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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가 보는 '테러와의 전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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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촘스키가 보는 '테러와의 전쟁' <1> '소리없는 대량 학살'
다음은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가 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전쟁의 본질과 의미에 관해 강연한 내용 전문이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는 이 강연에서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라고 비판하면서 테러를 근절하려면 미국의 대외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5회에 걸쳐 게재될 이 강연은 지난 10월 18일, 미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테러와의 새로운 전쟁’이란 제목으로 행해졌다. 강연 원문은 www.zmag.org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방송인들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건 누구나 다 알죠(웃음). 난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방금 받았습니다. 이 포럼에서 지난번 했던 얘기는 가볍고 재미있는 주제였죠. 인간이 얼마나 멸종위기에 가까이 있는가와 인간이 만든 제도를 들여다볼 때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스스로를 멸종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주제였죠. 그래서 이번에는 긴장을 좀 더 풀어서 재미있는 주제, 테러와의 새로운 전쟁에 대해 말해봅시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세상을 살벌하게 만드는 일들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얘기를 위해 두가지 조건을 가정해봅시다**

첫째, 사실의 인식입니다. 9월 11일 참사가 무시무시한 잔학행위였으며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전쟁을 제외하고는, 한순간에 이뤄진 가장 파괴적인 인명살상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가정은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대상이 우리건 다른 누구이건 이러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데 있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이러한 두가지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받아들인다면, 많은 생각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많은 의문점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다섯가지 의문점**

첫 번째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입니다. 이 의문에 내재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두 번째는 9월 11일 일어난 일이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역사를 바꿀 사건이라는 가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이 가정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가정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정확히 왜’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의문은 ‘테러에 대한 전쟁’이란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그게 뭡니까? 관련된 의문점이라면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의문은 좀 범위가 좁지만 중요한 것으로, 9월 11일 범죄의 기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의문은 테러리즘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는 과정과 전쟁에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 어떠한 정책 선택사항이 있을 수 있는가입니다.

***1.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3백만~4백만 명의 굶주림**

‘지금 현재’로 시작해봅시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대해 말할 작정입니다. 먼저 뉴욕 타임스 같은 논쟁적이 아닌 소스에 매달려 보려고 합니다(웃음).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7백만에서 8백만명이 아사 직전의 상태에 있습니다. 9월 11일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그들은 국제원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9월 16일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가는 식량과 다른 보급품들의 많은 부분을 실어나르는 수송트럭들을 없애라고 요구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7일 유럽 전역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들어봤지만 내가 아는 한 수백만명을 한꺼번에 굶겨죽일 것을 강요하는 이 요구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9월 11일 참사 이후 군사보복 위협으로 인해 국제 자원봉사자들이 철수하면서 원조 프로그램도 쓸모없게 돼버렸습니다. 다시 뉴욕 타임스를 인용하자면 미군 주도의 군사공격이 아프간인들의 오랜 불행을 잠재적인 재해수준으로까지 만들고 있는 가운데 아프간에서 파키스탄으로 떠나는 난민의 힘겨운 행렬은 절망과 공포의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아프간이 힘겹게 생명줄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대피한 한 자원봉사자의 말을 인용해 뉴욕 타임스가 전한 소식입니다.

지금까지 주로 도움을 줬던 세계식량기구(WFP)는 공습 3주후부터 조금씩 식량원조를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아프간 내에 국제 자원봉사자가 없어 식량배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식량배급은 공습이 재개될 때마다 중지됐다 조금씩 재개되곤 합니다. 아프간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단체들은 미국의 아프간에 대한 식량공중 투하가 선전도구에 불과하며 도움을 주는 측면보다는 해를 끼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연하게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를 인용하게 됐지만 계속하겠습니다. 공습 첫 주가 지난 후 뉴욕 타임스는 칼럼 한 부분에서 UN의 계산에 따르면 7백50만명의 아프간인들이 빵 한조각도 없어서 못 먹고 있는 가운데 혹한이 찾아오는 몇주 후 정도면 몇몇 지역에는 식량수송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더구나 공습기간 동안에는 식량 전달률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죠. 이 보도는 서양의 문명국들이 3백만에서 4백만 정도의 사람들이 굶어죽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같은 날 서방 국가들의 지도자는 다시 한번 테러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양도를 위한 탈레반측의 협상제의를 코웃음치며 거절했으며, 완전항복 요구를 구체화할 증거를 요청하는데도 역시 거절했습니다. 무시한 거죠. 같은날 유엔 식량담당 특별서기는 미국에 대해 수백만의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공습을 멈추라고 탄원했지만, 내가 아는 한 보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17일 주요 원조단체인 옥스팜과 크리스천 에이드 등이 같은 취지의 탄원을 했습니다만 뉴욕 타임스에는 한줄도 나지 않았습니다. 보스턴 글로브에 한줄 실리긴 했지만 그것도 카슈미르 분쟁지역을 다룬 기사의 한 부분에 스치듯 언급하고 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소리 없는 대량학살**

얘기가 잘도 진행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일종의 소리 없는 대량학살입니다. 또한 이 일은 엘리트 문화의 많은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문화의 한 부분이 우리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몇주 후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을 수 있는 계획이 계속해서 세워지고 실행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특별한 생각도 없이, 여기 저기, 유럽의 한 부분에서 소리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일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 중에서도 일부분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신문을 읽어보면 반응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충 그렇습니다.

***2. 왜 역사적인 사건인가**

***본토가 공격당했다**

우리가 탈레반을 빼더라도 3백만에서 4백만명의 민간인을 죽이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약간 더 추상적인 문제로 들어가 봅시다. 다시 9월 11일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희생자 수가 많아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규모면에서 말한다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최악이라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의 규모로는 아마도 가장 최악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향면에서 더 장기적이고 더 극단적인 테러범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총구가 겨눠지는 방향입니다. 새로운, 극적으로 새로운 것입니다. 자, 미국 역사를 들여다봅시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본토에 대한 공격 또는 그럴 수 있는 위협을 받은 때는 영국인들이 워싱턴을 불태운 1814년입니다. 흔히들 진주만을 예로 드는데 좋은 비교가 아닙니다. 일본인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건, 미국의 식민지 두 곳에 있는 군사기지를 폭격했습니다. 본토가 아닙니다. 원주민들로부터 그리 좋은 모양새로 얻지 못한 식민지입니다. 하지만 이번은 미 본토에 대규모 공격이 이뤄진 경우입니다. 비슷한 예를 몇몇 찾을 수도 잇겠지만 이번 참사는 유일무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2백년간 우리 미국인들은 토착민들을 몰아냈거나 거의 멸종시켰습니다. 수백만이 넘죠. 또 멕시코의 절반을 빼앗았고 카리브해와 중미, 또 그곳너머까지에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하와이와 필리핀을 정복했고 그 과정에서 수십만의 필리핀인들을 죽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영역은 전세계를 포괄했죠. 그 과정과 방법은 제가 도저히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우리 아닌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이고, 그 장소는 미국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학살당한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곳, 즉 미국의 영토가 아닌 곳에서.

***유럽**

유럽의 경우, 그 변화란 보다 더 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의 역사는 우리보다도 훨씬 잔인했으니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럽인의 자손입니다. 수백년동안 유럽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세계에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사탕을 주어가며 정복했던 게 아니죠. 이 기간동안 유럽인들은 수많은 잔인한 전쟁들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유럽인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었지요. 지난 수백년간 유럽인들의 가장 주요한 스포츠는 서로를 학살하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 이 스포츠가 종말을 맞았는데 그 이유는 민주주의라든가, 이제는 전쟁을 하지 말자든가 하는 고상한 생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번 전쟁을 하게 되면 그때는 세계가 끝장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됐기 때문이죠. 그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유럽인들이 너무도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냈기 때문에 게임은 끝을 맞게 된 것이죠. 사실 대량살상의 역사는 수백년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17세기에도 단 한번의 전쟁으로 독일 인구의 40%가 사라진 적이 있으니까요.

이 피로 얼룩진 잔인한 시대에 유럽인들은 서로를 죽이고,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콩고는 벨기에를 공격하지 않았고 인도는 영국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알제리 또한 프랑스를 침공한 적이 없죠. 언제나 똑같습니다. 사소한 예외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유럽인과 우리가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해 행한 것을 생각해 보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사소한 것들입니다. 이번 사건은 최초의 변화입니다. 처음으로 총구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죠. 그러니 유럽인과 이곳 미국인들의 충격과 경악도 이해할 만합니다. 9.11참사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참사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앞에 말한 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 사건을 우리와는 매우 다르게 보는 것도 그 때문이죠. 희생자에 대한 동정이나 테러행위에 대한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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