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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삼성, 6년의 피눈물 닦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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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삼성, 6년의 피눈물 닦아줄까

[황유미, 그리고 6년 ②] 소통의 삼성, 불통의 삼성

'삼성 백혈병' 문제가 6년을 끌어온 것은 작업장 환경과 발병 사이의 관계 규명이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내 1위 기업이자 최근 몇 년간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IT 대기업으로 도약한 삼성과, 몇몇 피해자와 노동운동가로 구성된 모임인 '반올림'이라는 '다윗과 골리앗' 구도도 한몫했다.

무노조 경영, 지배 구조 및 불법 세습 논란 등의 사례에서 드러난 거대 기업 삼성과 외부의 '불통' 문제는 '삼성 백혈병' 논란에서도 반복됐다. 피해자들의 지속된 문제 제기와 여론의 압박, 삼성 그 자체의 필요에 의해 조금씩 '말이 통하게' 됐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편집자>

황유미, 그리고 6년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지난 1월 언론들은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의 모임인 '반올림'과 삼성 측이 공식 대화를 열기로 합의했다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5일 양측의 첫 공식 만남이 성사됐다. 대중에게 알려진 첫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 씨가 2007년 3월 6일 23세로 사망한 뒤 삼성과 피해자 사이의 공식 대화가 열리기까지 2192일, 정확히 6년이 걸렸다.

반올림에 소속된 유족 및 활동가로 구성된 대표단과 삼성 측의 이날 만남은 향후 열릴 본협상의 의제를 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6년 만에 거둔 성과이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향후 대화 방향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그들의 대화에 교차하는 기대와 우려

이번 대화가 성사되기까지 과정부터 지난했다. 지난해 9월 삼성은 산재 불승인 행정소송과 관련해 원고 측에 법적 조정을 제안했고, 반올림은 '소송 취하 불가'라는 방침을 세워 거절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일부 언론은 삼성과 피해자 측이 대화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기정사실화해 피해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후 삼성은 그해 11월 말 다시 김종중 삼성전자 DS부문 사장 명의로 원고(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공식 문서를 보냈고, 반올림 측은 지난 1월 제의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대화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지만 순조롭게 흘러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번 대화를 지켜보는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피해 노동자들과 유족들에게 삼성 측이 사과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피해자들이 삼성으로부터 치료비 지원 등을 받고 소송을 취하하는 계기가 될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모처럼 양측이 대화의 장을 만들었는데 이처럼 여론이 반신반의하는 이유는 '삼성 백혈병' 논란 초기부터 삼성 측이 보여준 소통 방식의 문제 탓이 크다. 삼성이 겉으로는 바람직한 소통으로 보이지만 결국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는 시도로 의심을 산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20일 반올림의 전신 격인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벌어진 삼성 직원의 '기자 사칭' 사건은 삼성의 '소통 방식'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됐다.

백혈병 논란과 관련한 삼성의 '소통 방식' 중 가장 큰 반발을 샀던 부분은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에 대한 회유 시도였다. 고 황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딸의 투병 당시 삼성 측이 합의금을 거론하며 퇴사를 종용하는 등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해 왔다. 반올림이 파악한 피해자 중에는 투병 생활에 따른 생활고 등으로 삼성 측이 제시한 위로금을 받고 산재 신청이나 소송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번 대화 역시 산재 불승인 처분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을 포기하면서 대신 삼성 측으로부터 치료비 등의 보상을 받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소송과 대화는 별개라는 것이 반올림 측 입장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소송을 취하하라는 회유 등) 위험은 있지만 (삼성과) 직접 대면을 피할 이유는 없다"며 "삼성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주장, 산재를 인정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삼성 측의 손해배상, 피해자들에 대한 삼성의 진정 어린 사과 등을 (이번 대화에서)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삼성과 반올림의 '불통'이 물리적 충돌을 빚을 때도 있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3월 6일 고 황유미 씨의 4주기 당시 삼성전자 본관 진입을 시도했던 가족들이 제지당하던 모습. ⓒ프레시안(김봉규)

삼성, '달라졌다'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이 수년 전부터 백혈병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며 이번 대화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삼성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2010년 초부터다. 그해는 2007년 '삼성 백혈병' 문제와 비슷한 시기에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 특검'이 마무리된 이듬해다. 양심선언 이후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던 이건희 회장은 2009년 배임 및 조세 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형을 받았다. 그리고 판결이 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그해 12월 31일 이 회장은 '연말 특별 단독 사면' 대상이 됐고, 2010년 초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삼성은 특검으로 크게 실추된 기업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이 회장의 경영 복귀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삼성 백혈병'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전처럼 피해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인 보상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는 상황만 더 악화될 수 있었다.

이후 삼성은 '삼성 백혈병'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반도체 공장의 명칭을 '캠퍼스'로 바꾸고 임직원 복리 후생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언론에 반도체 공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2007년과 2008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반도체 공정 역학조사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삼성은 해외 전문가를 초청해 독자적인 실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SNS와 블로그를 통한 홍보도 강화한다.

하지만 삼성의 노력이 상호 간의 의사 교환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일례로 삼성은 해외 연구기관 '인바이런'에 의뢰해 '반도체 생산 라인 근무 환경 재조사 결과'를 2011년 7월 발표했다. 이 결과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검증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삼성은 이에 답하기보다는 해외 학술회의와 온라인에서 '삼성 백혈병'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로 인바이런 조사 결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인바이런은 과거 기업의 의뢰를 받아 사측에 유리한 연구를 수행하던 '청부 과학' 업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관련 기사 : "반도체와 백혈병 상관없다"던 인바이런사의 비밀)

반올림의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당시 인바이런사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그 결과를 제대로 검증하고 토의한 적이 없는데도, 발표했다는 것 자체로 사실이 명확해진 것처럼 포장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불산 누출 사건이 일어난 삼성 화성공장은 (피해 노동자가 다수 근무했던) 기흥·온양공장보다 최신 설비를 갖췄는데도 노동부 조사 결과에서 1934건의 법 위반 사례가 발견된 것은, '모든 노출 위험에 대해 회사가 높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인바이런의 조사 결과가 엉터리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삼성의 '일방 소통'에 따른 상호 불신을 부추긴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 백혈병' 논란이 처음 일었을 때부터 대부분의 언론은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그 직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사태가 터지면서 언론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탓도 있지만, 당시 김 변호사 사태를 집중 보도했던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약 2년 동안 삼성 측의 광고를 받지 못한 것을 보면 다수의 언론들이 최대 광고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 씨가 2010년 3월 31일 고 황 씨와 같은 23세에 숨지면서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그다음 날 지면에 이 소식을 보도한 주요 매체는 거의 없었고, 인터넷에서도 하루 만에 기사가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반면,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삼성이 한 해명이나 주장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후에도 삼성 측이 내놓은 자구책 및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한 소식은 독자적인 검증 없이 단순 보도되는 일이 많았다. 피해자 측 전문가들의 반박 등 균형을 갖춰 보도하려는 언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삼성 백혈병'에 대한 보도 자체보다 언론들의 편향적인 삼성 보도가 화두에 오른 적도 있었다.

'일방 소통'이 만들어낸 상호 불신

언론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삼성의 '일방 소통'이 초래한 상호 불신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삼성은 2011년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 제도'를 시행해 반도체 및 LCD 부문에서 1년 이상 일했다가 퇴직하고 3년 이내에 백혈병 등 14종의 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치료비 혹은 사망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반올림 측은 홍보 효과만을 노린 명목상의 제도일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반올림에 제보한 사람들 중 해당 제도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삼성 측에 연락해도 담당 부서를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접수된 바 있다"며 "삼성 측이 해당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블로그(//samsungtomorrow.com/1574)를 통해 자세한 신청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해당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청자 및 지원자 현황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해당 제도를 신청하는 이는 최근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상호 불신은 최근 확인된 삼성의 온라인 모니터링 활동을 둘러싸고도 반복됐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삼성전자 홍보 부서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2월 7일자 보고서에는 반올림 영문 블로그에 올라온 '화성공장 불산 가스 누출' 관련 글에 대해 "'삼성이 계속해서 더 많은 거짓말로 치명적 화학 유출 건 덮으려 한다'는 자극적 제목 하에 삼성 비난 글 게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내부에서만 보는 자료로, 외부에서 보면 오해를 살 만한 표현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반올림 관계자는 "삼성은 반올림 블로그를 모니터링할 시간에,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을 마치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처럼 올려놓은 자사 블로그 글부터 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삼성의 사과가 최우선"

5일 시작된 반올림과 삼성의 대화가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 및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올림 측은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가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삼성이 그동안 사망한 피해 노동자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적은 있지만, 피해 노동자들이 삼성에서 일하면서 병을 얻어 사망한 것에 대한 사과로 인정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황상기 씨는 첫 대화가 열리기 하루 전인 4일 통화에서 "(최근 불산 누출 사고가 터진) 화성공장처럼 (피해자들이 일했던 공장도) 작업환경이 위험했다는 것을 삼성이 인정하고, 그곳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에 대해 삼성이 가족들이 인정할 수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을 꼭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또 그동안 계속 거짓말을 해오고 감추는 데만 급급해 피해자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삼성 쪽 사람들에 대한 조치가 꼭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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