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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김은 한국판 고르바초프와 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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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양김은 한국판 고르바초프와 옐친 쟁점토론 '양김 집권 10년' <4> 홍종학
다음 글은 프레시안이 마련한 '쟁점토론 양김 집권 10년'을 위해 한 독자께서 자발적으로 보내주신 투고문이다. 프레시안은 앞으로 독자들의 투고 중 좋은 글을 골라 게재할 예정이다. 이 글을 투고해주신 홍종학씨는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로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필자는 2년전 '한국은 망한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제목까지 붙여가며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대중정부와 김영삼정부의 차별성보다는 공통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필자는 두 정부가 일란성 쌍둥이로 비유될 정도로 유사점이 매우 많다고 보았다. 그런 시각에서 필자는 김대중정부가 반드시 부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2년전 정부가 IMF 조기졸업을 축하하고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던 축제 분위기 속에서 필자는 목청 높여 김대중정부를 비판했던 것이다. 필자가 강력한 권력집단을 스스럼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김대중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둘째, 필자는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의 가장 큰 공통점이 박정희식 통치방식에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박정희식 통치방식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민을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을 제외하고 온 국민이 찬성하는 정치자금법 개혁은 아직도 미진하지만, 그 동기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노동자들이 반대했던 정리해고제를 통과시키기 위해 김영삼, 김대중정부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법제화한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억제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패를 수반하게 된다.

셋째, 양김 10년의 실패는 양김의 책임보다는 개발독재시대에 형성된 사회구조의 모순 때문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었다. 결국 그런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양김은 많은 개혁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만 그 성과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 원인이 양김에게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개혁입법이 왜 체면치례로 이루어진 원인을 따져보자. 작년 여야정합의를 통해 대폭적인 재벌규제완화가 이루어졌다. 국민들의 가슴을 메어지게 하는 교육, 의료보험, 빈부격차 등 산적한 문제를 제쳐두고 여야정이 합숙까지 해가며 한 일은 재벌의 민원을 풀어준 일이었다. 김대중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재벌, 관료, 여야 정치인을 망라하는 거대한 세력이 한국정치를 좌우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전대통령이 잘못해서 IMF사태가 왔다거나 김대중대통령이 잘못해서 지금 이 모양이라는 것은 역사가 영웅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영웅주의를 믿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 우리 역사가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시민사회세력의 운동으로 큰 흐름이 결정되었다고 믿는다. 시민사회 세력이 6월항쟁의 승리에 도취되고, 문민정부의 탄생에 도취되고, 정권교체에 도취되어 잔치를 벌여 왔지만, 개발독재시대의 지배층이 주도하는 사회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김 정부는 과거의 인사들을 등용하고 박정희식 통치방식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평가이다.

결국 우리의 모든 문제는 박정희식 통치방식에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여야정의 담합을 유도하는 거대한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사회세력의 역량이 성숙되어야 하는데, 시민사회세력의 역량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증진되는 것이 아니기에 필자는 초조해 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시대**

필자의 주장이 다소 추상적이기 때문에 소련의 예를 들어 다시 부연 설명해 보자. 소련은 20세기 전반 강력한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계획경제의 근본적인 내부모순으로 인해 쇠락해갔고, 그러한 내부모순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승계했다. 그는 이전 지도자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개방(glasnost)과 개혁(perestroika) 정책을 추진했다. 아마 그것 외에는 더 이상 쇠퇴해 가는 제국을 지탱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가 이루어 놓은 제도개혁으로 인해 권력은 옐친에게로 돌아갔다. 그 90년대 러시아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옐친은 부패 스캔들로 얼룩지게 된다. 아마 많은 러시아인들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원망할 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공산당 세력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국민적 원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리라.

그러나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러시아 경제가 고르바초프나 옐친 때문에 몰락했다고 믿지 않는다. 지도자가 조금 더 잘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겠지만, 과거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운영되던 구조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서독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동독의 회복도 저리 더딘데 러시아 경제가 쉽게 회복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는 소련과 한국의 공통점을 강조한다. 한국은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이다. 그 원동력 역시 개발독재, 또는 관치로 불리는 계획경제에 있었다. 물론 시장경제를 많이 수용했기 때문에 소련과는 큰 차이가 있으나, 그런 면에서 오히려 소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필자는 80년대 중반 즈음에 그런 방식의 성장에 한계가 왔고 사회 다방면에서 모순이 극에 달해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 그 연장선상에서 6월항쟁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마피아'가 지배하는 사회**

필자는 개발독재방식의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방식의 사회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쇠락할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양김의 10년을 맞았다고 본다. 그들은 한국판 고르바초프와 옐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에는 마피아가 횡행한다고 한다. 정규 통치조직이 무너지고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 현상이다. 한국에도 이미 수없이 많은 마피아가 있다. 개발독재시대에 형성되었고 군사정권시절에는 감히 겉으로 드러내지 않다가 민주화시대를 맞아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마피아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것은 엘리트의 마피아다.

재벌은 오래 전부터 완벽한 마피아체계를 구축하여 대를 이어가며 부를 누리고 있다. 일류대 마피아는 학벌사회를 완벽하게 구축해 놓았다. 법조계 마피아는 전관예우를 통해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고, 관료 마피아는 아직도 관치의 끈을 놓지 않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재경부 마피아는 경제계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언론 마피아는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한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TK, PK, MK로 이어지는 향우회 마피아가 조성된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영남인들도 호남인들도 이제 자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영남인만의 문제도 아니고 호남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누가 되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껏해 봐야 자기가 선출한 자기지역 출신 대통령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것뿐이다.

***다음 정부도 실패할 것**

우리가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사회구조를 정립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는 끝없는 쇠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음 대통령이 한국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푸틴이 러시아를 살릴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과 같다. 다음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 봐야 부흥의 전조를 알려주는 조그만 희망을 심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양김 시대를 이끌어 왔던 정치인과 관료들의 면면을 되새겨 보자. 듣기 좋은 말로 표현하면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연합이라고 한다. 근대화세력이라는 것은 개발독재시대를 계승하며 관치의 달인이 된 진념류를 의미하고, 민주화세력이라는 것은 개혁의 미명하에 주도하는 개악 정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이해찬류를 의미한다.

영호남인들이 얼마나 더 많이 포함되어 있는가가 김영삼시대와 김대중시대의 차이일 뿐이다.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합숙까지 해 가며 여야정 합의를 이끌어 냈던 그 거대한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개혁세력이라고 목청높이지만 자기 당의 총알받이를 마다하지 않는 소수의 김문수, 천정배류가 그 대세를 바꿔 놓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 한 개인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실패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이 영웅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실패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며 수수방관해 왔던 시민사회세력의 자기 합리화는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필자 개인의 감상적 판단으로는 그들은 그저 훌륭한 민주투사였을 뿐이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시민사회세력의 반성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라고 필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노풍은 변화의 시작일 뿐**

비관론자인 필자에게 노풍은 혁명적 변화였다. 정치인들이 차려놓은 성의없는 밥상을 거부하고 국민들이 새롭게 밥상을 차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6월항쟁에 버금가는 감동적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각성하게 되었고, 이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박정희식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불과 두 달 사이에 상황의 반전을 주도한 것은 시민사회세력의 역량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6월항쟁 이후 영웅주의의 오류에 빠져있던 시민사회세력이 서서히 오류에서 벗어나는 조짐들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있었다. 영웅들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무조건 '바꿔'를 외치던 시대를 지나, 이제 스스로 바꾸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갈길은 너무도 멀다. 자신이 마피아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엘리트계층을 각성시켜 사회구조를 변화하기까지는 고달프고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6월항쟁은 완성되는 것이고, 그 때까지 우리는 쇠락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저 우리에게 위안이 있다면 푸틴도 러시아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 속에 중요한 교훈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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