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이는 자위대의 능력 강화를 수반하게 되고,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야기해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 국방부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및 인도적 지원과 재난구호에 한정될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과 재난구호 자체가 대단히 범주가 넓고 모호한 개념이다. 인도적 지원과 재난구호에 대한 군사력의 투입은 자연재해와 전염병, 테러와 같은 '비전통적 범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자국민 보호와 구조, 전후 복구와 같은 '전통적 범주'의 재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북한급변사태를 포함한 한반도 유사시가 바로 '전통적 범주'에 해당될 수 있는데, 이는 곧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자위대 파병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는 일본이 한국과의 군사 협정을 간절히 원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 ,지난해 3월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렸던 3.1독립운동기념 및 한일군사협정체결기도규탄대회의 한 장면. ⓒ연합뉴스 |
일본,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보낼 것", 그런데…
실제로 일본이 상호군수지원협정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데에는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자위대 파견을 제도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선 일본은 이미 미국과의 '작전계획 5055'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놓았다.
2004년 12월 4일자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일 양국은 2002년 이 계획에 합의하고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여기에는 △조난당한 미군의 수색·구조 등 미군에 대한 직접 지원 △미군의 출격·보급의 거점이 되는 기지와 항만의 안전 확보 △주일미군 기지 및 원자력발전소 등 135개의 주요 시설 경비 △북한의 공작선 침투에 대비한 해상자위대의 호위함 및 초계기 활동 △부유 기뢰를 제거해 일본 규슈 북부에서 한반도로 향하는 해상 수송로 확보 △조기경보 정보 수집 및 수송기를 이용한 한국 내 일본인 소개 작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출동 계획이 미일동맹 수준에서는 이미 상당히 깊숙이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일 미국대사관의 비밀 문서를 통해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7월 31일 작성된 미일 양국 정부의 고위 관료 회담 내용을 보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수송 작전을 위해 한국에 자위대 소속 함정과 항공기를 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활동에는 미군 호송 지원, 기뢰 제거, 수색 및 구조 작전, 선박 검색 등"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견하고 싶은데, 한국과의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12월 "한반도 유사시 한반도 거주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해 자위대 파견을 검토하고 있고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아즈미 준 방위성 부대신은 "외교 루트를 통해 제대로 (한국에) 얘기를 하지 않으면 이쪽(일본)의 의사만으로는 좀처럼 일이 진전되지 않을 수 있다"며 한국과의 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군사협정 체결을 추진키로 합의하기 한달 전에 나온 것들이다. 일본이 한국과의 상호군수지원협정을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을 보장받는 제도적 장치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일본 자위대는 2011년 1월 긴급사태 발생시 외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을 긴급 수송하는 훈련을 실시했는데, <교도통신>은 이를 두고 한반도 유사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해각서로 체결? 국회와 국민 반발 의식한 '꼼수'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문제점은 이 협정의 핵심 대상이 되는 사안을 분석해보면 잘 드러난다. 양국이 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고 있는 주된 목적은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 및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보 및 첩보를 공유하자는 데에 있다. 그런데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급변사태 대비"는 이명박 정부의 '흡수통일론'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지역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계획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명박 정부 초기 때부터 MD 문제를 중심으로 한-미-일 안보대화를 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석을 강력히 뒷받침해준다. 특히 한국이 오키나와와 괌을 미사일 방어하는 데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도 이러한 흐름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아울러 4월 21일자 <아사히신문>이 "정보보호협정은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이 강점을 가진 지상에서의 정보 요원을 통해 획득한 북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일본에게 특히 유리한 협정"이라고 지적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협정의 형태이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군사 협정 체결은 한일 양국, 특히 한국 내에서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또한 독도와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고,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경계심도 대단히 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군사 협력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군사 협정 체결 시도는 한국 국회와 여론에 강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한일 양국은 국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는 조약 형태가 아니라 양해각서(MoU)로 체결한다는 방침이다.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
MB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이 이미 많은 나라와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군사협정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안일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우선 일본이 독도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퇴행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군사 협력을 체결해주면 이들 사안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일본은 과거사를 덮고 군사 협력을 포함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자는 입장인데,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이러한 일본의 의도에 맞장구를 쳐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평화헌법 개악 시도에 대한 한국의 비판적 견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도 한일 군사협정은 단순히 양국간의 협력을 확대한다는 차원을 넘어 북한, 더 본질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동맹 추진이라는 구조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북-중-러의 결속을 야기해 동북아 신냉전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보다는 북일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중재하는 방향으로 일본과의 협력을 도모했었다. 이러한 접근법이야말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는 일본의 역할이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일본 군국주의와 냉전의 최대 피해자였다. MB 정부의 한일 군사 협정 체결 시도가 몰역사적이고 자해적이며 비전략적인 악수라는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MB 정부가 차기 정부와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전략적 위험을 떠넘기는 퇴행적 선택을 당장 그만두어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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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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