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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중동분쟁 약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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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중동분쟁 약사 <하>

"아랍 단결해야 중동평화 온다"

<지도5>
1967년 예루살렘 전체를 장악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 모두를 이스라엘의 주권 및 독점적 통제하에 두었다. 이스라엘은 점령 지역인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를 오랫동안 군정(軍政)하에 둔 것과는 달리 아랍측 땅이었던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행정하에 귀속시켰다. 이스라엘 당국은 예루살렘의 시 경계를 북쪽과 남쪽으로 확대시켰으며 1980년에는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합병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유태인의 주요 정착촌들은 예루살렘의 북부, 동부, 남부를 감싸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과 서안 지구의 여타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이집트를 미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미ㆍ중화해와 함께 70년대 미국 외교가 성취한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이는 당연히 이스라엘에게도 커다란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국경 남쪽, 이집트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제거한 이스라엘은 1982년 마음놓고 북쪽 국경을 넘어 레바논 남부를 침공한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활동하던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을 해체시키고 이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한 사브라-샤틸라 난민수용소 습격을 묵인, 부녀자와 어린아이, 노인 등 2천명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봉기-제1차 인티파다**

그러나 20년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중적 저항을 폭발시켰다. 1987년 12월에 발생한 인티파다가 그것이다. 제1차 인티파다로 불리우는 이 대중 봉기는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팔레스타인들의 자발적, 비무장 저항운동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돌맹이와 막대기 등으로 이스라엘군의 기관총과 탱크에 맞서 싸우기도 했으나 저항의 기본 양상은 납세 거부, 이스라엘인 고용주 밑에서의 노동 거부 등이었다. 이 대중봉기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에는 새로운 저항의 세대가 형성됐으며 광범위한 민족적 각성을 가져왔다. 물론 희생도 컸다. 약 5년간 계속된 대중봉기로 1천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고 수천명이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중봉기를 계기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이 새롭게 일어났으며 이스라엘의 강압적 점령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지도6>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 중의 하나인 가자 지구에는 약 1백18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33%는 유엔이 자금을 대는 난민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자의 유태인 정착민은 약 6천9백명이다. 이스라엘 통제구역 및 정착지역은 전체의 40%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외부로 통하는 모든 도로와 진입 지점, 그리고 지역 내 주요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패배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의 제1차 인티파다도 끝을 맞는다. 팔레스타인 독립의 명분을 지원해 줄 외부세력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곧바로 마드리드 협상과 오슬로 협약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이른바 ‘평화 과정’(peace process)을 시작한다. 오슬로 협약의 골자는 한마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서로의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극히 불공평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등 점령지역 전부가 아닌 일부에서만 철수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한 땅은 점령지역의 22%에 불과했다. 게다가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더 이상의 테러 공격을 중단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 협약의 1단계 조치로 이스라엘은 199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측에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여리고시의 행정권을 넘겨주었다. 이스라엘은 또 1994년 요르단과 별도의 평화협정을 맺었다.

***중단 없는 식민화-유태인 정착촌 건설**

오슬로 협약이 과연 진정한 평화로의 과정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무력과 미국의 지원을 앞세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점령지역에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슬로 협약이 맺어진 지 8년이 지난 지금, 서안 지구의 60%는 아직도 이스라엘군의 지배 하에 놓여 있으며 27%는 팔레스타인과의 공동 관리 하에 있다. 팔레스타인인의 온전한 자치 지역은 13%에 불과한 것이다. 2000년 11월 유엔이 발표한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오슬로 협약 7년만에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 등 점령 지역의 유태인 정착민은 협약 이전보다 배가 늘어난 20만명이 됐다. 유태인 정착민을 위한 새로운 주택은 50%가 늘어났으며 1996년부터 1999년까지 3년동안에만 40개의 새로운 유태인 정착촌이 건설됐다. 이 보고서는 “지난 7년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소유 토지의 몰수와 정착촌 건설, 유태인 정착민들만을 위한 도로 건설 등은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의 영토적 통합성 및 단일성을 존중한다’는 오슬로 협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지도7>
이스라엘은 안보 및 종교상의 이유로 서안 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해 왔다. 유태인 정착촌과 그 주변지역은 서안 지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서안 지구의 59%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행정 및 보안 통제를 받고 있다. 23%는 팔레스타인 행정 하에 있으나 보안은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나머지 지역은 팔레스타인 자치당국(PNA)가 통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 유태인 정착촌 건설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가옥 8천5백 채를 파괴했으며 오슬로 협약 이후에 파괴한 가옥만도 1천2백 채에 이른다. 이로 인한 난민은 오슬로 협약 이후에만 5천명(어린이 2천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파괴 대상 가옥 주인에게 단지 15분만에 집안의 가재도구를 옮기라고 요구하고는 가차없이 불도저로 가옥을 밀어버렸다. 또 오슬로 협약 이후 5년 동안 팔레스타인인의 소득은 이전보다 4분의 1이나 줄었다.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정책은 점령지역내 아랍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들도 인종차별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인구의 18%를 차지하는 이들은 유태인 소유의 땅을 살 수 없으며 군대에 갈 수도 없고 정치적 활동에도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허울뿐인 평화’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과격 이슬람 집단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해 여름 바라크 정권은 아라파트에게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팔레스타인에게 명목상의 독립과 유엔 의석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 등 점령지역 내 유태인 정착촌의 이스라엘 합병, 그리고 팔레스타인 전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략적 통제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1967년 이전 국경으로의 복원을 외쳐 왔던 아라파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반발을 우려해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부한다.

<지도8>
1993년 오슬로 협약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서안 지구의 일부 지역이 팔레스타인 측에 양도됐다. 양도 지역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행정 및 보안 통제의 정도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영토는 유태인 정착촌과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도로들에 의해 분할, 침식되고 있다. 이스라엘 통제 지역의 땅중 많은 부분은 군사지역, 또는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2개월 후인 지난 해 9월 제2차 인티파다가 발생한다. 2차 봉기는 10여년전의 1차 봉기에 비해 훨씬 더 폭력적이며 보다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과격파 무장단체는 물론 PLO 소속의 팔레스타인군(PNA)까지도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무장봉기가 압도적 힘의 열세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4백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당했으며 수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9.11 테러사태가 발생한 직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의 촉구에 못 이겨 평화 과정의 재점화에 나선다. 테러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아랍권의 민심을 잡을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월말 중동평화를 위해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주권을 인정할 용의가 있다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행사의 중지를 아라파트에게 또다시 요구했다.

***결국 미국이 문제다**

미국은 현재 앤서니 지니 예비역 장군을 중동평화 특사로 현지에 파견, 평화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측의 이스라엘 각료 살해 등 연이은 공격으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샤론 정권은 ‘아라파트는 더 이상 협상 상대가 될 수없다’는 극단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반해 미국과 유럽 등은 그래도 아라파트가 협상의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라파트를 대신해서 그보다 더 온건한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족해방운동이 낳은 가장 형편없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라파트는 미국의 협박과 회유에 의해 ‘허울뿐인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말 그대로 아라파트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동지역은 다시 한번 불확실성 속에 빠져드는 셈이다.

과연 중동지역에 진정한 평화를 깃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는 뉴 레프트 리뷰(NLR) 7/8월호에 실린 영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앤더슨은 중동 분쟁의 역사를 일별한 이 글(Scurrying towards Bethlehem)에서 사방이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시오니즘의 성채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중동 평화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5백만명 이상의 해외 유태인들을 받아들여 현재 인구는 건국 당시의 6배에 이른다. 이처럼 급격한 인구 증가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해외로부터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국 직후 독일의 대규모 전쟁피해 보상, 해외 유태인들의 송금, 그리고 끊임없는 미국의 지원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30년동안 한번도 국내 조세 수입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한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한 학자는 “인류 역사상 그토록 소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예는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스라엘은 현재 미국 대외원조의 40%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에 대한 대가로 중동지역에서의 충실한 대리자 역할을 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는 67년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례로 90년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액은 10년사이에 3배로 늘어났다.

다소 길지만 앤더슨의 결론을 여기에 옮겨 본다.

“진정한 평화의 전망은 없을까? 이스라엘은 결코 힘 외에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물론 이스라엘에도 약점은 있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번영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언제나 외국의 보호에 의존했으며 그것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만일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다면 이스라엘은 즉각 그 완고한 고집을 꺾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조건 하에서 미국이 그러한 배신을 고려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지난 50년대에도 그러했듯이, 아랍세계에 달려 있다. 아랍 세계의 두 핵심 국가-최대 인구의 이집트와 최대 석유 보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하수인(client-state)으로 남아 있는 한, 중동 지역과 이 지역의 석유가 미국의 손에 안전하게 장악돼 있는 한, 미국은 이스라엘이 원하는 그 어떤 것이든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온다면 팔레스타인인의 운명도 즉각 변화할 것이다. 미국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존속시키기 위해 엄청난 액수를 투자했고, 사우디의 봉건적 금권정치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두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진다면-가장 좋기로는 둘 다 무너진다면-이 지역의 세력균형은 극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아랍 세계의 실망스러운 정치사를 돌아볼 때, 단시일 내에 이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또 새로 등장한 정권이 나세르보다 나을 것이라거나 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도 영속적일 수는 없으며 이는 중동지역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의 세력 구도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미국 외교의 나침반을 격렬하게 요동시킬 것이다. 나일강가, 또는 메카에 진정으로 독립적인 정권이 탄생한다면 미국은 즉각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할 수 있겠지만, 석유는 물이나 피 모두보다 진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예속 상태는 중동 지역 전체의 대미 예속이라는 보다 큰 구도의 결과물일 뿐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워싱턴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버릇을 아랍 세계가 버리는 날-진정 그런 날이 온다면-이스라엘은 그동안 누려온 그 엄청난 혜택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시오니즘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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