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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세습의 기이한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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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세습의 기이한 계보학 [손호철 칼럼] 유명환, 김정은, 정의선, 현대차 노조
어제는 제121주년 세계노동절이었다. 노동절을 맞아 우리의 노동운동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으로 탄생한 민주노동운동이 현재 또 한 차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타임오프제 등 위기의 증후는 여러 가지지만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한 때 민주노동운동의 상징인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중의 하나였던 서울지하철 노조가 지난 주 조합원 투표에서 53%의 지지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물론 서울지하철 노조 내 일부조직은 이번 선거에서 공개투표에 준하는 투표부정이 전개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서울지하철 노조는 민주노총 가입을 규약으로 정하고 있고 규약의 변경은 재적구성원 과반수이상의 참석과 참석인원 2/3이상의 찬성을 결의하고 있어 과반수를 조금 넘는 53%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할 수 없다는 반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핵심사업장이었던 서울지하철 노조의 다수가 민주노총 탈퇴에 지지표를 던졌다는 것 사실 그 자체가 민주노동운동가 위기라는 징표이다. 특히 이는 곧 시행될 복수노조의 합법화와 함께 제3의 노총('국민노총')의 출범 등 노동계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위기의 징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민주노동운동의 도덕적 타락이다. 이와 관련, 최근 민주노동운동, 특히 민주노동운동의 메카이자 상징인 현대자동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그것은 유명환, 김정은, 정의선이다.

전혀 다른 세 사람이지만, 쉽게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세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신의 딸을 외교통상부에 특채로 취직시켜 공분의 대상이 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3대 세습,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현대차 최고경영자의 3대 세습과정에 있다.
▲ 지난해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현장. ⓒ프레시안(김봉규)

그런데 보도를 통해 잘 알려졌듯이, 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 채용을 회사측에 요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상징인 현대차 노조가 이 같은 세습의 계보에 가세하게 된 것이다. 즉 '유명환, 김정은, 정의선, 현대차 노조'라는 '남북한 세습의 기이한 계보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론 현대차노조의 해명에 따르면,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제라는 것이 현대자동차와 같은 계열사인 기아차를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라고 한다. 또 현대차는 생산직의 경우 고졸 학력자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반면 현 생산직 근로자들의 자녀들의 경우 대부분 대학교육을 받고 있어 이 같은 제도의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곳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 현대차 노조의 이번 결정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현대차 노조의 논리라면, 왜 우리가 유명환과 김정은을, 나아가 정의선을 비판하는가? 유 전 장관이 수십년간 외무부에서 일하며 한국외교에 기여를 했고, 김일성, 김정일이 북한의 건국과 발전에, 정주영, 정몽구가 현대자동차 발전에 각각 수십년간 기여를 했는데 이들의 자녀들에게 이에 상응하는 가산점을 줘서 세습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결국 현대차 노동자들이 유명환, 김정일, 정몽구와 다른 것은 간단하다. 세습에 대한 욕구는 마찬가지지만 현대차 노동자들의 경우 유명환, 김정일, 정몽구처럼 높은 자리를 세습해줄 위치에 있지 못 하다는 것뿐이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유명환, 김정은, 정의선처럼 외무부장관, 북한 최고지도자의 직계, 현대차와 같은 재벌가문의 일원이었다면, 그들처럼 세습을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노동운동의 도덕적 파탄이다.

현대차 노조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자승자박의 논리라는 사실이다. 만일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나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강대학교가 장기근속 교직원들의 자녀에 대해 학교발전에 기여한 공을 고려해 입학시험(나아가 교직원 채용)에 가산점을 주어 우선 입학시키기로 함으로써 이들 대학에 응시하는 현대차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손해를 본다면 뭐라고 항의할 것인가?

특히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현대차 노조의 직장 세습시도가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에 대해 현대차노조가 연대투쟁을 거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핵심인 연대와 민주노동운동의 정신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폭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안을 철회해야 한다.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민주노총도 현재의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 적극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정책에 대항해 노동운동진영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투쟁을 위해 야권과 시민사회의 진보개혁세력이 연대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에 못 지 않게 중요한 것,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의 자기혁신이다.

물론 민주노동운동의 도덕적 타락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 고위간부의 부정부패문제로부터 성추행과 집단은폐 움직임 등 그 예는 많다. 그러나 이제 이는 직장세습으로까지 나가고 있다. '유명환, 김정은, 정의선, 현대차 노조'로 이어지는 '남북한 세습의 기이한 계보학'을 바라보며 나는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추신: 개인적으로 나는 교수노조의 조합원으로 민주노총의 조합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민주노총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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