이다. 고작 5.8%의 대우건설 지분을 인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호타이어는 금호그룹의 기업개선과정에서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분류되어 심각한 구조조정의 피해를 안아야 했다. 그 결과는 일방적인 정리해고와 전환배치, 엄청난 임금삭감과 노동조건의 양보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실사태로 인한 피해가 단지 현대차그룹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98년 IMF위기 당시 재벌 대기업의 부도와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의 피해는 기업소유주 보다 노동자와 국민의 피해와 고통으로 그대로 전가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대차그룹이 제대로 된 '자동차전문그룹'으로 발전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이유로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의 무리한 현대건설인수를 반대하는 것이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완쪽)과 정의선 부회장 ⓒ연합뉴스, 뉴시스 |
더욱이 지난 10년 동안 급속성장을 거듭한 현대차그룹이 거둔 성과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생각하면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매출액 60배, 당기순이익 10배, 시가총액 30배로 표현되는 '성장신화'의 이면에는 자동차산업의 육성을 위한 물심양면의 정부특혜,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에 의한 초과이익, 노동자와 중소하청업체의 피와 눈물, 그리고 국내소비자의 가격부담 등과 같은 '불편한 진실'이 놓여 있다.
또한 현대차그룹의 곳간에 현재 쌓여 있는 현금성자산 12조 원은 바로 세계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과 고통을 통해 만들어진 돈이다. 글로벌기업을 지향하는 현대차그룹이 생산직 모두가 최저임금수준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동희오토, 현대모비스와 같은 '절망의 공장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입만 벙긋하면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 현대건설 인수에 소요되는 최소 3조5000억 원에서 최대 6조 원의 자금이라면 현대차그룹의 최대현안인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사내하청의 즉각적인 정규직화, 하청업체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소비자 판매가격의 20% 인하 등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충분하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10년 동안 자동차산업의 생산과 경영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자동차산업에 투자하고 환원하는 것은 산업내, 그리고 기업간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자동차전문그룹으로 발전하겠다는 약속은 정몽구회장이 2000년 현대차그룹을 창립할 때 이미 밝힌 내용인 동시에, 현재 현대차그룹 사회공헌활동을 알리는 홈페이지 '함께 움직이는 세상( 첫 화면의 그룹소개란의 경영이념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경영이념은 "창의적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인류의 풍요로운 자동차생활을 창조하고 주주, 고객, 직원과 자동차산업 이해관계자와의 조화와 공영에 이바지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사업분야 소개에서도 "자동차산업 관련 사업군 집중을 통한 최적의 시너지효과 창출"을 내세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민은 현대차그룹이 명실상부한 자동차전문그룹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우리는 엄청난 인수자금의 액수를 보고 그 중 단 10%라도 현재 사회적으로 쟁점화가 되고 있는 사내하청의 정규직화에 사용할 수 있다면, 지난 10년 동안 현대차그룹이 저지른 고용에 대한 사회적 무책임성을 바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의 인수에 앞서 먼저 그룹 산하 계열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들의 신규채용에 이 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은 2006년 글로비스 비자금사건에 대한 정치적 사면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 84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국민에게 약속한 이 사회공헌기금 조차 제대로 집행하고 있지 않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들로 구성된 해비치재단을 만들어 여기에 현재까지 고작 글로비스 주식 900억 원을 출연한 것이 전부다.
당시에 국민에게 약속한 사회공헌기금 액수는 매년 1200억 원씩, 7년간 총액 8400억 원인데, 이 중 일부만 투입하더라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 동일근속(2년)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현재 임금격차는 연간 약 1500만 원선이다. 이를 환산하면 1만 명의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비용은 총 1500억 원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동희오토와 현대모비스 등을 포함하는 그룹 계열사와 관련사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는 약 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의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연간 약 2000만 원 정도란 것을 고려하면, 이들사내하청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화하는데 드는 비용 또한 연간 약 1000억 원 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약 2500억 원이면 현대차그룹 산하 계열사와 관계사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현대건설 인수의 실제 목적은 '경영 승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를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현대건설 인수의 실제 목적이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편법적 경영승계를 위한 종자돈 마련에 있다고 본다. 친현대차그룹 언론들은 현대건설 인수의 이유로 '장자책임론'과 '가업승계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윤리적(?) 접근은 기존의 현대차그룹의 무책임한 경영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본심은 한국 제 1의 건설사인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예전 정주영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문어발식 '재벌의 영화'를 다시 꿈꾸고 있던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우회상장과 지분매각을 통한 종자돈 확보와 이에 기반한 편법적 경영승계이다. 먼저 현재 주가가 약 7만5000원에 이르는 현대건설을 인수하고 난 후 이를 현대엠코와 합병해 우회상장을 통해 현대엠코의 주가를 현대건설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현대엠코의 지분을 글로비스(24.96%), 현대모비스(19.99%)와 기아차(19.99%), 정몽구(10%)와 정의선(25.06%)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엠코 주식상장에 따른 이들의 주식가치 상승이익은 무려 10배에 이른다. 한편 우회상장 후 현대엠코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여 엄청난 종자돈을 마련하고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매입하여 재벌일가의 소유지분을 늘리거나, 아니면 정의선의 지분확대를 전제로 한 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러한 방식은 편법적 우회상장과 부당 주식거래를 통한 전형적인 경영승계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좌시해서는 안된다. 옛 영화를 다시 누리겠다는 '장미빛 환상'에 취해, '아들에 대한 대물림'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거품폭발의 전주곡'을 지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살아남을 수 있는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 단지 최고경영자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지난 10년 전의 IMF체제는 물론, 현재에도 진행 중인 구조조정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일가의 객기와 놀음에 우리의 생존권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뼈아픈 경험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선택은 재벌일가가 했지만, 피해는 노동자가 짊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가 현대건설 인수문제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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