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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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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추락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굿모닝시티 게이트' 보도에 대해
한때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동아일보가 추락하고 있다. 추락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지만 정작 주요 내부구성원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거나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참을 수 없는 동아일보 기자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고정 독자들도 떠나고 있지만 경영자는 고가의 경품으로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동아의 추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근래에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저널리즘의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제작내용과 방식이다. 선진신문과 후진신문의 차이점은 저널리즘의 원칙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지키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동아의 지난 16일자 ‘굿모닝시티 게이트’에 5명의 정치인이 연루됐다고 실명보도를 한 내용과 그 이후의 대응방식을 보면 이런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도에 의하면, 동아는 오보논란을 불러온 ‘문제의 기사’에 대해 23일까지 자체 검증을 해 오보로 판명나면 23일자 1면에 정정 및 사과보도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는커녕 오히려 ‘음모론’ 등 밑도끝도 없는 소설식 보도로 진상은 오히려 오리무중으로 사라졌거나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더 이상 본질이 흐려지기 전에 무엇이 잘못됐고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저널리즘의 원칙을 무시한 부분.

동아는 7월 16일자 1면톱 기사로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으로 구속중인 윤창열씨가 검찰조사에서 로비명목으로 돈을 제공했다는 ‘5명의 실세정치인들’의 실명을 밝혔다. 검찰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내용을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란 익명을 이용해서 해당정치인들에게는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검찰이 부인한다고 해서 기사화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이와 같이 파급효과가 큰 기사의 유일한 보도 근거가 익명의 취재원이라는 사실이다. 익명의 취재원은 종종 기자의 편의에 따라 가공의 인물로 밝혀지는 경우가 선진언론에서도 목격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선진언론에서는 타인이나 조직을 비판하거나 공격할 때에 한해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하는 것을 윤리강령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이 중대하고 후속취재, 보도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익명의 취재원’은 제한적으로 허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동아의 ‘굿모닝게이트’ 후속보도는 16일자에서 한발도 더 나가지도 못했고 더 깊이있는 내용을 전하지도 못해 ‘한건주의’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1면톱으로까지 올린 파격적 내용의 기사가 ‘익명의 취재원’을 악용한 케이스라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무시한 또 다른 기사작성행태는 반론권 보장부분이다. 살인 혐의자든 비리 의원이든 의혹을 제기할 때 준수해야 할 저널리즘 원칙이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반론권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이 용이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에게 전화 한 통없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후진적 보도행태를 동아는 답습했다. 비리종교집단처럼 반론권을 준다고 해도 도망다니는 상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취재대상에게 ‘취재성실의 의무’를 방기하고 반론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해명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한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기사를 1면톱에 올릴 것인가 1단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취재기자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바로 정치부장과 편집부장, 편집국장의 판단이 절대적이며 고유한 권한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 보도에 대한 책임의 경중을 따지자면 부실한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보다 이를 1면톱감으로 밀어부친 부장과 국장단의 책임이 더욱 크다.

또한 동아는 편집국을 항의방문한 김원기 민주당 고문 지지자와 이규민 편집국장 사이에 오보일 경우 23일자를 통해 오보임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동아는 약속한 날짜에 침묵했다. 약속이행은커녕 스스로 진상조사의 내용을 밝히지도 않았고 경위 설명도 하지 않았다. 동아는 대형오보사건에서 제대로 해명이나 사과한 적이 있느냐는 점이 먼저 지적돼야 한다.

동아는 2000년 6월3일 ‘김정일 북한 총비서가 8.15 광복절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내용을 1면톱으로 올렸다.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오보특종’을 한 것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동아의 보도는 막무가내식이었다. 검찰이 공식적으로 부인해도 일단 보도하고 보자는 ‘한건주의’의 재판이다. 이와 관련해서 동아가 해명이나 사과를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은 없다. 2000년 상반기 구제역 파문 당시 동아는 ‘가축구제역 사람에 전염’이라는 오보를 내보내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과도 있다. 이런 오보에 대해 구차한 변명은 있었지만 용기있는 사과나 해명은 볼 수 없었다.

동아가 이처럼 무모하게 한건주의식 보도를 할 수 있는 이면에는 정치인들의 비겁한 행태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했다. 비리정치인으로 지목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처음에는 ‘민ㆍ형사 소송’대응 운운하지만 몇 달 못가서 모두 취하해버렸다. 언론사들의 회유와 협박이 통한다는 소리다. 이번 사건도 정치인들이 큰소리치며 소송 운운하지만 적어도 기자나 신문사는 이를 믿지 않는다.

사법부도 지방언론에 대해서는 잘도 ‘법대로’를 외치지만 중앙언론에 대해서는 ‘멋대로’ 잣대를 들이대며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 같은 대학교 선후배사이로 한다리만 건너면 모두 동문들인데 언론자유를 내세우며 ‘적당한 타협’을 우선하여 정치권과 언론의 대립에 대한 제대로 된 판례조차 드물다.

동아의 이번 보도는 저널리즘 원칙만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으로도 불법보도행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수사당국이나 관계당국의 발표없이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취재하여 보도하는 경우, 기자가 관계자의 증언을 두루 취재하는 등 기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인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다. 그러나 기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은 경우 ‘진실이라고 믿은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 판례’가 있다.(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사유 참조) 동아의 경우 기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익명의 취재원을 이용했을 뿐, 관계자의 증언이나 당사자의 반론 등 어느 것도 반영되지 않아 제대로 된 언론판결이 나온다면 명백한 불법보도로 분류될 것이다.

동아같은 대형신문사들이 한건주의에 빠져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하여 믿거나말거나식의 보도를 하고 이에 대한 해명도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는 행태. 그 대상이 된 정치인들마저 처음에는 ‘발끈’해서 민형사소송 운운하고 얼마가지 않아 슬며시 취하하며 불법보도와 악수하는 행태. 사법부에 가더라도 대통령 아들이나 검사, 판사의 명예만 건드리지 않으면 중앙언론의 불법보도에는 너무나 관대한 법적용행태. 이런 합작품이 오늘날 무모하고 무책임한 한국언론의 서글픈 현주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은 속성상 스스로 신중하고 책임있는 보도행태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법이 있고 제도가 있는 것이다. 선진국을 보라. 언론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지만 그 자유를 남용하거나 인권을 침해했을 때 가혹하리만큼 법적 책임을 묻는다. 심지어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제도(보도에 고의성이 있을 경우 거액의 돈으로 보상하라는 징벌 성격의 금전적 배상 제도)를 도입하여 언론의 신중한 보도, 책임있는 보도를 강제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경우 한해 수십개의 크고작은 신문사들이 소송에 시달려 문을 닫거나 정간할 정도다.

한국은 더 이상 군사독재시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도 아니다. 현재 신문이나 방송에서 마음먹고 보도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과거 대통령에 관한한 신중하게 보도하던 관행조차 노무현 대통령 취임후 과도할 정도로 사사건건 비판거리로 삼을 정도다. 언론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며 합법적 취재보도를 하지 않을 경우 사법부가 견제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법치사회를 지키는 사법부가 언론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언론전담재판부 신설을 제의한다. 동아일보가 법적, 윤리적 책임을 언론자유만큼 동등하게 인식했더라도 그런 부실한 보도는 1면톱으로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설혹 그런 보도를 했더라도 사후에 이처럼 무책임하게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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