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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물가대란, 정부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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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악의 물가대란, 정부가 불렀다 [홍헌호 칼럼] 한국·영국의 물가가 미국보다 2배 오른 이유
1일 통계청은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대비 4.7%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4.1% 상승한 후 2월에는 4.5% 올랐고 3월에는 4.7% 올랐다.

물가대란에 대해 정부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 기후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고유가도 영향을 미치고, 구구절절 많은 변명들을 들려 준다.

반면 언론사들은 정부의 이런 태도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가대란의 주요 원인이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고환율정책을 추진하면 수입가격이 오르고, 수입가격이 오르면 원자재와 부품소재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자·소비자 물가가 치명적인 악영향을 받게 된다.

환율과 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도하게 올랐다

정부와 언론 중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가까울까? 다른 나라와 물가와 환율 변화 추이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드러날 것이다. 물가대란이 일어난 시기에 환율이 다른 나라와 유사하게 상승했다면 현 정부의 환율정책이 물가대란의 원인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환율이 과도하게 상승했고, 동시에 물가도 과도하게 상승했다면 정부의 고환율정책이 물가대란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먼저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살펴 보면 주요 8개 지역의 국제 비교 통계자료를 찾을 수 있다(많은 지역을 비교하면 좋겠지만 유로 사용지역을 한 지역으로 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8개 지역 비교에 만족하기로 한다. 또 8개 지역 자료 중 중국 자료에는 오류가 있는 듯해서 여기에서는 제외시키기로 한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7개 지역의 환율과 물가 지표를 들여다 보자마자 명백한 사실이 바로 확인되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3년간 우리나라의 환율과 물가 모두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도하게 올라 있었다. 정부의 고환율정책이 물가대란의 주범이라는 세간의 주장이 옳다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먼저 7개 지역 중 미국을 제외한 6개 지역의 환율을 보면 우리나라와 영국의 대미 환율은 지난 3년간 각각 21.2%, 21.9% 상승한 반면, 대만의 대미 환율은 6.4% 하락했고, 일본의 대미 환율은 무려 28.6%나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또 홈페이지에서 8개 지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우리나라와 영국의 소비자 물가가 각각 10.8%, 9.4% 상승한 반면, 미국과 유로지역은 5.2% 상승하는데 그쳤고, 대만의 상승률은 3.6%에 불과했으며, 일본은 0.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
▲ ⓒ프레시안

이 두 자료를 합쳐 보면 지난 3년간 대미 환율이 각각 21.2%, 21.9% 상승한 우리나라와 영국의 물가가 각각 10.8%, 9.4% 상승한 반면, 대미 환율이 28.6%나 하락한 일본의 물가는 0.7% 하락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각 지역의 환율 변동률과 물가변동률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의 주요 경쟁국으로 자주 거론되는 대만의 지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년간 대만의 대미환율은 6.4% 하락했고, 그로 인해 물가는 3.6% 상승하는데 그쳤다. 대만의 지표는 우리나라의 물가폭등의 주요 원인이 인위적인 고환율정책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또렷하게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 때 원화절상률, 선진국보다 낮았다

필자의 이런 설명에 대해 고환율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정부관료들은 비교시점인 2008년 초 우리나라 환율이 지나치게 낮았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8년 초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현 지식경제부 장관은 당시 환율이 지나치게 낮다며 인위적으로 환율인상을 유도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과연 2008년 초 우리나라 환율이 지나치게 낮은 상태에 있었을까. 당시 필자는 한국은행이 소개하고 있는 주요 20개 통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절상률을 표로 만든 적이 있는데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프레시안

한국은행이 소개한 20개 통화 중 고정환율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14개 통화의 대미환율 변동률을 살펴 보면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우리나라 원화의 절상 폭이 결코 특이하지도, 과도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3년 2월과 2008년 2월 사이 5년간 14개 통화의 대미환율 상승률은 평균 -34.7%이었다. 이를 미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절상률로 해석하면 그것은 34.7%가 된다. 반면 원화가치 절상률은 26.6%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던 당시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제관료들은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중국에 비해 과도하게 절상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 또한 근거없는 것이었다. 1998년 이후 2005년 6월까지 중국의 위안화는 1달러당 8.277위안으로 거의 일정하게 미국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었고 2005년 7월에 가서야 중국 통화당국의 정책 변경으로 미달러화에 대한 변동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당시 경제관료들처럼 2년 8개월간의 중국 위안화의 가치변동률과 5년간의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 변동률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우리나라 원화가치는 미달러화 대비 26.6% 절상되었고, 중국의 위안화는 2005년 6월과 2008년 2월 사이 2년 8개월간 16.4% 절상된 바 있다.

고환율 고집하는 정부관료들의 독선이 경제를 망친다

정부 관료들은 왜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고환율 정책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여전히 그들이 수출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이 국민 모두가 동반성장하는 균형성장전략보다 더 우수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불균형 성장전략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증명할 자료는 많다. 다만 이 글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어느 중견 연구원의 글을 빌려 고환율정책의 허점을 드러내 보기로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번순 연구위원은 2008년 4월 25일 <세계일보>에 실린 '수출만능 환상서 깨어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당시의) "환율 논쟁을 보면 정책입안자들이 여전히 개발연대에서부터 내려온 수출 중심의 철학을 의심하지 않은 채 '수출은 선(善)'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질타했다.

박 위원은 왜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비판하며 "수출만능 환상서 깨어날 때"라고 주장했을까. 그는 그 이유가 "수출이 증가해도 국민의 후생이 저하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수 부진 탓에 수출기업이 이익을 국내에 투자할 기회는 많지 않"고 또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가계소득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내수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의 이런 생각은 필자와 정확히 일치한다.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무역의존도가 80% 내외라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강변하지만, 무역의존도라는 개념은 국제적으로 전혀 통용되지 않는 조잡한 개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출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 35% 넘기 어렵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창출한 총부가가치액은 920조 원이었고, 그 중 제조업 부가가치액은 256조 원이었다. 부가가치액만으로 따진다면 제조업 비중은 27.9%에 불과하고 수출 제조업 비중 또한 25%를 넘어서기 어렵다.

물론 어떤 산업의 경제적 비중을 부가가치 비중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부가가치 비중과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전산업의 실질부가가치액이 증가할 때 제조업의 부가가가치가 이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를 나타낸다.

*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 = (제조업의 실질부가가치 증가액/전산업의 실질부가가치 증가액) x 100

이 공식에 따라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을 산출해 보면 1991년과 2000년 사이에는 연평균 27.2%로 나타나고 2001년과 2010년 사이에는 41.0%로 나타난다.

수출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어느 정도일까. 2000년대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연평균 41.0%였기 때문에 수출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35%를 넘어서기 어렵다.

물론 수출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을 부가가치액만으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수치로 측정되지 않은 기여도, 예컨대 해외시장 개척 효과, 생산기술 제고 효과 등 무형의 기여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2000년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 반영된(=부가가치액으로 측정된) 수출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35%를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머지 65%의 기여율은 어느 부문에서 창출되었을까. 주로 내수산업에서 65%의 기여율이 창출되었다.

수출보다 물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 ⓒ뉴시스
물론 그렇다 하여 내수만 중시하고 수출은 경시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균형있게 발전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이 지나치게 수출만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관료들의 과도한 수출 편향은 서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0년대에는 개인과 기업소득이 각각 연평균 13.1%, 12.7% 증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기업소득이 연평균 12% 증가한 반면, 개인소득은 6% 증가하는데 그쳤다. 정부가 과도하게 수출편향적인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진보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 지식인들도 '성장보다 물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선에 사로잡힌 경제관료들이 새겨 들어야 한다. 경제관료들이 독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거시경제 지표가 좋아져도 국민들의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문제는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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