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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의 자부심 되찾고 싶다. 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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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맨'의 자부심 되찾고 싶다. 그 방법은…" [인터뷰] 삼성노동조합 박원우 위원장, 조장희 부위원장
소년은 말썽꾸러기에 사고뭉치였다. 어른들은 늘 "언제 철들래"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 어른들이 반색을 했다. "사람 됐다"고 했다. 청년이 된 그가 용인자연농원(현 삼성에버랜드)에 취업하면서였다. 그의 고향이 바로 경기도 용인. '삼성시'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삼성 직원'은 '반듯한 젊은이'라는 보증수표였다. 주변의 눈길이 뿌듯했다. 그게 1995년이다.

놀이동산에서 하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즐거울 때가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이 많아졌다. 속에 있는 이야기는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렇게 했는데, 회사에선 결국 사고뭉치 취급이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불합리하다 싶은 점, 잘못이다 싶은 점을 따져 묻는 게 왜 잘못인가. 회사가 군대인가.

'노동조합'이라는 데 관심이 생긴 게 그 무렵이었다. 노동자가 할 말 하고 살려면,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삼성에서 노조는 '금칙어'였다. 알아보니,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 대신 노사협의회가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 그는 노사협의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 유명무실한 곳이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출마해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다. 2002년부터 내리 6년 동안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노사협의회 활동을 하다 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회사 간부들이 노사협의회 위원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회사의 불합리한 점들을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사협의회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결국 답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자인 그가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그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사내전산망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글을 써서 올렸다. 20여 분만에 삭제됐다. 하지만 울림은 컸다. 그리고 지난 12일, 삼성노동조합이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날 노조 부위원장으로 뽑힌 조장희 씨 이야기다.

그는 한순간에 유명인사가 됐다. 삼성의 노동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던 보수언론 기사에도 이름이 실렸다. 물론, 우호적인 기사만 있지는 않았다. 14일자 <문화일보>는 삼성에버랜드 관계자의 말을 빌어 조 부위원장이 회사에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조 부위원장은 삼성노조 창립총회 하루 전인 지난 11일 회사 감사팀으로부터 인사위원회 참석 통보를 받았다. 회사가 주로 문제 삼는 점은 세 가지다. 조 부위원장이 회사 임직원 가운데 일부의 전화 번호 등을 유출했다는 점, 구매 관련 자료 등 회사 문서 일부를 유출했다는 점, 그리고 이른바 '대포차'를 몰다 경찰에 적발돼 불구속 입건됐다는 점 등이다.

조 부위원장은 이들을 크게 틀리지 않은 사실로 인정했다. 하지만 <문화일보>의 보도는 터무니없다고 이야기했다. 우선 임직원 신상정보와 회사 문서는 외부인에게 유출하지 않았다. 회사 컴퓨터에 있던 정보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네이버' 메일 주소로 보냈을 따름이다. 노조 설립 이후, 그가 회사 임직원들에게 접근할 길이 통제되는 상황에 대비해 연락처를 확보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네이버' 메일에 저장된 내용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않았다. 회사 컴퓨터에 있던 정보 가운데 일부가 '네이버' 메일 서버에 저장된 셈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았으므로 '외부 유출'로 보기는 무리다. 삼성에버랜드의 사내 전산 시스템은 보안이 철저해서 '네이버' 메일 등으로 회사 자료를 보낼 경우 복사, 출력, 화면 캡처 등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대포차'(등록된 소유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차량) 이용이다. 이 대목에 대해 그는 "노조에 정말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후회하고 반성했다고 한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아주 사소한 잘못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 느슨하게 생각했다는 게다.

'대포차' 이용 사실은 회사 측에 의해 악의적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 그는 차량을 훔치거나 번호판을 위조한 사실이 없다. 친구가 맡겨놓은 차량을 대신 몰고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난차량이었다. 조 부위원장을 조사한 경찰 역시 이런 사실을 확인해 줬다.

하지만 14일자 <문화일보> 기사는 회사 측 입장에 치우친 것이었다. 이런 내용이다. "에버랜드 측은 '조 부위원장은 사규 위반 외에도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가 현행범으로 구금돼 현재 형사입건된 상태'라며 '이는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밝혔다. 사측 관계자는 '지금 그룹 전체가 사소한 부정도 일벌백계하는 상황인데, 조 부위원장이 노조설립을 통해 이를 피해가려고 한 것 같다'며 '사실상 '방탄노조' 성격이 짙다'고 주장했다."

보도가 나온 날, 조 부위원장과 박원우 위원장, 김영태, 백승진 조합원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은 '방탄노조'라는 회사 측의 주장에 격분했다. 고작 '대포차' 이용 사실을 덮기 위해 '무노조 삼성'에 맞서는 모험을 했겠느냐는 게다. 또 회사의 주장대로라면 오로지 조 부위원장 개인을 위한 노조 설립인데, 다른 조합원들이 인생이 걸린 위험을 무릅쓰고 동참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조 부위원장이 삼성 노조의 필요성을 호소한 글을 사내 전산망에 올린 게 지난해 1월이다. 반면, '대포차' 이용이 경찰에 적발된 것은 올해 6월이다. '대포차' 이용을 덮기 위해 '방탄노조'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4일 저녁, 경기도 용인시내 모처에서 삼성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모임 장소가 회사에 알려질 위험 때문에 이들은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회사가 겨눈 징계의 칼날이 조 부위원장을 넘어 다른 조합원들까지 향하는 분위기지만, 이들은 자신만만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편집자>


"노사협의회의 한계에 공감하는 삼성 노동자 꽤 있다"

프레시안 : 삼성노동조합 창립총회 이후 이틀째다. 어려운 점은?

▲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 ⓒ프레시안(성현석)
박원우 위원장 :
당장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회사에서 휴가를 내주지 않아서, 활동에 제약이 있다. 사규에 보장된 휴가를 쓰겠다는 것인데, 결재가 나지 않는다. 조합원 네 명은 모두 육아휴직 대상자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 미승인 상태다. 연차휴가 역시 반려됐다. 이는 부당한 일이다. 일단 노조 활동은 퇴근 이후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노조 설립 필증이 나오면, 더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박원우 : 대략 3년 전쯤부터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라는 점이다. 삼성에는 노조 대신 노사협의회가 있다. 하지만 노사협의회는 한계가 분명하다. 삼성에버랜드 리조트 부문의 경우, 성수기와 비성수기 사이에 인력 수요 차이가 크다. 회사는 당연히 인력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성수기에 노동 강도가 너무 높아진다. 또 무리한 전환배치가 낳는 문제도 있다. 지금은 이런 문제에 대해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다.

노조 설립에 대해 회사는 놀라지 않았다. 우리 네 사람이 노조를 만들려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국 회사도 막지 못했다. 삼성에서 노조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프레시안 : 삼성노동조합 설립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주변 반응이 어떤가.

박원우 :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삼성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그렇다. 노조 설립 필증이 나오면 가입하겠다는 이들이 벌써 여럿이다. 놀라운 것은 다들 생각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다들 기존 노사협의회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사협의회에선 노동자들이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니까 회사의 불합리한 점들이 도무지 바뀌지가 않는다.

전화도 안 받는 '알박기' 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 일부 언론은 삼성노동조합에 대해 '찻잔 속 태풍', '초미니 노조' 등으로 보도했다.

조장희 부위원장 : 노조 설립을 준비하면서, 노동계 선배들을 만났다. 노동조합 간부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런데 생각이 다른 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분들은 삼성에서 일한 적이 없으니까, 조금 피상적으로 접근한다. 삼성 노동자들의 특성을 잘 모른다. 대기업에서 민주노조가 처음 생길 당시에는, 노동조합을 만들기만 하면 과반수가 참여했다고 한다. 삼성에서 당장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이라는 전망은 틀렸다고 본다.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분명히 많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차근차근 모아가겠다.

프레시안 :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삼성 에버랜드 노조'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삼성그룹 전체를 포괄하는 노조로 방향이 바뀌었다.

조장희 : 언론에 보도된 대로다. 지난 7일자 <매일노동뉴스>가 삼성에버랜드에 생긴 '알박기 노조'에 대해 처음 보도했다. 몹시 당황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노조가 회사와의 독점 교섭권을 갖는다고 한다.

회사와의 독점 교섭권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택한 게 '초기업 노조'다. 불리한 조건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본다. 우선 '유령노조'가 독점 교섭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현행 노동법의 맹점을 개혁하는 운동을 할 것이다. 이른바 '알박기 노조'의 위원장이 누군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인사 업무를 오래 맡았던 임 모 차장이 위원장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임 차장은 우리가 건 전화도 받지 않는다. 이런 노조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나.

물론, 우리에겐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존재 근거다. 삼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겠다.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우리가 할 일을 찾아가겠다. 많은 삼성 노동자들이 '무노조 경영'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다. 우선 할 일은 이들에게 '노조가 생기면 노동자에게 좋은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버랜드, 정규직 고용 늘려야"

프레시안 : 기자도 궁금하다. 삼성 노조가 생기면, 삼성 노동자들이 어떤 혜택을 누리게 될까.

조장희 : 내가 일하는 에버랜드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에버랜드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많이 쓴다. 그런데 에버랜드는 서울에서 떨어져 있어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출퇴근하며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를 쉽게 그만두곤 한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외국의 유명 놀이동산과는 다른 점이다.

또 아르바이트라는 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군 입대, 복학 등의 일정 때문에 지속성이 없다. 그런데 정규직 입장에선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자주 바뀌면 힘든 점이 많다. 실제로 불만스런 목소리가 나온다. 일을 계속 새로 가르쳐야 한다. 실수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정규직을 늘리고,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을 줄이는 게 옳다고 본다. 사회적으로도 이 방향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회사 측이 알아서 이렇게 할 가능성은 없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프레시안 :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집해 왔다. 이 과정에서 온갖 불법 행위가 벌어졌지만, 막무가내였다.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은 신앙에 가깝다. 따라서 삼성노동조합의 앞날 역시 험난해 보인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조장희 : 해고를 각오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도 감수할 것이다. 다행히 아내가 지지해준다. 아내가 고맙다.

박원우, 김영태 조합원 : 우리는 아내가 삼성에버랜드 직원이다. 회사에서 만나서 결혼했다. 그래서 '삼성에 왜 노조가 필요한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노조 설립 소식이 알려진 뒤, 회사 관리자가 아내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고 한다. 불쾌한 말도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노조를 지지한다. 물론, 처음에는 걱정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다.

"'대포차' 문제는 잘못, 깊이 반성한다"

프레시안 : '대포차' 문제를 회사가 거론한다.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갓 태어난 삼성노조에 대한 '흠집 내기'로 보인다. 그러나 '대포차'를 몬 사실 자체는 분명히 잘못이다.

조장희 : 그렇다. 노동조합 동지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걱정하고 반성했다. 다만 회사 측의 왜곡된 선전은 바로잡혔으면 한다.

박원우 : 회사의 대응이 묘하다. 조장희 부위원장이 '대포차'를 몰다 적발된 사실이 <연합뉴스>에 보도됐다. 실제로 적발된 것은 6월인데, 기사는 지난 8일에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알박기' 노조 설립 사실이 보도된 직후다. <연합뉴스> 기사에는 조 부위원장이 '대기업 직원 조 모 씨'로 돼 있다.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취재한 기사인데, 네 문장으로 된 짧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회사 관리자가 조 부위원장을 불렀다. 그리고 동료 직원들에게 기사 내용을 회람시켰다. 관리자가 이 기사가 나온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뉴스를 모니터링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기사에는 '대기업 직원 조 모 씨'라고만 돼 있는데 말이다.

프레시안 : 회사 측은 앞으로도 여러 방식으로 '흠집 내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조장희 : 노동조합 간부는 작은 잘못도 허용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잘못이 있으면, 끊임없이 반성하겠다. 또 어떤 비판이든 감수하겠다.

"삼성이 경영위기 맞았을 때 노조 없으면, 노동자만 고통 뒤집어 쓴다"

프레시안 : 과거엔 회사는 노동자에게 도덕성을 강요하지만, 노동자는 회사가 비리를 저질러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갖고 있는 자부심이 깨져서 상처를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노조가 생기면, 이런 구조도 바뀔 듯하다.

▲ 조장희 삼성노동조합 부위원장ⓒ프레시안(성현석)
조장희 :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 삼성이 빼돌린 비자금이 조 단위였다.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면서 만들어 낸 부(富)가 그렇게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됐을 때,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삼성이 사실상 부도에 가까운 상태가 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 노동자들은 이런 사실도 몰랐다. 회사 관리자가 알려주는 내용만 접할 뿐이다.

삼성이 지금은 경영 실적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히 실적이 좋은 기업은 없다. 언젠가는 삼성도 경영 위기를 맞기 마련이다. 그때 노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삼성 경영진은 직원을 자르는, 손쉬운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할 게다. 이 경우, 노조가 없다면 노동자는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노조가 있으면 달라진다. 경영진은 직원을 자르는 손쉬운 방법 대신, 경영 혁신에 몰두하게 된다. 삼성에 노조가 꼭 필요한 이유다.

"비판과 견제 없으면, 누구나 타락…이건희와 노동자, 함께 깨끗해지자"

<삼성을 생각한다>에 묘사된 이건희 회장 일가의 다양한 비리에 대해 오랫동안 곱씹어봤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비리가 생겼을까.

그건 아닐 게다. 진짜 문제는 비판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봤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든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타락하게 돼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노조를 반드시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노조 간부인 나도 끊임없이 비판 받고, 반성 하겠다. 그러니까 삼성 경영진도 똑같이 비판받아 달라. 최근 삼성은 회사 안에서 사소한 부정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군기를 잡는다. 그렇다면,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 달라. 그게 노조의 요구다. 노동자도, 경영진도 그렇게 해서 함께 깨끗해졌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이 삼성노조를 보는 눈도 호의적이 되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지난해 삼성전자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 설립을 호소하는 글을 쓴 뒤 해고된 박종태 씨도 삼성노동조합에 동참할 뜻을 보였다.

조장희 :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 노무사에게 확인해보니,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 설령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함께할 것이다. 박종태 선배 역시 우리와 문제의식이 같다. 박 선배 역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다 노사협의회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도달했다. 누가 가르쳐서 된 게 아니다. 우리와 똑같다. 박 선배는 노사협의회에서 노동자들 편에서 목소리를 내다 회사의 눈 밖에 났다. 그리고 심한 마음고생을 해서 병이 생겼다. 박종태 선배와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 노사협의회 활동을 하다 한계를 느꼈던 다른 선배들 역시 동참하리라고 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노동자가 힘 합쳐서 절을 바꾸자!"

프레시안 : 처음 삼성에 입사했을 때는 다들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박원우 : 그렇다. 조장희 부위원장을 뺀, 나머지 세 조합원은 모두 주방장이다. 조리 업무를 오래 했다. 내 경우는 다른 곳에서 일하다 삼성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게 오래가지 않았다.

조장희 : 나도 마찬가지다. 회사 안에서 불합리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을 듣곤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절에 문제가 있으면 절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짓 아닌가. 나는 노사협의회 위원만 6년을 했다. 마음만 조금 달리 먹으면, 회사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다. 삼성은 노사협의회 위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준다. 하지만 '절을 바꿔야 한다'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회사와 부딪히는 길을 택했다.

"삼성은 왜 '부끄러운 일터'가 됐나자부심 되찾고 싶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삼성이 범죄조직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내게, 그리고 많은 노동자에게 삼성은 부끄러운 일터가 됐나. 이게 답답했다. 얼마 전, 이건희 회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제품을 함께 생산한 협력업체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자는 주장을 이 회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회장과 경영진이 보기에, 회사가 거둔 이익은 오로지 자신들이 잘 해서 낸 성과일 따름이다. 함께 기여한 이들의 몫은 그들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바뀔 리는 없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삼성은 결코 범죄조직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나서면, 얼마든지 자랑스런 일터로 바꿀 수 있다. 삼성에 처음 입사했을 때 느낀 자부심, 그걸 되찾고 싶다. 방법은 노동조합뿐이다.

▲ 삼성노동조합 조합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장희 부위원장, 세 번째가 박원우 위원장. ⓒ프레시안(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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