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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심이 사람들 목숨을 살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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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심이 사람들 목숨을 살리는 겁니다" [희망광장 릴레이 인터뷰·③]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지난 2011년 우리 사회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희망버스' 운동으로 뜨거웠다. 희망버스 운동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국회 청문회로 불러들이는 성과를 거뒀고, 정리 해고를 '사실상' 철회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갈등을 빚는 투쟁사업장들은 많다.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재능교육, 콜트-콜텍이 대표적이다. 특히 재능교육과 콜트-콜텍은 농성 5년째를 맞는 장기 투쟁 사업장이다. 그밖에 언론에서 잊혀지는 코오롱, 파카한일유압, 유성기업의 싸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리해고 반대와 비정규직 투쟁에 다시금 불씨를 지펴보자는 문제 의식에서 이번에는 '희망광장'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시청 광장에 텐트 둥지를 튼'희망광장 기획단'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 릴레이 인터뷰를 보내왔다. 세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다. <편집자>


- 희망광장 릴레이 인터뷰
김미화 "마음 독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어요"
박래군 "'쌍용차 파업' 진압이 경찰의 '베스트 5' 사례?"

"폭력이란 것이 왜 무섭냐면 그 순간에 방사능에 피폭되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심리 치유하는 정혜신 박사. 2008년 공장에서 농성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경찰과 회사가 행한 행위는 방사능 피폭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방사능에 쏘이면 디엔에이와 세포가 변형이 되듯,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가해진 폭력은 정신과 삶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 정혜신 박사. ⓒ희망광장 기획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희망광장)' 여드레째가 되는 날, 평택에 자리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정혜신을 만났다. 쌍용자동차 열네 번째 희생자 소식을 듣고 평택으로 달려온 정혜신은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꼬박 일 년이 지났다. 토요일마다 이곳에 찾아와 해고 노동자와 가족을 만나며 함께 울고, 함께 분노했다. 자그마한 몸의 정혜신이 억센 노동자의 거친 삶을 품기 시작했다.

정혜신은 물었다. "요즘 어떻게 사세요." 노동자들은 말했다. 나는 노동조합 간부이고, 어떻게 싸우고 있다는 걸. 정혜신은 다시 물었다. "그런 이야기 말고 요즘 어떻게들 사시느냐고요." 갑자기 노동자의 눈에서 굵고 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홀로 가슴에 품었던 응어리가 정혜신을 만나며 터져 나왔다. 와락을 찾은 이들은 결코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걸 소통과 공감을 통해 깨우쳤다. 자신의 삶에 어느 날 순간적으로 찾아온 방사능 피폭에서 차츰 차츰 새 살갗이 돋아나고 있다. 상처 입은 가지에도 새순이 움트듯.

"쌍용자동차 공장 안에서 77일간 싸우는 동안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기고, 너무나 날카롭고 극단적인 일이 벌어졌어요. 밤에 자지 못하게 계속 방패를 두들겨 공포를 일으키고,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었죠. 노동자들이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죠. 하지만 국가 공권력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고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죠. 이 힘이 와장창 깨놓고 싹 빠지면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되냐면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데 피해자만 남아 있는 상황인 거예요."

공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는 자신에게 공권력이라는 가해자 대신에 자신과 가족과 동료들을 미워하게 된다. 차츰 주변과 관계가 끊어지고 끝내는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유독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바로 국가 공권력이 훑고 지나간 살인적인 진압. 이 경험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한 채 싸워야 했던 '베트남 전쟁'과 같은 경험이라고 정혜신은 말한다.

말기 암 환자보다 에이즈 환자에게 자살이 높단다. 에이즈 환자에게는 "관계의 소멸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계의 소멸은 "사람에게 죽음과 같다"고 한다.

"관계가 끊기면 사는 게 아니라 죽음인 거니까. 왕따 당하면 사람이 죽잖아요. 고문당해서 목숨을 끊는 사람보다 왕따를 시키면 그 사람이 목숨을 끊을 확률이 더 높아요. 나는 이렇게 처절히 고통스러운데 세상은 내 고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완전히 끈이 끊어졌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렇게 되는 거죠."

ⓒ희망광장 기획단

해고는 단순히 일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해고를 겪는 순간 사회관계는 물론 인간관계마저 끊긴다. 지금 서울광장에는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하여 찬바람에도 비닐 덮인 천막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다.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훨훨 날 그날을 준비하는 누에고치처럼.

정혜신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만나면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필요성을 깨우쳤다. "임금투쟁 할 때나 집회를 보면 좀 딱딱하고 고지식하고 투쟁 일변도"라는 느낌을 가졌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게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그 싸움이 있기에 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보는 거죠. 이 집회가 없었으면 스물한 명이 아니라 더 죽었을 수도 있죠. 그 방식이 딱딱하네, 투쟁일변도네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죠."

자신의 속마음을 무장해제 하고 내비치고 싶은 상대, 정혜신. 그의 자그맣지만 야무진 입술이 움직이면 가슴속 응어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분노를 공감해주는 눈은 너무도 그윽해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절망의 시절을 버티는 이들에게 건네는 정혜신의 공감의 눈빛이 어두운 광장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정혜신은 '희망광장'에 시민들의 눈길이 잠시라도 머물기를 바란다.

"우리가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걸 시민들한테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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