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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경찰 업무 보는 저보고 '미스 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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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찰서에서 경찰 업무 보는 저보고 '미스 리'래요" [공공부문 비정규직 ①] 경찰서 무기계약직 주무관
11일 오전 서울의 한 경찰서 종합민원실. 운전면허를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 속도위반 딱지를 뗀 사람들이 오갔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 사이로 사복을 입은 이경민(44) 씨가 보였다. 이 씨는 경찰과 똑같이 대민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다.

"경찰서에도 비정규직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요."

이 씨가 경찰서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12월. 경찰서에 전산 프로그램이 도입되자,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경찰 조사관 대신 그는 교통사고 공문을 쓰는 일용직으로 고용됐다. 경찰 조사관들이 이전까지 자를 대고 손으로 그렸던 사고 지점 약도를 컴퓨터로 그리고 경위를 작성했다. 그렇게 하루 평균 60건, 많게는 12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지금은 종합민원실에서 일하며 한 달에 세후 120만여 원을 받는다.

'아줌마, 미스 리'에서 주무관 직명 받기까지 2년

▲ 이경민 주무관. ⓒ프레시안(김윤나영)
이 씨의 공식 직책은 '주무관'이다. 그 전까지는 "아줌마, 미스 리" 등으로 불렸다. 2010년 '주무관'이라는 직명을 받아내기까지 이 씨는 2년 동안 싸웠다. 이전에는 경찰서 안에서 커피 타기, 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고 했다. 이 씨는 "우리도 경찰서 직원인데 경찰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를 했다"고 꼬집었다.

"경찰 계장조차 저를 '아줌마'라고 부르고 저한테 커피 심부름을 시켰어요. 그러니 민원인(시민) 눈엔 제가 어떻게 보이겠어요. '아줌마, 여기도 커피 주세요'라고 해요. 제가 제 자리에 앉으면, 간혹 화난 민원인이 '왜 저 커피 타는 여자가 경찰 조사관 자리에 앉느냐'고 저한테 화풀이를 하기도 했어요. 직원을 '다방 마담'처럼 대했으니 제 얼굴에 침 뱉기죠."

그는 "경찰청은 수사권이 있고, 개인 정보를 다루는 특수 기관인데, 보안 정보를 다루는 기관이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를 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을 쓰면 공문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도 강조했다.

"보통 공문서 작성자 직명이 '경사'나 '경위'로 나가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작성한 공문서 작성자는 '임시'라고 나갔어요. 공문서의 신뢰성에는 직명이 중요한데, 경찰서장 직인이 찍혀 나가는 공문서에 '임시'라고 나가면 경찰의 신뢰가 떨어지죠.

게다가 경찰은 보통 1년 단위로 다른 곳으로 발령 가요. 우리는 길게는 수십 년씩 일해서 숙련도가 뛰어나거든요. 새 경찰이 오면 업무 가르쳐주고, 다 가르쳐줘서 일 좀 한다 싶으면 (그 경찰은) 1년 뒤에 가고 또 새 경찰이 와요. 새 경찰에게 또 가르쳐주고…."

"민원인이 칭찬해도 나는 경찰이 아니라고 말 못해"

어정쩡한 신분 때문에 말 못할 고충도 많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민원인에게 "나는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하거나 물건을 분실하거나 성추행을 당하거나, 임금 체불을 당한 민원인들이 찾아와요. 민원인이 제게 '경찰이 이렇게 친절한 줄 몰랐다'고 칭찬하면 '저는 경찰이 아니'라고 말 못해요. 민원인이 따질 때도 마찬가지예요. 교통사고를 접수하는데, 조사가 늦어져서 사고 확인서가 늦게 나올 때 민원인이 왜 확인서가 안 나오느냐고 따질 때도 난감하죠."

▲ 경찰서 종합민원실 ⓒ프레시안(김윤나영)

묵묵히 일하던 이 씨가 변한 것은 2005년 '시간 외 수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나서다. 공무원은 제 수당을 다 받지만, 비정규직은 법정 수당인 초과 근로 수당조차 받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고객만족도 순위를 매겨서 성과급에 포함하는데, 똑같이 100점을 받아도 경찰은 포상을 받고 비정규직은 못 받는다"며 "우리도 같이 올려놓은 민원 처리 성과를 경찰들이 자기들끼리 나눠먹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황당한 일도 겪는다고 했다.

"다른 경찰서 비정규직 한 분이 여경과 동명이인이었어요. 그 분이 휴일에 업무 처리를 했는데, 민원인이 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란에 고맙다는 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위에서 그 분에게 '너는 상 받아도 소용없지 않느냐'고 하고, 동명이인인 여경에게 포상을 줬다는 거예요. 그 분 심경이 어떻겠어요?"

그는 경찰청이 비정규직의 인권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2-3년 전 경찰, 기능직 공무원, 행정직 공무원이 고충을 토로하는 경찰 내부 '인권 워크숍'에 갔을 때였다. 이 씨는 그 자리에서 무기 계약직 노동자의 설움을 말할 계획이었으나, 끝내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기능직 공무원, 경찰관도 인권이 있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우리 인권이 짓밟힌 거예요."

"무기계약직도 해고 쉬워"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자, 무기계약직이 된 주무관들은 2011년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경찰청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1654명 가운데 1457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 씨는 지난 3월부터 노조위원장이 됐다.

이 씨는 무기계약직이 됐어도 고용이 안정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임금이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책정된 까닭에 사업비를 삭감하면 얼마든지 해고될 수 있는 탓이다. '경찰청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관리규칙'을 보면, '업무 수행 능력 부족'이나 '신체 이상', '예산 감축' 등의 이유로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그는 "특히 '신체 이상' 조항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 씨의 목표는 경찰청 주무관도 '경찰 직원'으로서 정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다. 당장 체불 임금이 걸린다.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은 2교대로 일하는 교통 센터 조합원들의 연장, 야간, 휴일 근로 수당 미지급 자료를 1000건 정도 확보한 상태다.

이 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고용 안정, 처우 개선이 된 것은 아니다"라며 "경찰서에 컴퓨터 한 대만 덜 들여도, 우리 처우가 나아지는데, 왜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 유령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시민에게는) 경찰서에도 비정규직이 있다는 걸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경찰서, 공항,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받는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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