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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대화 제스처에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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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대화 제스처에 속지 말라 '전쟁정책' 본심은 변화없어
다시 한번 분명해지는 사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부시정권의 본심이란 결국 남북간 자주적 협력과 결속이 진전되지 않는 것이다.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동북아시아 평화체제가 확고해져가게 되고 군사주의 노선에 기반을 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질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민족적 생존과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굳이 복잡한 분석을 요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족의 생명을 지켜내려면 '굴종인가, 저항인가' 하는 차원의 선택 이외의 것은 없다.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는 그 나마의 잠정적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 내는 일은 우리의 강력한 저항과 확고한 결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미국의 지배세력은 투쟁하지 않는 상대에게 선의를 가지고 스스로 양보하는 법이 없다. 강자 앞에서의 굴종은 잠시의 안전을 도모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생존의 항상적 위기를 불러 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끊임없이 피폐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저항 없이 타협 없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및 대립강화는 남북 관계를 넘어서는 틀에서 보자면 대 중국 포위전략을 통한 미국의 동북아 지배전략의 기본적 요구에 따른 행동방식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본질은 제국주의 체제의 세계 전략적 목표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미국 부시 정권의 대 한반도 정책의 진정한 변화는 그러한 의미에서 거듭 강조하건 데, 미국의 이 같은 체제와 목표가 변화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에 대한 근본적 저항이 지속되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현재의 주한미군을 점령군과 다를 바 없는 초법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 땅에 계속 주둔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장기적 구상의 산물이다.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기적으로 미국의 지배세력을 대변하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그것이 군사주의 노선을 앞세우는가, 아니면 독점 대자본의 식민지적 이식을 강조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간섭/개입을 극복한 통일국가의 출현은 미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미래이다. 오로지 <한반도 전체의 군사 기지화/식민지화>가 우리의 역할, 기능과 관련한 미국의 근본적 관심사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인식 없이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본성격을 이해하는 일과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작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이와 같은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의 심층적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지, 그 발언을 계기로 우리에 대한 미국의 자세가 갑자기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반도 전체의 군사기지화·식민지화가 미국의 근본적 관심사**

'한반도 정세의 전개는 어쨌거나 미국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것은, 오늘날 부시 정권과는 접근이 달랐다고 평가받는 전임 클린턴 정권 시기에도 변함없이 관철된 원칙이었다. 클린턴 정권 시기 가까스로 용인되었던 '햇볕정책'이란 소위 한미 공조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 관할을 인정하는 선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존립은 클린턴 정권 하에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문제를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6.15 공동선언>에 대한 당시 클린턴 정권의 싸늘했던 반응은 소위 한미 공조의 기본성격이 무엇이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자주선언은 곧 미국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 공조는 한국이 미국의 위성 국가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 한 보장되는 것이었다. 1994년 대북 공격을 실행하려 했던 클린턴 정권의 경우, 적대관계의 점진적 청산을 의미하게 될 대북 유화정책은 그 임기 말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기미를 보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고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의 배경과 의도에는 미사일 문제 해결이나 군사비 증액 명분 또는 엔론 스캔들 회피용, 중간선거 승리를 겨냥한 정치적 포석, 전쟁 국가 강화 등등의 요인들을 넘어서는, 제국주의 체제의 세계 전략적 차원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은 지난 시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입의 통제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겠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본질상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사실 한반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1823년 라틴 아메리카를 미국의 영향권에 편입시키기 위해 내세운 <먼로 덕트린(Monroe Doctorine)> 이후 일관해서 관철되어온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의 기본적 노선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에 아르헨티나의 대미 반제투쟁에 앞장섰던 인물의 하나인 호세 이그니에로스(Jose Ignieros)는 "먼로 덕트린이란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 표명"이라고 하면서, 이는 한 마디로 <정복의 체계>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행태를 가르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투사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유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불행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윌슨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정권 하에서 대 라틴 아메리카 정책의 유화적 접근이 공언되었지만 현실은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무력위주의 "방망이 외교(Big Stick)"가 본질을 구성했고, 트루만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은 이 기조에서 벗어난 바 없다.

그런데 부시 정권에 들어서서 우리에게 좀 다르게, 그리고 매우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그 지배전략의 중심이 <실현성 높은 전쟁정책>으로 뚜렷하게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대북 정책에 있어서 전쟁 정책을 포기한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전쟁의 방식을 공언하고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상, 이는 '확전', '반 테러 전쟁'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제국주의적 지배전략의 공격적, 침략적, 정복주의적 본질>을 보다 분명하게 꿰뚫어 보고 그에 대응하는 우리 민족 내부의 결속이 보다 강력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의 축' 발언에 대한 국내의 반발을 의식하여 미국 부시 정권이 향후 외교적 수사(修辭)를 아무리 바꾸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쓴다해도 그것은 모두 실질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빈말에 지나지 않을 뿐, 정작의 본심이 달라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수사적 변화가 전쟁정책의 추진의지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 "대화지지", "포용정책지지"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해도 적대적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꿀 의사는 여전히 표명하고 있지 않으며 도리어 고강도의 조건들을 계속 내걸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외교적 수사에 현혹되어서는 안돼**

부시의 발언이 마치 군사무기 강매를 위한 정치적 포석이나 기타 대북 압박용 등으로 제한해서 이해하는 것은 그 문제만 풀리면 발언에 담긴 정책과 자세가 철회될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 한계와 위험이 있다. 그것은 가령 무기만 사주면, 또는 북한의 대미 자세가 좀 누그러지면 미국이 우리의 기대대로 행동해줄 것이라고 여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오산이다. 미국은 "남이나 북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종속과 굴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만족시키는 수준이란 종국적으로 항복 외에는 없다. 1994년 북한과 핵 문제로 제네바 협상의 실무를 담당했던 로버트 갈루치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한 2002년 2월 14일자 뉴욕 타임즈지의 질문에, "부시정권은 언제 어디서든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부시정권이 대화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북한의 항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신랄하게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흡족해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놓고 사고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과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북의 변화'란 자발적이건 압박을 받아서건, 미국 앞에서의 무장해제와 제국주의 침략의 근거지를 '개방'이라는 이름 아래 제공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기 전까지 미국은 갖가지 이유와 구실을 붙여 남과 북을 계속 압박해 들어올 것이다. 미국이 핵 동결을 전제로 대체 에너지 공급을 약속한, 북한과의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면서도 아무런 자세 전환이 없는 것은 미국의 이러한 고압적 패권주의를 보여준다. 협정 준수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이미 충분한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는 북한의 핵문제 처리를 핵사찰 요구로 또다시 문제시하는 것은 북한을 어떻게든 자신의 손아귀에 쥐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판명이 나고 있는 것이지만 미국은 애초부터 제네바 협정을 지킬 의사가 없었으며, 당시 힘을 얻고 있던 "북한 붕괴론"에 의지하여 시간을 벌면서 북한에 대한 점령정책 실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이 한반도 전략에 있어서 전쟁정책을 완전히 배제하고 <6.15 공동선언>에 확언된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에 대한 협조와 지지를 하겠다는 자세가 진실임이 입증되려면 실질적 내용은 담겨져 있지도 않은 "햇볕정책지지", "남북 화해 협력지지" 등의, 외교적 허사(虛辭)로 그칠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남북통일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진심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퇴각시키는 정책 실현이 무엇보다도 우선적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한반도의 운명을 미국이 관리, 지배, 결정할 것이며, 전쟁정책의 일상적 유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부시 정권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우리 민족의 생존이 좌우되는 현실적 기초인 미국의 군사력을 한반도 남쪽에서 정리하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 정부당국의 외교적 수사를 그대로 신뢰하면서 잠자코 있을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닌 것이다.

***한반도 남쪽의 미국 군사력 퇴각만이 미국의 평화의지 입증**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 미국이 장치한 전쟁 시스템을 청산하고 냉전의 유산을 해체하는 일,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한 미군 철수"의 조건이 점진적으로 또는 전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미국이 원하지 않는 한, 그것이 부시 정권이 되었던 어떤 정권이 되었던 미국은 우리의 민족 재통합 전략에 우호적일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3월 한-미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군사력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주도에 의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 같은 합동군사훈련이 존속하는 상황에서, 전쟁 정책의 철회와 남북 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일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 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이야말로 "방어용"라는 이름의 공세적 대북 전쟁정책 수행을 위한 기초와 조건을 마련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전쟁정책 철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반도에서 전쟁상태의 법적 청산을 하는 작업에서 비롯된다. 이미 국내의 시민 사회단체들의 일부가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바로서, 그것은 현재의 준 전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조속히 전환하고, 준 전시 상태의 관리를 명분으로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대의 철수와 미군기지철거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압축될 수 있다. 미국이 이러한 작업과 과정에 반대하는 한, 우리는 미국의 그 어떤 정책과 발언도 믿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자주적 해결작업에는 미국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자신의 패권적 정복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로 강대국의 지배전략이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남북 대화와 협력이란, 그 강대국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파탄이 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흔들림 없이 인식해야 한다. 이는 또한 우리 내부에서 미국의 이 같은 정복주의적 한반도 정책을 거부하는 민족적 의지와 역량의 결집이 민족 생존을 위해 최대한의 관건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미국 부시 정권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결별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정치적 부각에 관심을 쏟는다는 요지의, 2월 초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나 2월 중순의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사는 사실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 부시정권의 불편한 시각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시기에 이미 불거져 나왔던 문제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지금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입장을 가지고,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햇볕정책을 겨냥하여 비판했던 바 있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부시 대통령이 취 임초기에다가 대북 정책의 구체적인 골격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군사적 선제공격의 가능성까지 담고 있는 매우 공격적인 정책을 공개적이고도 분명하게 표방했기 때문에 사태의 여파가 엄청나게 다르다고 하겠다.

***내부의 대미 사대주의적 세력 청산, 중대과제로 떠올라**

그런데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과 대부분의 한국언론들은 이번 발언의 파장으로 한-미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에는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발언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민족적 관점에서의 규명보다는 부시 정권이 제시한 원칙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햇볕정책이 미국의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추진된 까닭에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평가한다면, 결국 우리는 미국의 정책을 기준으로 우리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이른바 한미 공조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햇볕정책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동맹국"인 미국과 갈등을 빚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결론이 된다. 이러한 자세는 미국의 패권정책을 위해서 우리 민족의 이익을 희생시키자는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른바 동맹국이 우리의 이익을 파손해도 동맹국의 입장을 우선하자는 이러한 발상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동맹국이라는 이름의 식민 모국"이 관철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가치를 보편적 원리로 내세우는 노예적 근성의 발로이자 반민족적/매국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주장에 매몰되어 있는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청산되어야 하는 위치를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강공 기조와 전쟁정책의 선포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바로 햇볕정책의 성과가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게 될 가능성 때문이라는 측면도 주시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의 실패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성공의 가능성이 보다 확고한 기정사실로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일부언론이 남북관계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이러한 기조에 비난을 퍼붓는 것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쟁정책을 지원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정책의 실현을 향해 달리는 세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들이 집권할 경우 그것이 몰고 올 결과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 부시 발언 이후 새롭게 형성되어가고 있는 "한반도 평화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반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전선"의 성격은,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의 정세를 결정하는 작업에 민감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전선의 발전이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에 따라서 종속적 대미관계의 극복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의 집결 및 정치력 발휘가 좌우될 것이다.

한편, 이번 "악의 축" 발언에 담겨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은 아프간 전쟁 이후의 <확전 논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나온 이야기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확전 논리>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우리는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미국의 전쟁정책, 그 공격적 확전 전략의 대상이 되는 나라의 입장에서 이 논리는 "침략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이란, 그리고 이라크의 반발은 자신의 나라를 "악의 축"으로 불렀다는 자존심의 차원에만 있지 않다. 미국이 이들 나라에 대해, "군사적 위험 사전 제거"라는 명분 아래 <선제 침략>할 수 있다는 전쟁선포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전 논리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질을 드러낸 표현**

미국의 전쟁정책의 본질은 따라서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상황이 부시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긴장되고 있는 까닭도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북한이 미국에게 아무런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해도 잠재적 위협 가능성을 내세워 북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과 일방적인 침략행위가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군의 지휘를 받는 우리 군이 이 침략전쟁에 그대로 끌려 들어가고 그래서 한반도 전역이 전쟁의 참화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그 본질을 주목해보면, 대 테러 전쟁의 명분과는 사실상 상관도 없이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백성들과 이들의 삶의 기반을 희생, 파괴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적 지배와 정치적 관리라는 식민지 경영의 방식을 추구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한 유형이다. 아프가니스탄 신 정권의 대미종속을 비롯하여, 지금도 계속 확인되고 있는 미군에 의한 민간거주 지역에 대한 폭격과 학살, 그리고 고문과 구타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은 미국이 이 지역에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복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악의 축" 발언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확전 논리는 이러한 침략정책을 종교적 흑백논리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중차대한 과제는 우리 민족이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겨냥상대로 제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전쟁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기반으로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창출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모아진다.

지난 1백년간의 우리 민족사의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교훈은 <반제(反帝)투쟁의 중요성>에 있다. 제국주의 체제의 노예가 되는 순간, 민족의 삶은 여지없이 붕괴되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생명을 위한 공간과 시간의 자유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실로 지난 시기 우리의 반민주적 정치현실의 역사는 다름 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치체제 하에서 강제되었던, 제3세계 종속 파시스트 세력을 동원한 식민지 경영의 결과였다.

해방정국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친일사대주의 세력의 청산이 좌절되면서 미국의 식민 지배체제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것은 당시의 단계에서 "친일세력 청산으로 귀결되어야 했던 우리의 고귀한 항일반제투쟁의 성과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전략에 의해 몰수된 것"을 의미했으며, 이 땅의 지배세력이 이후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대체한 미국이 새로운 주인이 된 식민지 체제 유지에 봉사하는 역할을 자임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동북아 지역, 제국주의 체제 해체의 열쇠**

우리의 분단 자체가 냉전의 틀을 통해 자신의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를 유지해온 미국의 주도적 기획 아래 이루어진 사태였고, 완전한 종전(終戰)정책을 거부하면서 한국전쟁의 결과를 한반도 남쪽에 대한 자신의 영구적 점령정책을 관철하는 기회로 삼아온 것 또한 우리에 대한 미국의 기본자세이다.

과거의 구 식민지 경영방식과는 물론 그 양태가 다르나 한반도 남쪽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조정, 군사적 점령상태와 경제적 지배체제의 존재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극복은 오늘날 미국의 전쟁정책에 우리가 휘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우리가 최대한 집결하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전쟁은 제국주의 체제 유지의 기본 전략임을 역사는 증명해주고 있다.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는 자신의 영향권을 확보하고 침략적 수탈과 정복주의적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왔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방지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제국주의적 경영의 고리 하나를 약화시키는 관건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대한 점 한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미국 부시정권이 이란, 이락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거론한 것 자체가 자신의 제국주의 질서 유지에 한반도 그리고 나아가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가를 드러낸 셈이라는 점이다. 이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통제권을 상실하게 될 경우 미국으로서는 일대 타격이 된다는 것을 고백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제국주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인류적 평등과 정의를 위한 세계사의 진전이 가능해질 수 있는 조건확보에 일조할 수 있음을 뜻한다. 모순과 위기가 깊어갈수록 놀랍게도 그에 대한 대안의 실현역시 보다 구체적이며 발전적 방식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새롭게 솟구치게 되는 근거이다.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은 혁명적 열정과 냉철한 정세분석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혁명적 열정이란 제국의 지배를 일정하게 용인하는 방식에 대한 꾸준한 거부요, 냉철한 정세분석이란 제국주의와 이를 따르는 식민지 내부세력의 실체에 대한 가감 없는 정밀한 인식을 뜻한다. 실로, 오늘날 전쟁 발발의 공포가 지배하려는 민족사적 위기 앞에서 특히 언론과 정치권은 미국을 대표로 하는 제국주의의 <거대 자본과 군사력의 파시스트적 동맹체제>가 가하고 있는 압박과 폭력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비롯하여, 세계 인류의 약자들의 편에 서기 위한 결의를 다져야 할 때이다.

이 결의가 명확하고 굳건할 때, 부당한 기존질서의 본질을 은폐하는 교묘한 논리들과 허다한 헛된 주장들을 명쾌하게 격파하고 우리 자신이 역사의 무대에서 참된 주역이 되는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새로운 개막은 인류의 생명과 꿈을 이루어내는 활력을 우리 모두에게 힘차게 부어주게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해서 진정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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