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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모델' 따라 군사적 압박환경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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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라크 모델' 따라 군사적 압박환경 조성 <전문가 진단> '북핵 문제 안보리 회부'에 담긴 美 의도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최근의 정세는 일단 급박했던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지고 외교적 해법 쪽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대북 압박전략의 수순만 다소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외교적 해법은 대북 압박에 대한 국제공조의 강화이지,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관계 해소에 따라 각종 단절되었던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바로 이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조건 마련보다는 북한의 일방적 굴복을 끌어내려는 쪽으로 사태를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북핵 문제 유엔 안보리 회부 의지표명은, 결의안ㆍ사찰ㆍ사담 후세인 제거 필요성 강조ㆍ군사적 행동 불가피ㆍ단독 공격 불사 등의 절차를 밟고 있는 <이라크 모델>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우려가 깊을 수밖에 없다.

***보다 포괄적인 미국의 포위 전략**

대화를 내세우면서도 대화의 상대인 북한의 반발이 분명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대화의 진척에 대한 관심이나 의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대화론은 기만책이 된다.

최근의 정황은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 내지 봉쇄정책이 고강도로 진행이 되다가 이것이 국제적 제동에 걸려 다른 절차를 모색하고 있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미국의 이른바 <맞춤형 봉쇄전략>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 부시정권으로 하여금 전술적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쪽으로 가게 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외교적 해결>이라는 논리가 본질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 포기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포위 전략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좀 조심스럽게 그 추이를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다중 압박작전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부시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고 악의 축에 해당하는 국가들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발상의 연장선에 서 있는 자세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 지지 여론에 장애를 제거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불가피함을 보이는 장(場)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서, 시간적으로도 일단 이라크 전쟁 이후의 상황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미국의 뉴요커(New Yorker) 잡지에 난 기사는 미국 부시정권이 결국 북한의 김정일 정권 붕괴를 목적으로 이 모든 사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가지게 하고 있다. 기사를 작성한 세이무어 허쉬(Seymour Hersh)는 탐사전문 취재기자로 명성이 높은 언론인이다. 그는 구소련 시기에 KAL기 격추 사건이 났을 때(1983년) 미국이 구소련 방공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KAL기를 첩보기로 사용했다는 책을 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주로 미국 정보계통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밝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뉴요커라는 잡지 자체도 애틀란틱(The Atlantic)이나 하퍼즈(The Haper's) 등과 함께, 여론조성에 영향력이 강한 고급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만만치 않은 매체이다. 기사내용은 주로 북한의 핵 개발과 파키스탄의 관계에 대하여 미국 정보기관이 계속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결론적인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즉 이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압박과 협상의 대치 또는 강온파의 대립이 있는 듯하지만, 부시정권의 진정한 속내는 김정일 정권 붕괴작전에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 교체작전 쉽게 포기 하지 않을 듯**

이미 이라크에 대한 점령정책과 군정실시 위원회 계획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북한에 대한 동일한 방식의 적용이 가능하다면 미국으로서는 이에 주저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의 여러 외교적 논의과정은 적어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의한 부담 때문에 시간을 벌고, 이라크 이후 북한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장기 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각도로 볼 때, <이라크 모델>이라는 차원에서 북한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이 갖는 의미는 우선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은 대 이라크 사찰을 고리로 하여, 유엔의 대 이라크 결의안을 “유엔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미국의 단독적인 군사행동 추인”으로 해석하고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유엔에 대한 상정은 미국의 일방적 행동에 대한 반발여론을 진정시키는 형식적인 통과절차에 불과하고, 결국 미국의 본래 계획대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지난 주 대규모의 반전평화 시위가 벌어졌지만, 부시정권은 이에 대하여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영국과 함께 유엔의 동의 없이도 단독적인 전쟁으로 돌입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정은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추진하려는 사전 작업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매우 위험한 사태의 단계적 실현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이 과정에서 다자개입구도가 만들어져서 우리 민족의 한반도 문제 해결 주도권이 약화 내지는 상실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한다.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너무 빠르게 앞지르거나 과민반응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 문제를 놓고 우리를 제외시키고 주변 열강들간의 다자간 비밀담합이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보다시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 관할구조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통제하기 위해, 내지는 핵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선제공격 기습전쟁 이후 일종의 공동관리 체제를 내걸고 다른 열강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토록 반대를 표명했던 열강들이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을 포함하여 입을 꾹 다물고 만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은 물론 다르겠지만, 열강정치의 역사가 어떤 비운을 우리에게 가져왔는지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범상치 않은 상황이다.

***봉쇄작전의 비극성**

오스트렐리아의 전쟁전문기자 존 필저(John Pilger)는 그의 최근 저서인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The New Rulers of the World/London, Verso: 2002)>에서 “우리는 미국과 서방이 저지르는 수십만의 민간인들을 향한 폭탄투하는 죄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지난 걸프전쟁 이후의 미국이 주도한 전쟁을 가리켜 이것은 “오늘날의 대학살”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그는, 걸프전쟁의 과정에서 열화(劣化) 우라늄 탄환을 사용, 이것이 이라크 인들에게 암과 기형아 출산을 비롯하여 엄청난 후유증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엔의 봉쇄정책이 이라크 아이들에게 의약품 공급까지 막고 있어 한 세대가 멸종이 되어가다시피 하는 비극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절규한다. 군사공격과 봉쇄정책의 무서운 현실을 이 땅에서 되풀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퍼즈(The Harper's)의 편집장 루이스 래팜(Lewis Lapham) 역시 그의 저서 <전쟁의 현장(Theater of War/New York, New Press: 2002)>에서 “전쟁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에게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해왔다”면서 미국의 무죄와 순수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군사적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갠다에 불과했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부시정권의 외교논리가 겨냥하는 목표에 보다 민감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 민족 자신의 주도적 대응이 강구되지 않는 한, 제국의 패권적 지배전략에 의한 기만의 덫에 걸려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서 멀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결코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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