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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이전에 '희망퇴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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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이전에 '희망퇴직' 있다! [4차 희망버스, 다시 시작·①] '희망'버스는 사기다
희망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이번 한진중공업에서도 희망버스보다 일찍이 희망퇴직이 있었다. 비단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IMF 이후 무수히 잘려나간 노동자들 중에 도대체 어떤 이들이 명예롭게 명예퇴직을 했는지, 희망퇴직자들이 무슨 희망을 갖고 일터를 떠났는지 모르겠다. 희망이란 말은 참 얄궂은 말이다. "네가 우리의 희망"이라거나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말은 대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상책이다.

"희망버스의 '희망'은 사기"

2011년 새해가 밝은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김주익 열사의 추모 동영상으로 처음 알게 되고 <소금꽃나무>란 책을 읽으며 열혈 팬이 되었던 김진숙 씨가 다른 곳도 아닌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나는 희망이란 단어 대신 고행, 순교 같은 단어가 불현듯 떠올라 망측해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송경동 시인의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이야기를 읽고 다시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또한 희망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85호 크레인에서의 죽음과 절망, 패배의 이야기였다. 이 죽음과 절망과 패배를 멈추기 위해 다만 우리의 적은 힘이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냐는 시인의 말이 공명을 일으켜 '희망버스'가 생긴 줄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희망버스는 그 출발이 절망이며 패배한 역사를 경로로 삼는 그래서 좀 사기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1차 희망버스는 장인어른 생신과 겹쳤고 2차는 어머니 칠순 날이라 타지 못했다. 3차도 뒤늦게 내려갔다가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술잔만 빨다가 서둘러 올라왔다. 무박 2일이었지만 '희망버스는 절망버스'라는 머리띠를 두른 영도주민의 욕설과 삿대질, 해방정국에서의 백색테러를 떠올리게 하는 어르신들의 '빨갱이 사냥'을 목격했다.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주택가 골목을 누비는 바람에 영도 주민들에게 큰 폐를 끼치기도 했지만 열대야에 무료했던 일군의 영도주민은 많이들 반겨주시기도 했다.

며칠 전 방바닥을 뒹굴다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다룬 KBS '추적60분'을 봤다. 중간쯤이었을까, 덩치가 산 만한 노동자 한 명이 현장에서 걸어 나오며 "살려 주세요"라고 울먹이는 장면이 나왔다. 경찰이나 용역에 손발이 들려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곤봉에 죽도록 두들겨 맞는 것도 아닌데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제 발로 걸어 나오는 그 노동자의 살려 달라는 말이 참 생뚱맞았다. 그런데 뒤이은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살려 주세요, 우리 진숙이 누나 좀 살려 주세요."

그 순간 나는 정리해고로 십 수 명이 죽은 쌍용자동차가 떠올랐다. 아니 죽음의 행렬 속에 무력하게 무얼 해야 할지 몰랐던 내가 TV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김주익이 죽고 살아도 산 사람같이 살 수 없었던 김진숙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먼 훗날 내 아이가 "그때 아빠는 뭐 했어?"라고 물어볼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적어도 내게는 희망버스는 면피버스인 셈이다.

'긴박한 경영상 위기' 이전에 '인간 존엄상 긴박한 필요'

어떤 교수 양반은 자본주의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몇 개월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회장님은 정리해고만큼은 물러설 수 없는 경영권이라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고 3년 간 영업실적이 없음에도 월급을 올려 받은 임원들은 외부 세력이 개입해 문제를 어렵게 했다며 성화다. 많이 억울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법률은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서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못 박아 놓았다. 그 판단은 법원이 한다. 법원에서는 탐욕을 죄일까 아닐까?

뒤늦게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린다고 하지만 큰 희망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냉정하게 말해 4차 버스도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버스를 탈 생각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거기에 '인간 존엄과 관련한 긴급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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