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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해체했으나 대미굴종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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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군사독재 해체했으나 대미굴종 심화 쟁점토론 '양김 집권 10년' <3> 김민웅
김영삼, 김대중 두 전ㆍ현직 대통령은 오랜 민주화 투쟁 과정을 거친 이후 국민적 열광 속에서 차례차례 집권했다. 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집권 말기, 둘 다 가족 및 핵심측근 부패사건과 연루되어 국가지도자로서의 기능에 중대한 타격을 입고 무너진다. 그러면서 한 사람은 외채위기, 다른 한사람은 정국운영 능력의 권위손상과 마비 등으로 그 스스로가 국정전반의 혼란에 대한 원인 제공자가 되거나 또는 정치 경제적 파란이 일어나도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비극에 직면해버리고 만다. 권력자가 된 처음과 끝이 극단적 대조를 보이는 정치역정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과 끝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처음에 종말의 씨앗이 담긴 결과였을 뿐이었다. 실로 시작을 어떻게 하는가는 그래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마지막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 잡은 방향에서 비롯된 무수한 과정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양김 정권의 비극성, 그 시작에 씨앗이 들어 있어**

김영삼 정권은 전두환-노태우 시기 정치군부의 핵이었던 '하나회' 해체, 전-노 전직 대통령 체포 및 구속 등 이 나라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군사주의 정치 극복에 일정한 공헌을 했다. 반면에 그는 국가권력을 아들이 이끄는 사조직에 일부 이양, 행사하도록 하다시피 하는 왕조적 사고에 갇혔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국가경제를 무방비하게 개방하는 단초를 열어, 통제가 어려운 자본시장의 급성장으로 외환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만들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의 경우에는, 남북화해의 중대한 계기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IMF 체제 극복의 방향을 잘못 선택, 신자유주의 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세력이 되어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노리는 자본(내지는 초국적 자본)의 지배에 굴종 내지 유착함으로써 결국 <돈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2002년 5월 초 현재 '검은 돈 폭로'로 청와대를 강타하고 있는 정치 브로커 최규선은 신자유주의의 공간에서 자본의 힘을 앞세운 외세에 특권적 통로가 된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권의 기본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런데 양김은 집권 초기 자신의 일시적인 정치 경제적 성공에 취해 오만해졌고, 고달픈 민중의 아우성을 정치에 담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들이 특권세력이 되어 비판의 소리에 귀를 막고 마침내는 민심과 멀어진, 또는 외면 당한 상태에서 자멸의 길에 빠져 들어가는 동일한 유형을 보였다. 민주화 운동의 궁극적 목표, 즉 권력이 소수 특권세력의 도구가 아니라 민족과 민중을 섬기고 봉사하는 원칙을 배신하고 만 쓰라린 대가였다. 밑바닥 백성들의 삶과 육성을 절절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가 어떤 결말을 보이는가를 확연히 입증해준 셈이었다.

이로써 둘 다 공히, <신자유주의를 틀로 한 미국의 새로운 식민주의적 예속 구조와 봉건적 정치문화의 결합>으로 '돈과 일탈권력에 휘둘린 정권'이 되었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가족, 측근, 가신 등에 의한 부패와 부정으로 끝내는 본인 자신도 지켜낼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이것은 냉전 수구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의 희생과 역사적 위업을 조소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한 역사적 죄가 되었고, 이들 세력의 영향력을 도리어 온존시키고 키워주는 역설적 조건을 자초하고 말았다. 양김 두 사람의 과(過)는 그 자신들의 공(功)을 덮을 정도로 너무 커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군부정권 몰락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순응해간 제3세계 국가의 민간 정치인 출신 수반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인 봉건적 정치문화의 틀과, 권력의 사유화에 맹위를 떨친 돈의 위력이 결합한 결과로 부패의 수렁에 빠진 전철을 그대로 따라간 셈이었다. 이는 민족적 결단의 자주성과 민중적 정의를 망각하거나 포기하고 '미국의 수하에 들어간 매판적 식민지 정권의 운명'이자, 이 과정에서 엄격한 정치윤리를 수호하지 못한 채 돈과 권력의 맛에 빠져 '특권세력이 되어버린 지도자와 그 세력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봉건적 정치문화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지배체제의 결합으로 부패 수렁에 빠져**

이것은 양김 10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역사의 교훈으로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양김 정치의 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우리들 모두에게 이들이 국정의 주도권을 누린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치열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민주당 대선 후보 노무현의 정계개편 구상이 일차적으로 양김 세력의 화해와 연대를 기초로 하겠다는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방식은 이들의 정치적,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거치거나 바탕으로 삼지 않은 채 지역맹주의 권위를 고리로 하는 지역연합이라는 봉건적 정치문화의 복구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는 점으로 하여 심히 경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의 노력은 지역갈등의 해소와 함께, 1987년 대선의 와중에 양김으로 분열되었던 민주화 운동세력의 재결집이라는 명분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을 보이고 있는 양김의 화해를 기초로 더 큰 틀을 짜기 위한 계기를 확보하려는 구상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이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시대적 과오를 반성하고 이를 근거로 냉전수구세력의 집권을 극력 저지하려는 민주화 운동의 완결에 이바지한다면 그야말로 그 같은 연합전선 결성은 뜨겁게 반길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노무현의 접근은 사실 적지 않게 불안해 보인다. 냉전수구세력의 집권 저지를 위한 개혁적 선택을 강조하면서 단결을 주창하는 논리를 최대한 부각시키지 못하고, 김 전 대통령의 지역맹주적 가치를 상승시키고 김대중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핵심부의 특권세력화로 인한 정국의 혼란을 애매하게 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양김 세력 연대는 시대적 유물로 청산되어야 할 양김의 정치적 주도권의 복구와 이를 통한 지역 연맹의 봉건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봉건적 정치문화-냉전형 특권질서-대미 굴종이라는 식민지 정치의 유제>는 그대로 온존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사람에게 있어서 봉건적 정치문화는 극복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의 수단이었으며, 냉전형 특권질서에 있어서는 양 김에게 저항 정도가 각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약속했던 국가보안법 개폐 실현능력 부족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치열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대미 굴종에 이르면 난형난제(難兄難弟)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현 정계개편 논리, 자칫 연대의 중심을 구시대적 요소로 채울 가능성 높아**

따라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노무현 방식의 연합이 갖고 있는 성격은 개혁성을 일부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 노무현의 정계개편과 신민주연합전선을 '구시대적 지역주의의 복원'이라는 하는 비판이 일고 있는 까닭도 다른 것이 아니다. 종말을 고해야 할 요소를 현재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무덤에서 다시 현실로 불러들이는 일은 중도에 노무현 개혁호의 좌초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극히 피해야 할 일이다.

실로, 냉전특권 세력의 공세 앞에서 민주화세력의 연대는 절박하고 귀중하나 그 연대의 중심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개혁적 통합을 겨냥하는 노선은 표류할 수 있으며 결국 노무현의 선택은 양김 시대의 한계와 모순을 그대로 떠 안게 되는 위험이 높아진다. 이것은 양김 시대를 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연장선에 서는 격이 된다는 점에서 전환기에 처한 지금, '새로운 시작의 방향을 바로 잡는 일'은 그야말로 중차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방향과 가치 그리고 원칙을 바로 정리하지 못하면 양김 10년의 그림자는 자칭 보수원조라고 하는 김종필까지 하나로 묶어 살려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하겠다. 양김의 공을 일정하게 인정하지만, 개혁노선을 중심에 두지 않은 채 이들이 전환기에 필요한 미래적 역할을 감당하는 방식은 구태의 반복이자 노풍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를 소멸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노풍에서 나타난 개혁노선 결집의 가치보다는 지역맹주로서의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느라고 미국이 좌우하는 식민지 정치의 주도세력이 되어버린 이들 두 사람의 역사적 위치에 대해서 보다 신랄한 인식을 전제로 하는 정계개편과 연합전선 결성이 아니라면 노무현 체제는 '현실 정치라는 변설'을 앞세워 정당화해버린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내부의 심각한 모순을 감당하느라고 앞으로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의 집권 10년은 무엇보다도, 그에 앞서 존재했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명제>로 일단 규정될 수 있다. 양김의 정치적 성장이 이 시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또 이들의 정치적 가치 역시 군사정권의 주도권을 해체하는 작업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양김 집권 10년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군사주의 세력의 주도권이 해체되는 과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동일한 역사적 과제를 떠맡았지만 양김의 역할은 각 집권시기의 특징으로 인해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김영삼의 경우, 군사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이양되어 가는 전환기적 과제가 일차적 비중을 지녔다면 김대중의 경우 그렇게 이루어진 토대 위에서 군사정권이 강화한 국가주의의 약화와 냉전질서 청산에 역량을 모으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 두 정권에 비중이 높아지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지배력>이었다. 군사주의적 요소가 정치의 전면에서 퇴각 당하고 자본의 공간이 급속도로 확대된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현실적 지지세력으로서의 보수 민간정치인의 역할은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가치를 갖게 된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자본의 지배공간 확대'로 특징지워지는 양김 시대**

군부정권 몰락 이후 민간정권의 등장은 내부적으로 민주화 운동과 투쟁의 성과물이기도 했으나 미국의 대한 정책 변화가 매우 중요한 조건과 환경을 구성한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양김의 집권은 이러한 미국의 대한정책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자신의 정치적 권위와 역량이라는 자력적 요소에만 의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국은 70년대 말을 거치면서 제3세계 내에서 군부정권이 민중의 저항을 격렬히 받게 되자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의 유지를 위한 식민지 정치의 지형 변화를 꾀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군부를 일선에서 퇴각시키면서 미국의 군사노선과 자본의 지배방식을 예속적으로 수용할 민간정치인과 그 세력에 대한 지원으로 전략적 정리가 이루어진다. 이름하여 <재민주화정책(Re-democratization)>이었다. 케네디 정권 이후 유지되어 왔던 제3세계 군부정권 지원전략에 일대 수정이 가해진 것이며, 친미 민간정치인 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여기에다가, 미국과 구 소련의 냉전대치전선이 소멸된 국제환경에서 초국적 자본의 지배체제를 보다 강화하려는 신자유주의 노선이 군사정권의 기반인 제3세계의 국가주의를 장애물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정치군부를 핵으로 하는 제3세계 국가는 '시장의 자유'를 내건 자본의 공격대상으로 선정된다. 제3세계 국가가 한때 미국 자신의 지배전략적 산물이었다가 이제 미국으로부터 그 해체를 요구받게 되는 역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세계 민간정치인들은 국가주의에 저항해왔던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라는 점으로 하여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가지고 있는 정치경제적 이해와는 일치되는 지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김영삼의 집권은 이러한 미국의 재민주화 정책의 과정에서 가능해진 것이었으며, 전두환-노태우 정치군부 세력은 미국에게 그 효용가치가 일단 종료되었음을 통보 받게 된 셈이었다. 이렇게 제3세계 국가주의를 해체시키는 작업에 미국은 보수적 자유주의 민간정치인들의 역할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의 등장을 극도로 경계하게 된다.

민족주의의 등장과 그 영향력 강화는 미국의 식민지 체제 약화를 결과한다는 점에서 이후 민족주의는 세계화의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김영삼 정권 초기 '민족이 동맹을 우선한다'는 주장이 냉전 질서와 세계화 논리에 의해 후퇴를 강요받았고, 김대중 정권 시기에는 민족문제의 자주적 주도권을 지향하면서도 '동맹과 공조'를 유난히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체제가 보다 내면화되고 심화된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양김은 시대적 유용성이 이미 떨어져 가고 있던 패색 짙은 정치군부에 대한 일정한 승리를 거두는 대가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의 지배 공간에 끌려 들어가 국가경제의 매판적 성격을 강화했다. 그리고 이 체제가 제공한 자본과 자신의 생존기반인 정치적 봉건성이 결합한 권력유지 방식에 매몰되어 결과적으로는 <봉건적 정치문화-냉전형 특권질서-대미 굴종>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형성된 식민지 정치의 틀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만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비판하고 개혁적 통합의 원칙을 세우지 않은 채, 양김의 유산을 그대로 이용하여 새로운 시대의 연대를 짜려는 발상과 사고는 역사의 “반동적 요소(reactionary forces)”를 강화할 뿐이다.

노무현 진영의 대미 자세가 아직 민족적 관점에서 확고하게 정리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래서 식민지 정치의 유산을 깨끗이 청산할 수 있는 자세와 노력의 미성숙과 불안정을 보여준다. 노무현의 입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을 우리는 그래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노풍'이 분 것은 노무현 자신이 역사의 대의에 기초하여 민심의 엄호를 믿었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오늘날의 정치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양김 시대가 벗어나지 못한 식민지 정치(이것은 따지고 보면 1945년 미 군정의 지배 이래로 이 땅에서 전개된 일체의 정치행위의 기본 틀이다)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적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시 민심의 엄호를 믿고 역사의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감당하려는 그에 대한 민심의 엄호에 진력을 다할 것을 끊임없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확산해나가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6월말 하야, 거국 중립내각으로 대선 체제 가동, 10월중 조기 대선**

이 새로운 시대적 연대를 위해 지금 김대중 정권이 자신을 역사의 미래에 던지는 결단의 의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먼저 각종 비리 사건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엄중한 사법적 처리, 그리고 김대중 시대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국민적 직접 사과를 우선으로 하며 역 지역주의에 피해의식을 갖게 된 영남 민심에 머리를 숙이고 지역통합의 대의와 냉전특권질서의 복고적 집권을 저지할 수 있는 개혁정치의 깃발을 위해 민족적, 민주적 결단을 호소하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6월 말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끝나는 즉시로 모든 정치일선으로부터 물러서서 하야할 것을 천명하며, 국가적 핵심 중책으로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경제, 국방, 통일, 외교를 제외한 분야에서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여 2002년 대선 관리체제에 임하도록 하는 일이다. 7월과 8월은 하한기(夏閑期)라는 점에서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휴지기가 될 수 있으며, 중립내각의 시험가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춘계 정치투쟁의 장을 위한 준비기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선의 시기를 12월보다 앞당겨 10월 정도로 하여 권력의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최대한 막고 선거를 조기에 끝내 금년 말부터 새로운 정권의 집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틀이 짜여지면, 더 이상 김대중 정권의 구시대적 현실을 놓고 정치적 정력이 낭비되는 일을 막는 동시에, 반 김대중 정서로 형성된 영남 민심의 이반에 지역연맹이라는 봉건적 정치문화로 접근할 이유가 없게 되며 개혁정치의 화두를 깃발로 하여 정계개편의 새로운 양상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다만 제도권에 속한 민주화 운동 세력만이 아니라, 사회 각분야에 포진해 있는 개혁, 통일, 평화, 환경, 노동 일체의 탈 특권적이며 탈 냉전적이고 탈 식민정치 지향적 세력의 최대한의 결집을 통해서, 극우 세력 르팽에 대한 반대 연대를 성사시킨 프랑스와 다를 바 없는 정치적 변혁의 계기를 확보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극히 일부 구성원들을 빼놓고 사대주의적 냉전특권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는 한나라당과 그 후보 이회창의 집권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민주전선 결성의 실현이 이로써 가능해질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진정, 양김 시대가 이 나라의 자유와 통일의 중요한 기초를 닦은 공을 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양김이라는 두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가에 또한 달려 있다. 아직 두 사람에게는 역사의 기회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방향과 내용은 식민지 정치를 극복해야 할 '노무현 현상'이라는 이 나라 정치의 개혁적 미래가 집약된 현실을 위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들 두 사람의 전 현직 대통령, 김영삼-김대중이 역사에서 살 수 있는 '최후의 열린 길'이다.

새로운 시작은 이러한 일련의 원칙과 결단 그리고 모든 민주/개혁/통일/진보 세력의 결집으로 보다 홀가분하고 포괄적으로 바르게 이루어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기회를 우리의 우매함으로 또다시 놓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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