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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식들도 어차피 비정규직…이제 '몽구산성'을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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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 자식들도 어차피 비정규직…이제 '몽구산성'을 넘자"

[현장] 멈춰선 현대차 울산1공장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번 주에만 두 번 허를 찔렸다. 하나는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벌인 신경전에서 지난 16일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 애초에 자동차 전문기업이 건설업에 현금자산을 쏟아 붓는데 우려가 쏠렸던 만큼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경우가 좀 다르다. 바로 지난 15일 현대차 울산1공장 점거를 시작으로 벌어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2006년 이후 4년 만이다. 예견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트1부 하청업체 노동자 30여 명이 노조 탈퇴 요구에 반발해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싸움이 순식간에 1200명이 넘는 대규모 파업으로 번졌다. 불과 반나절만의 일이다. 파업 첫 날 사측 관리직원과 경찰 병력이 함께 나섰지만 급격히 일어난 열기를 꺼트릴 정도는 못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 하루 만에 울산1공장 라인 전체의 가동을 멈췄고, 다음날인 17일에는 2·3공장마저 한때 접수하기도 했다. 전주·아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에 호응해 공장 점거에 나서며 사측 용역 직원들과 격렬한 마찰을 빚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단결권을 행사하기도 버겁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힘'을 분출할 수 있었던 건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정규직인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땐 비정규직에게 배웠다"


ⓒ프레시안(김봉규)

17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은 10여 개의 컨테이너로 굳게 막혀있었다. 인터넷상에서 '몽구산성'이라 칭한 구조물 옆의 좁은 통로로 몇 명의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4공장측 출입구를 통해 1공장으로 향했다. 식당 게시판에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위해 비정규직 동지들 1공장 점거투쟁 돌입'이라는 벽보와 '하청노조의 불법 라인점거, 폭력행위…회사는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라는 현대차 측의 게시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한 대의원의 안내를 받아 1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검거한 곳은 '베르나'와 '클릭'을 혼류 생산하는 11라인의 CTS 공정이다. CTS 공정 라인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은 현대차 정규직 노조 대의원들이 앉아 봉쇄하고 있었고, 그 앞에서는 사측 관리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2층으로 가는 길목에 현대차 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4~5명씩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이번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단상을 물었다. 간부들에게 물어보라며 손사래를 치던 이들이 꺼낸 대답은 간단했다.

"비정규직 동지들이 우리랑 같은 라인을 타면 정규직화 하는 게 맞죠. 그건 대법원 판결 이런 걸 떠나서, 또 우리 자식들도 앞으로 2~3년이 지나면 비정규직이 70%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정규직화 해야한다는데 동의를 하죠. 이건 노조의 요구를 떠나 내 동생, 내 자식들 봐서 당연히 되야 한다는 거죠. 비정규직 법 자체가 잘못된 거니까"

길을 안내하던 정규직노조 대의원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저도 처음 들어와서 일을 배울 때 정규직이 가르쳐준 게 아니었어요. 비정규직에게 배웠다고요. 작업량만 봐도 원청에 협상 자격이 있는 이가 가서 대표로 전체적인 작업에 대한 할당량을 따오고, 그에 따라서 라인에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따지지 않고 일감이 분배가 되요. 우리가 협의하는 내용에 비정규직 공정이 이미 포함이 되어 있는 거예요."

2층 농성장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조합원들은 한편으론 휴식시간을 즐기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공장에서 찾아온 정규직 조합원들이 연대 발언을 하면 모여들어 함께 구호를 외치고, 다시 자리로 흩어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006년 입사해 변속기 공정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왔다는 윤 모 씨(30)는 지난 7월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사실 일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차별받는다는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법원에서 회사가 불법으로 우릴 고용했다고 하는 기사를 봤어요. 당연히 항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더니 노조에 가입해서 싸우는 게 문제를 빨리 풀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가입 원서를 냈어요.

처음 들어올 때 8명이 함께 들어왔는데 그 중에는 주위에서 압력이 들어와 다시 나간 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압박하고 회유하는 사측 직원들도 정규직인데 그 말을 들을 필요가 있나요? 2년 이상 일했건 아니건 불법으로 고용한 노동자는 직접 고용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불법이니까."


"대법원 판결 이후,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비조합원 끌어와"


ⓒ프레시안(김봉규)

발단은 지난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소송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한 데서 비롯됐다. 대법원은 컨베이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혼재되어 일하는 시스템에서는 도급 계약이 성립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을 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특히 파견법이 개정된 2007년 7월 이전에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농성장에서 만난 이상수 울산공장 사내하청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공장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조목조목 풀어냈다.

"판결 즈음에 울산과 전주·아산공장의 사내하청지회가 7월 26일날 서울 현대차 본사로 상경 투쟁을 나섰어요. 하청업체의 성과급 지급 동의서에 서명을 하면 임금 인상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임단협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부했죠. 내려가는 길에 전체 조합원에 동의서를 모두 거부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비조합원들까지 나서서 500만 원 정도나 되는 걸 안받겠다고 나섰어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느꼈죠.

이후에 하루 100~150명 씩 조합 가입원서가 들어왔어요. 600여 명이던 조합원이 9월이 되니 1900명까지 늘었어요. 사측에서는 노조 가입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심해졌고요. 조합원들 스스로가 분위기를 바꾼 거죠. 의장부의 경우 가입률이 90%가 넘었어요. 조합의 강요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주위의 사람들을 끌어오면서 만들어낸 거죠.

추석이 지나고 나서 집회를 열었는데 사실 얼마나 반응이 올지 감이 안 왔어요. 많으면 250명 정도 모일 거라고 봤는데 450명이 왔어요. 그 다음 주엔 600명이 왔어요. 파업 전까지 그렇게 보였어요. 10월30일 서울에서 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도 1000명 이상이 참여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기가 고조될 즈음 '행동'을 앞당긴 사건이 터졌다. 1공장 시트사업부의 사내하청업체인 동성기업이 폐업하면서 다른 업체가 들어왔는데 기존에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승계 조건으로 노조를 탈퇴할 것을 강요한 것. 이에 반발한 시트 공정 조합원들이 15일 새벽 라인 점거를 시도했고 이후 용역 직원·경찰 병력과 충돌하면서 파업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외부에서는 우려하는 시선도 많았는데 정착 우리들은 별 걱정이 없었어요. 어차피 할 거였으면 날짜에 상관없이 일단 가보자고 했어요. 조합원들의 열기가 그만큼 뜨거웠고, 지금와서 그만둔다고 하면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는 거잖아요.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사측과 대화를 트거나. 그 둘 중 하나밖에 없어요."

1공장에 모여있던 조합원 1200여 명은 17일 오전 2·3공장 검거를 시도했다. 2공장에서는 400여 명의 조합원이 오전 2시30분과 9시에 각각 파업을 시도했고 오전에 라인이 중단됐다. 상대적으로 적은 16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한 3공장에서는 충돌의 강도가 더욱 심했다. 이날만 경찰에 연행된 이가 17명이었고 20여 명이 병원에 후송됐다. 병원 신세를 진 이중에는 사측에 폭행당해 갈비뼈가 4대가 부러진 이도 있었다.

벼랑 끝 싸움, 공은 정규직 노조에?

이 지회장의 말처럼 비정규직 노조에겐 해고 아니면 대화라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파업이 초기부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벼랑 끝에 내몰린 꼴이 됐다. 파업을 시작한 15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지회가 제출했던 쟁의조정신청에 대해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현대차 측은 이 지회장 등 27명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충돌 과정에서 연행된 조합원에게도 형사 소송을 제기 중이다. 농성자들은 1공장을 지키면서 다른 공장에서 지속적인 부분 파업을 통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울산을 비롯한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세 곳은 대법원 판결 이후 원청인 현대차에 5번의 교섭을 제안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 지회는 파업을 시작한 이후 기본급 9만982원 인상, 경영성과금 300%+200만 원, 일시금 300만 원, 무상주 30주 지금 등 기존 교섭안에 더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측이 끝까지 이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대화를 거부한다면 농성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정규직 노조에 눈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가 대체 인력 투입 등을 적극적으로 막는 등 적극적으로 연대한다면 상황은 사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모처럼 한데 모인 비정규직 싸움의 동력이 점점 소모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아직까지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태도는 애매모호하다. 17일 오후 열린 지부와 사내하청지회의 간담회에서도 지부 측은 "정규직이 당장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회의 요구를 정확히 해 교섭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며 "(파업) 한 번으로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다"라는 뜻을 전달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한 정규직 노조 대의원은 "지난 2006년 비정규직 싸움에서도 비정규직의 교섭을 정규직이 위임받아 나섬으로써 결국 비정규직 노조의 역량만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투쟁 동력이 높은 지금 사측과 비정규직 노조가 직접 협상장에서 마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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