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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어떤해?-세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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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어떤해?-세계 정치 美, 전쟁 확대로 헤게모니 유지 노려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 워싱턴 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정책은 외교적 타결의 여지는 사라진 채 군사주의 노선으로 일관하고 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1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이다. 미국은 이러한 세계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과 유형의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장기전이 예상되다가 개전 석 달만에 승세가 굳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전쟁정책 유지를 위한 <확전 논리>가 계속 언급되더니, 이제 마침내 <새로운 전쟁 방식>에 대한 논리가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미국의 전쟁 수행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부시 대통령은 새해를 맞이해서 보다 강력한 군사주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미국은 전세계를 향해 자신이 거칠 것 없는 “전쟁국가로 치닫겠다”는 선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작: 전쟁국가를 향해**

부시정권으로서는 2002년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일종의 연습전을 끝내고 맞이하는 공식적인 “전쟁의 해”이며, 부시 개인으로서는 미군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마음껏 누림으로써 재선을 목표로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비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로 설정되고 있다. 그것은 윌슨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이른바 <전쟁의 정치학>을 통해 배운 교훈의 결과이기도 하다.

가령 미국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통해 일련의 비판적 역사 읽기를 시도해온 지성 고어 바이덜(Gore Vidal)이 1939년 루즈벨트 대통령 시대를 무대로 쓴 <황금시대 (The Golden Age)>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는 전쟁과 대통령의 권력, 그 함수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윌슨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바가 있다면, 전쟁을 하는 대통령은 독재자와 다를 바 없는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어디 국민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할까요?” “모르시는 말씀. 국민들이야 권력이 말하는 대로 따를 뿐이지요. 어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전쟁은 정치를 획일화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봉쇄하며 의회를 침묵시킨다. 파시즘적 권력구조가 형성되면서 민주주의적 기본구조가 약화 내지 소멸되고 강대국의 경우, 내부의 비판세력을 압도하면서 제국주의의 기반을 굳혀 나간다. 20세기가 막 시작한 1902년 영국의 제국주의 발전사를 주목하면서 <제국주의론(Imperialism)>을 쓴 홉슨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감은 제국주의의 정치적 근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는 대의제도가 자신의 요구에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전쟁정책에 대한 일체의 정치적 비판을 비애국적이며 심지어는 반역으로 몰아간다.” 미국이 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하여 이른바 <애국법안(The Patriot Act)>을 통과시키고,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있는 각종 법안을 만드는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 정치학의 반영이기도 한 것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 체제 재정비를 위한 정책적 선택**

그런데,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현대 제국주의 발생초기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연구라면, 지금과 같이 전쟁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체제가 자신의 패권을 재확립하려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쟁국가의 강화는 제국주의 전열의 재정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의 과정을 제국주의의 새로운 전략으로 파악하고 분석해나간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는 그의 최근 저서 <가면을 벗긴 세계화: 21세기의 제국주의(Globalization Unmasked: Imperialism in the 21st Century)>에서 “19세기이래 제국주의는 그 지배방식과 명분만 달리할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여전히 동일하다”고 갈파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세계화와 이를 비판하고 제국주의의 틀을 통해 세계정세를 분석하는 입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세계화론자들이 국경의 철폐를 통한 부의 보편적 증대를 내세우는 반면에 제국주의론은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위계질서가 형성되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강화되어 폭력과 착취가 발생하는 것을 주목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보자면, 오늘날 미국이 전쟁국가로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것은 세계화 전략의 모순에 의한 각종 위기에 대한 폭력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의 등장은 그만큼 지배체제의 위기의식이 심화된 것을 의미하며, 다른 지배방식의 선택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어진 것을 말해준다.

부시 정권 등장 이후 미국은 왜 이러한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는가? 클린턴 정부 당시 미국의 세계경영전략의 중심은 미국을 대체적인 근거로 하는 초국적 자본의 직접 지배 방식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였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결국 비판론자들이 예상했듯이 투기 자본의 전횡으로 인한 세계적 저항에 점점 더 직면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투기시장의 교란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경기침체의 국면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패권체제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급해진 미국 내 지배계급은 보다 노골적인 패권체제 유지 방식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은 군사주의 노선의 강화로 이어졌다. 또한 전쟁경제의 부양으로 경기침체를 극복하겠다는 구상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의 보수적 기득권 층이 투표결과까지 왜곡하는 등 적지 않게 무리한 방식으로 부시를 대통령으로 들여앉힌 것도 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매우 공격적인 방식의 세계정책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위기의 심화, 패권체제의 동요 그리고 전쟁**

사실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 상황은 미국에게 무척 불리한 것이었다. 세계화에 대한 반대 물결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테러 사건 발생 직전 유엔이 주최한 “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도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완전 고립상태에 몰려 있었다.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정책에 대해서 이슬람권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고, 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상당히 격렬했다. 그런 와중에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의 위기의식은 극대화되었다. 빈 라덴의 존재는 전쟁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발언과 행동의 목표가 미국에게 위협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빈 라덴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의 제국주의 동맹 체제 전체를 향한 항전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메시지가 갖는 잠재력 내지는 위력을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반전의 계기로 삼는데 일단 성공한다. 부시정권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군사주의적 지배체제 강화에 전격적으로 힘을 쏟았던 것이다. 물론 미국이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미국은 애초부터 전쟁국가의 기능 강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다만 테러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고리로 하여 이를 보다 명확하게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에서 외교적 타결 여지에 대한 기대는 버리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는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대응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인식해야 할 대목이다.

아무튼, 아프가니스탄이 공격 목표가 된 이유란 외견상으로는 빈 라덴의 조직 알카에다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실제적으로는 중앙 아시아에 대한 패권 장악, 오일과 천연가스에 대한 주도권 확보라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목적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지만, 부시 정권은 초기부터 미사일 방어망을 내세우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전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수없이 강조했었다. 미사일 방어망 설치는 미국의 전쟁경제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정책적 선택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채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전쟁전략은 이른바 불량국가들로부터 세계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고 여기에 핵심적인 장치를 미사일 방어망으로 내세워 왔던 것이다. 결국, 부시정권의 기본방향은 거듭 강조하지만 <전쟁기구의 강화와 전쟁경제의 부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강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러한 부시정권의 전쟁국가 강화의 과정에서 희생타로 걸려든 셈이라고 하겠다.

***아르헨티나 사태,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드러내**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전쟁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사태도 전쟁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 폭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를 앞세워온 거대한 초국적 자본의 위력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현실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표출되었다고 하겠다. 이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가 가져온 빈궁의 현실과 맞서는 아르헨티나 내부의 항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르헨티나 사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었다. 자국 기업의 해외매각 세계 제1위에 이를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초국적 자본의 지배에 거의 완전히 놓여 있고, 이들 초국적 자본의 빚을 갚는 일에 경제적 여력을 거의 다 빼앗기다시피 한 상태에 있었다. 이번 사태로 물러난 아르헨티나 페르난도 들라 루아 대통령이 얼마 전 은행인출을 부분적으로 제한했고, 연금생활자들을 위한 재정까지 외채상환에 동원하는 바람에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이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생활을 극도로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IMF의 요구에 과도할 정도로 굴종한 결과였다. 결국 이들이 폭동에 돌입하고 상가를 약탈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만연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르헨티나 서민들의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폭동이라는 현상만을 주로 조명하면서 아르헨티나의 형편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원인을 심도있게 짚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9월 11일 뉴욕 테러사건을 다루었던 자세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극단의 긴축재정을 취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할 사회보장 시스템을 붕괴시키다 시피 했다. 그러면서 초국적 자본과 대기업의 편에서 법인세등 각종 세금의 인하나, 해고조처를 보다 간편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든가 또는 단기성 투기자본의 규제를 완전히 풀어버렸다. 그렇게 되니까 아르헨티나 경제는 특히 미국 자본의 손에 장악되었고, 아르헨티나 기업의 이윤은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위기에 처해도 아르헨티나 자신의 역량으로 대처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소멸시키고 만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바로 이러한 점들을 미리 미리 주목하고 내부적으로 경제적 여력을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데 IMF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너무 쉽게 투항해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는 아르헨티나가 현실적으로 힘이 없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와 깊숙이 연결된 세력의 존재가 역할을 한 대목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페르난도 들라 루아 정부의 경제장관 도밍고 카발로가 거의 철저하게 미국의 입김에 영향을 받고 미국과 IMF의 요구에 보다 자주적이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보다는 IMF의 대리인처럼 행동했던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IMF 협상 초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이요 가령 협상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언론의 화려한 조명 아래 있었던 현 유종근 전북 도지사가 미국 정부와 금융계로부터 받았던 인정과 갈채도 도밍고 카발로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이른바 미국통이라는 인물들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시장 경제 운운”하면서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유형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심도 있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카발로는 아르헨티나 자신의 국가적 장래보다는 미국자본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식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아나간 것이다. 폭동이 일어나면서 그가 물러나자 미국이 가장 먼저 실망을 표했다는 것에서도 그의 역할이 가졌던 본질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위의 의의를 지지한 아르헨티나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아르헨티나가 자신의 경제를 자신의 관리하에 확보하는 노력 없이는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자신의 경제와 기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보다 강하게 갖추어나가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사태는 심화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건은 지금과 같이 비상 사태 등을 통한 폭동에 대한 법적 대처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치경제적 보호망을 다시 견고하게 재건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아르헨티나로서는 아르헨티나 정치와 경제를 압도해온 미국의 지배체제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가를 놓고 고뇌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전쟁국가를 내세우고 있는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전쟁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반발에 직면할 것**

따라서 미국은 한편으로는 전쟁국가의 강화,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대응논리와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중의 목표 앞에 서있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패권적 질서의 강화에 이바지하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세계적 반발을 더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위기의 고비에 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그대로 압도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의 대응전략을 세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최대 관심은 아무래도 미국 부시정권의 정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정책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논리와 원칙이 세워지지 못할 경우, 우리가 겪어야 할 도전과 압박은 매우 클 것이다. 더욱이 권력이동을 겨냥한 대선을 앞둔 정치적 변혁기에 있어서 미국의 내정 간섭적 활동이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강화될 수 있는 가능성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대응은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자신이 요구하는 전쟁정책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수행할 정치세력의 등장을 원하게 되어 있고, 그에 반하는 세력의 등장을 어떻게든 막으려 들 것이기에 향후의 정치일정과 그 전개과정상의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가령, 최근 김대중 정부는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 절차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비전투병이라고 하지만 우리 군대를 파견했다. 미군에 대해 우리 군을 보조원으로 만들고 만 처사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특정한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현실이라는 점에 있다. 미국은 현재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자신의 전쟁논리와 전쟁정책을 수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무기 현대화와 합동훈련의 효율성을 내세워 무기구입을 강요하고 있고, 미사일 방어망 체제 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에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무장력 강화를 의미한다. 군축의 가능성을 점점 더 소멸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지역의 무장력 강화는 한반도 평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서 우리의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막대한 장애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의 전쟁정책, 전쟁국가 강화론은 우리로서 심각하게 논란이 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에 대한 우리 나름의 올바른 대처와 자세가 있지 않으면 우리는 금년 한해 내내 미국의 전쟁정책에 엄청나게 시달리게 될 것이고, 이에 따른 부담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정책과 경제적 역량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대선 주자들의 침묵, 더 이상 용인하지 말아야**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우선 정치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용기 있는 발언을 해야할 것이다. 미국과 관련해서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말할 수 없이 깊은 패배주의에 젖어있고, 민족 자주적 정권 수립의 의지가 매우 박약한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를 공개적 논의의 현장에 중심 화두로 삼아 가는 사회적 노력은 한국정치의 본질적 목표를 교정해나가는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관련한 비판적 발언 그 자체가 한국 정치의 새로운 정치적 역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선 후보로 일컬어지는 인물들 가운데 미국의 지배정책과 관련하여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든 실현시키려는 정치인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비극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애초부터 미국 부시정권과 자신의 입장이 같다고 강조해온 만큼 그에게서나 한나라당에게서 미국의 전쟁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대미 추종적 자세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떤가? 민주당의 대선 주자로 운위되는 이들, 즉 이인제, 노무현, 김근태, 한화갑, 정동영 등의 인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입다물고 있는 것은 이들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적극적 언급을 하는 자세의 진실성과 신뢰성에 적지 않은 의문을 갖게 한다. 절차적 과정의 개혁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의 본질적 현안에 대해 외면하는 것은 이들의 대선 출정이 이들의 세계정세 인식의 한계를 의미하거나 또는 다만 개인적 권력의지의 발로라는 비판을 낳게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가장 중대한 민족적 과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실현과정에서 최대의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미국의 전쟁정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내부적 응집력의 창출에는 무능력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향후 대선의 과정에서 상당히 치열하게 제기해나가야 할 사안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정치현실에 중대한 압박으로 작용하여 정치지도자들이 어떻게든 민족 자주적 입장을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공론화의 작업을 통해서 그간 발언하고 싶어도 정치적 현실의 중압감에 의해 발언하지 못했던, 상대적으로 양심적인 정치지도자들에게 민족적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환경을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식민지 정치의 한계 극복해야**

그런 차원에서 언론과 지식인 사회도 이에 대해서 크게 문제삼아 우리 사회 내부의 현안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당장 힘이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반론은 싸움도 해보기 전에 꼬리를 내리는 패배주의이다. 미국의 전쟁정책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변화를 뜻하게 된다. 거기에서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고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새로운 방법이 논의되고 이것이 정책의 중요한 근거가 되며, 정치지도자들의 인식과 발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막무가내로 우리에게 지금과 같이 압박해 들어오면서 우리의 자주를 유린하는 일들은 점점 쉽지 않게 될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 용산 기지 아파트 건립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이들이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얼마나 더 분명한 민족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실례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빌미를 잡아 일본의 군사정책을 보다 노골적으로 강화할 속셈을 보이고 있다. 평화헌법의 개정은 물론이요 군사적 행동을 법제화할 수 있는 보조조치를 강구하기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 주변정세가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일본이 미국의 전쟁정책과 좀더 긴밀하고 확고하게 결합하게 될 경우, 우리는 사면초가에 둘러싸이게 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비판하면서 이를 뒤에서 적극 옹호하고 있는 실질적인 배후인 미국의 전쟁정책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의 근본에 대한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자세이다.

이제 2002년을 맞이하면서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의 압박과 요구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가 우리의 삶, 그 전반적 기저를 결정한다는 것을 주시하고 대응의 방식을 진지하고 힘있게 공론화시켜 나갈 일이다. 이에 실패하면 우리는 안에서 우리끼리의 이전투구에 민족적 역량을 소진하는 식민지 정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전쟁의 소용돌이마저 휘몰아치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백년의 세월을 또다시 상실하게 되고 말 것이다. 때가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정작의 작업에 우리의 역량을 새롭게 모아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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