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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선진 시스템'은 망했다. 그런데 한국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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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선진 시스템'은 망했다. 그런데 한국은 왜… [한·미FTA, 질주를 멈춰라!·①] "FTA 체결, 딱 1년만 기다려 보자"
미국 의회가 12일 밤(한국 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법안 처리에 들어가고, 한국 의회도 이달 안에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고집하고 있다. 4년 반을 끌어온 한미FTA 의회비준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이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12일부터 일인시위를 하며 <프레시안>에 릴레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송기호 변호사 등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도대체 뭐가 국가경쟁력이고 국익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주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미국 의회에서도 조만간 비준이 완료될 예정"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은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시급히 처리돼야 할 사안"이니 "우리 국회에서도 국익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맞다. 미국 의원들은 2007년 4월 한미 FTA가 체결된 이래 두 번의 재협상을 통해 챙길 걸 다 챙겼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수출 밖에 경기회복을 할 방도가 없으니 FTA에 목을 매다는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의회에서 연설 한번만 하게 해 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이익을 좀 챙겼는지? 또 우리 경제가 그동안 수출에 목을 매단 결과가 그리도 바람직했는지? 예컨대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물가를 뒤흔드는데 재벌기업의 천문학적 이익이 우리 국민들 살림살이에 좀 도움이 되었는지?

이 대통령은 "조만간 한미 FTA가 비준되면 우리는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과 유럽연합(EU),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로,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경제영토를 이렇게 따진다면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는 멕시코였다. "천국은 너무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까워."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2009년 -7.1%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다. 미국과의 FTA가 발효된 지 이제 18년째, 멕시코의 국가경쟁력은 얼마나 높아졌고 국익은 또 얼마나 신장됐는가? 아메리카 대륙의 복지선진국이었던 캐나다는 또 어떻게 되었는가? 놀랍게도 캐나다는 대표적 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순위에서 한국에도 뒤진 나라가 되었다(멕시코는 부동의 1위, 미국은 4위이다). 이런 미래를 위해 번역본도 믿을 수 없는 한미 FTA 비준을 이리도 서둘러야 하는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들은 분명 시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농민, 자영업자 등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의 선진 시스템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애초에 한미 FTA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현재 삼성 사장)은 2005년 5월,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현종은 자신의 자서전 격인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서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p59)라고 기술했다.

맞다. 2005년 3월 내가 만난 대통령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그 미국식 시스템, 특히 서비스산업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세계경제위기이다. 지난 30년을 세계를 지배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블리웠던 이 시스템은 앞으로 계속 무너져 나갈 것이다. 한국의 기획재정부에는 아직도 금융허브의 꿈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의료 민영화를 먼저 추진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미 FTA가 비준되면 장차 건강보험이 없어져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도 우리는 현재 상태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그렇게 무섭다.

미국과의 단교를 각오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렇다. 미국과 정말 단교하고 싶은가? 딱 1년만 미국에서 무슨 일어 벌어지나 지켜보자. 2007년부터 정부는 즉각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5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미 FTA가 발효돼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기획재정부 주장대로 리만 브라더스를 인수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과 FTA를 먼저 맺겠다고 할 얼빠진 나라도 없으니 남들보다 먼저 FTA를 맺어야 한다는 정부의 안달은 그야말로 기우다. 과연 미국식 시스템이 그리도 좋은 건지 딱 1년 더 기다리는 게 그리도 어려운가?

1년 더 기다리면 우리나라가 망할까?

▲ ⓒ한미FTA 저지 범국본
금융이나 공공서비스, 의료나 교육분야의 국내 규제를 '개혁'하는 것, 즉 규제를 풀고 민영화하는 게 정부의 최종 목표였지만 국민에게는 수출이 대폭 늘어나서 GDP가 6%나 증가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과연 그럴까? 이미 한-EU FTA가 발효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역흑자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물론 정부 주장대로 선진국과의 FTA가 우리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1년만 더 기다려 보자. 한-EU FTA가 우리의 생산성, 수출, 그리고 성장률을 그렇게 많이 증가시킨다면 그 때 한미 FTA도 발효시키자.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과연 우리나라에선 일어날지 한번 지켜보자. 만일 한-EU FTA가 한국의 무역흑자를 대폭 증가시키고, 정부 주장대로 GDP를 매년 0,6% 이상 증가시킨다면, 그리하여 어느 순간 6% 추가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난 아무 말 않고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하겠다.

한미 FTA를 맺지 않으면 단 1년 만에 우리나라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몇%나 될까? 참여정부 때 한미 FTA를 목청껏 외쳤다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 중 그 어느 누가 1년 연기에 반대할 수 있을까? 내심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한다면, 그래서 한나라당이 적당히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면 나에게, 아니 국민에게 그래야 마땅한 이유를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 한나라당 의원이라도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있다면 이 정도의 신중함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꼭 미의회에서 대통령이 몇분 연설하는 대가로 이런 정도의 침착함마저 버려야 하는가?

내 지식으로는, 그리고 현재 상황에 비춰 봐서는 한미 FTA는 우리 앞날에 어마어마한 걸림돌, 아니 낭떠러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천보, 만보 양보하겠다. 이 어마어마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또 미국경제가 갑자기 되살아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니 딱 1년만 기다려 보자. 한미 FTA에 버금가는 한 EU FTA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미국의 그 '선진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결정하자. 지금 미국 월가를 점령한 수 많은 목소리를 들어보라. 미국의 '선진 시스템' 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딱 1년을 더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1년만 더 기다리자는데 그것도 안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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