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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희망버스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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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희망버스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26>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버스로!
지난 7월 20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사망했다. 야간작업 중 지게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던 중 콘크리트 구조물에 부딪히는 사고로 그만 배수로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필리핀 노동단체들에 따르면 2006년 이래 수빅조선소에서 발생한 32번째 사망사고라 한다. 이번에 고인이 된 노동자 역시 한진중공업의 정규직이 아니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8월 10일,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마침내 오랜 해외체류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3년 내 경영을 정상화하여 해고자를 재고용하겠다, 희망퇴직자 자녀 2명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 전액 지원하겠다.…" 하지만 정리해고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단호한 입장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에서,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거리에 내몰려야 하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의 궁금증

이미 학계를 비롯해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근거도 없고 부당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니, 굳이 전문적인 지식들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경영이 어려워진다고 떠들고 있는데, 그렇다면 수백 명의 용역 경비들을 고용한 수십억의 돈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선전하기 위한 수많은 언론플레이 비용은 또 얼마나 들었는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걸어놓은 수많은 가처분과 손해배상소송을 위해 고용한 변호사들과 법정 비용은 누가 감당했는가? 조남호 회장의 장장 2개월에 걸친 해외체류와 여행 경비는?

오로지 정리해고를 밀어붙이기 위해 조남호 회장이 뿌린 돈만으로도 정리해고 대상자 400명을 해고하지 않고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규모이다. 아니, 정리해고를 발표하자마자 주주에게 주식배당을 했던 170억 원의 돈이면, 40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들에게 1인당 4000만 원씩 지급하고도 10억 원이 남는다. 이러고도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

조남호 회장은 희망퇴직자 자녀 2명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단순계산만 동원해 봐도 희망퇴직자 1인당 1억 원이 넘는 돈이다. 줄잡아 수백억 원이 소요되는 학자금을 뿌릴 수는 있어도 정리해고 철회만은 절대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비용만이 아니다. '희망버스 운동'이 시작되면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부터 철회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울려퍼지고 있다. 이러한 운동과 움직임 앞에서 한진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비용만 갖고도 정리해고자 대상자는 물론이요 먼저 잘려나간 수많은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의 고용을 3년 이상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3년 내 경영 정상화, 이후 재고용 추진'이라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한진 자본과 조남호 회장이 지금 회사가 거덜 날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어서 "정리해고 철회 절대 불가"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희망버스 운동'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 운동의 성장이 자칫 미조직 노동자들의 의식 성장과 조직화를 불러올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3차례의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하면서 적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버스에 함께 탑승했다. 버스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삶의 애환을 토로하면서, 그리고 영도조선소와 거리에서 탑승객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한진 자본의 파렴치한 작태를 낱낱이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직장에 출근해서 가족·동료들과 자신의 희망버스 탑승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애초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에 연대의식을 갖고 출발한 희망버스는, 그녀가 가장 강조하고 목 놓아 외쳤던 "정리해고 철회!"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점차 희망버스 운동은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해 이제 비정규직 문제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 미조직 비정규직 탑승객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그저 버스에 탑승했을 뿐인 미조직 노동자들이 왜 두려울까?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내걸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거기에는 지난 1년 사이에 벌어진 중요한 정세 변화가 놓여 있는데, 이명박 정권 초기와 달리 최근 미조직 노동자들은 조금의 틈과 공간만 열리면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으로 진출하려는 경향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약진을 보이자, 급식 조리원을 비롯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몇 개월 사이 1만 명 넘게 노동조합으로 몰려들었다. 불법파견이니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하나에 현대차 비정규직 2천여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조에 가입했고, 무려 25일 동안 울산 1공장 생산을 중단시키는 파업을 벌이며 대자본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기도 했다.

올해 들어 홍익대에서 170여 명의 청소·경비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해고가 벌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연대의 손길이 답지했다. 이러한 자발적 연대의 움직임이 어쩌면 희망버스 운동의 중요한 모태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홍익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성공적으로 일자리를 되찾게 되자, 1달도 되지 않아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법정최저임금을 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쾌거를 만들기도 했다.

거의 패배했다고 생각했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이 희망버스 운동으로 기사회생 했다. 그리고 이 열린 공간으로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버스 운동이 다시 한 번 학교 비정규직, 현대차 사내하청,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같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진출을 불러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열린 공간과 틈으로 진출하자, 비정규직들이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양극화 때문에 폭동까지 일어난다. 한국도 양극화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놔두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까봐 걱정이 된다. … 재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해결하면 쉬울 일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풀 수 없게 된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갈 것."

희망버스 탑승자의 말이 아니다. 이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쏟아낸 말이다. 저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들이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올해 재벌 계열사들의 임금교섭은 '돈 잔치'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수준이다. 10만 원에 가까운 기본급 인상은 보통이고, 성과금과 타결금을 합해 1000만 원 이상을 지급하기로 한 곳도 부지기수이다. 한진중공업을 제외한 대형 조선소들 거의 모두가 정규직에게 1000만 원 안팎의 성과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특히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비 10~20% 가량의 성과금을 받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하청업체들이 원청으로부터 받은 돈 일부를 떼어먹고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아니 사실 정규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데 어찌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당장 투쟁을 벌이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가슴은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벌어진 이후, 영도조선소 현장에서는 한여름 땡볕에서 주어지는 오침 시간마저 사라졌다.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딸랑 얼음물 한 병 갖고 섭씨 40~50도를 오르내리는 철판 위에서 작업을 강요받고 있다.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등허리에는 매일매일 '소금꽃'이 피고 있다.

고용불안 역시 엄청나게 가중되고 있다. 조선소 하청업체에는 저마다 '물량팀'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안정적 고용보장을 하지 않고 일정 물량(일감)만 끝마치면 해고되는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사실상 건설업종의 십장(오야지) 제도를 조선소에 도입한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내하청도 대부분 물량팀으로 전환되어 며칠 일하다 해고되고 며칠 지나 재고용되는, 정말 불안한 삶을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불만들이 터져나올 분출구를 찾지 못할 경우 정운찬 전 총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런던의 폭동 사태가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에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출구로 희망버스 운동이 존재하고 있다. 이 열린 공간으로 정당한 분노가 표출된다면, 미조직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밑바닥부터 연대망을 건설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리해고 못지않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건설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신호탄이 될 것이다. 특히 조선업종의 경우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비율이 정규직의 몇 배에 달할 정도이다. 정규직 없이 배를 만들 수는 있지만, 비정규직 없이는 배를 만들 수가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에게도 희망이 되는 '희망버스'를

희망버스 운동의 태동은 한진중공업 자본의 정리해고 공격, 그리고 그에 맞선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이었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문제보다는 정리해고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그러나 애초부터 희망버스 운동이 정리해고 문제에 갇히도록 설계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운동이 정리해고 대상자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운동이 되도록 애쓰지 못한 나 스스로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입만 열면 비정규직 문제를 목 놓아 외쳐왔던 나부터도, 지난 2년 동안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2000여 명이 잘려나갈 때 침묵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전에 나는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희망버스에 탑승할 것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실제로 버스에 몸을 실었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과 용기를 찾아가고 있다. 그들의 눈빛에서 분명한 '가능성'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다가올 4차 희망버스에는 조선소 사내하청만이 아니라 지역과 업종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이도록 해보자.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수는 희망버스에 탑승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고, 몇 만원은 족히 깨지는 버스 비용을 대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지와 조건이 가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도 함께 모일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자리에서 희망버스조차 탈 수 없는 더 열악한 비정규직 동료들의 애환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눈빛에서 가능성과 희망이 빛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에게도 희망을 주는 희망버스를 만드는 것은 비정규직 스스로의 작업이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희망은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 1만 명에 가까운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콘서트를 여는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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